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을이 된 갑들 (1)
-다음 소식입니다.
태광건설이 편법 승계 의혹으로 연일 주가가 하락한 가운데, 검찰은 오늘 아침 송 회장을 소환하겠다 발표했습니다.
송 회장은 그간 누락되어 온 계열사를 모두 인정하는 한편,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창진인베스트의 거취를 표명하겠다 했는데요.
명의 신탁한 회사를 어떻게 할지 주주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전의를 상실한 송 회장은 데드라인 이틀을 넘기지 않았다.
다음 날 주가 공시를 통해 관련 의혹 상당수를 인정했으며, 창진인베스트와 관련한 의혹을 따로 발표하기로 했다.
그가 출두하기로 한 시간이 왔을 땐 서초구 일대가 또다시 북새통을 이뤘다.
-뒷계열사 정황에 대해서 모두 인정하시는 겁니까?
-공정위가 발표한 합병 비율은 사실이었는지요.
송 회장이 포토라인에 서자 백야성을 방불케 할 만큼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안녕하십니까. 태광건설 대표이사 송태수입니다.
먼저 최근 논란으로 인해 막심한 피해를 입은 주주 여러분들에게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는 무겁게 고개를 숙이더니 원고를 들었다.
-저희 태광건설은 충청권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이며 전국구로 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하여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 지정 자료 요구를 받았습니다만 여러 미흡한 점을 많이
보였습니다.
현재 공정위가 제기한 누락 계열사 모두를 인정하겠습니다.
그리되면 저희는 자산 총액 10조를 넘는 출자 총액 제한 기업으로 선정되게 됩니다.
사실 늦은 감이 있습니다. 저희는 여러 건설 업무를 따내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기까지 클 수 있었습니다.
이번 대기업 선정을 기회로 더욱 도약하는 태광건설이 되겠습니다.
여기까진 그저 그런 말이었다.
-그리고 합병에 관한 저희의 입장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합병은 없습니다. 저희 태광은 더 이상 창진에 일감을 몰아주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분양 업무는 외주 사업에 맡기려 합니다.
창진인베스트는 폐업 수순에 들어갈 것입니다.
폐업이란 말에 기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편법 상속하려고 만든 자회사를 자진 폐업? 이건 편법 상속도 포기하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상속 작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른 방법이 있는 겁니까.
송 회장은 가만히 생각하다 말했다.
-정석대로 상속 작업에 임하겠습니다. 현재 저희는 국세청과 상속세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상당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신용 대출 및 주식 매각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히 해 둘 것은 더 이상 상속세를 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해당 사태로 피해를 입으신 주주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대기업 선정을 기회로 더욱 도약하는 태광건설이 되겠습니다.
송 회장이 홀연히 사라지자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무슨 꿍꿍이지? 저렇게 고분고분할 리가 없는데.”
“대기업 집단으로 선정되면 앞으론 뒷장난도 못 치잖아.”
“이거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재벌 총수들을 한두 번 상대해 본 기자들이 아니다.
백기투항이나 다름없는 이번 발표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의를 모르겠다. 합병을 포기하고, 창진을 폐업까지 시키면 편법 상속은 완전히 막힌다.
대기업 집단으로 선정되면 앞으론 살벌한 감시가 펼쳐진다. 그럼 정말로 신용 대출까지 받아서 상속세를 내야 할 텐데.
“그럼 혹시…… 송 회장이 공정위한테 완전히 항복한 거 아니야?”
“모르겠다, 진짜. 저 양반 진짜 왜 저래?”
“선배님. 그럼 저 양반 취조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죠. 어차피 순순히 다 인정하겠다 하면 취조도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다 끝나면 검찰한테도 물어봅시다. 진짜로 순순히 인정했는지.”
그렇게 송 회장은 2시간 남짓한 취조를 마쳤고, 가는 길에도 기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기자들은 검사로부터 취조 내용을 전해 듣고 나서야 기사를 내보냈다.
***
송 회장의 합병 철회로 주가는 미흡하지만 정상 궤도에 올랐다.
이미 성장세에 있던 회사다. 오너가 뒷장난치지 않겠다 공식 선언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숨을 돌리며 있을 때.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럼 오늘이 공식적으로 소환 끝인가요.”
“네. 그렇게 되겠네요.”
마지막 소환을 받은 임진수 전 사장.
얼굴이 차갑고, 미지근했다. 자신이 일평생 몸담았던 태광의 주가가 풍비박산 났으니 마음이 좋진 않을 것이다.
“송 회장…… 아니 회장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누락에 대한 처벌이 떨어질 겁니다. 근데 합병 철회했으니 그렇게 큰 처벌이 떨어지진 않을 거예요.”
“다행이군요.”
“하지만 임진수 씨는 처벌을 다 못 피할 겁니다. 특히나 창진인베스트를 통해 받은 부당 배당금은…… 모두 반납해야 될 겁니다.”
“징역도 살아야 되나요?”
“그 정도 죄질은 아닙니다. 저희한테 협조하신 것도 있고.”
“그렇담 다행이네요. 저도 어차피 이 돈 제 거라 생각한 적 없습니다. 너른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 사장 얼굴에선 일말의 미련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팀장님. 이런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회장님 잘 좀 봐주십쇼. 그래도 공사 따낼 때 부정한 방법으로 따낸 사람은 아닙니다.”
“네. 딱 잘못한 만큼만 처벌할 겁니다.”
감정이 다 정리된 걸까.
임 사장은 줄곧 송 회장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다. 그 상황이 묘하게 느껴졌다.
“감사하게 됐습니다. 임 사장님 덕분에 수사가 쉬웠어요.”
“나도 팀장님 덕분에 결심이 쉬웠습니다. 내가 평생 이용당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됐군요. 회사 퇴직한 지가 언젠데 참…….”
“지금도 빠른 거예요. 죽을 때까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요 뭘.”
“네?”
“그냥 아는 사람 얘깁니다. 아무튼 그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준철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거의 악연을 정리하니 후련함이 들었다.
그건 임 사장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
“그럼 대기업 선정 마무리한 거야?”
“네. 송 회장이 누락 계열사 전부 신고했습니다. 태광 그룹 총 자산 총액이 11조가량 되더군요.”
“그 영감 뒷계열사로 빼먹은 돈 많을 텐데 그건?”
“신고할 때 다 채워 놨습니다. 서류상으론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문제 삼는다면 충분히 삼을 순 있습니다만…….”
경쟁정책국 이 국장은 고개를 저었다.
“됐다. 삥땅친 돈 도로 돌려놨으면 끝났지. 그럼 이젠 편법 상속도 끝난 거네?”
“네. 출자 제한 지정시켜 놨으니 앞으론 뒷장난 못 칠 겁니다.”
이 국장은 기분 좋게 서류를 덮었다.
“윤 과장. 솔직히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이놈들 뒷계열사만 파악해도 성공한 조산데, 편법 상속 흔적까지 잡아내다니.”
“솔직히 전 별로 한 것도 없습니다. 그 친구가 다 했지.”
“종합국의 그놈?”
“네. 소문대로더군요. 임 사장이 저랑 있을 땐 한마디도 입을 떼지 않았는데, 그 친구랑 독대하고 나니 술술 자백했습니다.”
사실 그 부분은 아직도 의문이었다. 가장 충신이었던 임 사장 입을 어떻게 열었던 걸까.
아쉬울 따름이다. 취조실 녹화만 해 뒀어도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마음 같아선 정말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이 국장이 흐흐 웃었다.
“아서. 그놈 몸값 높아. 떠돌아다니는 부서마다 다 데려가려 하니.”
웹튜브 수사로 올해의 공정인 상을 탔다 했던가?
YK암보험부터, 산재 은폐 조사까지 했던 놈이다. 최근엔 바이포인트로 스위스 계좌보다 찾기 힘든 은닉 자산을 찾아내었다.
이는 과장인 자신보다 더 대단한 커리어다.
“그럼 단념해야겠군요.”
“그래야지. 자네가 키울 생각을 해 봐. 우리 국에도 똘똘한 놈 많다.”
많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만큼이나 직감을 타고난 놈은 없다.
마치 대기업에서 몇 년 구른 것 같이 능구렁이 같고, 솜씨가 훌륭하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행시 출신이라곤 믿기지가 않는다.
“그간 고생 많이 했다. 운영지원과에 카드 맡겨 놨으니 오늘 원 없이 회포 풀어.”
***
더할 나위 없이 성공한 수사였지만 뒷맛이 텁텁하다. 임 사장 모습에서 과거 김성균의 모습이 너무 많이 보였다.
아는 사람을 만나서인지, 아니면 아는 업종을 조사해서인지 이번 사건은 유난히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임 사장이 짝사랑을 끝냈다 하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당분간은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다.
“얘기 들었다. 태광건설이 다 인정했다더구만.”
“네.”
“윤 과장이 칭찬 많이 하더라. 자기랑 했을 땐 씨알도 안 먹혔는데 됐다고.”
준철은 바로 종합국에 북귀해 오 과장에게 보고했다.
이미 언론에 떠들썩하게 나간 터라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근데 너 얼굴이 왜 그러냐. 꼭 허탕친 놈처럼.”
“잠을 많이 못 잤습니다. 이번 사건이 좀 어려웠던 것 같네요. 해서 말인데 과장님. 저 연차 좀 쓸 수 있을까요. 한 사흘 정도만 쉬다 오고 싶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속 응어리.
이걸 진정시키지 않고선 다음 일을 맡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늘어지게 자고, 늘어지게 먹으며 심신의 안정을 취하면 좀 나아지겠지.
“휴가? 그래…… 휴가…… 좋지.”
하지만 오 과장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참 희한한 광경이었다. 본래 오 과장은 준철의 휴가 문제에 인색함이 없었는데. 일하겠다 해도 등 떠밀어서 휴가를 줬던 사람인데.
“이 팀장. 미안한데 그거 다음에 쓰면 안 되겠냐. 자네가 꼭 좀 맡아야 할 일이 있어서.”
“종합국에 무슨 일 터졌습니까?”
“특허 갑질이 하나 들어왔는데…… 일이 좀 커질 것 같다. 자네랑 좀 연이 있는 기업이기도 하고.”
“저랑 연이 있다고요? 누가 신고했는데요.”
“대웅조선.”
순간 머릿털이 쭈뼛 섰다.
대웅조선이라면…… 배 한 척을 다 까뒤집었던 그놈들?
“아니, 그놈들 아직도 하청 특허 빼먹고 삽니까.”
“반대야. 이번엔 그놈들이 당했어. 피해자네.”
“피해자요?”
“대웅조선이랑 국내 조선 업계 다섯 곳이 고발을 했거든. 프랑스 ATT사가 핵심 특허를 가지고 갑질을 일삼고 있다네.”
무슨 사건인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준철은 서둘러 그 빅5를 살펴봤다.
‘이게 무슨…….’
대웅조선이 공정위에 신고를 했는데, 빅5 명단엔 대성중공업도 있었다.
한 놈은 자신의 손으로 배 한 척을 다 까 본 놈이고, 다른 한 놈은 산재 은폐하려다 작업 중지 명령까지 받은 놈이다.
영혼까지 털어 댄 놈들을…… 이젠 도와줘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