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오히려 좋아 (2)
“이게 말이나 될 소리요!”
과징금까지 통보하니 박 변호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호통을 쳐 댔는데, 그를 알 턱이 없는 준철은 심드렁했다.
“누구십니까.”
“ATT 법률 대리 박병수 변호사요.”
“ATT는 임원도 없고, 직원도 없습니까? 왜 내부 직원이 오지 않으시고…….”
“지금 누가 온 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한국공정위가 외국 기업에 대해 부당한 짓을 해 대기에 법률 대리인 내가 왔소. 나는 공정위의 위법 부당한 만행을 엄정한 법적 논리로 따질
겁니다.”
말 한번 거창하다.
소명도 못 해 자국에서 빽 데려온 놈이.
“엄정한 법적 논리 따져서 물은 과징금이 이겁니다.”
“아무리 홈그라운드라 해도 경우가 있지! 과징금 130억에 시정명령? 한국은 로열티에 대한 존중도 없습니까? 정당한 특허 권리를 국가기관이 묵살해도 되는 거요?”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내 말이 틀렸소?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국 기업 편들어 주는 나라도 없을 겁니다. 그러고도 여기가 ‘공정’거래위원회요?”
한 번은 참기로 했다.
말마따나 여기가 국내 조선 업계의 홈그라운드인 건 사실이니.
“어떠한 점이 불공정하다는 건지요.”
“그걸 구구절절 다 설명해야 알아듣습니까?”
“시간 많습니다. 저희는 기업들의 이의 제기를 늘 존중하는 편입니다.”
확실히 프랑스 기업이긴 한 모양이다.
한국 사람들은 하던 짓도 멍석 깔아 주면 못 한다던데, 이쪽은 물 만난 제비마냥 쏘아붙였다.
“첫째! 시장질서에 공정위가 개입하지 마쇼! 국내 조선 업계나 우리나 국가기관에 보호받아야 할 만큼 작은 업체들 아니요. 우리의 로열티는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형성된
가격이라고.”
입술이 달싹거렸다.
누가 지금 가격 가지고 시비 걸었나. 정당한 라이선스에 안 정당한 시공 서비스까지 끼워 파니 문제다.
“그리고 둘째! 라이선스와 시공 작업을 분리할 생각 마쇼! 국내기업들은 이걸 자꾸 분리하겠다 억지 부리는데, 이 시공 서비스까지가 로열티 범위란 말이오.”
“보통 그런 걸 끼워팔기라 합니다. 냉장고만 사겠다는데 왜 자꾸 설치비까지 받겠답니까.”
“우리 탱크 기술을 고작 냉장고에 빗대는 게 권리 침해라는 겁니다. 이게 그렇게 하잘것없는 기술 같으면 국내 업체서 개발하세요.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에서 액화시키고 안정적으로
관리할 기술.”
준철은 머리를 긁적였다.
“얘기가 또 그렇게 귀결되는군요. 우리 조건이 싫으면 다른 기술 써라.”
“그게 시장 논리 아니요.”
“그 시장 논리 함정엔 ATT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뭐요?”
“국내 업체들의 요구 조건이 싫으면 다른 선박 업체랑 거래하세요. 납품 끊어 버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기세등등하던 박병수의 입이 다물어졌다.
ATT사도 이 방안에 대해 생각 안 해 본 게 아니다.
국내 업체들이 저장 탱크 개발에 열을 올릴 때 ATT는 선박 시장을 노렸다. 독보적인 저장 탱크 기술에 움직이는 배만 확보할 수 있으면 천연가스 시장은 ATT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인류 최첨단 기술이 축적된 LNG 시장은 벽이 높았다. ATT가 지분을 사들였던 유수의 조선 업체는 입찰 시장에서 모두 한국 조선 업계에 밀렸다.
“…….”
그런 만큼 더 잘 안다.
글로벌 점유율 87%인 한국과 연을 끊는 건 동반 자살이나 다름없다는 걸.
“겨우 뉴스만 좀 찾아봤는데, 서로가 정말 필요한 업체라는 건 알겠더군요.”
“그 관계를 파탄시킨 게 바로 한국 조선 업계요.”
“그러면 그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준철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국내 업체들하고 합의하세요.”
“합의?”
“그게 제일 빠릅니다. 그럼 과징금도 무를 수 있고, 이 문제는 없던 일이 될 겁니다.”
“우리라곤 안 해 봤겠소? 내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우리 피 같은 기술 전수해 주겠다 했소. 그걸 걷어찬 게 누군지 아시오.”
“2세대 저장 탱크 기술은 국내 업체도 많이 따라잡은 거 아닙니까. 좀 더 진정성 있게 그들을 대해 주시죠.”
“지금 무슨…….”
“이건 강요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가장 빠른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양 기업이 원만히 합의하는 게 가장 빨라요.”
이 문제에서 빠지고 싶다. 그게 가장 솔직한 심정이다.
엄정하게 법리를 따져 끼워팔기라 결론 내렸지만, 솔직히 외국계 기업이라 처벌하고 싶지 않았다.
놈들이 자국 기업 편들기라 매도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니.
“그럼 그렇지. 속셈이 따로 있었구만.”
하지만 뒤이어 나온 박병수의 반응은 그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혹시 뒤에서 돈이라도 받은 게요. 아님 은퇴 후에 자리라도 보장받았나.”
“……뭐라고요?”
“우린 당신들이 편파 조사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피부로 느껴질 만큼 아주 노골적이라고!”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는데 박병수가 먼저 선수를 쳐 버렸다.
“근데 우리라곤 당하고만 있겠소? 우리도 닿는 연줄 다 동원해 한국 공정위의 만행에 대응하겠소.”
“또 프랑스 재정부에 공문 요청하시려고요?”
“아시는 분이 참 배짱도 좋습니다. 이 문제가 통상마찰로 비화되면 누구 손해일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계속해서 합의를 종용했던 팀장님의 언행도 잊지 않겠습니다.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되면 엄정하게 조사될 거요.”
놈은 할 말이 끝나자 그대로 자리를 나가 버렸다.
준철은 끓어오르는 분을 참으며 심호흡을 했다.
이 자리에 들어오기 전에 몇 번이나 다짐하지 않았나. 두 번째까지는 참아 주자고.
놈은 그 기회를 톡톡히 써먹었을 뿐이다.
***
박병수는 큰소리 떵떵 치고 나오긴 했지만 심란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상황은 최악이다.
프랑스 재정부의 공문 한 장이면 조사가 곧 종결될 줄 알았건만…… 되레 놈들의 화를 돋운 것인지 시정명령에 막대한 과징금까지 통보받았다.
문제는 프랑스 당국이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거다.
천연가스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렵사리 공문 한 장 얻어 냈지만, 이건 사실 국익과 별 관련 없는 문제였다. 당사자인 자신들도 끼워팔기라는 걸 아는 상황에서 당국이 발 벗고 나서 줄
리 만무하다.
사실 젊은 놈이 지껄인 소리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금이라도 합의하는 것이다. 피해 기업이 고발을 취하하면 과징금도 취소될 것이고, 그나마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
박병수 변호사는 곧 빅5 조선사 사장을 한자리에 모았다.
“참 이 문제 가지고 몇 번이나 얼굴 붉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정위에서 과징금을 발표한 탓일까. 확연히 달라진 태도가 눈에 띈다.
이 자리에 모인 사장들 얼굴이 묘하게 뻣뻣해져 있었다.
“경쟁 업체도 아니고 공생 업체인데 이게 뭐 하는 꼴인지 원…… 오늘은 진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
“박 변호사. 알 만한 사람끼리 그리 뜸 들일 필요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그럼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죠. 이게 ATT가 생각하는 합의안입니다. 읽어 보시지요.”
서류를 돌리자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곧 노기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앞으로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의무화하지 않는 대신 로열티를 올려 달라, 이 말입니까.”
“네.”
“우리는 글로벌 시세를 반영해 계약하지 않았소? ATT의 저장 탱크는 납품 단가가 다 똑같은 걸로 압니다. 그럼 ATT가 다른 나라에도 로열티를 올리는 거겠지요?”
“그건 저희가 결정하겠습니다. 만약 이 조건이 싫으면 B안도 있습니다.”
“B안은 읽어 볼 것도 없겠네. ATT가 넘기겠단 기술은 이미 우리도 많이 따라잡았소. 이거 안 받겠다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소리요.”
회의실 곳곳에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박 변호사는 우리가 원숭이인 줄 아시오? 끼워팔기를 하지 말라는 건 당신들이 걷어 가는 부당이익금을 그만두란 뜻입니다. 이런 조삼모사식 합의안에 누가 동의하겠소?”
“결국 또 거절하시는군요.”
박 변호사는 그리 말하며 마지막 서류를 꺼냈다.
“그럼 이 문제 가지고 진짜 끝장을 보는 수밖에.”
“뭐요? 이미 과징금에 시정명령까지 다 나왔는데, 또다시 자국에서 공문 가져올 거요?”
“우리가 거기서 그칠 것 같습니까. 공정위와 국내 조선 업계의 유착 관계를 검찰에 고발까지 할 겁니다.”
“뭐라? 무슨 관계?”
“공정위 만나 보니 계속해서 합의를 종용하더군요. 우린 이 관계가 무척 의심스러워 당국에 직접 항의도 했습니다.”
빅5 사장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럼 그렇지. 기업과 관료의 유착 관계가 하루 이틀 일인가.
“지금 뭐라 했소.”
“아닙니까? 그 젊은 팀장한테 직접 물으니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하던데.”
“……그 얘길 당사자한테 직접 했다고요? 이 사건 담당자가 이준철 팀장 아니오?”
“잘 아시는군요. 우린 과징금이 떨어진 배경도 궁금하고, 계속해서 합의를 종용했던 그자의 태도도 의심스럽습니다. 대체 무슨…….”
박 변호사는 말을 잇다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진짜 중요한 말은 지금부터 시작인데, 빅5 사장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생각하기도 잠시.
“조 사장. 우리의 우려가 현실이 됐구먼. 그놈이 외국계 기업이라고 정말 많이 봐준 모양이야.”
“세상에나…… 그놈이 어떻게 그 소릴 듣고 가만히 있었지?”
“우리 같은 국내 기업이 그 소리 했어 봐. 집행유예도 어림없어. 실형 떨어질 때까지 괴롭혔을걸.”
엉뚱한 소리가 계속되던 중. 대웅조선 조 사장이 딱한 얼굴로 말했다.
“박 변호사. 지금 우리랑 그놈의 유착 관계가 의심된다 말씀하셨소?”
“아직 내 얘기 안 끝났어요.”
“별로 안 궁금하니 나중에 하시구려. 근데 당신이 이 얘긴 알아야 할 겁니다. 우리 대웅조선이 하청 특허 한 번 잘못 건드려서 욕 한번 크게 봤거든. 그때 배 한 척 다 까서 우리
망신 준 게 누군지 아시오?”
“박 변호사. 우리 대성중공업은 하청 근로자 산재 한 번 은폐한 적 있는데 그때 작업 중지 명령까지 당했소. 그때 떨어진 주가가 아직도 회복을 못 하고 있습니다. 허허. 그게 누구
때문에 그런지 아시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궁금하면 우리 주가 공시 찾아보시구려. 당시 담당자가 누구였는지.”
“아이고- 주가 공시까지 갈 필요 있나. 인터넷만 쳐도 나와. 그놈이 언론사들 다 끌어모아서 공론화시켜 버렸잖아.”
박 변호사의 얼굴이 쩍쩍 갈라지자 조 사장이 서류를 쓱 돌려줬다.
“우린 이 조건 합의 못 하니, 공정위 처벌 달게 받으시구려.”
“…….”
“무운을 빕니다.”
정신 차려 보니 빅5 사장들이 모두 동정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