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꽤 공정한 놈 (2)
[속보 – 공정위 과징금 결정] [ATT사에 130억대 과징금 및 시정명령] [특허권 남용에 대한 행정 규제] [외국계 회사라도 예외는 없나?]마지막 남은 장애물을 제거한 뒤, 공정위는 처벌 내용을 공식 발표해 버렸다.
그 내용은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왔다.
특허 갑질은 늘 있어 왔던 문제지만 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이 전면전을 펼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만큼 공정위가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공정위가 완벽히 국내 업체들의 손을 들어 주었으니……
축포가 터지기는커녕 우려 섞인 기사가 더 쏟아져 나왔다. 네티즌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EU는 국내 조선사들의 합병도 거부한 놈들이다.
천연가스 문제에 대해선 양보가 없지. 자국 기업의 저장 탱크 건들면 가만있지 않을걸?
⌞근데 가만 안 있으면 어떡할 거? 공정위가 발표한 내용 보면 끼워팔기 혐의가 명백한데.
⌞명백이고 자시고 로열티 가진 놈이 왕이지. ㅡㅡ 꼬우면 국내조선사들이 저장 탱크 개발하든가.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지. 꼬우면 다른 조선 업체 알아보든가.
-공정위 발표 믿고 주식 주워 담는 흑우 없제? ^^
지금이야! 익절 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법원까지 가면 무조건 뒤집힌다. 외국계 기업한테 끼워팔기? 그딴 개념도 국내 업체들 간에 갑질하라고 만든 거지, 무슨 글로벌 시장 논리에
적용시키려 그래.
⌞ㄹㅇㅋㅋ 한국 공정위가 선 넘었어. 자칫하면 유럽 시장 잃을 수도 있는데 뭔 깡?
⌞맞아. 국내법 잣대로 따지면 OPEC은 석유 가격 담합 업체냐? ㅋㅋ 분수를 모르고 너무 나댐.
-2년 전을 기억해 바보들아!
한국 산업은행, 공정위, 일본, 미국, 중국. 전부 다 합병 찬성 했는데, 딱 한 놈 반대해서 밥상 엎어졌어. 시즌2 찍을 거야?
⌞ㅋㅋㄹㅇ EU가 어떤 놈인데 이걸 그냥 보고만 있어.
하지만 그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발표가 뒤를 이었다.
[ATT, 대체적으로 혐의 인정. 공정위와 처벌 수위 협상할 듯]***
다시 만난 ATT사.
이번엔 박병수뿐 아니라 마르숑 사장까지 나왔다. 일전과 달리 그들은 나라 잃은 얼굴로 준철을 마주했다.
뭐 진짜로 나라를 잃긴 했지. 든든한 백이었던 프랑스와 EU에서 자신들의 편을 안 들어줬으니 말이다.
“과징금 130억과 시정명령. 이게 저희가 내리는 처벌의 전부입니다. 더 하실 얘기가 있습니까?”
사실 시정명령은 몰라도 과징금은 협상할 여지가 있었다. 해당 결정에 승복하겠다 말하면 절반 정도로 줄여 줄 생각이었다. 아니, 아예 안 받아도 좋다. 앞으로 끼워팔기 안 하겠단
약속만 받아낸다면.
박병수 변호사는 왠지 그런 걸 바라는 눈치였지만 마르숑 사장은 영 아니었다.
그는 준철의 얼굴을 한 번 째려보더니 말했다.
“한국 공정위도 참 치사합니다, 그래.”
“무슨 말씀인지.”
“프랑스 재정부랑 EU경쟁당국까지 가서 우릴 이간질시키지 않았소.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모르지만 우린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끝까지 싸울 거요.”
박 변호사는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쪽은 법조인이니 더 이상의 싸움이 무의미하단 걸 아는 모양이다.
“정 그렇게 돈과 시간이 남으시면 마음대로 하세요. 근데 이간질시킨 건 우리가 아니라 ATT 아닙니까.”
“뭐?”
“만나 보니 그쪽도 별로 이 문제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 하더군요. ATT사에서 천연가스 문제라고 하도 겁박을 주니 어쩔 수 없이 공문 한 장 날려 준 거랍니다.”
마르숑 얼굴이 벌게졌다.
맞는 말이다. 그 또한 닿는 연줄을 모두 동원해 이 공문 한 장을 받아 냈다.
하지만 자국에서 이 공문을 이렇게 쉽게 철회할지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다 부당행위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공정위가 기업 간의 싸움에 깊게 끼어들진 않을 거예요. 끼워팔기에 대한 부분만 없애 주면 과징금도 최대 절반 까지 낮춰
드리겠습니다.”
준철은 그리 말하며 눈을 돌렸다.
“박 변호사님은 아마 아실 겁니다. 국내 조선 업계를 제가 어떻게 처벌했는지.”
“…….”
“다른 곳은 작업 중지랑, 생산 중지까지 얻어 냈습니다. 이런 제가 국내 업계랑 유착 관계라니 말이 안 되죠.”
“그때 했던 말 중에 오해가 남은 모양인데…….”
“그 문제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는 건 아닙니다. 지금 이 처벌이 결코 과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는 거죠. 당장 결정 내리기 어려우시면 잠시 시간을 좀 드리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준철은 자리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하다 마르숑이 겨우 입을 뗏다.
“미스터 팍. 저자의 말이 사실이오?”
“예. 국내 업계에선 이미 악명이 자자한 인물이더군요.”
“하아…….”
“사실 이자의 평소 행실을 보면 저희 처벌은 정말 약과입니다. 다른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방안.
공정위의 처벌에 모두 따르라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ATT는 끼워팔기를 할 수 없으며, 계약 조건도 상당 부분 바꿔야 한다.
당장의 과징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앞으로 이 모든 걸 다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마르숑에겐 뼈아픈 사실이었다.
이미 다 결정 난 사항인데, 마르숑은 대답을 주저했다.
“마르숑 사장님. 아직 입장 정리가 안 되신 겁니까.”
박병수는 지금이야말로 직설적으로 말해야 할 때란 걸 알았다.
“만약 저희가 재판을 계속 고수하면 더 큰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 큰 처벌?”
“법원 싸움까지 가면 놈들도 과징금을 올릴 공산이 크죠. 법원에서 깎아서 부과할 가능성도 있으니. 사실 지금 상황에선 믿을 게 없습니다. 프랑스 당국, 아니 EU경쟁당국에서도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가장 믿을 만한 방패 두 개가 없어졌다.
재판에서 지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죄를 시인하고 선처를 바라는 게 낫습니다. 맞고 고치나, 덜 맞고 고치나 하는 차이일 뿐이죠.”
마르숑은 한숨을 푹푹 쉬어 댔다.
정말로 숨이 막히는 놈이다. 이걸 가지고 자국까지 가서 건너 가 다 설득을 해 버리다니.
“사장님…….”
박 변호사가 대답을 재촉할 때, 문이 열리며 준철이 들어왔다.
“충분한 상의 시간을 드린 것 같은데, 대답이 정리됐나요?”
박병수 변호사는 고개를 푹 숙이며 눈치만 살폈다.
“계속하실 건가요?”
준철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마르숑 사장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승복…… 하겠습니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따라 계약서 내의 불공정 조항에 대해 고치겠습니다. 그리고 과징금은…… 공정위의 너른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
마르숑 사장의 대답과 함께 모든 것이 정리 됐다.
명백한 끼워팔기에, 불공정 약관이었지만 공정위도 자비를 베풀었다. 추후의 문제, 즉 불공정 약관에 대해선 모두 시정명령을 내려 삭제시켰지만 과징금은 절반 정도로 낮췄다.
이 내용은 모두 주가 공시를 통해 발표되었다.
국내 조선 업계 다섯 곳을 통해 이 내용이 발표되자 주가가 급히 반등하며 주주들의 파티가 열렸다.
-이준철이! 이준철이!
저 X끼 때문에 물렸던 내 투자금이 이제야 회복을 하는구나ㅠㅜ
⌞ㅠㅜㅠㅜㅠㅜ 결자해지 나이스다. 드디어 대웅조선이랑 대성중공업 주가 회복했다.
-이거 국내 조선 업계에 엄청난 호재지?
⌞ㅇㅇ 끼워팔기 안 하면 순이익 오르겠지. 확실히 호재지.
⌞그럼 주주들한테 배당금도 오르나? ㅎㅎ
⌞⌞이거 대기업들 아직도 모르네. 배당금이 느는 게 아니라 임원들 인센티브가 오른다ㅡㅡ
“잘 해결됐나 보군.”
김태석 국장은 이 반응을 보며 흡족해했다.
“네. 안 그래도 놈들이 재판까지 가면 어쩌나 걱정 많았는데, 다행히 막판에 회군했습니다.”
“그 배경이 뭐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놈들인데.”
“하나밖에 없죠. 자국에서도 손을 떼니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을 겁니다.”
애초부터 안 되는 싸움이다.
천연가스가 연관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건 어디까지나 기업의 이윤이 달린 문제. 애초에 이걸 국익과 연관 지으려 했던 거 자체가 넌센스였다.
“국내 조선 업계도 좋아하겠군.”
“우스개로 결자해지란 말이 돌더군요. 이 팀장이 특허랑 산재 은폐 혐의로 떨어트렸던 주가가 이제 겨우 회복되었으니.”
“방심하지 말라 그래. 이번엔 우리가 도왔지만 이건 결국 그놈들의 구조적 문제야. 하청이 좋은 특허 개발했을 때 정당한 로열티 지불했어 봐. 저장 탱크 기술도 이보단 더
따라잡았겠지.”
“예. 저흰 다시 이놈들 예의주시할 겁니다.”
지금의 일은 결국 원청의 잘못이다.
앞으론 건전한 기술 개발이 될 수 있게 시장을 잘 감시해야 한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설득한 게 이준철이라고.”
“네. 처음으로 그 위엄을 실감했습니다.”
“위엄?”
“칸 연방거래위원장 만났을 때, 이 팀장이 직접 설득했다 하잖습니까. 솔직히 전 긴가민가 했는데, 이번에 함께 가 보니 실력을 알겠더군요.”
오 과장은 딱히 이 문제를 자기의 공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원체 아끼는 놈이기도 했고. 또 그 말이 사실이었다.
“너무 챙겨 주는 거 아니냐? 자네가 한 일도 많았겠지.”
“쫄지 말고 할 말 다 하라고 해 준 게 전부입니다. 이 친구 정말 배짱 있어요.”
김태석 국장은 흐뭇하게 웃더니 슬쩍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그럼 이놈 과장으로 올릴까?”
“예?”
“이제 이놈도 곧 4년 차잖아. 승진 최소 연수는 애진작 채웠네.”
“아, 예. 그건 그렇습니다.”
“반응이 왜 그래? 그래도 아직 과장으로 올리기엔 무리야?”
“그건 아닙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하긴 했지만 납득이 되는 승진이다.
이미 이놈은 팀장의 역할을 넘어섰다. 이번 유럽 미팅에서 놈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피부로 직접 체감하지 않았나.
“사실 지금까지의 커리어만 보면 무리한 결정도 아니죠. 이 팀장은 내일 당장 진급시켜도 손색없을 겁니다. 근데 어디로 보내시려고요.”
“본청 세종으로 보내야지.”
“좀 아쉽네요. 이놈은 지휘부에서 있을 놈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어다녀야 할 놈인데.”
“걱정 마. 한 1년 지휘부에서 구르다 바로 서울로 다시 부를 거야.”
다시 돌아올 땐, 팀장에서 과장으로 승진해 있을 거다.
“그럼 바로 결정 내리시는 겁니까……?”
“아니, 만약 지금 승진 심사를 올리면 내년쯤에야 결정될 거야. 그냥 제일 가까이서 지켜본 자네 의견이 궁금해서 물어봤어.”
나오는 말과 달리 김 국장은 이미 결심이 선 것 같았다.
“저는 찬성입니다. 뭐 똘똘한 놈 하나 잃는 게 아쉽지만, 제 밑에서 오래 있을 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자식새끼 출가시키냐. 흐흐. 어차피 연말쯤 되어야 얘기 다시 나올 테니, 그간 좀 지켜 보자고.”
“알겠습니다.”
“고생 많았다. 꽤 큰 사건이었는데, 잘들 해 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