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국감의 계절 (2)
이해할 수 없었다.
서류 한 번 슬쩍 들여다봐도 구린내가 폴폴 난다. 외부인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군납 비리를 왜 방위사업청은 왜 몰랐을까?
“방사청 내 연루자가 있다는 거지. 이런 일은 원래 고위직들의 묵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거든.”
“꽤 큰 놈인가 보군요…… 식중독까지 보고됐는데 진상 조사 안 할 정도면.”
“그래. 그 식중독 사건도 처음엔 취사병한테 뒤집어씌웠다더군. 그 친구들한테 증인 출석해 달라 하면 만사 제쳐 놓고 와 줄 걸세.”
불쌍한 취사병들이다. 썩은 재료 가지고 요리를 하는데 탈이 안 날 수가 있나.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부식품 자체가 하자투성이었고, 납품 상태는 늘 불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군대는 병사들에게 엄격한 곳.
사건이 커질 것을 우려한 사단장이 취사병들에게 휴가 제한을 내리며 사건을 정리해 버렸다.
“박 의원. 솔직히 국방부장관 모가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 사단장들 옷은 벗겨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적장의 목을 못 베겠으면 졸개들 목이라도 가져오란 뜻이다.
“한 의원님 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없으신데요. 하하. 국방부장관까진 무리일지라도 최소한 방사청장 옷은 벗길 겁니다.”
박성택 의원은 득의양양 웃음을 보였다.
솔직히 이 건은 국방부가 아니라 집권 여당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건수다. 군납품 규모가 총 5천억대 아닌가. 만약 국방부 고위직들의 이름까지 거론되면 제2의 방산 비리
사태로 기록될 것이다.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
“근데 한 의원님. 그 방위청 관계자는 누구입니까? 연루자요.”
“사실 그 부분이 우리 지도부의 고민이네. 하루 이틀 돈 받아 처먹은 솜씨가 아니야. 몇몇 의심되는 놈들이 있는데, 단서가 안 잡혀.”
“예? 그럼 아직 실체는 파악 안 된 겁니까?”
“실체까지 파악됐으면 이걸 국감에서 터트렸겠나. 자료 입수해서 바로 특검을 요구했겠지.”
“……그럼 단순히 의심만 있는 겁니까.”
“대신 그 의심이 확실하잖아. 서류만 봐도 얼마나 해 처먹었는지 보일 정도로.”
박성택의 행복 회로가 갑자기 뚝 끊겨 버렸다.
아니…… 연루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걸 국감에서 터트리라고?
“표정이 왜 그런가?”
“……외람되지만 실체는 좀 알아야지 않습니까?”
“실체는 그 서류에 나와 있어. 그득하게 해 처먹었잖아.”
“그래도 연루자 의혹을 제기하려면, 최소한 누가 의심되는지는 알아야죠.”
“한두 번 해 처먹은 솜씨가 아니야. 의심 가는 놈은 있는데 결정적인 증거는 안 나오네.”
박성택은 그제야 왜 이런 무대가 자신에게 주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서류만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데 결정적 한 방이 없다. 이를테면 군납 업체 몇 곳이 방사청 고위직들의 일가친척 회사라거나, 수상한 자금 흐름이 있었다거나 하는 증거들.
“의원님 그 결정적 한 방 없이는 국감에서 놈들 못 쓰러트립니다.”
국감은 유죄인지 무죄인지 다투는 법정이 아니다. 증거 다 찾아서 이미 확실해진 범죄를 국민 앞에서 망신 주는 자리다.
“만약 그쪽에서 그럴듯한 변명을 대면 저만 낙동강 오리알 됩니다.”
“지금 못 하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쾅-!
“하여간 비례대표 출신들은 이게 문제야. 금배지를 쉽게 다니까 배려받는 게 당연한 줄 안다고.”
“서, 선배님.”
“박 의원.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당 지도부에서 이 정도 해 줬으면 직접 알아보고 발로 뛰어다닐 생각을 해야지! 이건 이래서 어렵다. 저건 저래서 어렵다. 그럼 지도부가 모든
증거 다 찾아서 자네 원맨쇼 할 수 있게 도와줘야 돼?”
그런 말은 아닌데…….
“못 하겠음 하지 마. 다른 놈들은 이런 기회 못 얻어서 안달이야. 어디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한 의원이 팽하고 자리를 뜨자 박성택이 허겁지겁 자료를 집었다.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됐어!”
“어휴- 한 의원님 제 박력 아시잖아요. 제가 사실 무대 경험이 없어 자신감을 못 보여 드렸습니다. 근데 저 이거 누구보다 잘합니다.”
“본래 신뢰라는 게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지. 이미 자네에 대한 신뢰가 싹 사라졌네.”
“한 의원님! 국방부장관 모가지 꼭 따오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쇼!”
우렁찬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을까.
중진 의원이 잠시 주춤거렸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일머리 하나는 확실하지 않습니까. 국감에서 여당의 치부를 다 드러내면 내년 재보궐 선거는 따 놓은 당상입니다.”
“사람하고는 쯧쯧.”
“죄송합니다. 제가 엄살을 너무 부렸습니다.”
한 의원의 얼굴은 한결 누그러졌다.
“기왕 선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자네가 이번 국감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다음 공천에서 꽃가마 탈 거야.”
“예?”
“언제까지 비례대표 꼬리표 달고 살 거야. 다음엔 지역구로 출마해야지. 성공만 해 봐. 우리 당 깃발만 꽂아 놔도 당선되는 지역구로 공천을 줄 걸세.”
“……거기까지 얘기가 된 겁니까?”
“그래, 이게 당 지도부의 결정이야. 물론 전제가 있지. 성공적인 국감.”
박성택 귀에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깃발만 꽂아 놔도 당선되는 지역구…… 얼마나 바라 오던 꿈인가. 비례대표 출신이라는 끈질긴 꼬리표를 지울 수 있으며, 재선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뿐이겠는가.
이번 국감에서 여당을 흔들어 놓으면 여당 저격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더 이상 인지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배님.”
“기대해 보겠네.”
박성택은 허리를 폴더폰처럼 숙이며 한 의원을 배웅했다. 머릿속엔 이미 재선, 삼선 청와대 입성까지 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하지만 다시 혼자 남게 되었을 땐 긴 고민에 잠겼다.
‘일을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왜 연루자를 파악 못 했지?’
다른 놈들한테 뺏길까 봐 허겁지겁 잡았다만 이게 맞는 걸까?
솔직히 의문이 든다. 당 지도부도 모든 정보통을 다 동원해 이 사건을 캤을 텐데, 왜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았을까.
법조인 경력으로 봤을 때 비리가 없는 사건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돈만 해도 최소 수백억은 챙겼을 비리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간다. 당 지도부의 정보통은 국정원 못지않을 텐데
왜 연루자를 찾지 못했을까. 혹시…… 연루자가 정말 없었던 건 아닐까?
-우린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자네가 금리인하권 사태 때 보여준 박력,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해 보게.
하지만 쓸데없는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감이 뭐 별거 있겠나. 기세가 반이요,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아사리 판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권력자들에게 호통쳐 대는 모습이지, 시시콜콜한 세부 내용이 아니다. 유권자들에게
좋은 인상만 남기면 되는 자리다.
박성택은 찝찝한 걱정을 떨쳐 내며 소파에 누웠다.
***
국정감사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며 여의도는 또다시 들썩거렸다.
“청와대의 파렴치한 만행에 국민 모두가 분노하고 있습니다. 공공 기관 낙하산 인사 언제까지 할 겁니까!”
해마다 끊이질 않는 권력형 비리가 이번에도 터졌고, 정부 관계자들은 야당 의원들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운 좋게 국감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던 초선들은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고, 기회를 받지 못한 의원들은 따로 기자들을 불러 폭로를 이어 나갔다.
모두가 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바쁜 계절이었다.
‘주인공은 나다.’
하지만 모두 사소한 정부 기관의 얘기.
국방부 국감 당일이 왔을 때, 박성택은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자신이 맡은 사건은 겨우 공공 기관 낙하산 인사 같은 시시콜콜한 문제가 아니었으니.
“다음은 국방부 국정감사가 있겠습니다. 의원님들께선 모두 착석해 주십쇼.”
이윽고 쇼타임이 시작되었을 때.
박성택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준비한 말을 꺼냈다.
“국방부엔 간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폭탄발언이 이어지자 기자들의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북한한테 꼭 군사기밀을 넘겨야 간첩인가요? 우리 장병들이 입을 옷, 덮을 이불, 먹을 음식! 이런 거 도둑질하는 놈이야말로 간첩이고, 매국노입니다. 6.25 때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얼마나 많은 국군이 희생됐습니까.”
“한데 그게 21세기에도 벌어지고 있었다니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건 저희 민국당이 입수한 군납 업체와 각 품목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시중에 유통되는 가격 이상이네요.”
“적게는 5%부터 많게는 10%까지 더 비싼 가격으로 군부대가 납품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식재품의 품질이 좋았느냐? 조사에 따르면 식재품은 불량투성이었고, 일선 부대에선 식중독
증세까지 보고되었습니다. 우리 장병들한테 썩은 식재료를, 바가지까지 씌워서 판 자는 대체 누구입니까.”
“이를 대하는 국방부의 태도는 더욱 한심합니다. 진상 파악하고, 불량 업체에 철퇴를 가하지 못할망정 사단장들은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방위사업청! 대체 입찰 사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겁니까. 이 모두 방사청 고위직들의 묵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전대미문의 비리 사건입니다.”
그의 속사포 같은 말이 끝나자 국방부장관이 대답했다.
“존경하는 의원님.”
“존경하지 마세요!”
“……지적하신 부분은 앞으로 개선해 나가겠으나, 사실을 호도하진 말아 주십쇼.”
“호도?”
“방사청과 군납 업체의 청탁 관계를 의심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아니라면 이런 비리가 가능하겠소?”
“그러면 그에 대한 증거도 있는 겁니까?”
기세등등하던 박성택의 말문이 막혔다.
“……증거야 여기 있지 않소. 납품은 불량투성이었고, 군납품은 시중가보다 비쌌어요.”
“하지만 그 모두 정당한 입찰을 통해 선정된 업체들입니다.”
“입찰?”
“방사청은 이런 논란을 피하고자 매년 군부대 식재품을 공개 입찰하고 있습니다. 선정 위원회는 대부분 민간 전문가로 방사청과 관계없는 외부인입니다.”
“…….”
“물론 저희는 그 외부인이 납품 업체와 관련 있는지까지 조사하여 선정을 맡깁니다. 이건 낙찰 업체 선정 회의록입니다.”
국방부장관이 증거 자료까지 제출하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당했다…… 청탁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지금 그 얘기가 아니라…….”
“물론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억측은 자제해 주십쇼. 의원님의 말 한마디로 군 전체 사기가 저하될 수 있습니다.”
“사기 저하? 국방부장관님. 나는 지금 국민은 대표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함부로 막말하지 말아요!”
“막말은 의원님께서 먼저 하지 않으셨습니까. 국방부에 간첩이 많다고.”
“그거야…….”
“비유라 해도 너무 지나치셨습니다. 그것도 뚜렷한 증거도 없이.”
“…….”
“저희는 최소한 군납 업체 선정은 일말의 논란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유의해 주십쇼.”
괘씸한 놈에게 다시 쏘아붙이려던 찰나.
함께 자리에 앉은 중진 의원이 박성택의 허벅지를 눌렀다. 고개를 돌리니 중진 의원이 슬쩍 자신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제부턴 입 다물고 있어! 계속 자살골 넣을 거야?”
비단 그뿐이 아니었다. 함께 출석한 동료 의원들이 한심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박성택은 그날 국감에서 무참히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