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국감의 계절 (3)
“으아악!”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지만 국감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의원실에선 매일 비명과 절규가 들렸고, 때로는 책상 부서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어떻게 얻은 기횐데!”
박성택은 손에 잡히는 모든 걸 부수고 던졌다.
[위기를 기회로] 박성택의 선거 표어는 반으로 찢겨 [기회로 위기를]이 되었다.
지난 국감은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언론사에선 가장 실패한 국감으로 국방부를 꼽았으며,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비례대표의 폐해라고 손가락질해 댔다.
본래 욕먹는 게 일인 직업이라 이 정도 굴욕은 견딜 수 있었지만, 동료 의원들의 싸늘한 시선은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무슨 벌레 새끼 보듯 보지 않았나.
국감은 야당에 유리한 페널티킥과 같다. 못 넣는 놈이 바보다.
그걸 막은 국방부장관의 입지는 상승했으며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소신장관, 사이다 국부가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을 띄워 준 게 곧 박성택이었으니…… 다음 선거에서 꽃가마 타기는커녕 앞으로 여의도에 발을 붙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의원님 고정하세요.”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어요? 온 국민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는데.”
“원래 국감은 어려운 자립니다. 의원님껜 첫 무대 아니었습니까.”
“그걸 마지막 무대로 만들고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그를 보며 보좌관이 슬며시 말했다.
“애초부터 안 될 쌈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당의 문제예요. 비리가 의심되면 실체를 확인해서 줘야지, 이대로 출전시키는 게 어디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제가 보기엔 짬을 당하신 거 같습니다. 아닌 말로 이게 그렇게 좋은 소스였으면 왜 초선한테 넘겼겠어요? 계륵이었던 거죠. 덮자니 아쉽고, 하자니 안 나오는 사건.
박성택은 헝클어진 머리를 들었다.
“나 사실 쪽팔려서 암말 못 하고 있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네. 보좌관님 생각도 그렇죠? 이거 뭔가 좀 이상한 거 맞죠.”
“네. 솔직히 국감은 이미 증거 다 잡고 쐐기 박으러 가는 자립니다. 연루자도 파악 못 하고 내보내는 건 아주 무책임한 처사였습니다.”
박성택도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게 아니다.
보좌관과 그는 국방부, 방사청 자료 모두를 검토해 놈들의 수상한 점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군납 업체의 납품가가 이상하리만치 높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퍼즐, 연루자만 파악하지 못했다.
“그럼 이걸 왜 나한테 맡긴 겁니까.”
“그냥 희생당하신 거예요. 어쩌면 미운털 박힌 걸 수도 있고.”
“내가 미운털이 박혀요?”
“의원님께서 금리인하권 때 너무 존재감을 드러냈잖아요. 단박에 인지도가 상승했으니 배 아픈 놈들 많이 생겼겠죠.”
“설마 그걸 질투했다는 겁니까?”
“질투일 수도 있고, 실험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정도 넘겨주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거였을 수도 있고.”
박성택은 격분했다.
“실험은 아니에요. 한 선배가 계속 나한테 박력을 보여 달라 어쩌라 하면서 부추겼으니까.”
“그럼…… 질투가 맞겠네요.”
“아니 당 지도부가 뭐 할 일 없어서 나를 견제해.”
“그게 아니라…… 한유식 의원 혼자서 박 의원님을 견제한 것 같은데요.”
“뭐라고요? 한 의원이?”
“두 분이 서로 동향 사람 아닙니까. 자기 지역구에서 쟁쟁한 경쟁자가 나올 것 같으니 미리 쳐낸 것 같습니다.”
박성택이 무릎을 탁 쳤다.
그러지 않아도 수상하던 차였다. 무슨 유리한 지역구로 공천을 주네 마네 헛소리를 늘어놓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자신의 지역구로 오지 말란 뜻이다.
그것도 모르고 선배님, 선배님 거리며 얼마나 졸졸 따라다녔나.
“그러니 그만 잊으세요. 다음 일을 도모하면 되는 겁니다.”
보좌관이 그리 말하며 서류를 걷어 가려 하자, 박성택이 책상을 탁 쳤다.
“그럼 난 끝장을 봐야겠습니다.”
“예?”
“얼마나 무서운 후배 두셨는지 실감해 봐야지. 이 새끼 속으로 얼마나 우스웠을까. 지가 뭐 공천위원장이라도 된 마냥 지껄이더만.”
“……의원님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실패한 사건을 어떻게 계속해요.”
“막말로 이거 실패한 사건은 아닙니다. 국방부도 납품가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단 건 인정했잖아요. 방사청 관계자의 연루 의혹만 해명했지.”
보좌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거나 저거나 똑같은 소리예요.”
“아니요. 이건 다른 유형의 비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군납 업체의 입찰 담합 같은.”
“예?”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국방부가 훨씬 더 무능한 모양입니다. 국방부는 지들이 바가지 썼다는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에요.”
보좌관이 박성택의 소매를 덥석 잡았다.
“의원님 냉정하게 생각하셔야 돼요. 식재료 납품 업체가 총 22곳입니다. 만약 입찰 담합이었으면 최소 100개 이상 되는 업체가 연루됐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하시려고요.”
“100개가 아니라 500개여도 밝혀낼 건 밝혀내야죠.”
“……그러지 말고 그냥 다른 기회 엿보시죠. 어차피 정권 스캔들은 끊임없이 나옵니다. 더 큰 사건으로 이번 실수 만회하면 돼요.”
박성택은 고개를 저었다.
“보좌관님. 나 박성택, 겨우 복수심 때문에 이 짓거리 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법조인 출신 아닙니까. 입찰 서류만 봐도 무슨 비리인지 다 보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어차피 방사청 관계자의 비리는 아닌데.”
“무능도 비리예요. 난 이놈들의 무능이라도 드러내야겠습니다.”
보좌관은 아연실색했다.
박성택은 반드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법조인 이력을 들먹였다. 이젠 말리지 못한다는 걸 잘 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시게요.”
“이거 한번 검찰에 가져다줄까 싶은데. 아는 후배도 많고.”
“……무리입니다. 이건 누가 봐도 공익 신고가 아니라 국회 정쟁이에요. 더군다나 국감에서 깨진 전력도 있는데, 아무도 안 맡아 줄 겁니다.”
당신 후배들도 뉴스는 봤겠지.
보좌관은 이 말을 최대한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럼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야겠군요.”
“의원님 법원 인맥 말곤 없으시잖아요.”
“딱 하나 더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
“비슷한…… 사람요?”
“제가 한번 은혜도 베풀었으니…… 뭐 거절 못 할 겁니다.”
박성택은 자신만만했지만 한편으론 낯이 부끄러웠다.
사실 금리인하권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자신이었다. 은혜를 갚는다면 자신이 갚아야 했다. 하지만 분명 그놈이 그리 말하지 않았나.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국회의원은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야 하는 법이다.
놈의 도움이 없으면 이대로 정말 정치 인생 끝이다.
***
“아이고- 이 팀장님. 그간 잘 계셨습니까.”
“예…….”
“공무로 바쁘신 와중에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엔 또 국내 조선 업계들이 특허 갑질당한 사건을 조사하셨다고.”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 팀장님은 뉴스만 틀면 나오는 슈퍼스타잖아요. 마침 저도 주의 깊게 보고 있던 차였습니다. 마무리 한번 시원하더군요.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잔데. 허허.”
오랜만에 만난 박성택은 기름진 칭찬을 퍼부어 댔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준철도 예의상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속에선 도망치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일주일 전, 이자가 어떤 망신을 당했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지 않았나. 사실 확인도 안 된 의혹을 제기하다 망신을 샀고, 동료 의원들에게도 외면당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파를 탔다.
국방부 국감은 그의 정치 인생 장례식이었다.
“먼저 미안합니다. 내가 지금 궁둥이를 오래 붙이고 있을 처지가 아니네요. 혹시 제 사정 아십니까.”
“네. 뉴스…… 봤습니다.”
“그럼 두 번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네, 맞습니다. 나 국방부 카르텔에 아주 호되게 혼나고 왔어요. 정의는 역시 가시밭길이더군요.”
아부야 그러려니 해도 셀프 칭찬은 들어 주기 참 민망했다.
“왜 그러셨습니까…… 국감은 사실 확인이 다 끝낸 문제만 제기해도 쉽지 않은 자린데.”
“아무래도 내가 당에서 미운털이 잔뜩 박힌 모양입니다. 그때 그 일 때문에.”
“그 일…… 때문요?”
“이런. 내가 또 망언을 했구먼. 때문이 아니라 덕분이지. 내가 금리인하권 사건 한 번 크게 터트리니 선배 의원들한테 시기 질투를 산 모양입니다.”
말본새가 이상하다.
그 사건으로 무명 정치인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왜 ‘때문’이라는 건지…… 그리고 왜 또 ‘덕분’이라고 정정하는 건지.
“이 팀장님. 난 아직 그때 하셨던 말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분명 저에게 신세 졌다, 고맙다 하셨죠.”
“그건 그겁니다만 왜 갑자기…….”
“우리 국방부 카르텔 한번 박살 내 봅시다. 이번엔 내가 이 팀장님이 필요해요.”
왜 불행한 직감은 늘 틀리는 법이 없을까.
박성택 눈에 흰자가 희번덕거리자 준철이 쩔쩔매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도움을 드립니까…… 국방부와 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이거 입찰 담합 같습니다.”
“예?”
“내가 국방부를 너무 과대평가했어요. 난 군납 업체가 가격 부풀려서 납품하고 그 이익금을 뒤로 찔러 준 줄 알았는데 웬걸. 방사청은 지들이 바가지 썼다는 것도 모릅디다.”
박성택은 국감에서 망신을 당하고 난 뒤, 한참 동안 이 문제에 골몰했다.
왜 방사청과 군납 업체의 연결 고리가 파악 안 될까? 당 지도부가 모든 정보통을 다 동원했는데 왜 흔적이 안 나올까?
그 해답은 간단했다.
방사청이 생각보다 더 무능한 곳이었다. 군납 업체의 입찰 담합을 파악도 못 하고 있을 만큼.
“내가 무턱대고 헛소리 지껄이는 거 아닙니다. 이 자료를 한번 보세요. 군수품은 다 대량으로 구입하는데, 시중가보다 비싸게 납품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
“이건 명백한 비리입니다. 군납 업체의 이기심과 방사청의 무능이 만난 결과죠. 여태껏 우리 국군 장병들의 식탁이 능욕당해 온 겁니다.”
이 감동적인 연설을 왜 카메라 앞에선 못 하고 여기서 떠들어 댈까. 정말로 방사청의 무능은 예상 밖의 일이어서?
마음 같아선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누가 봐도 복수해 달란 부탁인데, 기름진 말로 포장만 잘한다.
“…….”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자료에선 썩은 내가 진동했다. 납득 안 되는 정황도 너무나 많았다. 방사청이 그간 보여 준 무능을 감안하면 입찰 담합을 파악 못 한 정황도 결코 과한 추측이 아니었다.
준철이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자 박성택이 손을 덥석 잡았다.
“이 팀장님. 나 박성택, 태어나서 은혜를 단 한 번도 잊어 본 적 없는 남자예요. 이번엔 나 한 번만 도와줘 봐요. 아니, 뭐 누구 도와주고 하고 말 것도 없이 오직 공익 하나만
생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