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짬밥 스캔들 (2)
“차라리 박성택이가 똥볼 한번 시원하게 차 준 게 나아. 아닌 말로 이제 누가 이 사건 맡겠어?”
“맞아. 김 국방이 아주 작살을 냈던데 보는 내가 다 민망하더라. 이젠 결정적인 증거가 잡혀도 서로 안 하겠다 도망갈 거야.”
담합사들이 다시 모인 자리에선 웃음이 만개했다.
지난 국감은 이들에게도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시중가보다 높았던 납품가, 담합사들이 조직적으로 입찰에 참여한 정황.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비리였고, 그에
대한 대응책도 없었다.
게다가 야당에서 잔뜩 벼르고 있다기에 긴장했건만…… 국감은 왜 이겼는지도 모를 만큼 너무 쉽게 끝나 버렸다.
“홍 사장. 이건 자네의 계획이 신의 한 수네. 방사청 관계자 구워삶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어.”
“만약 거기에서 의혹 하나 잡혔으면 우리 실체 다 드러났을 거라고.”
사실 그건 박성택의 잘못이 아니었다.
누군들 자료만 봤으면 청탁 관계를 의심했을 법하다. 방사청이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무능한 집단이란 걸 몰랐던 거겠지.
“아무튼 우린 한시름 돌렸다. 이젠 좀 두 다리 뻗고 자도 되겠지?”
“아무렴. 국감에서 똥물이 잔뜩 묻었는데 누가 이거 맡겠어. 한잔들 하자고!”
모두가 술잔을 들며 자축할 때 잔을 들지 않는 이도 있었다.
“아, 장 사장은 또 왜 그래.”
장 사장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혼자서 술잔을 비웠다.
“축포를 터트리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닌가. 이 사건 아직 안 끝났어. 박성택이가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수사기관 찾아다니고 있다고.”
“흐허허. 낯짝도 두꺼운 놈. 만회해 보려고 발악을 하는구먼.”
“웃을 일 아니야. 이놈이 계속 불 지피고 다니면 나중에 어떻게 터질지 몰라.”
탁-!
무리 중 리더로 보이는 홍 사장이 잔을 거칠게 내려놨다.
“장 사장님. 꼭 오늘 같은 날에 초치는 소리 해야 성이 풀립니까.”
“홍 사장. 영선식품 정보통 많으니 잘 알 거 아니야. 박성택이 아직 들쑤시고 다닌다는 거.”
“뭐를요? 검찰 후배들한테 부탁하자니 안 될 거 같아서 공정위한테 조사 부탁한 거요?”
“그거 무시하면 안 돼! 그놈 무명 정치인 생활하다 금리인하권 사태로 단박에 인지도 올렸어. 그거 어디랑 합작한 작품인지 몰라?”
“그거랑 이거랑 어떻게 같습니까. 알아보니 그 사건은 공정위가 밥상 다 차린 거 박성택이 이름만 빌렸더구만. 그리고 이 사건이랑 그 사건이랑 같습니까. 지난 국감은 박성택이
단두대였어요. 어떤 바보가 이 단두대에 함께 올라요.”
홍 사장은 일말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행정 부처. 촌수 따지면 여당에 가깝지 야당에 가깝지 않다. 게다가 이 사건은 이미 국민들에게 실패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나.
“만에 하나의 상황 때문에 공정위가 이 사건 맡았다 칩시다. 그럼 여당에서 가만있겠습니까?”
“…….”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 사건은 이제 정쟁이 될 사건이에요. 어떤 바보가 이 모든 걸 무시하고 조사를 진행합니까.”
장 사장은 반박하지 못하고 큰 한숨을 지었다.
정말로 이 모든 게 자신의 기우일까.
“가만 보면 장 사장님은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래, 장 사장. 좋게 마무리 지었잖아. 오히려 박성택이가 국감에서 깨진 게 다행이라니까. 이젠 똥파리들 얼씬도 못 해.”
모두들 장밋빛 전망을 말했지만 장 사장은 쉽게 동요되지 않았다.
“그건 잘 모르겠고, 우리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봐.”
“뭐?”
“내가 말했지? 가격은 담합하는 대신 최소한 불량 납품은 줄이자고. 근데 다들 어떻게 했어? 식중독 증세까지 보고될 정도면 너무 막가자 납품 아니야?”
“장 사장! 우리야 신선 식품이고 네들은 골뱅이 참치 통조림 같은 가공품인데 비교가 돼?”
“아무튼 난 당분간 이 문제에 깊게 관여 안 할 거야. 당분간은 우리끼리 이렇게 만나는 것도 위험하다고. 나 오늘 이 말 하려고 왔습니다. 먼저 일어납니다.”
장 사장이 시큰둥하게 자리를 뜨자 주변 사람들이 한소리씩 내뱉었다.
“오냐. 걸리면 네놈 이름부터 팔아 주마.”
***
“군납 비리?”
“예.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한 것 같더군요.”
“문제고 자시고 이거 박성택이가 국감에서 개망신당했던 건이잖아. 알면서도 나한테 올리는 저의가 뭐야.”
“편견 없이 사건만 보면…….”
오 과장은 김 국장의 따가운 눈총에 말문이 막혔다.
그도 알고 있었다. 편견 없이 사건만 볼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걸.
김 국장은 서류를 한 번 쓱 살피더니 더욱 따갑게 눈총을 쏴 댔다.
“이거 또 이준철이 작품이구만. 근데 아니야. 이런 건은 자네가 중간에서 짤랐어야지.”
왜 안 그래 봤겠습니까.
근데 그놈이 군납 업체 8년 치 자료를 다 뒤집어 그럴듯한 증거를 가져왔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단순히 고집을 꺾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팀장이 세부 자료를 가져왔는데…… 이거 생각보다 문제가 너무 크더군요.”
“박성택이가 이미 똥물 다 뿌려 놨는데, 그럼에도 덮기 힘들 만큼 문제가 커?”
“예, 큽니다.”
예상외로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즉각 튀어나왔다.
“국장님. 군납 업체의 입찰 담합이 이번 한두 해가 아니었습니다. 장장 8년이었습니다. 참치 회사가 한번 낙찰받으면 거래가 8년 이어졌고, 상추를 한번 낙찰받으면 그것도
8년이었습니다.”
준철은 군납 기록을 전부 뒤져 수상한 흔적을 색출했다. 특이점은 그리 먼 데 있지 않았다. 각 군납 업체가 한번 낙찰받은 상품을 무려 8년이나 해 먹고 있었다.
그렇다고 서로 식품군이 하나도 안 겹치는 회산가?
아니다. 참치를 파는 회사는 고기도 팔았고, 신선 식품도 팔았고, 라면도 팔았다. 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영역 외에 다른 식품군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보면 아시겠지만 꼭 아프리카 국경선마냥 칼같이 식품군이 나뉘어 있습니다. 이건 뒤에서 인위적으로 조종하고 있었단 결정적 증거죠.”
만약 이게 정상적인 입찰 경쟁이었다면? 춘추전국시대처럼 국경선이 번잡했어야 한다. 작년에 탈락한 업체가 이번엔 선정되고, 이번에 선정된 업체가 재작년엔 탈락했고 하는 과정이.
8년 동안 납품 업체가 바뀌진 않은 건 그들끼리 휴전선을 정했다는 것과 다름없다.
서류 검토를 끝낸 김태석 국장은 자연스레 한숨이 나왔다.
이건…… 놈의 의심이 맞았다. 아니, 비리가 있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각 품목마다 군납 업체가 단 한 번도 안 바뀐 점, 그리고 시중가보다 납품가가 더 높다는 점은 입찰 담합이
아니라면 오히려 설명이 안 됐다.
하지만 밥상이 완벽하면 뭐 하나. 웬놈이 등장해 시원하게 똥물을 뿌리고 가 버렸는데.
단순히 박성택이 똥물 뿌리고 가서만 싫은 게 아니다. 이 사건은 잘해 봤자 박성택만 띄워 주는 거고, 못하면 박성택한테 놀아난 공정위가 되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난 은퇴하고 나면 조용히 골프나 치러 다닐 생각이야. 근데 내가 이거 맡으면 여의도로 가야 될 성싶은데.”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편파 조사라는 말 안 나오도록.”
“그게 우리만 조심한다고 되나. 박성택이가 아주 온 동네에 떠들고 다닐걸? 지가 의심하던 비리가 마침 공정위에서 조사까지 받게 됐다고.”
놈은 당한 굴욕에 이자까지 얹어서 톡톡히 되갚아 줄 거다. 만약 진상이 밝혀지면 박성택도 소신을 지키는 의원으로 이미지가 반전될 것이니.
“만약 이거 하게 되면 여당 전체가 들고일어나서 우릴 공격해 댈 거다.”
“질 자신 없습니다. 오로지 팩트만 가지고 싸우면 되니까요. 그리고 사실 이걸 덮는 거야말로 정치적 행보 아닙니까.”
“뭐?”
“문제가 빤히 보이는데 굳이 연장한다면 저희가 다른 쪽으로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김태석 국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래서 이런 사건은 관여하기 싫다는 거다. 하면 한다고 논란, 안 하면 안 한다고 논란.
“외람되지만 국장님. 이거 우리가 허락해 주지 않으면 이놈 바깥에서 사고 쳐 올 겁니다.”
“사고?”
“금리인하권 때, 그놈이 어떻게 공론화시켰는지 아시잖아요. 언론에 기사 슬쩍 내보내면서 여론몰이 해 댈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놈이랑 공정위는 식구야. 설마 그러겠어?”
“설령 그놈이 가만 있는다 해도 박성택 의원이 가만 안 있을 겁니다. 언론에 좌표 찍고 수상한 점 계속 들춰 내면서 우릴 압박할 겁니다.”
“…….”
“결국 자발적으로 하느냐, 등 떠밀려서 하느냐입니다. 기왕 그럴 거 차라리 전자가 낫지 않습니까.”
지난 국감은 박성택의 완패였지만 그렇다고 국방부의 승리도 아니었다.
청탁 의혹은 완벽히 방어했어도 군납 업체의 수상한 행적에 대해선 해명 한마디 못 들어 봤다.
만약 박성택이 좀만 더 차분하게 감사를 했더라면, 카메라 욕심을 줄였더라면 국방부의 무능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을지도 모른다.
“오 과장 그때 그 얘긴 취소한다.”
“무슨…….”
“그놈 새끼 과장으로 진급시키는 거 말이야. 보니까 이놈은 일머리만 좋지, 처세머리가 없어. 위로 갈수록 정무적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냥 이상하다 싶으면 머리부터 들이미네.”
오 과장은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진심이겠냐마는 지금 국장님의 심정이 어떨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만약 조사 허락하면 어떡하게?”
“방사청에게 입찰 자료 달라고 해야 합니다.”
“거기 연루된 기업들 엄청 많을 텐데 보면 알 수 있겠어?”
“지금은 그게 더 함정이죠. 머리 큰 기업들도 아니고, 연루된 업체도 많은 것 같으니 되레 쉽게 끝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소문 한번 시끄럽게 날 거다?”
“예. 아마 언론들이 벌 떼처럼 달라붙을 겁니다.”
김 국장은 서류를 까딱거리다 옆에 있는 도장을 물끄러미 봤다.
시끄러웠던 국감도 이제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는 9월 말이다. 하지만 이 도장 한 방이면 다 꺼져 가는 국감이 다시 한번 활활 타오를 것이다. 기자들도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언론사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 적을까.
박성택한테 놀아난 공정위? 아니면 소신을 지킨 박성택? 한숨만 나오는 기사들이다. 잘해 봤자 본전도 못 찾는 조사는 늘 마뜩지가 않다.
-꾸욱.
“젠장. 진짜로 찍어 주기 싫은 도장이네.”
“죄송합니다, 국장님. 여러모로…….”
“앓는 소리 마. 자네가 마음만 모질게 먹었으면 충분히 중간에서 덮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어. 그놈이나 자네나 한통속이지.”
“한통속까진 아니지만…… 아무튼 맞는 말씀 같습니다. 제가 중간에서 못 짤랐습니다.”
서류를 넘기는 김 국장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여기서 손을 떼면 끝이다. 정쟁의 불구덩이로 공정위를 몰아넣는 것이다.
“대신 약속 하나만 하자. 누구 처벌하고, 망신 주고 하기 전에 양당 의원들 만나서 우리 입장 잘 설명해. 너무나 이상해서 안 할 수가 없었던 사건이라고.”
“물론이죠. 이 팀장이 부족하면 제가 중간에서라도 그 문제는 중재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사 성과야. 입찰 담합 정황……. 반드시 캐 와. 안 그럼 우리 공정위가 박성택이랑 함께 순장당할 거다.”
김 국장의 손이 서류에서 떨어졌고, 오 과장은 무거운 얼굴로 그 서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