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짬밥 스캔들 (3)
“고맙습니다, 이 팀장님! 당장의 논란이야 피할 수 없겠지만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나랏돈 빼먹는 것들한텐 응당한 처분이 내려져야죠. 팀장님처럼 사명감 투철한 분이
맡게 돼서 제 속이 오히려 편합니다.”
조사 소식을 접한 박성택은 침이 다 마를 만큼 찬사를 퍼부어 댔다. 입은 이미 귀에 걸렸다. 국감에서 당한 망신을 소신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도울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돕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요. 일단은 살짝 들여다만 볼 겁니다.”
“아, 당연히 들여다보셔야죠. 근데 안경 하나 끼고 봐서 되겠습니까. 돋보기, 현미경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무슨 말씀인지.”
“장장 8년의 담합을 다 드러내야 하는데 어떻게 공정위 힘만으로 되겠습니까. 검찰에 제 직속 후배 많습니다. 요청만 하시면 영장, 구속이야 일도 아니죠.”
“그…… 직속 후배님들은 애초에 맡아 줄 것 같지도 않아서 저한테 주신 거 아닙니까?”
“지금은 좀 다르죠. 원래 매도 같이 맞으면 좀 덜 아프지 않습니까. 공정위가 전면에 나서 주겠다고 하면 제 후배들도 뜻을 모아 줄 겁니다.”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의 말은 그치지 않았다.
“비단 검찰뿐이겠습니까. 언론사, 정치권 필요한 세력들 다 끌고 와서 판 벌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금리인하권 때 제가 어떻게 해 드렸는지 아시죠?”
“박 의원님.”
“아니, 제 말 먼저 들어주세요. 팀장님. 이 사건은 어차피 공정위가 맡든 검찰이 맡든 여당이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근데 정치적 논란 때문에 수사가 중간에서 좌초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외압, 위풍 책임지고 막아 드리겠습니다. 팀장님께선 소신대로 혐의만 밝혀내 주십쇼.”
준철은 눈썹에 튄 침방울을 닦아 내며 말했다.
“정치권의 외압을…… 정말 막아 주시겠다고요.”
“아무렴요.”
“사실 가장 크게 걸리는 외압이 있긴 한데.”
“아니 벌서부터 외압이 있었어요? 하여간 여당 놈들은 살기 하나 기가 막히게 눈치챈다니까. 누굽니까?”
“박 의원님. 이 사건에서 빠져 주십쇼.”
아직 이해가 되질 않았던지 박성택이 눈을 끔벅거렸다.
“예?”
“의원님께서 지금 저의 외압이십니다.”
“아니, 무슨.”
“사실 이 사건. 눈에 보이는 비리만 해도 명확하고, 증거도 차고 넘쳐 굳이 국장님의 재가까진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의원님께서 다루신 통에 저희 지휘부도 눈에 불을 켜고 이
사건 반대했어요.”
“…….”
“저희는 그게 싫습니다. 이 사건 정쟁으로 끌고 갈 생각 말아 주십쇼. 지지 세력 붙기 시작하면 명백한 범죄도 진영 논리 따라갑니다. 지금 의원님께서 빠져 주시는 게 가장 그림이
좋습니다.”
박성택은 절망적인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그러면 내가 국감에서 당한 치욕은 어떻게 씻는단 말인가.
“무얼 우려하시는지 압니다. 지난 굴욕을 씻고 싶으시겠죠. 근데 이 사건 다 밝혀지면 그 오명은 자연스레 씻겨 내려갈 겁니다. 의원님께서 괜히 카메라 욕심내면 사안이 이상한
방향으로 끝날 거고요.”
“팀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섭섭합니다. 나는 국방부 카르텔과 맞서다 처절하게 깨진 사람이에요. 그런 저더러 빠지라고 하시면…….”
“그래서 결과가 좋았습니까.”
“…….”
“어쩔 수 없습니다.”
최소한 그의 공로는 인정한다.
목적이야 어쨌건 비리를 밝혀내려 했고, 맞서 싸우려 했다. 국방부 카르텔이란 말도 그다지 손색없는 말이다. 놈들은 무능한 집단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응하지 않으시면 저도 그냥 지휘부에 보고하겠습니다.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준철이 슬쩍 일어나려 하자 박성택이 펄쩍 뛰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근데 이거 분명 여당에서 엄청난 공세를 해 올 텐데 그건 어떻게 막으시려고요.”
“논란에 휩싸이지 않게끔 할 겁니다.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답변입니다.”
그는 끙하니 앓더니 준철을 살폈다.
이놈은 허풍이 떨 놈이 아니다. 만약 자기 계산에 따라 이게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놈이다.
박성택은 선택을 해야 했다.
망신당한 걸 그대로 덮어 두느냐, 아니면 생색을 포기하느냐.
“알겠습니다.”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고, 그는 그나마 차악을 선택했다.
“그럼 뜻이 전달된 줄로 알고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먼저 일어나는 준철을 야속한 눈빛으로 봤다.
***
“어떻게 됐습니까, 의원님.”
“젊은 놈이 보기보다 겁이 많네요. 없는 시간 내서 도와주겠다는데 왜 마다하는지 원.”
“거절했습니까?”
“얘기도 못 꺼내 봤어요.”
의원실로 돌아온 박성택은 한숨 가득이었다.
딱 절반의 성과다.
멱살 잡고 조사를 성사시키긴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는 박탈해 버렸다.
“얘기 좀 잘해 보시지…….”
“안 해 봤겠습니까. 아무래도 그 젊은 놈은 이런 부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답답한 대화였다.
국회의원이 잘 봐주겠다 하면 허리 숙이며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중에 정치에 욕심이 생긴다면 충분히 끌어 줄 수도 있는 건데, 놈이 매몰차게
거절해 버렸다.
“당은 지금 어떻습니까?”
“공정위에서 해당 사건 조사할 수 있다고 말해 놨습니다.”
“뭐랍니까?”
“다들 반기긴 하나 걱정 또한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실수 한 적이 있으니…….”
“그 얘긴 그만합시다.”
“네. 아무튼 한 의원이 좀 적극적으로 나서 주고 있습니다. 만약 스파크 튀면 총공세 들어가야 한다고…….”
박성택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뭐? 한 의원이 나서고 있어요?”
“네. 만약 이 사건 정쟁으로 가면 총공세해야 하잖아요. 도와주겠답니다.”
“도와주긴 얼어 죽을! 갑자기 분위기 반전될 것 같으니 미리 숟가락 올려놓는 게지. 내가 아직도 그놈 생각하면 이가 갈립니다.”
보좌관이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그럼 저희끼리 할까요? 본래 용서받는 게 허락받는 것보다 쉽습니다. 공정위가 곧 방사청 자료 조사 들어갈 텐데 바로 언론에 터트려 버리죠.”
그렇게만 하면 이 사건에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할 수 없다.
“뭐 국민들이야 이미 다 알 겁니다. 의원님께서 소신대로 밀어붙여서 여기까지 온 거.”
“근데 이게 정쟁으로 가면 그놈이 가만 안 있겠다 그랬는데…….”
“그러니 허락받지 말고 용서받자는 겁니다. 이건 어차피 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에요.”
보좌관의 설명에 박성택도 고민에 잠겼다.
자신이 빠져 주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란 걸 알지만 오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꼰대 의원이라는 오명까지 얻어 가며 이 사건 파헤친 게 누군데. 당연히 모든 비리가 밝혀지면 자신의
이름이 나와야지.
하지만 정쟁 사건으로 비화되면 손 떼 버리겠다는 젊은 놈의 경고도 머릿속엔 생생했다.
“아직 확답은 못 내리겠는데, 기회는 한번 노려 봅시다.”
***
“팀장님. 야당이 정말 가만히 있어 줄까요?”
“일단 박성택 의원에게 약속은 받았습니다만…… 저도 확신은 안 드네요.”
“그 불안감이 정확한 직감일 겁니다. 개가 똥을 끊지 야당이 이 사건을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겠어요.”
방사청에 자료 요구를 하러 가는 당일이 되자 반원들이 불안감을 드러냈다.
정쟁으로 비화될 게 빤한데 이걸 하는 게 맞을까? 자료를 압수하는 건 본수사를 알리는 신호탄이며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회군하면 없던 일이 될 겁니다.”
김 반장은 방사청 건물을 보며 말했다.
“왜요, 반장님. 우리 조사 그렇게 자신 없으세요?”
“제가 뭐 조사가 자신 없어 이러겠습니까. 팀장님 말씀대로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입찰 담합이에요. 군납 업체 선정 자료 보면 방사청이 얼마나 무능했는지 여실히 드러날 겁니다.
아니, 이건 조사하러 가는 것도 아니야. 그냥 증거 자료 확보하러 가는 거지.”
“그럼 됐네요.”
“그게 끝이 아니니 문제죠. 박성택이 궁둥이가 막 들썩거렸다면서요? 우리 본수사 알려지면 야당 의원들 전부 다 숟가락 들고 뎀벼들걸요.”
준철도 눈에 그려지는 그림이었다.
“걱정 마세요. 그건 제가 막겠습니다. 우린 우리 일만 하죠.”
“하아…… 네.”
준철의 재촉에 반원들도 무겁게 엉덩이를 들었다. 하지만 막상 방사청 관계자를 만나게 되니 없던 전의가 다시 활활 타올랐다.
“뭐요? 공정위?
“네. 군납 업체들이 조직적으로 입찰에 참여한 것 같은 정황이 잡혀서요.”
“이보세요, 팀장님. 내가 지금 그거 묻는 거 아니잖습니까. 우리한테 자료 요구하는 게 무슨 의민지 아시죠.”
방위사업청 김명길 차장은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민감한 사건이다. 겨우 잠재웠다고는 하나 지금은 시기도 적절치 않다.
난데없이 등장해 군납 업체 선정 과정에 관한 자료를 요구하는데 당연히 달가울 리 없었다.
“단순한 자료 요구입니다. 저희의 의심이 틀렸을 수도 있고요.”
“이게 어딜 봐서 단순한 자료 요구야! 아니, 당신들 박 의원한테 사주받았습니까? 야당에서 우리 치래요?”
결국 그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말았다. 뭐 이 정도 반응은 준철도 예상하고 있었고, 차라리 민감한 얘기를 꺼내기 쉬웠다.
“사주……라는 말이 꼭 틀린 말도 아닌데, 서류만 보면 진짜 이상하더군요. 군납 업체가 조직적으로 입찰에 참여 안 했으면 어떻게 8년 동안 납품 업체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왜 시중가보다 군납품 가격이 더 높은 거예요?”
“그건 국감에서 다 설명하지 않았소! 군납 업체 선정은 외부 위원들이 상의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겁니다. 우리 고위직들이 연루될 가능성이 제로예요.”
“저희는 지금 청탁 관계를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방사청의 무능을 지적하는 거지.”
“뭐, 뭐야? 무능?”
더 목소리가 커지기 직전. 준철이 서류를 내밀었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불량률도 상당했더군요. 일선 부대에선 식중독까지 보고되었고.”
“그, 그건…….”
“만약 학교나 회사 급식에서 이 정도 불량이 나왔다면 소송까지 걸렸을 겁니다. 그나마 우리 국군 장병들 인내심이 좋아 다행이었죠.”
“…….”
“자료 주세요. 만약 지금 안 주시면 저희도 검찰한테 압수수색 영장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기업이었다면 영장 소리에 꼬리를 내렸겠지만 공무원들은 달랐다.
“그럼 자승자박이야. 영장 치면 언론도 따라붙을 텐데? 그러면 여당에서 가만있지 않을걸. 당신들은 지금 박성택이 개 노릇이나 하고 있는 거야.”
모욕적인 언사였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자료가 떳떳했더라면 뭐 굳이 이렇게 말이 길겠나. 방사청 내부에서도 분명 치열한 회의가 오갔을 것이다. 거기서 대답이 정리되지 않으니 이렇게 왈왈 짖어 대는 거겠지.
“협조하실 마음이 없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엔 영장 쳐서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