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정쟁을 막아라 (2)
의혹으로 시작한 기사는 삽시간에 인터넷 뉴스를 장악했다.
첫 시작은 의혹 제기였으나 기사는 점차 현 집권 여당을 질타하는 분위기로 흘렀다. 출처가 야당이니 그들의 입맛대로 기사 흘러가는 것이다.
언론들의 십자포화에 여당보다 당황스러운 건 공정위였다.
정쟁을 막아 보고자 얼마나 많은 애를 썼던가. 사기업이 수색 영장 가져와 보라고 큰소리치면 구속영장에 카메라까지 동원해서 망신을 제대로 줬을 것이다.
그리하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함뿐이었는데…… 이젠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출처는 박성택 의원실입니다. 이 사람 아주 작정하고 터트렸네요.”
급하게 열린 회의에선 다들 참담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방사청이 우리 자료 요구를 거절한 것도 다 기사로 나가 버렸습니다.”
“언론에 나간 기사 자료가 저희가 현재 파악한 정보보다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당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정보는 여의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야당은 군납 업체 심사 자료를 모두 입수해 언론에 무더기로 제보해 버렸다. 현재 의심하고 있는 22곳 업체의 이름이 모두 거론되었고, 이들이 얼마나 가격을 높여 받았는지도 소상히
나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지금 야당 의원들이 계속 SNS로 메시지 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공익 제보가 아니었다.
야당의 목적은 집권 여당 흠집 내기였고, 각 의원들이 역할에 따라 여당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기사의 쟁점도 군납 업체들의 담합이 아닌 이를 몰랐던 국방부에 집중되어 있으니, 이제 이 사건은 부정할 수 없는 정쟁이 되었다.
“팀장님……?”
눈을 돌리니 반원들의 간절한 눈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발 빼고 방사청이 내부 조사하고 마무리할 수 있게끔.
“오히려 좋네요.”
“예?”
“방사청이 우리한텐 자료 안 넘겼잖아요. 근데 기사 보니 이미 다 안팎에서 정보가 샌 모양입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여기에 가세하면 정치적 논란에 불을 지필 겁니다.”
“다들 우리가 불순한 목적으로 조사한다고 생각할 거라고요.”
야당한테 선빵을 맞았는데, 여당이라곤 가만있을까.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모두 표적 수사, 정치 수사라고 매도를 해 댈 것이다.
“여론도 슬슬 반반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만약 여당 의원들이 반박하기 시작하면 금세 진영 논리 싸움으로 빠질 거라고요.”
준철도 절대 이 상황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마저 무너지면 이대로 조사가 좌초될 것이다.
“우리가 정쟁을 드러워서 피한 거지, 무서워서 피한 게 아니잖아요.”
“……설마 팀장님.”
“이렇게 된 거 조사 진도라도 빨리 빼겠습니다. 언론사에 나간 업체들 전부 정리해서 소환장 날려 주세요. 아, 방사청의 직무유기 혐의도 절대 빼놓지 않을 겁니다. 당시 담당자
누구였는지 전부 입수해 주세요.”
그렇게 반원들에게 지시할 때,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두 서둘러 주세요.”
자리를 피한 준철은 액정을 노려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이고 이 팀장님. 공무로 바쁘실 텐데 제가 괜히 전화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전화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박 의원님. 제가 분명 정치적 외풍 넣지 말아 달라 부탁드렸는데, 태풍을 몰고 오셨더군요.”
-오해십니다. 제가 한 게 아니라 당 차원에서 나간 기사예요. 방사청 내부자가 저희한테 특급 제보를 하지 않겠습니까. 군납 업체 선정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자료를 보니 아주
가관이더군요. 국민들의 알 권리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터트린 겁니다.
박성택이 연신 미안하다 말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탭댄스 추는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어떻게 보면 이게 또 팀장님을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방사청이 아주 되바라지게 굴었다면서요. 자료 요구도 거부하고.
“확실히 정보통 좋네요.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국가 대소사를 국회의원이 모르면 누가 알겠습니까. 하하. 이제 염려 놓으세요. 판 다 벌여 놨으니 팀장님께선 하던 대로, 아주 명명백백하게 국방부 비리 드러내면 됩니다.
준철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박 의원님. 조금만 참으시지 그랬어요. 진상 규명되면 자연히 오명을 벗으실 텐데 왜 그새를 못 참으셨어요.”
-아니, 그건…….
“전 사실 이 사건 다 드러나면 의원님 추켜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근데 이젠 그것도 못 하겠네요. 앞으로 저한테 전화하지 마십쇼.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 사건 다 드러나면 딱히
야당에 유리하지 않을 겁니다.
-예?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진짜로 안타까움에 나온 조언이었다. 비록 목적이 불순했다고는 하나 준철은 박성택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도 놈 때문에 이런 내막을 조사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능력이 의욕을 따라가진 못했을 뿐이다. 주목받으려고 너무 오버한 부분도 있고. 그래도 의욕 자체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지나친 욕심으로 화를 자초해 버렸는데.
씁쓸히 한숨을 쉴 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
“아, 예…… 과장님.”
-목소리 들어 보니 너도 예상 못 했던 일인가 보지? 기사 터진 거.
“죄송합니다…… 박성택 의원이 상의도 없이.”
-그 얘긴 나중에 듣고. 일단 지금 국장실로 올라와라.
“예?”
-여당 최고의원이 왔다. 국장님께서 너 찾으시니까 당장 올라와.
***
무거운 마음으로 국장실에 도착하니 중노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준철은 국장에게 간단히 묵례하고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강 의원님.”
“소개도 안 했는데 나를 아는구먼.”
“뉴스에서 많이 뵀습니다. 강현모 최고의원님.”
“그럼 오늘 내가 여기에 온 이유도 알고 있겠지?”
그는 은근한 시선을 보내며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부렸다.
“결론부터 얘기하겠소. 나는 공정위한테 정치적 동기부여가 있다 생각 안 합니다. 설마 야당 의원한테 사주받고 국방부를 치겠소? 움직일 만한 근거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조사하는
거겠지.”
“…….”
“하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단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같이 민감한 시기엔 오해 살 행동 안 하는 거야말로 상책이요.”
말이 참 오묘하게 들린다.
정말 정치적 동기부여가 없다 생각하는지, 아니면 없는 걸로 믿을 테니 이 사건 손 떼라고 하는건지.
아마 후자이겠지.
“아닌 말로 우리가 먼저 터트린 것도 아니요. 박성택 의원이 간첩 잡았다고 호들갑 떨다가 국감에서 망신 산 거 아니요.”
“…….”
“그러더니 갑자기 기사 쏟아 내면서 우리 목을 옥죄고 있습니다. 김 국장.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태석 국장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점에 대해선 참 드릴 말이 없습니다.”
“박 의원이 괜히 저렇게 허풍 떠는 게 아닙니다. 공정위가 조사를 해 줄 것 같고, 자기 바람대로 움직여 줄 것 같으니 빨리 해 달라고 등 떠미는 거지.”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선 그의 설명이 맞았다.
“그러니 내 거국적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사건, 이미 정쟁이 되어 버린 사건이요. 괜히 공정위까지 휩쓸려 난처해질까 봐 우려스럽습니다.”
점잖게 말하는 척하지만 조사 손 떼라는 얘기다.
“의원님. 그건 저희가 좀 더 상의한 후에…….”
“김 국장. 나 오늘 하나마나한 얘기 들으려 온 거 아닙니다. 공정위에서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야당이 계속해서 우릴 자극해 댈 겁니다. 그럼 우리라고 가만있겠소? 우린
국방부 감싸느라 바쁘고, 야당은 공정위 비호하느라 바쁘고 그야말로 개싸움 되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보도된 내용만 봐도 입찰 담합은 사실이었습니다.”
“그 문제는 방사청이 자체 조사하겠다 알려 왔소. 만약 비리가 드러나면 입찰 제한 3년 등 중징계를 내릴 겁니다.”
김 국장은 더 이상 반발하지 않았다.
준철이 보고를 올리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재가를 해 주지 않았을 사건이다. 게다가 박성택이 똥볼을 두 번이나 찼는데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 팀장. 의원님 말씀 어떻게 생각하나. 실무자로서 방사청이 요구하는 부분만 좀 도와주고 그쪽에서 끝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김태석 국장이 고개를 돌려 준철에게 물었다.
“그러면 문제가 더 커질 것 같은데요.”
이건 강현모 의원의 예상에 없던 답변이다.
아니 높은 사람 두 명이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뭐가 어째?
“박 의원이 기사 터트린 건 저희 발 묶어 두려는 속셈입니다. 언론에 기사 다 나갔으니 공정위는 조사 계속해라…… 압박한 거죠. 만약 여기서 저희가 발을 뺀다면 오히려 더 소재
하나 주는 겁니다. 공정위와 여당의 수사 무마.”
잠시 발끈했지만, 놈의 설명이 꽤 그럴듯해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방사청의 무능이 확실시 된 사건입니다. 여당 입장에서도 발을 빼는 건 오해를 살 수 있죠.”
“오해?”
“아까 말씀하셨죠. 여당은 어쩔 수 없이 국방부 편을 들 수밖에 없다고.”
“그건 우리가 비리를 옹호하겠다는 말이 아니요.”
“의도가 어찌 됐건 국민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겁니다.”
설사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 안 해도 야당에서 그렇게 생각하게끔 여론 몰이를 해 댈 거다.
“의원님 그러지 말고 전면전으로 가시죠.”
준철은 작심한 듯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이요, 전면전이라니.”
“아시다시피 이 사건은 한두 해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저희가 입수한 자료만 8년, 감춰진 시간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요.”
“8년 전이면 현 정권이 집권하기 전부터 있었던 비리라는 거 아닙니까.”
강 의원 얼굴이 돌연 바뀌었다.
이전 정권은 지금의 야당이었고, 엄밀히 말해 이 비리는 그 야당 집권 시절부터 이어져 왔던 문제다.
“사실 이건 정쟁이 될 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역대 그 어떤 정부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하지만 이미 우리가 집권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물러서면 독박 쓰게 될 겁니다.”
“도, 독박?”
“강 의원님. 아까 분명 국방부 비리를 옹호할 생각 없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럼 차라리 더 강하게 몰아붙이시죠.”
“…….”
“이 사건 이전 정권 때부터 이어진 고질적 문제입니다. 차라리 현 여당이 그걸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더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