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여야, 서로를 용서하다 (2)
“강 의원님. 그 소린 제 입에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국감에서 지적했던 대로 담합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언제까지 이전 정권 운운하며 물귀신 작전 쓸 겁니까.”
날 선 반응이 돌아오자 여당 의원들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물귀신은 얼어 죽을! 당신이 국감에서 똥볼 찬 걸 왜 우리 탓해.”
“뭐요? 똥볼?”
“청탁받고 업체 선정했다면서? 이걸 방사청 잘못으로 무리하게 끼워 맞추다 이 지경까지 온 거 아니요.”
“말은 바로 합시다. 내 추측이 과한 부분은 있었지만 상당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났어요. 아닌 말로 이 문제를 방사청이 하나도 몰랐다는 게 말이 돼? 당연히 청탁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이전 정권은 유능했습니까. 그땐 방사청이 일 잘했냐고?”
“하여간 뭐만 하면 남 탓, 이전 정부 탓! 의원님들은 집권당으로서의 책임감도 없습니까? 국민들은 이런 모습에 실망하는 거요.”
“그럼 국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거 합시다. 진상규명! 죽을 거면 같이 죽어!”
이판사판 아사리판이다.
감정이 격해진 의원들은 언성을 높였고 서로 삿대질까지 해 댔다.
“이게 어따 대고 삿대질이야!”
“뭐? 이게? 야이 쉐끼야. 너 몇 살이야?”
“이 바닥에서 나이 얘기가 왜 나와? 너 사시 몇 기야?”
“초선이 어디서 재선한테 말을 함부로 해.”
온통 한심한 대화들이었지만 다들 사시, 행시, 판사, 검사 출신들의 초엘리트들이었다.
“다들 그만!”
결국 강 의원이 책상을 치며 분위기를 제압했다.
“그래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보자고 오늘 모인 거 아니요. 알다시피 이대로 가면 양당 모두 파멸입니다. 꼬리 내리는 놈이 범인이라고 특검 얘기까지 거론되고 있소. 근데 진짜 서로
끝장 볼 겁니까.”
박성택도 이번만큼은 되받아치지 않았다.
아무리 여당이 밉다한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공격하고 싶지 않았다. 여당의 피해가 더 확실하다면 모를까. 현 사건은 내부에서도 그 밥, 그 나물 소리가 나오는 반반 사건이다.
“그건…… 우리도 바라지 않습니다.”
“고맙소, 박 의원. 그럼 우리 오늘은 좀 마땅한 대책을 논의해 봅시다. 나 사실 박 의원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은데…… 먼저 해도 됩니까.”
“말씀하세요.”
“공정위가 군납 업체 처벌로는 모자라 이제 관계자들까지 소환해 처벌하겠답니다. 혐의는 직무 유기로. 이거 혹시 야당에서 지시 내린 겁니까?”
“사실 그 부분은 우리도 예상치 못했어요.”
“그럼 공정위의 단독 행동이요?”
“그 담당자가 원래 그러는 놈입니다. 건수 하나 잡히면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놈.”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여당은 이미 금리인하권 때 된통 당해 본 전력이 있었고, 그게 공정위 작품이라는 것도 알았다.
박성택이 준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 여야 가릴 것 없이 원성이 쏟아졌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젊은 놈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네.”
“사실 상황이 너무 이상하게 흘러왔어요. 원래 여야가 치고받으면 수사기관이 좀 중재도 해 줘야 하는데, 오히려 기름을 붓고 있어.”
“이건 일부러 우리끼리 쌈 붙인 거 아니야?”
이성을 잃고 상대의 치부를 폭로했는데, 결과적으로 양당 모두 국민들의 신뢰만 잃었다. 여론은 강력하게 담당자 처벌을 요구한다. 공정위가 무슨 처벌을 내린다 해도 두 팔 벌려 환영할
분위기였다.
“그럼 막아야지! 군납 업체야 실형을 때리든 사형을 때리든 상관없지만 관계자들 처벌은 사실상 우리를 처벌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것도 무슨 횡령이나 청탁이면 말을 안 해! 직무 유기 같은 실체도 없는 죄 뒤집어씌우는 건 용납 못 합니다.”
여야는 또 이런 얘기를 할 땐 화합이 빨랐다.
서로를 향하던 적개심이 곧 공정위를 향했고, 여기엔 이견이 나오지 않았다.
강 의원은 양당 의원들의 반응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박 의원님. 아무래도 미친 망아지부터 먼저 해결하는 게 순서 같습니다. 여야 서로 총질 그만하는 게 어떻소.”
“그건…… 저희도 동의합니다. 한데 이제 와 수습이 될까요. 우리끼리 너무 싸웠는데.”
“할 수 있는 것부터 합시다. 공정위의 직무 유기 검토는 누가 봐도 과잉 처벌이오. 우리 관계자들이 다치면 안 됩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나는 안보 공백도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아닌 말로 내부에서 계속 피바람 부는데 일이 손에 잡히겠습니까? 국방부 정상화해야죠.”
양당은 거창한 이유까지 들어 가며 빨리 화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모두 격하게 찬성하는 얘기들이었지만 박성택 얼굴은 달랐다.
“경험자로서 말씀드리면 쉽지 않을 겁니다.”
“쉽지가 않다니?”
“내가 그 담당자 이준철이란 놈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우리가 따끔하게 경고해도 귓등으로 들을 타입이죠.”
강 의원은 슬쩍 웃었다.
“그래 봤자 일개 공정위 팀장이요. 아닌 말로 우리가 미친 망아지 한두 번 봅니까. 혈기 넘치던 평검사, 명예욕 넘치던 검찰총장 그보다 더한 놈도 상대해 봤소. 근데 여야가
합심하면 무서운 놈이 없었지.”
“생각해 놓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뭐 미친 망아지를 직접 상대할 필요 있소? 그 위엣놈 찾아가서 경고 한번 하면 되지. 어차피 조사 권한은 팀장에게 있는 게 아니라 국장에게 있는 거요.”
“글쎄요…… 저는 그 국장 놈도 대화가 안 통할 것 같은데요. 정치권 눈치 볼 줄 아는 놈이었으면 애초에 나대지도 못하게 했겠죠.”
꽤 일리 있는 지적이었으나 강 의원의 여유는 그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차선책이 없겠소. 어차피 공정위가 조사 깊게 하려면 검찰 협력 필요해요. 근데 그 검찰들 다 조사에 미적지근할 거야.”
“설마 다 손을…….?”
“아직 쓰진 않았지만 야당이 협조하면 닿는 줄 다 동원할 계획이요. 이건 야당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공정위는 조사권이 있지만 수사권이 없다. 검찰 없이 기소도 못 하고, 영장도 못 친다.
굳어 있던 박 의원 얼굴도 그제야 조금씩 풀렸다. 친정이 검찰인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각자 닿는 연줄 모두 동원하면 무마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완벽히 끝나는 게 아닙니다. 여론이 더 중요해요. 뉴스는 계속 떠들썩하게 나가는데 검찰만 수사 안 해 봐. 역풍이 불겠지.”
“하면 이제부턴 우리도 여론 관리를 해야겠군요.”
“그래요. 우리 이제 서로 사격 중지합시다. 온건한 메시지 내며 함께 정국 돌파해 봅시다.
강 의원이 손을 내밀자 박 의원이 식구들 얼굴을 살폈다.
야당 의원 모두 입맛을 다시며 그의 손만 바라봤다. 거국적으로 합의하고 얼른 끝내자는 뜻이다.
“그럼 이틀 안으로 우리 입장 정리해서 언론에 발표하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우리도 같은 날에 비슷한 발표하리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도 잘 부탁합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자 주변에서 열렬한 찬성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일련의 사태는 국가적 재난이라 할 만합니다. 같은 비리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단 점에 있어 저희 야당 또한 내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욱 중요한 미래가
있습니다. (중략) 엄정한 법 집행과 별개로, 여야가 이 문제에만 골몰하는 건 안보 공백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국방 개혁을 외치던 야당이 돌연 안보 공백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이에 화답하듯 여당도 자성의 목소리를 냈고, 의원들의 SNS는 검열이라도 당한 듯 하루아침에 조용해져 버렸다.
정치권의 야합 부작용은 현장에서 즉각 나타났다.
“예? 전직 관계자들 소환장이 반려돼요?”
“네…… 담당 검사가 직무 유기는 아닌 것 같다고…….”
“아니 그걸 왜 자기들이 판단합니까. 조사는 우리들이 하고 있는데.”
“담당 검사도 뚜렷한 해명을 못 하더군요.”
“재청구해 주세요. 이번엔 월권하지 말란 경고도 함께 해 주세요. 전속고발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검찰에겐 기소독점권이 있지만, 공정위에겐 전속고발권이 있다. 공정위가 기소나 소환 요청을 하면 검찰이 무조건 이에 응해야 한다.
검찰이 각 기관의 권한에 대해 모르진 않을 터……. 설마 사건 그만두라는 압묵적 협박일까?
김 반장이 재청구마저 거부당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을 때 준철은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팀장님!”
“검찰이 아니라 법무부로 가야겠습니다. 담당 검사가 대놓고 직무 유기를 하네요.”
“고정하세요. 우리 지금 방사청도 직무 유기로 치는데, 어떻게 검찰까지…….”
“맞아요, 팀장님! 남들이 보기엔 우리가 미친놈으로 보일 겁니다.”
“누가 진짜 미친놈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해 주겠죠. 언론사도 다 동원할 겁니다.”
“그만!”
반원들이 뜯어말릴 때, 오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수북이 쌓인 수사 자료를 한번 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팀장, 잠깐 국장실로 올라와.”
***
방사청의 직무 유기를 검토하는 시점에 왜 검찰마저 직무 유기를 할까.
국장실에 도착하니 이 넌센스한 상황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박성택과 강 의원이 사이좋게 찾아와 찻잔을 들고 있는 것이다.
“아이고. 또 뵙습니다, 이 팀장님. 요새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느라 바쁘시죠.”
박 의원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찻잔을 내려놨다. 국장님의 굳은 얼굴만 봐도 이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했을지 짐작이 갔다.
“뭐 다들 바쁘실 테니 긴 설명 안 하겠습니다. 그만해요.”
박성택이 명령조로 말했다.
“여야가 좀 감정이 격해졌으면, 수사기관이 중재도 하고 말릴 줄도 알아야지. 이때다 싶어 난장판 만드는 건 누구한테 배웠나 그래?”
“…….”
“뭐 국장님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닙니다. 근데 국장님도 잘하신 건 없어요. 실무자들이 선을 넘는다 싶으면 재량껏 중재하셨어야죠.”
“이하동문입니다. 국방 개혁 못지않게 안보 공백도 중요한 문제요. 원만히 수습하고 하루빨리 국방 정상화시키자는 게 여야의 공통 입장입니다.”
헛소리를 참 길게도 한다.
한마디로 그냥 덮으라는 거 아닌가.
마음 같아선 썩 꺼지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이 자리의 대표인 국장님을 무시하는 처사다.
사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국장님의 묵인 덕분이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원망하고 싶지 않다.
“저런…… 함께 죽겠다 싶으니 그냥 서로를 용서하셨군요.”
“뭐?
“강 의원님. 얼만 전만 하더라도 야당에 똥물 더 튀겨 달라 뭐 해 달라 하셨었는데…… 이제 와 이러시니 제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 국장 입에선 슬슬 약 올리는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