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어느 하청 근로자 (2)
하청은 내게 고마운 로봇들이었다.
기름만 넣어 주면 굴러가야 하는 기계 덩어리.
연료 떨어지지 않게 먹이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재우는 게 원청 임원인 내가 할 일이었다.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수많은 안전 수칙을 어겼고, 불법적인 일이 필요하면 가진 게 간절함 밖에 없는 하청을 이용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미안했는가…… 글쎄.
때론 그 하청도 재하청을 썼고, 재하청은 재재하청을 썼다.
어차피 먹고 먹히는 세상, 힘센 놈이 약한 놈 부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명건설은 그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었을 뿐이지.
사실 하청은 우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관행이다.
100억짜리 공사도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으로 가면 50억에 해치울 수 있다.
3인 1조 작업이 2인 1조도 가능하단 걸 보여 주며, 싸구려 자재 써도 아파트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줬다.
간혹 현장에서 불만이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내 귀엔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기계다
이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하청들의 불만이 시스템 오류로 보이기 시작했다. 안 된다고 아우성쳐도 결국 강행하면 되더라.
“뭐? 철근이 무너져?”
하지만 그들의 불만은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고, 현장의 고충도 결코 앓는 소리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양쟁이 다 굳지도 않았는데 작업을 강행하다 그만.
“이제 와 무슨 변명질이야! 그거 준공 날짜 25일까지다. 공사 기일 못 맞추면 우리 페널티가 얼만 줄은 알아?
-다행히 외벽 쪽이라 보수 작업은 금방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명의 사망자가…….
“사망자? 그럼 경찰까지 출동했어?”
-예…….
“젠장할! 이거 고용노동부로 들어가면 공사 중단인데. 일단 하청 사장들 집합시켜서 입단속 단단히 해. 허튼소리 지껄이면 너랑 나 둘 다 죽는 거야.”
본부장으로 처음 진급했을 때, 사망 사고가 터졌다.
하지만 공사판에서 사람 죽은 게 대순가. 나는 반사적으로 산재 사망 보상금과 준공 날짜 어겨서 받는 페널티를 저울질했고, 전자가 훨씬 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자리쯤 올라가니 나도 비로소 사람이 돈으로 보이더라.
그렇게 도착한 사고 현장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끊어진 철근이 포크 레인을 덮치며 여덟 명의 사상자를 냈는데, 걸레짝이 된 포클레인만 봐도 얼마나 큰 사고가 터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대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으며 건설소장은 경찰에게 심문을 당했다.
인부들은 흡사 탄광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꺼맸는데, 매몰자를 찾느라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다.
“오 부장. 어떻게 돼가?”
“지금 소장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왜 무너졌는지를 집중 추궁하는 것 같습니다.”
“잘 말하고 있지?”
“네. 다행히 하청사들 입막음은 끝내 놨습니다. 경찰도 형식적으로 진술서만 받아 갈 겁니다.”
한시름 돌렸다 싶을 때 사망자 얘기가 나왔다.
“얘긴 들었다. 사망자 두 명 다 불체자라고?”
“네. 병원에서 신상 확인해 달라 하는데, 어떡할까요.”
“어차피 우리가 직접 고용한 거 아니잖아. 인력사 사장들한테 알아듣게 설명해. 그동안 고생해 줘서 고맙다, 다음 공사도 반드시 함께 가자.”
한명건설한테 피해 없게끔 뒤집어써 달란 소리다.
일감을 끊어 버리겠단 협박이기도 했다.
“근데 불법체류자면 4대보험 가입 안 했겠네?”
“예…… 그래서 산재 신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뭐가 난감해? 산재 기록 안 남으면 우리한테 다행인 거지. 4억으로 끝내자. 한 사람당 2억. 어차피 산재 신청 정식으로 해도 이 돈 못 받아.”
목숨값치곤 두둑한 돈이다.
“하지만 직접 고용한 인력사 사장은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을…….”
“얼간이 같은 놈! 우리가 지금 남 걱정할 때야? 사망 사고 발생했으니 경찰도 눈에 불을 켜고 사진 찍어 갈 거야. 우리 안전 수칙 다 지키고 공사했어? 노동부로 넘어가면 작업
중지 떨어진단 거 몰라?”
참으로 한심한 부장들이다.
고작 기계 두 대가 고장 난 게 뭐 대수라고.
“하청 사장한테 따로 보상해 주겠다 설명해. 어차피 우리랑 계속 일할 거 아니야.”
“아, 예…….”
“얼른 수습하고 다시 공사 진행해. 입주가 하루라도 늦어지면 너랑 난 무조건 옷 벗는 거야.”
그 뒤 노동부에서 진행한 안전 수칙 점검은 그럴듯한 거짓말과 두둑한 봉투 몇 장으로 무탈하게 끝났다.
불체자 유가족들은 시신 앞에서 울부짖었지만 적잖은 보상금에 위로를 얻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들이 정말 위로를 얻었는지, 아니면 현실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는지.
‘…….’
생각해 보면 하청들은 내게 로봇도 아니었던 것 같다.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폐차시켜도 섭섭함이 드는 법인데, 그들의 죽음은 내게 아무런 감정도 일으키지 않았다.
***
-사망 사고 최다 공공 기관 대한전력! 처벌받은 사롄 단 한 번 없는 대한전력!
노모의 가녀린 외침이 자꾸 내 아픈 기억을 자극한다.
얼마 못 갈 줄 알았던 여인의 시위는 계속됐고, 그때마다 국회 경비대와 마찰을 벌이며 일대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
무시하려고 무던히 애를 써 봤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잘되진 않았다.
-윗사람들이 진짜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졌다면 같은 사고가 계속 반복됐겠습니꺼!
그것이 꼭 김성균에게 호통치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자꾸만 과거 생각이 난다.
불법체류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공사판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터진 뒤 수습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관계 당국이 처벌하지 않는 이상 우린
바꿀 생각도 없었다.
“팀장님. 신경 쓰이세요?”
“네?”
“출근한 뒤로 계속 대한전력 시위만 보고 계셨잖아요.”
“그랬나요…….”
“어휴. 차라리 이럴 땐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게 낫지 싶습니다. 저 어머니 목소리도 이미 다 갈라진 것 같은데…… 보기 참 안쓰럽네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 마음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일 다 끝나셨죠.”
“네. 민원 검토했는데 뭐 이렇다 할 만한 건 없네요.”
“그럼 먼저 퇴근하세요. 전 과장님께서 따로 부르셔서 남아야 할 것 같네요.”
“무슨 일인데 또 따로 호출입니까? 설마 또 큰 사건 맡기시려나.”
“그런 낌새는 아니었어요. 걱정 마시고 퇴근하세요.”
매번 과장님 이름 파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다 갈라진 저 여인에게 커피라도 건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반원들이 모두 퇴근한 걸 확인한 후,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향했다.
“저녁 되니 벌써 날씨가 쌀쌀하네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어머님.”
“…….”
“저는 공정위에서 일하고 있는 이준철이라고 합니다.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인사하니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왔다.
“나 끌고 가려고 왔소?”
“저흰 그런 일 하는 공무원이 아닙니다.”
“그럼 가이소. 이젠 공무원만 봐도 신물이 나. 경찰이든 검찰이든 약한 사람 편들어 주는 놈은 없지.”
“……사정은 전해 들었습니다. 아드님 얘기에 어떤 위로를 드려야 할지…… 사실 공정위가 하는 일이 원청, 하청 관련된 일이거든요. 괜찮다면 제가 자초지종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여인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도와주신단 말인교.”
“그건 아닙니다만…… 법적으로 조언드릴 게 있다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그깟 조언 다 필요 없시오! 내가 원하는 건 수사와 담당자 처벌입니더. 와 다들 나 못 도와줍니꺼.”
“대한전력이 공사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으니…… 법리적으로 처벌하긴 어렵습니다. 2심까지 무죄였으면 대법원도 원심을 뒤집진 않을 겁니다.”
뼈아프지만 냉정한 말을 해야 했다.
희망고문으로 그녀를 두 번 죽일 순 없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 아입니꺼! 대한전력이 전신주 정비 사업을 입찰했심더. 근데 그걸 따 간 놈은 하청한테 맽겼심더. 그리고 그 하청은 재하청을 줬고, 재하청은 재재하청을
줬심더.”
지독한 놈들이다. 하청을 세 바퀴나 돌리다니.
하도급 업체가 하나씩 늘수록 공사비가 삭감됐을 것이며, 책임에서도 멀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님. 그럼 이 모든 책임은 대한전력이 아니라 공사를 처음 따낸 도급 원청에게 물어야 합니다.”
“재판장도 똑같은 소리를 하데이. 근데 그기 말이 됩니꺼. 공사를 따낸 놈이 딴놈한테 공사 주고, 그 딴놈은 또 딴놈한테, 그 딴놈은 또또 딴놈한테 줬심더. 상황이 이 꼴로 돌아갈
동안 대체 대한전력을 뭘 했심꺼.”
이성을 잃은 그녀는 백팩에서 재판 서류를 꺼냈다.
“이게 경찰이 찍은 당시 사고 사진입니더. 우리 애 손 보소. 절연용 장갑이 아니라 면장갑 끼고 있지예? 그 전신주 높은 곳에 활선차도 없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작업했다 캅니다.
근데 내가 더 치가 떨리는 건 뭔지 아십니꺼.”
다음 장 재판 자료엔 더 끔찍한 일이 기록돼 있었다.
“애가 감전당하고 무려 30분이나 방치됐다 캅니다. 원래 전신주 정비는 2인 1조에 숙련된 기술자가 반드시 대동해야 하는데, 대학생인 내 새끼가 혼자 나갔다 캅니다.”
여인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의사가 내한테 처음 했던 말이 뭔 줄 아소. 골든타임 놓쳤다, 병원에 오기 전에 숨졌다. 이캅니더.”
“…….”
“10분만 더 빨랐다면 불구로 살지언정 살았겠지예. 이래도 대한전력이 잘못 업십니꺼. 현장에서 안전 수칙 잘 지켜지는지 아닌지 대한전력이 이래 무심해도 되는 겁니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안 된다. 하지만 딱히 법을 위반한 건 아니다.
“더 기가 차는 건 내 아들 같은 피해자가 하나가 아니란 겁니더. 작년에만 대한전력에서 여덟 명이 죽었십니더. 사망 사고 최다 공공 기관, 한 달에 한 번 꼴로 사람 죽어 나가는
공공 기관. 왜 법은 이런 놈들 처벌 못 하는교.”
“…….”
“법원에서도 결국 하청 사장들만 집유 받고 끝났심더. 근데 난 솔직히 하청 사장 원망 안 합니더. 이미 공사비 다 깎여서 내려왔는데 무슨 수로 안전 수칙을 다 지킵니꺼.”
“그럼…… 혹시 최종 원청에게도 책임이 내려졌습니까? 이 공사를 처음 따냈던 기업요.”
“그놈들도 대한전력하고 똑같심더. 임원 몇 명이 옷 벗으니까 검찰이 아예 기소도 안 했심더.”
“그건 불가능할 텐데요…… 대한전력은 몰라도 원청은 책임 못 피합니다.”
“천하의 한명건설을 어떤 검사가 건들겠시오. 그놈들도 다 빠져나갔심더.”
나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최종 원청이 어디라고요?”
—-
작가의 말.
독자님들께 정말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1부 에피소드가 거의 끝나감에 따라 글 쓰는 속도가 많이 더뎌졌습니다. 쓰는 것보다 버리는 분량이 더 많아 저도 정말 속상합니다. ㅠ
최대한 휴재는 안 하려고, 연재 날이 아닌 날에 보충분을 올리곤 했는데…… 못 따라갈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 연재 쉬고, 더 좋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제 작품을 애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