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구속? 불구속? (2)
“사장님. 공정위가 영장까지 신청한 걸 보면 무조건 3심 갈 모양입니다.”
“그것도 한명건설이 아니라 대한전력을 쳤습니다.”
“이건 진짜 끝까지 가겠다는 거 아닌지…….”
태영건설 사장실엔 짙은 한숨만 가득했다.
만약 대한전력이 처벌 받게 되면 원청은 물론 시공사인 자신들에게까지 화가 미치게 된다. 겨우겨우 막은 집행유예가 실형으로 뒤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사서 걱정 말자. 어차피 2심까지 무죄였잖아.”
“……여론은 2심까지 무죄였단 사실에 더욱 분노하고 있어요. 이럼 대법 판결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겁니다.”
“다른 무엇보다 공정위 영장 사유가 사문서위조였습니다.”
사장실에선 이제 한숨 소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명건설의 지시를 받고 근로 일지와 현장 점검 내용을 모두 조작하지 않았나.
원래 공사판은 다 가라일지 쓴다, 빠듯한 예산을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이따위 변명은 국민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사고를 터트린 것도 모자라 은폐까지 시도했던 공범으로 몰릴 것이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실직고하시죠.”
“한명건설에서 서류 조작하라고 지시 내린 대화 기록도 있잖습니까. 미리 자백하면 공정위도 정상참작 해 줄 겁니다.”
“……아닌 말로 우리도 피해자 아닙니까? 100억도 간당간당한 공사를 50억에 해치웠어요. 현장에서 사고가 안 터지는 게 이상하죠.”
김 사장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사실 사람이 한 명만 죽은 것도 기적인 공사다. 공사비가 반이나 삭감됐으니 현장에서 지킬 수 있는 안전 수칙이 없었다.
이에 대해 몇 차례 문제 제기해 봤으나 돌아오는 건 면박과 일감 끊겠단 협박이었다.
그렇다고 당국은 달랐나? 모든 책임은 시공사인 자신들이 져야 했고, 처벌도 자신에게만 집행유예가 내려지며 유야무야 끝났다.
쾅!
그래서 더 잘 안다. 이따위 나약한 감정에 빠지면 안 된다는 걸.
“자백? 나더러 한명건설이랑 대한전력 팔아먹으라고?”
“그게 아니라…….”
“그럼 앞으로 공사 어떡할 거야? 안 그래도 산재 기록 생겨서 앞으로 일감 따는 건 하늘에 별 따기야. 그런 마당에 원청을 고발하고 발주사까지 고발해?”
김 사장은 집행유예가 실형으로 바뀐다 해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바닥에서 매장당하고 굶어 죽는 건 그보다 더 끔찍한 처벌이다.
“박 전무! 우리 이미 사람 죽인 건설 업체 됐다. 이대로 주저앉을 거야?”
“아, 아닙니다.”
“김 이사, 우리 사망 사고 이후 공사 입찰 20%나 줄었지?”
“죄, 죄송합니다.”
“자네들도 비상한 각오로 임해. 이미 사람 죽인 하청 업체로 찍혔는데, 이 바닥에서 재취업 되겠어? 회사 무너지면 자네들도 끝이야.”
부도, 실업자.
이 마법의 단어는 자백하자는 극성 임원들도 입 다물게 만들었다.
쓸모없는 임원들이 모두 물러가자 김 사장은 담배를 물었다.
“……아버지.”
“그만하자.”
“임원들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검찰과 다르게 공정위는 이 모든 책임을 대한전력에게 있다 보고 있어요. 영장도 그들에게 신청하지 않았습니까.”
“협조하는 순간 칼을 우리한테 들이밀 거다. 공무원은 다 거기서 거기야.”
“미리 단정 지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솔직히 아버지도 억울한 거 다 참고 지금까지 버틴 거 아닙니까.”
고인의 장례식이 열렸던 날.
김태영 사장이 보였던 눈물은 진심이었다. 부족한 예산으로 공사를 진행시킨 게 자기 탓 같았다.
그래서 법정에서도 자신의 혐의를 적극 부인하지 않았고, 유가족들에게 무릎을 꿇으며 사과했다. 만약 유가족들과의 합의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실형을 못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은 진심 어린 반성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대한전력의 전화와 한명건설의 일감 끊겠단 협박에 현실이 보였고, 자신만 바라보는 수십 명의 임직원이 보였다.
그게 보이니 마지막 남은 양심을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다 처벌받았잖아, 내가.”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며 비서가 들어왔다.
“저, 사장님……. 공정위에서 오셨는데요.”
***
처음 만난 그는 눈길도 주지 않으며 찻잔만 바라봤다.
죄책감과 억울함이 공존할 것이다.
“김 사장님, 저는 그래도 사장님의 진정성을 믿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재판 자료 보니 혐의를 부인하지 않았더군요. 빠듯한 공사비 탓하며 자기 책임 아니라 우기실 법도 한데.”
“…….”
“유가족에게도 그 진정성이 전달됐으니, 합의로 끝났을 거라 봅니다.”
김 사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저흰 이 공사의 책임이 태영건설에 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명건설에서 100억에 딴 공사가 하청 세 번을 걸치며 반토막 났더군요.”
“팀장님, 저는 이 문제로 수십 번이나 법정에 불려 나갔습니다. 계속 이 얘기 하셔야겠습니까.”
“그럼 본론만 말씀드리죠. 마지막 남은 양심은 팔지 마세요.”
척-.
준철이 내민 자료엔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들이 적혀 있었다.
“근로 일지, 현장 점검표를 봤는데 모두 다 수칙을 지킨 걸로 되어 있더군요.”
“팀장님.”
척-.
“근데 대한전력 사망 사고를 보면 전부 다 수칙 위반은 없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시공했던 모든 하청사가 다 수칙을 지켰다는 겁니다. 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죽었을까요.”
“…….”
“사고 터지자마자 한명건설에서 전화 왔죠, 일지부터 조작하라고? 아마 여기 자재 창고에 안전 장비를 다 쑤셔 넣었을 겁니다. 경찰과 노동부는 창고에 있는 물품부터 조사하니.”
-김 사장, 우리 오래 갑시다.
당일 도착한 한명그룹 비서실장의 말이었다.
-이거 만약 대한전력이 처벌 받으면 원청인 우리나 태영이나 서로 위험해요. 오늘 안으로 본사에서 안전 장비 입고시킬 거요. 자재 창고에 그거 다 박아 놓을 테니, 김 사장은 근로
일지만 손봐.
젊은 팀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꾸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대답 없이 표정만 굳어 가는 그의 얼굴이 모든 걸 말해 줬다. 역시나 재판 앞두고 서류 조작이 있었다는 걸.
“죗값을 받았다고 흔적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사망자가 죽게 된 경위, 명확한 진상 규명. 이거야말로 희생자에게 반성하는 모습이죠.”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저희 지금 대한전력 간부들에게 영장 청구했습니다, 사문서위조 혐의로. 사장님의 직접적인 증언만 있으면 바로 구치소로 보낼 수 있습니다.”
“……난 그들에게 전화 받은 적 없소.”
“원청인 한명건설에서 전화를 했겠죠. 그것만으로도 대한전력 간부 구속시킬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받은 거 없어요. 법원에 제출한 자료는 다 사실입니다.”
준철은 가만히 그를 노려봤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시려고요?”
“난 모르는 일이오.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다 처벌 받았고, 유가족들과 합의도 했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 겁니까. 서류 위조가 의심되면 증거를 직접 찾으십쇼.”
위축됐던 말투가 점점 커졌다.
아예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 굳힌 모양이다.
“이렇게 나오시면 대한전력으로 갈 화살이 이쪽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뭐요?”
“증거 조작을 가장 앞장서서 하셨을 거 아닙니까.”
“협박하는 거요?”
“있는 사실을 다 드러내겠다는 겁니다. 솔직히 못 할 것도 없습니다. 대한전력의 사망 사고가 작년에만 8건이었어요. 사장님처럼 근로 일지 조작한 사람 중에 정말 자백 하나 안
나올까요?”
“지, 지금 무슨…….”
“그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백 나오면 결국 다 드러날 겁니다. 사장님도 무사치 못해요.”
가슴이 철렁였다.
대한전력엔 사망 사고 많다. 자신처럼 협박당한 사람이 많을 거란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중에서 정말 한 명이라도 입을 열면 정말 이 젊은 놈 말대로 된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죠. 이거 계속 떠안는다고 한명건설이 뒤를 계속 봐줄까요?”
“…….”
“천만에요. 1-2년 공사 일감 주다 결국 모르쇠 할 겁니다. 한명은 태양건설을 이미 무능하다 생각해요. 어찌 됐건 공사장에서 사망 사고를 낸 하청이니까.”
“지금 조사에 협조 안 한다고 저주하는 겁니까.”
“그게 사실입니다. 더 잘 아시잖아요.”
참다못한 그가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할 말 없어. 당장 나가!”
“사장님.”
“나가라니까.”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갈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준철도 엉덩이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가 울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불의의 사고였어!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고라고. 난 그 사건으로 이미 처벌까지 받았는데, 공무원들은 만만한 게 하청이지? 공사판에서 근로 일지 매뉴얼대로 작성하는 곳이 얼마나
있어. 다 조금씩 손보는 거고 우리도 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
억울한 감정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왔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공사비였다. 그걸 알았으면 수사기관이 자신만 조사하지 않았을 거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건들 수 없으니 그들이 치러야 할 죗값도 대신 치렀다.
공무원들은 하청의 작은 잘못은 크게 부풀리고, 원청의 잘못은 축소하기 바빴다. 이 젊은 놈도 마찬가지다. 조작을 지시한 한명건설 임원이나 불러 압박하지 왜 어려운 얘길 자신에게
시키는가.
여느 공무원과 다를 바 없다 생각되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사장님, 영장 발표가 내일인데 그때까지 답을 달란 말은 안 하겠습니다. 감정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시겠군요.”
그의 악다구니 쓰는 모습에 준철은 오히려 희망의 빛을 봤다.
확실히 억울한 감정이 있긴 하구나.
“하지만 법원에서 영장 기각한다 해도 우린 무조건 3심 갈 겁니다.”
“지금 내 말 귓등으로 들었어?”
“사장님을 증인 신청해 놓겠습니다. 희생자에게 정말 미안하다면 재판에 출석해 주세요. 태영건설이 무능해서 사망 사고를 낸 게 아니라, 무리한 공사비를 맞추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입증하는 게 귀사에도 좋을 겁니다.”
준철은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그렇게 준철이 나가고 난 뒤.
그는 한참이나 서 있다 눈물을 왈칵 쏟았다.
지금은 누구보다 이기적으로, 자신만 바라보는 임직원을 생각해야 하는데……. 아직 남은 양심 파편이 마음속을 계속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