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8
18화
통보
“저렇게 나오는 거 보면 이미 변호사랑 상의 다 끝낸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피해자 안 나타나면 이 이상 증거 수집해 봤자 의미 없어요.”
1차 조사가 허무하게 끝나자 조사관들 모두 우려를 표했다.
기소를 피하기는커녕 되레 해 달라고 하지 않나? 한발 더 나아가 자기들이 승소하면 공정위를 가만 안 두겠단 협박도 한다.
준철은 분위기를 살피다 박 팀장에게 물었다.
“법정 싸움을 이미 다 준비한 모양입니다.”
“……네.”
“한경에서 승소하면 오히려 저희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씌우겠네요.”
성의 없는 동의의결안도 모자라 이젠 직권남용으로 협박이라니.
“박 팀장님. 대리점 설득은 해 보셨습니까? 피해자만 나타나면 끝날 것 같은데요.”
“……저희도 정말 노력해 봤습니다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요. 5년 동안 단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 말하자 심사관 쪽 반장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박 팀장님. 그럼 그냥 저희도 손 털면 안 됩니까? 막말로 공정위가 피해입은 것도 아닌데 뭐 이리 나서 줘야 하나 싶습니다.”
“맞습니다! 이게 뭐 세금 도둑질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피해입은 거 말해 달라는 건데.”
“부당함에 대해 말할 용기도 없으면 그냥 당하고 살아야죠!”
한 사건에 5년이나 붙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진이 빠지는 건 당연하고 대리점들의 소극적인 모습에 의욕도 잃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생각하진 맙시다. 저 사람들이 안 억울해서 저러는 게 아닐 텐데.”
“아무리 그래도.”
“한 템포 쉽시다. 여러분들은 압수한 자료 정리하고 오늘 퇴근해 주세요. 따로 저한테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
“모두 고생하셨어요.”
박 팀장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가 눈짓을 보내자 준철도 김 반장에게 말했다.
“저희 팀도 오늘은 이만 철수하죠.”
“예?”
“첫술에 배부를 순 없잖아요. 짐만 정리하고 다들 퇴근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전부 나 따라와.”
박 팀장과 둘만 남게 되자 준철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젠 정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다.
“박 팀장님.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는데요.”
“후우…… 이걸 정말 기소까지 해야 할까요?”
“네. 저쪽은 뜻을 꺾을 생각이 없어요.”
“근데 현실적으로 한경모비스가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 증거가 아무리 많아도 피해자가 안 나타나니…….”
“그럼 일단 기소부터 쳐 보죠.”
“예?”
“우리가 절대로 기소 못 한다 생각하니 한경에서 더 저러는 겁니다. 피해자는 기소 치고 확보해도 늦지 않아요.”
준철의 제안에 박 팀장이 화들짝 놀랐다.
“이 팀장님. 재판은 우리가 100% 확신을 가지고 덤벼도 이길까 말까입니다. 다 완성된 범죄도 퍼즐 하나 빠져서 뒤집어지는 게 허다해요. 하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선 더더욱
신중해야죠.”
“그렇게 신중하다 5년 동안 끌지 않았습니까?”
“그, 그야 그렇지만.”
“이젠 우리가 처벌 의지를 확실히 보여 줘야 할 때입니다. 만약 또 뭉개면 50년이 지나도 안 풀릴 겁니다.”
솔직히 지금도 늦었다.
공정위가 재판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오히려 한경에게 희망을 줬을 것이다.
“……피해자 확보는 어떡하시게요? 만약 우리가 패소하면 정말 직권남용 혐의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 소리 안 나오게끔 제대로 손봐야죠. 기소하고 피해자 확보합시다.”
“지금도 안 나타나는데 나중이라고 나오겠어요?”
“저희가 계속 갈팡질팡하니 대리점들도 못 나서는 거예요. 만약 기소하고 처벌 분위기 조성하면 마음 바뀌는 대리점도 생길 겁니다.”
관건은 분위기 조성이다.
당국이 처벌하겠단 의지를 보여 줘야 대리점들의 마음도 바꿀 수 있다.
어쩌면 대리점들의 입을 막은 건 한경이 아니라 공정위일 수도 있다.
처벌한다 큰소리만 치고 5년 동안 기소도 못 했으니, 그들 입장에선 얼마나 못 미더웠겠나?
“밀린 숙제 한 번에 한다 칩시다. 증거 정리해서 기소 넣고요, 핵심 관련자 줄구속시키죠.”
“이 팀장님…… 이걸 구속 수사로 진행하실 겁니까?”
“당연하죠. 이거 영장 못 치면 계속해서 대리점들 협박하고 증거 인멸할 겁니다. 그 부분은 우리가 카바해 줘야죠. 피해자 확보될 때까지.”
“영장은 검찰이 안 해 줄 텐데.”
“할 수밖에 없는 이유 다 찾아야 합니다. 이제부턴 그 싸움이에요.”
자신감에 차 있는 준철과 달리 박 팀장은 좌불안석이었다.
“이 팀장님. 오늘 저쪽 태도를 보니까 외려 저희 기소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우리가 실수하길 바라다가 나중에 직권남용으로…….”
“공갈이에요.”
“예?”
“꿍꿍이가 뭐 있겠습니까. 공정위가 피해자 확보하면 이기고, 못 하면 지는 건데. 직권남용? 저희 겁먹으라고 공포탄 쏜 거죠. 막상 까 보면 실탄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웃기는 놈이다.
오히려 기소를 해 달라? 법원에서 자기들 억울함을 밝히고 싶다?
김성균으로 살 때의 경험을 비춰 보자면, 부사장 말은 전형적인 뻥카다.
재판에서 이길 자신이 있든 없든, 기소당했단 뉴스가 나가면 주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 재판 리스크를 3심 끝날 때까지 지고 가야 하는데, 어떤 임원이 이를 반기겠는가?
“오히려 저희가 기소를 강행하는 게 한경 그룹 와해시키는 데도 좋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한경 내부에서도 공정위와 적당히 타협하자는 쪽이 있을 겁니다. 저희가 진짜 처벌 의지를 보이면 저쪽도 의견이 갈리겠죠.”
“하면 저 부사장은…….”
“전면에 나선 걸 보니 핵심 세력이네요. 일단 구속시키고 공판 전략 짜죠. 처벌 의지 보이면 피해 대리점 반드시 나타납니다.”
5년 동안 끌어 온 사건이 드디어 기소에 들어간다. 박 팀장은 심란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기소를 안 할 거면 처벌을 포기해야 한다.
납득할 수 있는가?
***
“자리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면 그만둬. 난 회사가 구렁텅이로 빠지는 거 더는 못 봐.”
“무슨 말씀인지?”
“시치미 그만 떼. 공정위에서 처벌 수위 가져왔다며? 과징금 안 내는 것만 해도 싸게 막은 거야. 그쯤 하고 그 제안 받아들여.”
김원석 사장은 부사장 얼굴을 보자 바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공정위의 지난 수사가 최후통첩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수사팀엔 종합감시국까지 합류했고, 그들은 처음으로 원하는 처벌 수위를 말해 주었다. 거부한다면 이젠 기소를 막을 수 없다.
“사장님은 예나 지금이나 참 무책임하십니다.”
“뭐?”
“공정위에선 우리 임원들 해임하라 합니다. 이 사람들 다 회사를 위해 궂은일 해 준 건데 내팽개치자는 건지요.”
“정리된 임원들한텐 퇴직금으로 보상하면 돼! 그리고 너, 정말 의리 때문에 그런 거 아니잖아. 임원들 지지 모아서 사장 자리 탈환하려 그러는 거 아니야?”
부사장은 대답 대신 씩 웃음을 지었다.
“글쎄올시다. 난 사장님처럼 그리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좋아, 그럼. 이기적인 놈 된 김에 모두 내가 떠안지. 공정위가 가져온 제안 모두 수용하고 임원들 사퇴시켜. 나도 함께 옷 벗는다.”
“아이고- 눈물 나겠습니다.”
“그만 빈정대고 대답 확실히 해. 공정위 처벌안 수락해!”
김 사장은 공정위가 보낸 최후통첩을 내밀었다.
-찌이익.
하지만 부사장은 보란 듯 찢어 버리며 본색을 드러냈다.
“왜? 그런 결단력 보여 주면 나중에 회장님이 다시 불러 줄까 봐?”
“너, 너 이 자식!”
“이번 일에 연루된 임원들 다 내 사람이야. 그걸 왜 당신 무덤에 순장시켜? 그것도 당신을 순교자로 만들면서?”
김 사장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겨우 그거였냐? 정말 자리 욕심 때문에 회사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거야?”
“돼지 눈엔 돼지 새끼밖에 안 보이겠지. 나야말로 회사를 위해 이러는 거야. 그 임원들 사퇴시킨다는 건 앞으론 대리점에 강매 못 한다는 거야. 추후 매출 줄어들면 은퇴한 당신이
책임질 건가?”
“아무리 그렇다고 회사를…….”
“어차피 기소 못 할 텐데, 뭔 놈의 회사 타령이야? 5년 동안 피해 대리점 나타났어? 피해자 확보도 안 됐는데, 공정위가 기소할 수 있을 것 같아?”
공무원은 단순하다.
피곤해질 일 같으면 꽁무니 빼기 바쁘다.
직권남용이란 말을 꺼낸 순간부터 공정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놈들이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인데, 대체 왜?
“부사장, 그러다 정말 기소되면 주가 바닥 치고, 우리도 감당해야 할 일이 한둘 아니야.”
“나는 필요 없는 걱정 사서 하는 타입 아닙니다. 설사 기소된다 해도 피해자가 안 나타날 텐데 뭔 걱정입니까?”
“우리 앞에서 설설 기어 그렇지, 대리점들 호구 아니다. 어떤 면에 있어선 우리보다 더 영악해.”
부사장이 고개를 돌려 버리자 김 사장은 텁텁한 얼굴로 일어났다.
“적당히 놀아나. 회장님 원래 충성 경쟁 즐기는 노인이야. 너 부사장 앉혀 놓은 건 나 긴장하라 그러는 거지, 너 잘해서 그런 거 아니야.”
“구구절절한 얘기 그만 듣고 싶은데, 언제까지 더 할 겁니까?”
“아니, 명심해. 지금은 네 얘기 잘 들어주는 것 같지만 문제 생기면 언제든 내팽개쳐 버릴 사람이 회장님이야. 도취되지 말라고.”
김 사장은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부사장은 비웃었다.
“영업의 ‘영’ 자도 모르는 놈이 어디서 훈계질은.”
임원들 내치자는 건 미친 소리다. 누가 회사 매출을 올려 줬는데?
창고가 미어터질 만큼 제품을 밀어 넣어야 대리점들이 타사 제품 팔 생각을 안 한다. 지금 해고하자는 임원들은 그 궂은일을 해 줬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을 잘라 버리면 앞으론 어떻게 영업할 건가?
피해 보상해 주면 앞으론 대리점 눈치도 보자는 건가?
“개를 길들일 줄을 몰라. 태생이 개새끼야. 쯧쯧-.”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저 사장 놈부터 몰아내리라.
그리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기댈 때, 문밖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부, 부사장님. 큰일 난 것 같습니다.
다급한 얼굴로 들어온 비서는 인사도 잊은 채 말을 이었다.
“검찰에서 저희를 기소해 버렸습니다.”
“뭐?”
“공정위가 고발 강행한 것 같습니다. 통보도 안 해 주고 뉴스로 먼저 나갔습니다.”
비서는 재빠르게 다가와 현재 실검을 달리고 있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여 주었다.
[공정위 – 한경모비스 대리점 갑질, 검찰에 고발]
[장장 5년을 끌어온 사건, 결국 파행]
[피해는 있는데, 피해자가 없는 사건. 무엇이 쟁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