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새로운 국면 (2)
[검찰 – 관계자 명단 입수] [서울시장 및 전직 토지공사 명단 다 나와]-다음 소식입니다. 한명건설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연일 파장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검찰과 공정위는 최 부회장의 비자금을 1,200억대로 파악했는데요. 상당한 돈이 로비
자금으로 쓰였다는 자백을 받아 냈습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공사를 이렇게 따냈던 걸까요.
준철이 입수한 명단은 가감 없이 언론에 폭로되었다. 이로써 민감한 이름을 감추기 위한 한명건설의 노력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본디 공공기관장은 청와대 낙하산 인사들로 채워지는 법이다. 그런 만큼 폭로된 인사엔 여야가 없었다.
한명건설의 편의를 봐줬던 여러 기관장들이 입방아 올랐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건 현직 서울시장이었다.
-그린벨트 해제가 청탁이었습니까?
-강남 재개발도 모두 대가성 사업이었습니까?
당사로 몰려든 기자들을 제치며 서울시장이 코웃음을 쳤다.
“오늘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사실무근입니다.”
-검찰은 이미 진술이 나왔다고 밝혔습니다만.
“과거에도 ×××리스트, 아무개리스트란 말이 돌았죠. 한데 사실로 밝혀진 게 있나요? 딱 그 정도 수준의 모략입니다.”
-그럼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현직 서울시장이 거론됐단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전 지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란 말이 제일 무섭습니다. 아무래도 기업 내부 비리가 터지며 서로 폭로전을 하는 모양인데, 부디 공정위와 검찰이 엄정
수사하여 제 억울함을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
서울시장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당사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 주십쇼! 감사원이 특별 감사하겠다고 했는데 자신 있으신지요?
당사로 일찍 사라진 게 다행이었다. 서울시장이 그 질문을 듣고 얼마나 표정이 일그러졌는지 잡지 못했으니까.
서울시장은 성의 없는 대답만 되풀이하고 사라졌지만 네티즌들의 화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미친놈들 아니냐? 어쩐지 멀쩡하던 그린벨트 산 깎더니. 이거 완전 미친놈들이구만?
⌞ㅇ.ㅇ 저 명단만 있는 게 아닐걸?
⌞당연하지. ㅋㅋ강남아파트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소리 듣던 아파튼데, 저 새끼 당선되고 나서 싹 다 갈아엎음. 이건 정치권 조력 없으면 못 함.
⌞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진짜 말도 안 되게 갈아엎었네. 그리고 말도 안 될 만큼 한명건설에 공사를 줬네.
준철은 기사들을 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론에 바로 뿌려 버리란 국장님의 오더가 맞았다. 여기까지 찾아와 덮어 달라고 하던 놈들이 카메라 앞에선 어쩜 저리 당당한지 모른다.
기사 댓글이나 보며 위로를 얻으려 했는데, 그 또한 하늘이 돕지 않았다.
“뭐요, 보석? 아니, 법원은 눈이 삐었습니까? 그 멀쩡한 놈한테 무슨 병보석이에요?”
김 반장이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후우……. 팀장님.”
“왜요, 부회장 병보석 신청했답니까?”
“네. 법원에서도 허가가 떨어졌다는군요.”
“질환이 뭐랍니까?”
“들어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다발성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지병이래요.”
지병은 개뿔. 해외에 애인까지 두고 살 정도로 혈기가 왕성했으면서.
“본새를 보아하니 이거 아무리 해 봤자 집행유예가 끝이겠습니다.”
준철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처벌입니다.”
“해먹은 돈이 1천억대인데, 고작 그걸로 되다니요.”
“집유 기간 땐 부회장 자리 유지 못 하잖아요. 놈에게서 가장 중요한 걸 빼앗는 겁니다.”
준철도 한술에 배부르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나씩 무너뜨리면 된다.
***
-대가를 받고 입찰 사업에 선정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사실무근입니다.”
-그렇다면 재임과 동시에 그린벨트 해제 사업과 강남 재개발은 어떻게 된 겁니까?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그건 치솟는 부동산과 집값 안정화를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이건 제가 후보자 시절부터 공약했던 내용이고요. 전 그걸 토대로 당선된 겁니다.”
검찰로 소환된 서울시장은 영양가 없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무근이다.’라는 말만 계속된 지루한 취조였다.
그가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시간을 끌고 있을 때, 물밑에선 야합이 이뤄지고 있었다.
“폭풍이 커도 너무 큽니다. 어제 뉴스에선 특검 찬성 비율이 70%를 넘어갔다는군요.”
“이럼 우리도 울며 겨자 먹기로 특검 통과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청와대도 거부하지 못할 거요. 이거 대체 어떡하면 좋습니까?”
한자리에 모인 양당 의원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일감 몰아주기로 시작된 의혹이 정치권 로비 사건으로 비화 됐다. 특검이 통과되면 얼마나 더 끔찍해질지 모른다.
답 없는 문제를 계속 고민하다 보니 원성이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그 이준철이란 놈이오! 이놈은 반드시 끝을 본다고.”
“우리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군납 비리 때 아주 묵사발을 내놨어야 하는데.”
“아, 혈기왕성한 놈이 날뛰면 연륜 있는 놈들이 말려야지. 대체 그쪽 국장은 뭐 하는 작자입니까?”
“우리도 그 사람 재임 자료를 털어서…….”
“다들 그만.”
여당 당대표가 묵직한 음성으로 말하자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복수보다 이 피해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를 의논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홍 대표님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동감합니다. 지금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해 봅시다.”
피해를 최소화.
한마디로 이젠 어디까지 손절할지를 의논해 보자는 거다. 오늘 회의에선 희생자가 가려질 것이다.
모두가 숨죽이며 처분을 기다릴 때 여당 대표가 입을 열었다.
“서울시장은 살립시다.”
시작부터 민감한 이름.
“가능……하겠습니까? 최 시장은 그린벨트 해제랑 강남아파트 재개발같이 빼도 박도 못할 비리가 걸렸는데.”
“아닌 걸 기다라고 우기는 게 우리 일이죠. 현 상황에서 서울시장이 정리되면 그다음은 공기관장들입니다. 이에 대한 파장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공기관장은 청와대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다. 공정위의 조사가 계속되면 여야 모두 상처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아주 덮자는 건 아닙니다. 은퇴한 지 오래됐거나, 정계를 떠난 사람 중에 쓸 만한 희생양을 구해 보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불이 크게 번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지만 모두들 이게 최선의 방안이란 걸 알고 있었다.
“듣고 보니 그 말씀이 맞습니다. 여기서 현직자들 연루 흔적 나오면 밑도 끝도 없어요.”
“최 시장이 그래도 저렇게 뻔뻔하게 나와 주는 게 다행이에요.”
“무조건 잡아떼고 현직자들에겐 피해 없게끔 마무리합시다.”
양당의 거국적 합의 덕에 희생양이 될 명단 2~3명 이름이 나왔다. 모두들 은퇴한 지 오래로 처벌받아 봤자 타격 없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문제는 최영석 부회장인데…….”
“실형 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다들 입맛을 다실 때 여당 대표가 결단한 듯 말했다.
“한명건설도 선수예요. 형량을 가볍게 해 줄 변호사 하나 없을까. 우리가 안 도와줘도 실형 피할 수 있는 방안은 마련해 놨을 겁니다.”
“그건 그렇죠.”
“그 걱정은 그 사람에게 맡기고, 우린 우리 뜻만 전달합시다.”
***
양당 의원들 말대로 한명건설은 법조계 선수였다.
엊그제만 해도 위풍당당했던 최영석은 휠체어라는 마법의 아이템으로 당당하게 병보석을 허가받았다.
-죄를 인정하십니까?
기자들의 날 선 질문이 잇따랐지만 부회장은 고개만 끔뻑 숙이며, 묻는 사람이 죄책감을 가질 만큼 불쌍한 척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의 태도는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180도 바뀌었다.
“염병할!”
그는 타고 왔던 휠체어를 내동댕이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니까 지금 날 손절하겠다는 거야?”
“……예.”
비서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그 수많은 돈을 뿌려 뒀건만, 막상 사고가 터지고 나니 모두 나 몰라라 하기 바쁘다.
그때 한 사내들이 들어왔다.
중진 의원들로 이번 공사에 많은 혜택을 준 자들이었다.
“잘 지내셨소, 최 부회장.”
딱딱한 말투가 벌써부터 거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의원님 덕분에 무사히 잘 나왔습니다.”
“보석 허가는 우리가 손쓴 게 아니오. 한명건설 자력으로 나온 거지.”
“보는 눈이 많은데 허가가 떨어진 건 의원님들의 힘이 컸지요. 그래도 두 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실형을 살지 않겠단 뜻이다.
“암, 그래야지. 천하의 한명건설한테 어떻게 실형이 나오겠소. 그래도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수습해야 할 것 같은데.”
“기탄없이 말씀하세요.”
“부회장님, 우린 서울시장 살리기로 했소.”
“무슨 말씀인지.”
“서울시장 내치면 그다음은 공기관장 차례 아니오. 이러면 한도 끝도 없다고. 비자금 조성은 본인 혼자를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얘기 정리해 주시오.”
부회장은 부아가 치밀었다. 돈 받아 처먹을 땐 언제고 이제 와 선 긋기라니.
“혼자 죽으란 말씀이시군요.”
“여론 반응을 봐요. 내일 당장 특검이 통과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험악해. 현 상태로 국회가 특검 거부하면 전 의원이 다 의심받을걸. 청와대도 거절할 명분이 없소.”
여야청. 이들이 합심하면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한명건설이 검찰에 뿌린 돈이 많다 하더라도 결국엔 더욱 큰 내막이 밝혀지고 만다.
그렇다고 하는 둥 마는 둥 하면 어쩌겠는가. 검찰까지 싸잡아 욕먹을 게 뻔한 일이다.
“제가 그렇게 하면 의원님들은 안전하신 겁니까?”
“다는 못 살려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릴 수 있지. 처벌해도 별 타격 없는 명단은 우리가 추려 봤소.”
“다행이군요.”
부회장은 배신감에 치가 떨렸지만 함부로 감정을 표현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하면 저에 대한 처벌은요?”
“어디 한명건설에 실력 좋은 변호사가 하나 없겠습니까. 최 부회장도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시지요. 만약 실형이 떨어진다 해도 특사, 가석방으로 곧 나올 수 있게 해 주겠소.”
부회장은 이것이 정치권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는 걸 알았다.
“그러려면 공정위 심기를 너무 거스르지 않는 게 좋을 거요. 그쪽에서 과징금 부과하고, 징계하는 거 있음 다 받아들이시오.”
부회장은 짧게 고민하다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일 그냥 넘어갈 생각 없습니다. 당한만큼은 갚아 줘야죠.”
“무슨?”
“나중에 제가 그들에게 복수할 때, 아무것도 묻지 말고 저를 도와주십쇼. 의원님들께서도 당한 건 갚아야지 않겠습니까.”
살기 가득한 말에 중진 의원도 더는 묻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
“알겠소. 성심껏 돕지.”
의원을 보내고 난 후, 부회장은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