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9
19화
그래, 재판 가자 (1)
기소 발표 직후, 공정위는 즉각 여론전을 준비했다.
사건을 공론화시켰으니 이제 곧 기자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한경모비스 주가와 직결된 만큼 이미 여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이건 호재이자 악재였다.
유죄가 떨어지면 한경 그룹이 풍비박산 나고, 무죄면 공정위의 권한 남용이 도마에 오른다. 재판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죽는다.
[공정위, 피해 사실 모두 공개]
[피해는 있으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은 사건]
[한경모비스에 대한 처벌 의지 확실히 보여]
공정위가 언론 발표까지 선수 치자 한경 그룹도 파상 공세를 퍼부었다.
[한경 그룹, 피의 사실 공개에 강한 유감]
[무죄 추정의 원칙 어겨, 대부분 다 과장된 사실]
[한경, 동의의결안까지 냈는데 공정위에서 거부]
[공정위, 진정성 없는 동의의결안]
[담당자 처벌, 피해 대리점 보상안 전혀 없어]
[익명으로 진행된 다섯 번의 투표 내용 모두 공개]
그렇게 보도와 반박, 반박과 재반박 기사가 연일 쏟아지면서 주가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야이 미친놈들아!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건 소액 투자자인 개미들뿐이다.
한경 그룹과 공정위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난타전을 펼치자, 주가는 말 한마디에 수백억씩 오르내리는 투기판이 되었다.
“이 팀장님. 주가를 흔들어 놓는단 계획은 성공했습니다만…… 우리 언제까지 보도자료 계속 흘릴 겁니까.”
“싸울 수 있을 때까지 해야죠. 왜요, 걸리는 거 있으세요?”
“솔직히 좀 불안합니다. 주주들 원성은 상대를 가리지 않아요. 주주들은 오히려 이 문제를 저희의 과잉 수사라 지적하더군요.”
“주주들이야 주식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당연히 팔은 안으로 굽겠죠.”
“……그럼 우리한테 불리한 거 아닙니까. 공론화 시켰는데 정작 여론이 저쪽 편이면.”
“근데 저건 여론이 아니라 주가 게시판일 뿐이잖아요. 상식적인 사람 중 저희를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린 우리 소신대로 밀고 나가면 돼요.”
박 팀장은 속내가 복잡한지 한숨이 나왔다.
전형적인 공무원의 모습이다. 시끄러운 사건 피하고 싶고, 사람들 관심받는 거 싫어한다.
재판에 대한 부담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론화시켰는데 패소하면 한직으로 좌천당할 각오도 해야 한다.
준철은 그의 표정을 살피다 조심히 말을 꺼냈다.
“박 팀장님. 이겨도 바보, 져도 바보면 이기는 바보 돼야죠. 이런 싸움 하기 싫어서 5년 동안 기회 줬는데, 한경에서 그거 걷어찼잖아요?”
“후우…… 그야 그렇죠.”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몸 사리면 괜한 오해 삽니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돼요.”
똥이 무섭든, 더럽든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더러운 게 있으면 치워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그 더러운 걸 치우다 보면 묻는 것 또한 감수해야 하겠지.
얼마간 생각하던 박 팀장은 곧 결심을 굳혔다.
“좋습니다. 그럼 검찰에 이거 얼른 신청하시죠.”
***
“……최 사장님. 이젠 우리도 뭘 해야 할 때 아닙니까?”
공정위와 한경모비스가 살벌한 신경전을 펼칠 때, 복잡한 심경으로 이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공정위가 결국 기소해 줬네요.”
“언론 발표에 저렇게 적극적인 거 보면 처벌 의지도 확실해 보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도 침묵하면 안 돼요. 아니, 우리가 침묵해서 이 지경까지 온 겁니다.”
한경 매출 1-10위인 서울 대리점 연합들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피해는 있는데, 피해자가 없는 갑질.
이는 결국 자신들을 질타하는 말 아닌가?
주가가 급락하고 언론 발표가 계속될수록 국민들의 원성은 대리점주들에게 쓸렸다.
부당함에 대해 말할 용기도 없으면서 억울하다 하는 놈들, 이것이 국민들의 냉혹한 평가였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건지 오늘 회의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얼마 전에도 공정위 수사팀 와서 제발 피해 사실 말해 달라고 부탁합디다.”
“…….”
“피해자가 없으면 재판을 할 때 공정위에 불리하답니다.”
“들을 얘긴 들었어.”
“그럼 이젠 우리도 결단을 내려야죠! 막말로 공정위가 저러는 거 다 우릴 위해서 하는 짓이에요. 계속 못 본 척할 겁니까?!”
이들 무리의 대표이자, 매출 1위인 영등포점 최 사장은 눈을 돌려 말했다.
“다른 사장님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에 가장 연로해 보이는 남자가 조심히 말했다.
“결국 우리 이름 까자는 건데…… 대책이 안 나와. 이 사건 끝나고 본사가 보복하면 어떡할 건데?”
“저도 동의합니다. 본사에서 가맹 끊어 버리면 우리 죽어요.”
“난 솔직히 공정위가 저러는 거 불편합니다…… 저러다 불매운동 일어나면 결국 우리만 죽는데…….”
모두들 우려를 표하자 공정위를 돕자던 사내가 다시 말했다.
“그럼 왜 익명투표할 때 강매당했다고 응답했습니까? 피해 호소 응답률이 70%인데, 사장님들은 다 30%였습니까?”
“…….”
“사장님들. 저희 은평점 연매출 겨우 50억입니다. 근데 다음 년에 갑자기 목표 매출을 60억으로 올리고, 물량 그대로 밀어 넣었어요. 이거 저희만 당한 거 아니잖아요. 사장님들
다 강매 당해 보셨잖아요?”
이 말만큼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끼워 팔기, 밀어넣기, 후려치기 정말이지 안 당해 본 강매가 없다.
“나도 당했습니다. 저희 창고엔 3년 지난 제품이 아직도 재고로 쌓여 있습니다! 이거 본사에서 안 팔리는 제품 억지로 끼워 판 상품이에요.”
“경쟁사 제품 못 팔게 하려고 밀어넣기(과잉주문)도 얼마나 했습니까?!”
“재고 처리할 때 세일 지원비 준다 해 놓고선 입 싹 닫은 것도 많습니다!”
공정위가 피해액을 60억으로 추산했지만, 그것도 보수적으로 매긴 가격이다.
안 팔리는 제품 세일해서 팔고, 헐값에 처분한 가격까지 합하면 160억도 넘을 것이다.
최 사장은 주변 분위기를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억울한 심정은 나도 알아. 근데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
“지금 여론의 반응 안 보이세요? 모두가 다 저희 욕합니다. 익명투표로만 말하고 막상 나서지도 않는다고.”
“그렇게 욕하는 놈들도 우리 입장 되면 다 똑같아. 자기들은 회사에서 상사한테 할 말 다 하고, 거래처한테 할 말 다 한대?”
그리 묻자 대답이 없었다.
“치사하고 더럽지만 우린 어쩔 수 없이 눈치 보고 분위가 봐가면서 판단해야 돼.”
“……그럼 이대로 계속 당할 겁니까? 처벌 못 하면 앞으론 더 기고만장해져서 우리한테 갑질할 겁니다.”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분위기 좀만 더 살피자. 공정위가 정말 처벌할 의지가 있다 판단되면, 그때 가서 도와줘도 늦지 않아.”
***
담당 검사는 준철과 박 팀장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러니까…… 구속영장 신청하자고요? 지금?”
“예. 증거 인멸의 우려가 너무 큽니다. 핵심 관련 인물들 구속 못 하면 계속해서 대리점들 협박할 거고요.”
“무슨 심정인지는 알겠는데요. 그렇다고 어떻게 이 다섯 명을 한꺼번에 구속시킵니까?”
“저희 조사에 따르면 이 사람들 모두 강매를 직접 지시한 사람들입니다.”
준철이 증거자료를 내밀려 하자 그가 손사래 쳤다.
“누가 지금 그거 몰라서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하면 안 될 거 있습니까?”
“아무리 직접 가담자라 쳐도 어떻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 줄구속시킵니까?”
핵심 관련자 다섯 명 구속.
이건 한경 그룹의 기둥 하나를 송두리째 날리겠다는 거다.
공정위의 단호한 처벌 의지를 보여 줄 순 있겠지만, 그에 대한 리스크도 크다.
재판에서 지면 과잉 수사란 역풍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솔직히 난 이 사건 그냥 구속 수사하는 것도 반댑니다. 공정위에서 피해자 확보는 했습니까?”
“저희가 다섯 번이나 익명투표를 하지 않았습니까. 갑질 피해 응답 비율이 70%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70%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 이름 깐 사람 있습니까?”
공정위도 그 부분에 있어선 할 말이 없었다.
담당 검사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다 말했다.
“검사가 아니라 법조인으로 말씀드리는데, 이건 솔직히 기소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공정위가 전속고발권(공정위가 고발하면 무조건 기소) 안 썼더라면 난 적당히 하다 그냥 끝냈을
겁니다.”
“그 부분은 저희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현실적인 대책도 말해 주세요. 익명투표는 재판에 못 씁니다. 피해자 확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검사가 그리 몰아붙이자 준철이 서류를 내밀었다.
“검사님. 저희는 이게 대리점들의 SOS 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익명투표 결과 못 쓴다니까…….”
“쓰겠다는 게 아니라요. 이게 대리점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라는 거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억울한 건 대리점들 아닙니까? 저희가 처벌 의지를 확실히 보여 주면 분명히 증언
나옵니다.”
이 사건을 기소한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관련자를 구속까지 하면? 분명히 증언 나온다.
수사 당국이 할 일은, 절대로 중간에서 덮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검사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증언은 처음 하나 확보하는 게 어렵지, 한번 시작되면 봇물 터지듯 나온다는 거.”
“…….”
“장애물 하나만 치워 주세요. 나머지 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분명히 들었다, 그 대화를.
한경 내부에서도 적당히 타협하자는 쪽이 있다.
강경파들만 처리하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대화를 직접 들려주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이다.
검사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눈빛을 바꿨다.
“장애물 치우는 거 도와드리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만약 1차 공판까지 피해자 확보 못 하면 난 이 사건 손 떼겠습니다.”
검사가 손을 떼겠다는 건, 한경 그룹의 동의의결안에 합의하겠다는 뜻이다.
함께 듣던 박 팀장은 펄쩍 뛰었다.
“검사님.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희가 잡은 증거가 수없이 많아 유죄는 확정입니다. 최소 과징금은 받아 낼 수 있어요.”
“그건 아무도 장담 못 해요. 난 감옥에 처넣기만 하면 되는 살인범도 풀어 줘 봤습니다. 그놈의 결정적 증거 하나 못 잡아서.”
지금은 처벌 수위 가지고 싸우지만 피해자 확보 못 하면 아예 무죄가 될 수도 있다.
법의 허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준철도 이 말에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구속까지 시켰는데, 그래도 피해자 안 나타나면 저희가 승복하겠습니다.”
“그냥 승복만 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책임도 저희가 져야죠.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검사는 그 모습을 확인하곤 무심하게 영장 청구서를 들었다.
“후우…… 이거 기각되면 나만 바보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