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보복, 시작 (3)
[속보 – 공정위 청탁 의혹] [기업에 청탁받고 변협 징계했나?]감사원이 한바탕 소란을 떨고 난 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언론 보도가 즉각 이뤄졌다. 뉴스엔 변협과 법톡의 관계가 자세하게 기술되었고, 김 국장의 자산이 ‘수상한 증식’이란 이름으로 적나라하게 보도되었다.
한눈에 봐도 감사원에서 흘린 정보다.
이에 발맞춰 광화문에선 변협의 ‘법조인 100인 시위’가 이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했던 실태가 오늘에 이르러서 밝혀졌습니다!
그간 저희 변협은 법톡의 허위·과장 광고에 수많은 이의 제기를 해 왔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법톡은 검증되지 않은 플랫폼입니다. 저희 변협은 법조인의 품위와 의뢰인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가입 금지라는 고육지책까지 내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청탁 공무원 앞에선 모두 헛수고였습니다.
공정위는 사소한 문제들을 앞세워 노골적으로 법톡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그리고 언론에 보도된 바, 그의 자산은 수상하게도 늘어났습니다.
고석춘은 법조인답게 선을 잘 지켰다.
하고 싶은 말은 다 언론 보도를 인용한 양 말했다. 의혹이 의혹으로만 끝났을 때를 대비해 출구 전략을 짜 놓은 것이다.
그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다섯 명의 협회 간부가 머리를 밀었다.
-청탁 의혹 김태석 국장은 수사에 성실히 임하라!
-징계 철회! 엄정 수사! 재심 촉구!
3심까지 변협이 패소했던 사건…….
담당자의 청탁 의혹은 반전을 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변협이 눈을 뒤집고 달려들자 여의도에서도 지원사격이 쏟아졌다.
***
“살다가 내 이런 말을 하는 날이 다 오는군. 각 의원들은 SNS 활동 열심히 해. 지금은 국민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야.”
야당 당대표는 만연한 웃음을 지으며 지령을 내렸다.
소통을 빙자한 공격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미 계속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근데 아무래도 SNS로 공격하는 건 한계가 있단 말이죠.”
“박 의원? 뭐 좋은 아이디어 있어?”
“당 차원에서 검찰 한번 가는 게 어떻습니까.”
“기자들 불러 놓고 고발장 제출하자고?”
“네. 그놈들도 우리랑 싸울 때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당한 거 이상으로 갚아 줘야죠.”
군납 비리 때부터 공정위는 언론을 교묘하게 이용해 망신을 주었다. 언플로 흥했으면, 언플로 망해 봐야지.
“좋긴 하지만 그건 여당을 너무 자극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맞아요. 아무리 그래도 공정위가 행정부 산하 기관인데.”
“저희가 너무 공격하면 여당이 비호하고 나서지 않을까요.”
당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일랑 걱정 마. 애초에 줄도 없고 끈도 없는 놈이었어. 여당 의원들도 그놈이라면 학을 떼더군.”
“그건 그렇습니다. SNS를 보면 오히려 여당이 더 그자를 공격하더군요.”
“수위만 잘 지키자. 우린 이 사건을 절대 집권당 비리로 연결시키지 않는다. 오로지 그놈 하나만 찍어내면 돼.”
여야는 또 공공의 적을 상대할 땐 죽이 잘 맞았다.
합심해 놈을 공격하면 결국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그놈 징계 심의가 언제라고?”
“내일입니다. 한데 대표님 그자의 반응이 좀 심상치 않습니다.”
“뭐가?”
“이 정도 했으면 입장을 표명하든, 거취를 표명하든 무슨 사인이 나와야 하는데 한마디 말이 없더군요. 기자들이 공정위에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는데, 대수롭지 않은 척 웃기만
했답니다.”
당대표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스스로 물러날 생각은 없다? 감사원이 들이닥쳤는데도?”
“네. 아마 직무 정지가 떨어져도 버틸 놈 같습니다.”
“근데 뭐 그거까진 우리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래도 막상 저렇게 나오니 뭔가 수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그 얘기가 나오자 의원들도 슬금슬금 우려를 내비쳤다.
“사실 끝까지 가면 어떻게 될지 장담 못 합니다.”
“저희가 내부 검토한 바, 김 국장이 법톡에게 돈을 받은 것 같진 않아요.”
“만약 받았다면 차명계좌나 수취인 불명의 입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없었습니다.”
김 국장은 깨끗한 사람이다. 이건 원수인 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법톡 사건뿐 아니라 그의 재임 자료를 모두 압수해 조사해 봤지만, 과잉 조사만 몇 개 나왔을 뿐 청탁으로 보이는 흔적은 없었다.
“됐다. 어차피 지금은 진짜로 청탁을 밝혀내는 과정이 아니잖아. 그럴듯해 보이는 사건을 청탁으로 엮는 거지.”
“아, 예.”
“징계심사 열리면 최소 직무 정지가 떨어질 거야. 비리 의혹을 받는 당사자를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게 원칙이니까.”
의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징계 수위를 어떻게 더 높일 수 있을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당 대표는 김 국장 같은 부류에 대해서 잘 알았다.
명예를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놈들이다. 직무 정지 당하고, 자신 하나 때문에 조직이 위태로워지면 미련 없이 옷을 벗을 놈이다.
사실 해임이나 파면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눈엣가시 같은 놈이 스스로 옷을 벗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공작이다.
“알겠습니다.”
의원들이 모두 물러가고 중진 의원 한 사람만 남았다.
당 대표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변협은 어떻게 됐어?”
“글쎄요…… 사실 그들과 저희가 한배를 타긴 했는데 목적지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뭐라고 하던데.”
“고석춘 협회장은 반드시 비리 사건으로 결론지었으면 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래야 법톡과 다시 싸울 수 있으니.”
당대표가 혀를 찼다.
“끝장을 보자는 소리군.”
“네. 김 국장 사퇴만 받아 내면 되는 저희 입장과 차이가 큽니다.”
“거 알 만한 사람들이 자제 좀 할 수 없는 건가.”
“아무래도 그들에겐 밥그릇이 달린 문제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대표는 끙 앓더니 말했다.
“그럼 검찰에 꼭 기소까지 해야 성이 풀리겠단 거야?”
“네. 사실 그들 입장에선 이 문제를 사법부로 끌고 가고 싶을 겁니다. 변협은 판검사도 눈치 보는 곳인데.”
“에휴- 말리려 들면 나까지 죽이겠지? 그래도 너무 무리하게 하진 말라 그래.”
“알겠습니다. 잘 전달하겠습니다.”
당대표는 약간 걱정이 들었다.
의혹 제기를 하고 있다만 죄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이걸 과연 법적 심판까지 받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안 될 거 같은데.
***
감사원이 휩쓸고 간 종합국은 모든 사무실이 휑했다.
감사원은 블랙홀처럼 서류를 빨아들였고, 매일 불러 대 심문을 해 댔다. 종합국 소속의 직원들은 출근 때마다 타 부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당사자인 김 국장은 매일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단연코 처음 겪어 보는 굴욕이다. 마음 같아선 내일 당장 옷 벗고 검찰에 자진 출두하고 싶었다.
피 말리는 시간이 계속되니 오히려 징계심사가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렇게 징계심사 당일.
김 국장은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에 착석했다.
심사장을 맡은 공정위원장은 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김 국장. 먼저 묻자. 법톡에게 청탁받았나?”
“아니요. 그런 적 없습니다.”
“근데 이런 의혹이 왜 생기지?”
모합입니다,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만약 검찰이 해당 사건을 수사하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습니다.”
무슨 해명을 하든 변명으로밖에 안 들리는 자리다.
“그럼 법톡과 변협의 싸움에서 왜 변협을 징계했는지 소명해 보게.”
“네. 사건의 발단은 변협이 법톡에 가입된 변호사를 징계하며 시작됐습니다.”
김 국장은 당시 검토했던 자료를 내밀며 자세하게 소명했다.
“……하나 저희가 판단한 바, 법톡은 법률 자문 중개 사이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시장 질서에 전혀 반하는 사이트가 아니었죠.”
“그럼 변협이 그렇게 나오는 이유가 뭐야?”
“법톡이 나오면서 변호사들 간의 수임 경쟁이 심화됐습니다. 결국엔 이권 다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싸움에 저희가 법톡 편을 들어 줬으니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김 국장은 또박또박 말했다.
자신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공명정대하게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용의가 있나.”
“무슨 말씀인지.”
“현실과 타협하란 말이야. 자넨 절대 건드려선 안 될 변협을 건드렸어.”
뜻을 꺾어라, 현실과 타협해라.
평소 그럴 사람이 아닌 위원장이 이런 얘길 한다는 건 이미 손쓸 방법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김 국장은 소신을 꺾지 않았다.
“법톡을 제재하면 결국 소비자의 이익이 저해됩니다. 뜻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나올 말은 다 들었다.
징계심사는 더 길게 끌 것 없었다.
“김태석 국장에 직무 정지 1개월을 내립니다. 해당 사건과 관련 심도 있는 조사를 한 후, 업무 복귀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겁니다.”
직무 정지 1월.
비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당사자를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김 국장도 예상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징계위가 파한 후.
김 국장은 위원장과 단둘이 남았다. 위원장은 슬그머니 담배를 내밀었다.
“한 대 피울까.”
“실내 금연 아닙니까.”
“어차피 미쳐 돌아가는 세상, 이 정도야 뭐.”
담배에 불을 붙이자 김 국장도 한 대 물었다.
“나도 자네가 돈 받았다고 생각 안 해. 자네처럼 꼼꼼한 성격에 어디 돈을 받았겠어? 은퇴하고 자리를 받아 놨으면 모를까.”
“하하.”
“근데 미운털이 너무 박혔다. 뺄 수 없을 만큼 깊숙이.”
미운털.
이 사건이 외압으로 인해 시작됐단 뜻이다.
“혹시 저 때문에 연락을 받으셨습니까.”
“정재계 거물들이 다 전화해서 자네 해임하라더군.”
“결국 제가 물러나야 끝나는 일인가 보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버텨.”
“예?”
“자네 딱히 권력자들이 원하는 대로 사는 놈 아니잖아.”
위원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김 국장에게도 작은 위로가 됐다.
“거물급 의원들 통화는 아예 녹취까지 했다. 인사 외압으로 나도 크게 터트릴 수 있어.”
“시간 지나고 돌아보니 위원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제가 물러났어야 했나 싶군요.”
“그건 그냥 흘러들어.”
위원장은 김 국장의 어깨를 툭 쳤다.
“설사 물러나더라도 이런 식으로 물러나면 안 되지. 안 그래?”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담대하게 견뎌. 사퇴는 이 사건 다 끝내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