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직무 정지
[공정위의 수상한 뒷거래] [감사원, 모든 상황 명명백백 밝힐 것] [靑, 공직기강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연일 쏟아지는 기사에 공정위는 초상집이 되었다. 단순한 의혹 보도는 여·야·청이 한마디씩 논평을 내며 기정사실이 됐다.
이튿날 공정위는 김 국장의 직무 정지 1개월을 발표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지만 제 식구 감싸기란 비난만 돌아왔다.
이것만으로도 흠집 내기는 완벽한 성공이다.
“하아…….”
준철은 쏟아지는 기사들을 모두 정독했고, 절망에 잠겼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의혹 보도가 아니다. 감사원은 겨우 이런 의혹 보도로 출두하는 곳이 아니며, 여야청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것이 잘 짜인 각본이란 걸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적을 많이 둬서…….’
정치권의 말을 듣지 않은 대가, 즉 철저한 보복 수사라는 뜻이다.
“뭐 해, 이 팀장? 얼빠진 놈처럼.”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오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 친구들은 떡 같은 건 안 돌리냐. 우리 땐 진급하면 시보떡 돌리기 바빴는데.”
“……과장님.”
“농담이다, 인마. 나 그렇게 꽉 막힌 꼰대는 아니야. 근데 떡은 아니어도 인사는 좀 하고 다녀. 너 이 자리 오기까지 신세 진 사람 많잖아.”
“네. 그러겠습니다.”
평소엔 잘하지 않던 과한 농담.
오 과장은 애써 웃는 사람처럼 보였다.
“근데 국장님께선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뭘 그리 걱정하냐. 죄가 없으면 무혐의로 결론 나겠지.”
“직무 정지 1개월에 처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징계절차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그건 최소한의 업무 배제야. 의혹 당사자를 업무에서 배제 안 시킬 순 없잖아? 국장님은 감사원 조사에 모두 소명할 거라고 하신다. 오히려 소명할 기회 좀 달라고 벼르고 계셔.”
오 과장이 어깨를 툭 쳤다.
“근데 그걸 왜 네가 걱정하고 있어. 다 순리대로 해결될 문젠데.”
“이 사태 모두 다 저 때문인 거 알고 있습니다.”
“뭐?”
“저 때문에 국장님께서 여기저기 적을 많이 지셨잖아요. 정치권과 결탁하지 않았다면 사건이 이렇게 단시간에 커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군납 비리 때부터 미운털 박혔을 거다. 한명건설을 건드리며 쐐기를 박은 것이겠지.
이 모두 김 국장이 외압을 막아 주지 않았더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조사다. 국장님은 지금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는 중이다.
“이 사건 분명 한명건설이 주도했을 겁니다. 이 연루 관계를 파악해서 언론에 터트리면…….”
“그만.”
“할 수 있습니다, 과장님.”
“이렇든 저렇든 일단 국장님께서 의혹부터 벗는 게 먼저야. 제대로 된 해명도 없이 보복 수사다 주장하면 누가 믿겠어?”
준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거 다 소명하면 차차 밝혀지겠지. 누구의 공작이었는지.”
“실추된 명예는 복구될 수 없을 텐데요.”
“그까짓 명예 때문에 자리 지키고 계신 분 아니다. 그게 중요했으면 진작 자리 박차고 나갔을걸.”
“혹시 국장님께서 따로 지시를 내린 겁니까. 아무도 나서지 말라는……?”
“그래, 그리고 그 말이 맞아. 지금은 돕지 않는 게 돕는 거다.”
고지식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의혹에 의혹을 제기하며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을 건데.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정공법으로 헤쳐 나가겠단 의지다.
“그럼 사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변협 징계는 재심의 들어갈 거다. 우리가 내린 징계가 타당했는지 전면 검토 해야지.”
“혹시…….”
“걱정 마. 그 사건은 국장님이 나랑 결정 내렸어. 변협이 법톡에 가입한 변호사들 무더기로 징계시켜 버렸는데, 이걸 어떻게 징계 안 해? 지금 그놈들 정치권이 관심 좀 보여 주니
마지막 발악하는 거야.”
준철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혹시 이 사건 맡겠다는 부처 있습니까?”
“뭐?”
“민감한 사안이라 다들 기피할 것 같아서요. 변협이 저렇게 벼르고 있는데, 과연 공정한 재심의가 될까요?”
오 과장이 흠칫 놀랐다.
“설마, 이거 네가 맡겠단 건 아니지?”
“제가 하겠습니다.”
“이 자식은 어떻게 예상을 한 치도 안 벗어나! 신경 꺼라. 이미 이 사건 맡아 보겠다고 자원한 팀장이 둘이나 된다.”
“그 자원자들은 정말 사심 없는 사람들인가요?”
오 과장은 두 번째로 흠칫했다.
사실 자원자 두 명은 공명심과 거리가 먼, 전형적인 줄을 타고 싶어 하는 팀장들이었다. 세간의 관심이 주목된 만큼 이들은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다.
게다가 김 국장은 이미 의혹이 기정사실이 된 비리 공무원 아닌가. 그의 징계 결정을 번복하고 변협 편을 들면 비단길이 열려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 제가 해 보겠습니다.”
준철은 이 기회를 잡을 생각이었다.
“저야 줄이나 끈에 대해서 자유로운 놈 아닙니까. 해당 사건 제가 재심의 하고 결론 내리겠습니다.”
“이 팀장, 이건 그렇게 쉽게 볼 사안 아니다.”
“어렵게 볼 사안도 아닙니다. 법리에 맞춰 변협이 잘못 했는지 안 했는지만 따지면 되잖아요.”
오 과장은 준철을 물끄러미 봤다.
놈도 마음에 찔릴 것이다.
국장님을 저리 만들었다는 게 다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질 테니.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가뜩이나 예민한 사건을 이놈이 맡는다? 표적이 이쪽으로 옮겨 갈 것이며, 진급이 취소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김 국장처럼 온갖 누명을 다 쓰고 쫓겨날지도 모른다.
“안…….”
“저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안 나설 수 없죠. 저 어차피 진급하면 곧 세종으로 갑니다. 유종의 미 거두고 싶습니다.”
뜯어말려야 하는데…….
놈의 간절한 부탁을 못 이기고 오 과장은 침묵에 잠겼다.
***
연말에 특종을 만난 기자들은 밤잠을 설쳐 가며 서초구와 여의도를 오갔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요즘이다.
비리 공무원이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여의도가 이렇게 열렬히 호응할 줄이야.
기사가 나가는 족족 양당 의원들이 SNS로 퍼나르고, 변협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국에 전화해 기사 소스를 준다.
분위기에 힘입어 없는 사실도 슬쩍 하나 갈기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도 마치 누군가의 증언인 양 다뤘다.
보도 경쟁이 치열해지며 김 국장의 비리액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하지만 그는 돌부처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사실무근입니다.
직무 정지 1개월로 그가 칩거에 들어가며 서초구 기자들은 신사동으로 카메라를 틀었다.
-청탁 관계였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럼 공정위의 징계에 아무런 대가도 없었다고요?
“대가는커녕 저는 김 국장님이란 분과 커피 한잔 마셔 본 적도 없습니다.”
법톡 홍영수 대표는 오늘도 구름떼처럼 몰려든 기자들 앞에 한숨을 지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왜 수면 위로 오른 겁니까?
“저희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미 3심까지 재판해서 다 이긴 사건인데요.”
-하면 그 법조인도 매수한 겁니까.
“이보세요, 기자님! 판검사도 옷 벗으면 변호삽니다. 그런 분들이 저희 손을 줬다는 건, 그만큼 변협의 억지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힘주어 말했다.
“저희 법톡은 의뢰인과 변호사를 더 가깝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사이트입니다. 플랫폼 용도도 중개 사이트에 지나지 않아요. 한데 변협이 저희 사이트에 가입된 변호사를 징계하며
이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 공정위에게 알린 겁니다. 변협은 저희를 수임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뢰한으로 매도합니다. 하지만 저희 법톡이 생긴 이후 경쟁이 촉발되며 수임료가
투명하게 공개된 건 사실입니다. 저희 경영진은 이 서비스가 시장을 발전시켰다는 자부심으로 일합니다.”
***
-다음 소식입니다. 공정위가 청탁성 편들어 주기 의혹을 받는 가운데 어제, 사건의 담당자인 김태석 국장의 징계가 결정됐습니다. 당국은 김 국장을 업무에서 모두 배제시킨 후 관련
사건 재심의를 열겠다고 했는데요. 과연 이 사건의 전말은 어떨지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관건은 결국 법톡에게 리베이트를 받았느냐 아니냐입니다. 현재 김태석 국장의 자산 자료를 보면 갑자기 늘어난 의혹이 많습니다. 보통 고위 공직자들의 수상한 자산 증식은 다
유산이라고 둘러댄 바 있는데요. 이번 해명도 그런 전형적인 변명이었는지…….
“김 국장이 결국 직무 정지 받았습니다.”
변협 고위직들은 김 국장의 굴욕적인 모습을 시청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근데 겨우 1개월이에요.”
“이건 그냥 감사 진행 하는 동안에만 직무 배제시키겠다는 뜻이네요.”
불구대천의 원수가 징계를 받았지만 시작이 그리 좋지 않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정치권도 가세해 주지 않나. 이 정도 건드렸으면 더 큰 징계가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건만.
떨어진 건 고작 직무 정지 1개월. 이건 그냥 이 사건 해결될 때까지만 징계하겠다는 뜻이다.
고 회장도 이 저의를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의미 있는 행보야. 그자가 업무 배제된 거니까.”
“예. 다만 문제가 좀 있습니다. 김 국장 재산 자료 중에 해명이 안 되는 내역이 있으면 이걸 바로 법톡 로비 건으로 엮으면 되거든요. 한데 그런 자료가 나오질 않는답니다.”
“최소한 법톡한테 로비는 안 받은 것 같습니다.”
고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받았냐, 안 받았냐는 중요하지 않아. 이미 국민들은 의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그건 그렇죠.”
“그럼 이제 이 사건 재심의 들어가야지?”
“네. 안 그래도 오늘 공정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징계 과정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었는지 명명백백 밝히겠다는군요.”
고 회장은 지그시 웃으며 찻잔을 내려놨다.
“됐어, 그럼. 이제 우린 이 기회를 잡아야 돼.”
어쩌면 이게 공정위 결정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재심의 하는 놈은 둘 중 하나야. 우리한테 겁을 잔뜩 먹은 놈이거나, 우리 줄을 타 보려 하는 놈.”
“예. 후자면 뭐 서로 대화가 잘 통할 겁니다. 흐흐.”
“하지만 전자면 괜히 또 공명심에 이상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어. 겁을 팍 줘서 꼬랑지 내려 버리는 게 관건이다.”
그때 옆에 있던 사내가 거들었다.
“솔직히 이 사건의 수장이 저 꼴 났는데, 누가 이걸 맡고 싶겠어요?”
“맞아.”
“아마 맡은 놈들도 다 꽁무니 빼기 바쁠 겁니다.”
희망이 있다.
해당 사건을 맡은 김 국장이 어떻게 날아가는지 똑똑히 보는 중 아닌가. 재심의도 이걸 의식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되면 재판도 다시 노려 볼 수 있다.
수사 과정에서 비리가 밝혀지면 다시 재판을 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아무도 이 사건 함부로 안 나설 거야.”
“우린 그 점만 잘 이용하면 돼.”
그렇게 웃고 있을 때.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