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직무 정지 (2)
준철은 부담감을 이겨 내며 입을 열었다.
“재심의 담당자, 이준철이라고 합니다.”
살기 가득한 시선들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닿았다. 중차대한 문제를 풋내기 사무관이 맡게 됐으니 고운 시선으로 봐질 리 없다.
“공정위는 아직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나 봅니다? 이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맡아도 버거운 문제인데.”
“부족하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우리의 억울한 부분을 잘 헤아려 줄 수 있겠수?”
“일단 누가 억울한지 면밀히 따져 봐야죠.”
고석춘 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앳된 얼굴과 달리 고분고분한 놈이 아니다. 현 상황에서 누구 편을 드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뉴스에서 의혹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데 누가 억울한지 몰라요?”
“재심의가 아니라 김 국장 변호인으로 왔소?”
함께 있던 변협 간부들이 퉁을 부렸다.
“원하시는 재심의를 해 드리겠다는데, 왜 그러시는지요.”
“이건 재심의할 것도 말 것도 없는 문제 아니오! 김 국장이 기업의 청탁을 받고, 우릴 징계했어. 그럼 징계 철회하고 김 국장에게 엄벌을 내리면 되는 거야.”
“아직 의혹만 무성하지 받았다는 흔적은 없었습니다.”
“안 받았으면 이게 가능하겠…….”
“고 회장님. 해당 사건은 변협이 3심까지 가서 법톡에 진 사건입니다.”
“……뭐?”
“그럼 법톡이 법조인들도 구워삶았다는 뜻입니까? 판검사는 변협과 더 가까운 존재들인데요.”
대법 판결 얘기가 나오자 자연스레 입이 다물어졌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여러분들의 입장을 다각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왜 공정위의 징계가 부당하다 생각하는 겁니까.”
고 회장은 재판 자료를 내밀었다.
“할 말은 많지만 딱 두 가지만 하지. 첫째. 우린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변협은 인권과 법치국가 실현을 위해 구체화된 단체요. 여느 이익집단과 달리 공익적 목적을 위해
설립됐다는 거요.”
쉽게 말해 공정거래법은 비영리단체를 규제하지 않는다.
근데 변협이 정말 비영리단체인가……?
“둘째. 법톡은 변호사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소. 그들은 광고 수익 창출을 넘어선 법조 브로커요. 법조 브로커가 불법인 건 아시지요?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공정위는 우릴
징계해선 안 되는데, 우리한테 징계를 했소.”
“글쎄요. 그건 법무부에서 직접 판단하지 않았습니까. 법톡을 법조 브로커로 볼 수 없다고.”
“공정위가 옆에서 바람을 넣는데, 어떻게 법무부 판단이 객관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럼 법무부도 매수된 겁니까?”
쾅-!
“이 사람 못 쓰겠구만. 지금 당신 김 국장 대신 변명하러 왔어?”
“기존에 논의됐던 문제를 재점검하는 겁니다.”
“다 필요 없어! 그래서 우리에 대한 징계 번복할 거야, 말 거야.”
문득 김 국장이 대단한 사람이라 느껴졌다.
이렇게 꼬장꼬장한 놈들을 상대로 징계를 강행한 건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징계를 철회하고 싶으면 그에 합당한 이유를 말씀해 보세요.”
“담당자의 청탁 조사! 뇌물수수! 더 말이 필요해?”
“해당 사건은 변협이 법톡에 가입한 변호사를 무더기로 징계하면서 촉발된 겁니다.”
“몇 번이나 말해. 그것이 수임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수임 질서라는 게 뭐죠?”
“이건 법조인끼리 불필요한 경쟁만 촉발해. 그 과정에서 가격은 떨어지고, 당연히 법률 서비스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첫 번째 말은 이해합니다. 수임 경쟁이 촉발되며 가격은 떨어지지요. 근데 왜 이게 법률 서비스 저하로 이어집니까?”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격만큼 정직한 게 있소? 수임료가 싸지니 당연히 그 퀄리티도 떨어지지.”
피식 웃음이 난다.
“그렇게 따지면 독과점도 다 합법이지요. 높은 가격을 받는 만큼 서비스나 퀄리티도 좋아지는 거 아닙니까.”
“뭐?”
“가격이 높아지면 법률 서비스가 좋아지나요. 가격이 낮든, 높든 어찌 됐건 서비스는 일정해야 합니다.”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요지는 하나다.
법톡 때문에 수임 경쟁이 붙고, 변호사들의 몸값이 낮아진다. 그래서 싫다.
이를 갈며 법톡을 제지하려 했을 것이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결국 법톡 가입 변호사를 무더기 징계했던 것이다. 변협이 가진 권력은 그게 전부이지 않은가.
그런 마당에 김태석 국장이 횡포를 부렸으니, 아니꼬울 수밖에.
“아닙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범죄자를 편들러 온 건가.”
“전 비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공명정대하게 우리 공정위의 결정에 문제가 있었는지만 판단합니다.”
놈은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잘 들어요. 젊은 팀장.”
고 회장은 몸을 갑자기 당겼다.
“지금 김태석 국장이 왜 저런다 보시오. 정말 청탁을 받아서?”
“무슨 뜻이죠?”
“이 문제의 근원적 원인. 적으로 돌려선 안 될 사람을 적으로 돌렸다, 이 말이오.”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다.
“위험한 발언으로 들리네요. 결국 김 국장님의 적들이 결탁했다, 이 소립니까.”
“볼 장 다 본 거 그냥 속 시원히 말하지. 네, 그게 가장 근원적인 이유요.”
“허…….”
“그러니 적당히 하고 법톡 징계하라는 겁니다. 우릴 적으로 돌리면 김 국장과 똑같은 꼴을 당할걸? 반대로 우리 줄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잔뜩 겁을 쥔 뒤 마지막엔 당근을 내민다.
준철은 이 효과에 대해 잘 알았다. 막바지에 내몰린 놈에게 동아줄을 내밀면 쉽사리 거부하지 못한다.
“난 우리 젊은 팀장님이 부디 현명한 결정 내리길 바랍니다.”
고 회장 얼굴엔 어느새 희미한 웃음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준철은 무덤덤한 얼굴로 엉덩이를 들었다.
“네. 현명하게 결정 내려야죠.”
“명확한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만.”
“재심의 기간은 2주입니다. 곧 결과가 도착할 겁니다.”
고 회장은 찬바람을 풍기며 나가는 놈에게서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방금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을.
***
김 국장이 칩거에 들어가며 소문만 무성한 잔치가 됐다.
언론은 매일같이 보도 자료를 뿌렸다.
청탁 액수는 하루가 다르게 많아졌고, 급기야 어디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는지까지 나오게 됐다.
근거 없는 말은 천 리를 갔고, 언론 보도가 계속되자 룸살롱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꼭 뒤에서 누군가 소스를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김태석 국장은 무서우리만치 침묵하며 출근을 했다. 이쯤 되면 한 며칠 휴가를 내는 게 맞겠건만 김 국장은 이를 악물고 출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준철은 그 모습에 오히려 안도했다.
최소한 대중의 압박이 계속된다고 사퇴할 사람은 아니다. 외압을 막아 준 것처럼 계속해서 묵묵히 버텨 줄 것이다.
“반장님. 여긴가요?”
“네.”
준철은 신사동의 한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이 꽤 크네요.”
“네. 이 건물을 무려 3년 만에 올렸답니다.”
요즘 아무리 IT벤처가 유망하다 하지만 이런 건물을 3년 만에 올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연 이 건물을 떳떳한 힘으로 올렸을까, 아니면 언론에 보도된 대로 비리 사건으로 올렸을까.
그런 불안을 뒤로하며 준철은 건물에 올랐다.
“어서 오십쇼. 법톡 홍영수 대표입니다.”
맨 꼭대기 층으로 가니 법톡 임원진이 전부 다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단 한 번도 기업 꼭대기 층까지 오르면서 몸싸움 안 해 본 적이 없었으니.
간단히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니 홍영수 대표가 급하게 말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언론에 보도된 내용 모두 거짓입니다. 저희가 청탁을 했다니요! 솔직히 대한민국 최대 협회인 변협과 이제 막 출범한 IT 기업. 둘 중 끗발이 좋다면 누가
더 좋겠습니까.”
“지금 상황은 사소한 사건도 대세를 바꿀 수 있는 예민한 시국이에요. 혹시 걸리는 거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뇌물이 아니라 선물도 준 적 없습니다.”
사실 이런 대답이 나올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확인차 물어본 질문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확실히 커넥션은 없다.
“저흰 솔직히 이 문제가 왜 재심의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판검사는 변협과 더 가까운 사람들이지, 우리 쪽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네.”
“그런 사람들 상대로 저희가 대법까지 이겼습니다. 이쯤 하면 재논의할 것도 없지 않나요.”
그는 행여나 결과가 뒤바뀔까 좌불안석하는 모습이었다.
“저는 공정위 결정을 뒤바꾸려 온 게 아닙니다.”
“하면……?”
“공정위가 변협을 징계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없었는지를 확인하려 온 거죠.”
“제출하라는 자료 모두 제출하겠습니다. 저희야말로 할 말 많습니다.”
준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내밀었다.
“좋습니다. 그럼 법톡이 변협을 공정위에 신고한 배경이 뭡니까?”
“우리 플랫폼에 가입된 변호사를 변협 측에서 모두 징계 내렸습니다. 그 때문에 상당수, 아니 거의 모든 변호사가 저희 법톡에서 탈퇴했고요.”
그때만 생각하면 울분이 치솟는다.
“하여 공정위에 이 사건을 고발한 겁니다. 협회라는 권력을 무기 삼아, 이렇게 변호사들을 좌지우지해도 되는 거냐고.”
“하면 변호사들의 반발도 만만찮았겠네요?”
“많다마다요. 사실 요즘 법조계는 변시냐 사시냐로 양분된 상태입니다. 저희가 변협을 고발했을 때, 변시 출신의 변호사님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죠.”
별안간 소름이 돋았다.
“잠깐만요. 법조계가 변시와 사시로 나뉘어 있다고요?”
“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죠. 변시 출신들은 수월하게 시장에 진입했으니. 기존 기득권과의 마찰이 심했습니다.”
“그럼 변협의 횡포에 대해 불만을 가진 변호사도 많겠네요?”
“대놓고 말을 못 해 그렇지 불만이 한가득들입니다. 오히려 좋은 자리만 생기면 변협의 폐쇄성을 지적할 사람들 많아요.”
한 줄기의 빛이 보였다.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솔직히 이건 법톡과 변협이 아무리 싸운다 한들 끝을 볼 수 없는 문제다. 다른 이들 눈엔 변호사 집단과 기업의 싸움처럼 보일 테니까.
하지만 그 변호사 집단 안에서도 파벌이 나뉜다면? 그리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면?
이건 변협의 대표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어쩌면 얘기가 더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홍 대표님.”
계산을 끝낸 준철이 말했다.
“그럼 변협에 불만을 가진 변호사들을 좀 모아 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