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기소전야
“어떻게 돼 가고 있어?”
“김 국장이 직무 정지 1개월 받았습니다.”
“왜 거기서 더 진척이 없느냐고. 지금쯤 기소를 할지 말지 그놈 어떻게 할지 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아직 결정적 한 방이 없다더군요. 검찰도 진중한 모습입니다.”
최영석 부회장은 조금씩 드는 조바심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정도로 터트렸으면 결과가 다 나올 거라 생각했다. 치욕을 죽는 것보다 못 견디는 부류다. 의혹을 제기하면 당연히 물러날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 정도론 약발이 안 먹힌다? 진짜 기소도 하고, 영장도 나와 봐야 꿈쩍하겠군.”
낮게 읊조리며 고개를 돌렸다.
“변협 측은 어때?”
“공정위에서 재심의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변협 징계에 절차적 문제가 없었는지를 판단하겠다는데…….”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문제가 있나 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군요.”
“공정위가 징계를 철회 안 할 수도 있다는 건가?”
“네. 논란과는 별개로 징계 결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게 공정위 입장 같습니다. 이 때문에 변협도 슬슬 불안해하고 있어요.”
두 번째 계획도 수포다.
강력한 공포탄 한 방 정도면 김 국장도 공정위도 지레 겁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김 국장이 버티듯 공정위도 버틴다.
“재심의 담당자가 누구야? 내가 직접 만나 봐야겠어.”
“그…….”
“왜?”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준철입니다.”
쾅-!
이젠 이름만 들어도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이건 사실상 이준철을 찍어 내리기 위한 공작이라 봐도 무방하다. 놈을 비호하고 있는 든든한 외꺼풀을 벗기고, 맨몸으로 남을 때 놈을 찍어 내리려 했다.
하지만 김 국장이 저렇게 고목처럼 버텨 주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부회장님. 사태가 잘 풀리지 않으니 변협도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영감하고 미팅 언제 잡았는데?”
“고 회장은 이미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회장은 고심에 잠기다 넌지시 위험한 말을 꺼냈다.
“김 실장, 더 나가는 게 무리면 여기서 그만두는 게 어때?”
“예?”
“국장 놈 망신 주자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잖아. 만약 여기서 잘 수습이 된다 해도 놈의 위신은 이미 땅에 떨어졌어.”
언론에서 의혹 보도가 터지며 김 국장 얼굴에 시원하게 똥칠 한번 했다.
대중은 딱히 진위 여부에 큰 관심 없다. 무혐의로 결론 나면? 증거가 없어 못 밝혀냈을 뿐 의혹 자체는 사실이라 믿을 것이다.
소기의 목적은 다 달성했고, 앞으로 더 나아갈 방법이 없으니 부회장 입장에선 슬슬 발 빼고 싶을 것이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자니 판을 너무 벌였다.
“변협은 김 국장 욕보이기가 목적이 아닙니다. 징계를 번복시켜 법톡을 무너트리는 게 목적이지. 여기서 우리만 발 빼면 변협의 분노가 저희에게 향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대 협회인 변협에게 배신감을 안긴다?
이건 자살골이나 다름없다. 그놈들이 눈 돌아가면, 이 공작이 어떻게 벌어지게 됐는지도 폭로될 수 있다.
부 회장은 긴 고민에 잠기다 입을 열었다.
“고 회장 들어오라 그래.”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일까.
비서실장이 나가자 이윽고 고 회장이 자리에 들어섰다. 그는 이미 불만이 많은지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으며 자리에 앉았다.
“부회장님,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아, 걱정 마십쇼. 지금 양당 의원들이 가세해서 김 국장을 공격하지 않습니까. 여론도 질타하는 게 더 커요.”
“그 반응만 가지고 나는 안심 못 하겠습니다만.”
“복잡한 일 처리하는 데 원래 시간 많이 들지요. 조바심 내면 우리가 지는 겁니다.”
아무 일 없는 양 여유를 부렸지만 전직 대법관까지 지낸 이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그게 아니라 일은 벌여 놨는데, 마땅한 대비책이 없는 거 아니요.”
“예?”
“언론에서 한목소리로 말합디다. 의혹은 무성한데 아직까지 입증된 한 방이 없다고. 망부석 같았던 김 국장도 요즘 뜨문뜨문 언론에 얼굴 비추기 시작했어. 이제 놈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수사가 지연되니 김 국장도 서서히 자신감을 찾았다. 이젠 더 이상 그도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고, 군소 언론사에 계좌 내역을 보내 입장을 적극적으로 소명했다.
“고 회장님, 최후의 발악에 너무 큰 의미 부여 맙시다. 그래 봤자 사람들 아무도 안 믿어요. 설사 이 사태가 무혐의로 끝나도 사람들은 증거를 못 찾았다 생각하지, 죄가 없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딱히 중요하지 않아. 그래서 김 국장이 우리한테 내렸던 징계 결정, 번복할 수 있습니까?”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어요.”
쾅-!
“대책 없을 때 변호사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시오? 그 알아본다는 말입니다.”
“…….”
“설마, 한명그룹이 여기서 발을 빼진 않겠지?”
“무슨 말씀입니까?”
“당신들 목적은 김 국장 커리어에 똥칠하는 거 아니오. 본인들 목적은 다 이뤘으니 이젠 될 대로 되라, 이거 아닌가.”
너무 정확한 지적에 할 말을 잃었다.
“설마, 그럴 생각이라면 단념하는 게 좋을 거요. 만약 변협이 얻어 가는 거 하나 없이 이 사태가 끝나면, 우린 누가 우릴 부추겼는지 언론에 폭로하겠습니다.”
“그럼 변협도 건져가는 게 없을 텐데요.”
“뭐?”
“기업과의 유착 관계가 드러나면 변협의 이미지 타격이 더 클 겁니다. 이뿐이겠습니까. 이 사태에 도움을 줬던 정치권 인사들도 싸잡아 순장시켜 버리는 겁니다. 이들까지 적으로
돌리시려고요?”
고 회장의 발언은 협박성 발언이다.
아무리 뜻을 못 이뤘다 한들 변협이 그렇게 이판사판 나갈 리 없다.
“그렇다고 저희가 변협을 배신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부회장은 조심히 서류를 건넸다.
“서울지검장과 저희가 나눈 대화입니다. 김 국장, 이번 주 안으로 기소하시죠.”
“지금 수사 진도를 하나도 못 뺐는데 기소를 한다고?”
“일단 기소부터 하고 진도는 나중에 빼지요.”
“……검찰도 바보는 아닌데, 이에 응하겠소?”
“그러니 변협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족보 따지면 다 학연, 지연, 기수 선후배 아닙니까? 일단 기소하고 영장도 청구해 보죠. 저희가 세게 나가면 공정위도 재심의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겁니다.”
고 회장은 축 늘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직감적으로 이게 자신들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란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은 없다. 안 그래도 버티고 있는 김태석 국장이 기소하고 영장 친다 해서 달라지겠나.
“고 회장님, 이건 제가 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그놈이 기소되고 구치소 콩밥도 좀 먹어 봐야 공정위가 고분고분해질 겁니다.”
여러 고민이 들었지만 부회장의 마지막 말이 그를 설득했다.
“그래……. 기왕 판 벌인 거 제대로 해야지.”
“뜻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기소가 안 먹히면 어쩔 작정이오?”
“그땐 저희를 너무 원망 말아 주십쇼. 저희도 최선을 다한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이었지만 고 회장도 더 이상 그를 채근할 수 없었다.
***
“아니, 이제 와 그걸 왜 재심의하겠다는 거야? 누가 봐도 변협이 잘못한 거잖아.”
“이러다 결과가 뒤바뀌는 거 아니야?”
변시 출신 변호사들은 이 상황이 불안하기만 했다.
법톡에 가입해 이미 생업을 잘 일궈 나가고 있는 이들이다. 공정위 징계가 번복되면 생업을 잃을지도 모른다. 아니, 잃을 것이다. 가뜩이나 사시 출신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지는
이들이니까.
“아무리 봐도 이상해. 의혹은 무성한데 아직도 뭐 하나 나온 게 없어.”
“이런 사건에 정치권까지 한마디씩 거드는 게 흔한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잘 짜인 각본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 웃긴 건 검찰이 슬금슬금 김 국장 기소 얘기를 꺼내고 흘리고 있다는 것.
언론에 떠보기용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데, 이것이 여론몰이용이란 걸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수사를 진척시킬 만한 단서를 포착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대치 상황에서 수위를 높이는 건 흔하지 않다.
“뒤에 공조자가 있다니까!”
만약 이 말이 사실이면 공정위 징계도 곧 번복되리.
하지만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 노동변호사, 인권변호사 등 한평생 공익적 생활을 했던 사람도 비리가 터지는 게 이 바닥이다.
김 국장의 청렴결백이 거짓이었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만약 받았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절차상 문제 잡아 변협이 재소하겠지.”
“솔직히 이대로 가면 필패야. 지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여론 보이지?”
“변협이 결코 직무 정지 1개월로 끝내지 않을걸.”
“김 국장 기소 얘기 오가던데.”
모두들 침통한 얼굴을 감추지 못할 때, 한 사내가 말했다.
“우리 재심의 담당자는 언제 온대?”
“2시까지니까, 곧 오겠네.”
“우리의 억울함에 대해 말하는 건 무린가…….”
“……가망 없어. 언론에서 무자비하게 폭로 이어 가면서 지금 공정위 사람들 다 위축되고 있대.”
“정치권이랑 언론이 바람 잡고, 검찰은 칼로 쑤시는데 누가 남아나겠어.”
“재심의는 요식 절차야. 이 자식들은 어쩌면 우리까지 이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고 몰아갈걸.”
-똑똑.
그때였다. 별안간 문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재심의 담당자와의 미팅이었다.
***
처음 만난 변시 출신 변호사들은 경계하는 눈빛이 한가득이었다.
“우리를 찾으신 이유가 뭡니까?”
“제가 이번 사건 재심의를 맡게 됐거든요. 현 상황에 대해 논의해 볼까 하는데.”
“무슨 논의요?”
“언론에 이 사건이 왜 나간다 보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래도 이권이 크게 걸려 있는 문제다 보니.”
“단순한 잡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혹시 법톡과 김 국장의 유착 관계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역시나 자신들을 의심하고 있다.
예상과 한 치도 다름없는 질문이 나오자 이들도 곱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우리야 모르는 일입니다만 그걸 왜 우리한테 묻죠?”
“만나는 사람마다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오해는 마세요.”
“그러지 말고 툭 까놓고 말씀하세요. 우리가 법톡과 꿍꿍이를 벌여서 김 국장 구워삶았다고 생각하시죠?”
이들의 발끈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네. 변협은 그렇게 주장하더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변협이 우릴 매도하고 있는 겁니다.”
“매도?”
“신생 플랫폼 나오면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 적응하기 빠르죠. 아니, 아예 중개 플랫폼이 없으면 사시와 변시 출신 중에 누구한테 더 유리하겠습니까?”
“법톡이 생기면서 우리 입지가 늘어난 건 맞아요.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법톡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죠.”
“근데 그렇다고 하지도 않은 청탁을 했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성질을 돋우니 그들이 반응했다.
진심으로 억울해하고 있다. 속에 있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안심되었다. 변협의 대표성을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다.
준철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넌지시 말했다.
“그렇게 억울하시면 좀 더 적극적으로 언론에 설명해 보시죠.”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