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기소전야 (2)
어안이 벙벙한 얼굴.
이해 못 한 듯하다.
“들이받으세요.”
“예?”
“이 싸움의 시작은 변협의 억지 징계 때문 아닙니까. 법톡에 가입한 변호사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징계했잖아요.”
한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는데, 팀장님께선 경험이 없어도 너무 없으십니다. 현 상황에서 우리가 변협에 반기를 들면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어요? 우리까지 싸잡아 법톡과 유착관계가
있다 생각하겠지!”
“맞아. 우리가 지금 반기 드는 건 자살골이야.”
사실 이들은 준철의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심의는 이들에겐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이 고깝게 느껴졌다.
“역시 사람 마음 다 거기서 거기구먼. 고양이 목에 방울 달자 하면 꽁무니 빼기 바빠.”
하지만 이들의 투정을 받아 줄 시간이 없었다.
“뭐?”
“이 사태의 본질이 뭔 줄 아쇼. 변호사 협회가 말도 안 되는 구실을 잡아 변호사들에게 징계를 내렸어. 우리 공정위는 그 부당함을 바로잡고자 변협을 징계한 거고.”
“이 사람이…….”
“왜 그랬겠습니까. 이게 당신들 밥그릇 싸움이란 걸 몰라서?”
분노가 치밀었다.
막말로 김 국장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저런 곤욕을 치르지 않아도 됐다.
누군 원리 원칙 지키겠다고 정치적 부담까지 떠안았는데, 이해 당사자들은 작은 요청에도 발작이다.
“솔직히 여러분이야말로 법톡 같은 플랫폼이 절실하지 않습니까? 사시 출신에 비해 경쟁력은 떨어지겠다, 광고할 플랫폼도 마땅치 않겠다. 아쉬운 건 여러분들이잖아요?”
“…….”
“변협이 주장하는 수임 질서. 이건 그냥 서로 몸값 경쟁하지 말자는 엄포입니다. 누가 더 불리한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겠죠.”
조금 직설적으로 말해 주니 불만이 사라진 얼굴들이다.
준철은 이들을 못마땅하게 훑으며 엉덩이를 들었다.
“법은 잠자는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법전 공부할 때 제일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
“진흙탕이다, 자살골이다 하는 변명 뒤로 숨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당연한 권리도 못 찾아갑니다.”
준철이 나가자 한동안 침묵만 흘렀다.
“……저 새끼는 뭐야?”
“나이도 어려 보이는 놈이 누굴 지금 가르치려 들어.”
회초리 한 대 따끔하게 맞았으니 원망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실 파악이 빠른, 소위 말하는 배운 자들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변협이 계속해서 모든 변호사를 대표하는 양 굴잖아.”
“그렇다고 뭐 우리 의견을 듣기나 해? 고 회장 그 늙은이는 변시 출신들 아주 노골적으로 차별해!”
“솔직히 법톡 같은 플랫폼 없어지면 우리만 피해야. 우리도 좀 조직적으로 나서야 하나.”
“그건 좀 신중하자. 솔직히 김 국장이 법톡에게 로비를 받았을 가능성, 아예 무시 못 하잖아. 아직 수사는 진행 중이라고.”
“근데 이쯤 되면 패 다 깐 거 아니야? 검찰이 눈에 불을 켜고 까는데, 아직도 결정적 증거 안 잡혔잖아.”
“맞아, 판 벌인 거에 비하면 수사 진도가 너무 미진해.”
요란한 뉴스와 달리 수사 진도는 구만리다.
의혹만 반복되지, 이렇다 할 증거는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언론도 슬슬 피로를 느꼈는지, 어느새 중립적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엄정 수사를 촉구했던 여의도 의원들 sns는 요즘
따라 잠잠하다.
“솔직히 난 저 어린놈 생각 괜찮다고 봐. 변협의 대표성 무너뜨려라, 이 말 아니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해야 해. 우리 너무 당하고 있던 것도 있어.”
어린놈의 그 마지막 말이 걸린다.
잠자는 권리는 보호해 주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공정위도 손을 떼겠다는 협박처럼 들렸다.
“어떻게 할까, 우리.”
사람들의 시선이 상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 향했다.
***
“아무리 한명 그룹이라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게 검찰에게도 좋을 겁니다.”
“어딜 봐서요? 처음에 제기된 의혹 중에 확인된 게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마당에 기소 치고, 영장까지 치라니.”
서울지검장은 고운 말이 나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내일 당장 무혐의로 끝내고 싶은 수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억지 수사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덮으실 겁니까. 국민들은 검찰이 무능해 증거 못 찾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봐요, 김 실장!”
“지검장님도 아시잖아요. 이젠 없는 죄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거. 하다못해 탈세라도 잡아서 수사 결과를 내야 할 겁니다.”
지검장은 치가 떨렸다.
없는 죄 만들어라, 이건 정치권과 기업의 공작에 검찰이 완벽하게 놀아났단 선언이다.
더욱 화가 나는 건 이들 말이 맞는다는 거다. 수사를 이렇게 키웠으면 탈세라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뭐 준비한 자료는 있습니까.”
“김태석 국장이 자식 둘 결혼할 때, 전세금을 줬더군요. 증여세 한 푼 내지 않고.”
“8천만 원 두 번 지원한 거 말이오? 그럴 거면 축의금도 소득세 신고 안 했다고도 잡아넣으시죠.”
“마뜩잖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이번 일만 잘 견뎌 주시면 지검장님께도 보상이 있을 겁니다.”
김 실장은 서류를 내밀었다.
“검사님께서도 곧 변호사가 되지 않습니까. 변협의 일원이 되실 텐데, 이게 나쁜 커리어는 아닐 겁니다. 저희 또한 섭섭지 않게 예우해 드리겠습니다.”
지검장은 시큰둥한 얼굴로 서류를 제쳐 뒀다.
읽어 보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전관예우를 어떻게 해 줄 건지에 관한 내용이겠지.
“나도 무작정 하겠단 말은 못 하겠소. 법조인으로서 그렇게 치사하게 꼬투리를 잡고 싶진 않거든.”
“하면…….”
“여론 반응 좀 봅시다. 사람들이 우호적이지 않으면 난 여기서 접을 거요.”
*
이튿날.
언론사들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기소 관련 뉴스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기사는 김 국장이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단 게 주요 내용이었다.
기소와 구속이 왜 필요한지 그 당위성을 설명했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쓴 기사였으니, 대놓고 편파적이었다.
-근데 증거는 왜 이렇게 안 나와?
법톡에게 로비 받았다고 광고하더니, 왜 증거가 하나 없누?
⌞그러게 왜 갑자기 탈세 얘기로 흘러가냐?
⌞법톡과의 청탁성은 입증 못 하나?
-이거 전형적인 별건 수사 아니냐?
기업청탁 증거는 안 나와, 갑자기 탈세 얘기 등장해. 이건 뭥미?
⌞좀만 기다려 봐라. 철두철미한 놈이었다잖아.
⌞철두철미가 아니라 죄가 없는 놈 아니냐?
-정치권까지 그렇게 가세했으면
뭐가 나오고도 한참 나왔어야 하는데……. 대체 언제까지 의혹만 제기함?
⌞요즘 들어 정치권 잠잠하던데…….
⌞ㅇ.ㅇ 의원들 sns 잠잠함.
국민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렇다 할 시원한 증거도 없이 의혹만 반복되니 서서히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럴 만큼 검찰의 기소가 무리수이긴 했다.
입만 열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떠들던 이들이 증거 하나 없이 기소를 쳤으니.
게다가 구속영장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건 누가 봐도 안달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검찰 이 자식들 진짜 막 나가네!”
김 반장은 뉴스를 보며 치를 떨었다.
“아직 뭐 하나 확정된 것도 없는데. 이게 무슨 경우야!”
“그러게요. 해당 사건은 우리가 재심의 중인데, 이건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혹시 재심의 결과를 압박하려고 저러는 거 아니야?”
다들 같은 심정이다.
변협 징계가 청탁이었는지, 아니면 원칙에 입각한 결정인지 지금 재심의 중이지 않나.
보통 이럴 경우, 검찰도 재심의와 공조해 조사 상황을 묻는다.
준철은 무표정하게 일어났다.
“가시죠.”
“네? 어디를요?”
“선 넘은 놈들 얼굴 좀 봐야겠습니다.”
“검찰에요? 그 소용이…… 있겠습니까?”
반원들이 쩔쩔맸지만 준철은 옷가지를 챙길 뿐이었다.
김 국장 관련 소식을 왜 뉴스를 통해 알아야 하나. 그것도 재심의 과정에서 김 국장의 부정 청탁을 의심해 볼 만한 정황이 하나 없는데.
준철은 상황을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분한 마음을 달래며 서초구에 도착하자 짜증 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나 붙잡고 늘어져 봤자 소용없어요. 재심의하느라 바쁘실 텐데 왜 검찰로 오셨어요?”
“기소를 왜 한 겁니까. 아직 재심의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뉴스 못 봤어요? 김태석 씨 손에 묻은 꾸정물이 한가득입디다. 청탁에 탈세에 비리 종합 세트야.”
“그중에 하나라도 증거 잡은 거 있습니까. 자식 결혼할 때 전세금 준 치졸한 거 말고.”
담당 검사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치졸한 거?”
“법톡한테 청탁을 받았다더니 왜 갑자기 얘기가 엄한 곳으로 갑니까?”
“그자의 자산 내역은 수상한 거투성이니까! 불구속 수사로는 어림도 없을 거 같아 영장도 신청했소.”
“하나도 못 밝혀냈으면서 더러운지 어떻게 알아요? 위에서 시켰겠지.”
“뭐, 뭐야?”
“통상적으로 이 정도 깠는데 안 나오면 접어야지.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 중에 하나도 제대로 들어맞는 게 없잖아.”
준철은 지금까지 담당 검사의 눈치만 살폈다.
김 국장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간다면 눈치 볼 이유가 없다.
“당신들 무슨 간첩 잡는 공안 검사야? 증거가 안 나오면 무혐의지, 왜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캐. 위에서 안 시켰다고 할 수 있어?”
담당 검사가 입을 다물었다.
“치사한 짓 그만해요. 내가 재심의 들어가고 있는데, 변협이 날 협박합디다. 김 국장 꼴 나고 싶지 않으면 미련 그만 떨라고. 우리 재심의 결과 곧 발표할 겁니다. 공정위가 변협을
징계한 부분에 있어 원리원칙을 어긴 거 없어요.”
“그건 알아서 하쇼. 우린 우리대로 할 겁니다.”
“이보세요, 검사님.”
“아, 세상 물정 잘 아는 사람이 왜 내 뒷다리 잡고 늘어져! 그래, 맞아. 이거 위에서 시켜서 계속 수사하고 있는 거요. 당신은 날 찾아올 게 아니라 김태석을 찾아가. 이 정도
했으면 제발 눈치껏 옷 벗으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요?”
“다신 나 찾아오지 말란 말이오. 부정 청탁으로 당신까지 엮어 버릴…….”
그때였다.
별안간 법원 앞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중립적으로 조사하라!
-엄정 수사 촉구! 편파 수사 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