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무혐의 (2)
[속보, 검찰 기소 철회] [사실상 무혐의?] [향후 수사 향방은?]이튿날.
검찰의 기소 취하는 무수한 추측을 낳았다.
그간 수사 내용을 슬쩍 슬쩍 흘려가며 여론몰이를 해 가던 검찰이다.
그들의 급브레이크는 대단히 수상한 행적이었다.
-중수부 3팀, 금융 조사부 2팀, 거기에 감사원……. 여기에 국정원만 추가하면 뭐가 되는 줄 아십니까? 북한 보위부가 됩니다. 이건 사실 조사 팀이 아니라 특검 팀 규모였습니다.
그럼에도 결정적 증거가 안 나온 건 완전히 잘못된 수사라는 겁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변시 집회 같습니다. 변협의 대표성이 무너지니 검찰도 명분이 없었던 거예요. 국민들도 이 사태를 변호사들의 밥그릇 투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제기되는 정치권 야합 의혹도 검찰에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 국장 커리어가 다 정치권에서 미운털 박힐 만한 소재들이거든요.
-그냥 다 필요 없고 결정적인 한 가지! 그러니까 법톡이 나쁜 회사였나? 수사 팀은 여기서 무너진 거예요. 국민들이 보기엔 중개 플랫폼의 장점이 더 많거든요. 공정위의 변협 징계가
이상하지 않다 보거든요.
본래 이기는 놈이 내 편인 법이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씹고 뜯었던 정치 평론가들은 검찰을 맹비난했다.
⌞의원님 말씀 좀 해 보세요~ 치욕스러운 공무원이라면서요~
⌞여기가 김 국장 사퇴를 가장 처음으로 요구했던 박 의원님 sns 아닌가요?
시시콜콜 논평을 냈던 의원들의 sns는 곧 악플 테러로 뒤덮였다.
그들이 남긴 논평은 캡처되어 커뮤니티를 떠돌았고, 이름이 박제되었다.
양당 의원들은 sns를 닫고 칩거에 들어갔지만, 대답을 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말씀만 해 주세요. 기소를 취하한 배경이 뭡니까?
-세간에선 표적 수사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사실입니까?
서울지검장은 껌딱지처럼 들러붙는 기자들에게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좀 비켜 주시죠.”
-그럼 한 말씀만 해 주세요. 왜 기소 취하했습니까?
“절차적으로 문제 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내부 검토 중에 있습니다.”
-그럼 다시 기소를 할 의향이 있습니까?
“……수사 상황은 기밀이기에 함부로 누설할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보도된 자료들은 다 기밀이 아니었습니까?
기자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쫓고 쫓기던 지검장은 자연스레 검찰청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포토라인으로 몰렸다.
포토라인에 지검장이 서는 건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플래시 세례가 쇄도하자 지검장 이마에서 구슬땀이 흘렀다.
“언론에 어찌 흘러 간지는 모르겠지만……. 검찰이 수사내용을 흘렸다는 건 억측입니다.”
-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자료들이었는데요.
“현 수사는 저희만 맡고 있는 게 아닙니다. 공정위 감찰부도 있고……. 또 감사원도 있고.”
-그럼 감사원에서 흘렸다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서울지검장은 논란 제조기였다. 입만 열면 폭탄 발언이다.
특종에 신난 기자들이 타이핑에 열을 올리자 그가 소리를 높였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저희 검찰도 변협에 내부투쟁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 부분은 저희가 다각적으로 검토해…… 공명정대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한동안 진땀을 뺀 지검장은 경비대의 도움으로 겨우 포토라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집무실로 올라간 그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기자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싸늘한 직감이 든다.
옷을 벗는 건 김 국장이 아니라 자신일 수도 있다는.
***
“자료 반납할 거면 곱게 하지 이게 뭐야?”
“누가 아니래? 중구난방 다 훑어 놨구먼.”
“감사원은 자료 정리하는 사람도 없나 봐.”
검찰의 기소 취하로 종합국에도 여유가 찾아왔다.
감사원은 즉각 압수해 간 서류를 모두 반납했다.
자료를 택배 보내듯 뭉텅이로 주긴 했지만, 반납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일이다.
“근데 검찰 너무 쪼잔한 거 아니야? 기소 취하는 사실상 무혐의란 뜻인데, 왜 무혐의 발표는 안 해?”
“설마 시간을 더 끌 작정인가.”
“아서. 서울지검장 사색된 거 못 봤어? 이거 더 파 봤자 나올 것도 없어.”
쪼잔한 인간들이다.
백기 들 거면 확 들어야지 아직도 수사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나저나 이젠 우리도 업무 정상화해야 하는데……. 국장님 복귀하시려나?”
“글쎄다. 워낙 대쪽 같은 분이라. 무혐의 입증되면 물러나신 소문도 있는데…….”
무죄는 증명했지만 실추된 명예는 돌아오지 않는다.
검찰의 목표가 처음부터 망신주기였다면 소정의 목적은 이뤘다.
공정위원장은 싱숭생숭한 분위기 속에 김태석 국장을 찾았다.
“사람 병신 만들더니 결국 결정적 증거 하나 못 찾았구먼. 오히려 잘된 일이야. 자네가 깨끗한 걸 전 국민이 알게 됐잖아.”
슬쩍 농담을 건넸지만 김 국장 얼굴은 밝지 않았다.
“액땜 한번 크게 했다 쳐.”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웃자고 한 말인데 자네가 안 웃으면 내가 민망하다.”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하하.”
억지로라도 웃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마음이 낫다.
“자네도 인터넷 뉴스는 볼 거 아니야? 언론 분위기 완전 바뀌었다. 이젠 감사원하고 검찰하고 누가 수사 자료 흘렸는지 가지고 공방전이야.”
“역풍이 무섭긴 한 모양이군요.”
“암- 판을 이렇게 키워 놨으니 한 놈은 책임져야지. 그나저나 검찰 이놈들 끝까지 치사하구먼. 기소를 취하할 거면 무혐의 발표도 함께하지 쯧쯧.”
위원장도 못내 그 점이 거슬렸다.
검찰에서 시원하게 무혐의 발표를 해 줘야 직무 정지도 철회할 수 있건만, 아무래도 그 용기까진 없는 모양이다.
어차피 별수도 없으면서.
“사실상 무혐의나 다름없으니 이대로 복귀하는 것도…….”
“위원장님. 제 신변은 너무 걱정 마십쇼. 제가 또 은근슬쩍 복귀하면 그거 가지고 물어질 놈들입니다. 자중하겠습니다.”
“자넨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없나 보군?”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습니다.”
김 국장의 너털웃음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정치권, 검찰, 협회. 사방에 적들투성이 아닌가.
무죄 입증과는 별개로 죄책감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 사태로 종합국이 크게 휘청였으니.
“길게 쉴 생각 마. 요샌 종합국에서 올라오는 기획안도 없더라. 수장이 자리를 오래 비우면 분위기 흉흉해져.”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다들 저 때문에 일하고 싶은 기분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서 분위기 잡아 줘.”
“안 그래도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는데…….”
김 국장이 안주머니로 손을 짚어 넣자 위원장이 바로 제지했다.
“이 사람이! 오늘 같이 좋은 날 왜…….”
“오래 생각하고 결정한 겁니다. 위원장님 말씀대로 제가 옷 벗을 타이밍을 놓친 것 같더군요.”
“그땐 내가 잠깐 실언한 건데, 왜 마음에 담아 두고 있어.”
위원장은 펄쩍 뛰며 말렸다.
본인 때문에 종합국이 초토화됐으니, 당연히 옷 벗고 싶을 거다.
“무슨 조직의 수장이 분위기도 수습 안 하고 가? 이거 무책임한 거야.”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기에 김 국장도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그럼 나중에 말씀 드리죠.”
“재론할 것도 없다. 자네는 그냥 권력자들 눈치 안 보고 조사하다가 미운털 박힌 거야. 한 번쯤 지나갈 풍파였고.”
“…….”
“자네 같은 사람이 위에서 버텨 줘야 아랫놈들이 일하기 편해. 알잖아?”
간절한 어조로 부탁했지만,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글쎄요. 제가 계속 남아 있으면 오히려 더 흔들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이…….”
“위원장님 말씀대로 지금은 거론할 얘기가 아닐 것 같습니다. 검찰이 무혐의 발표하면 다시 말씀 드리죠.”
위원장은 김 국장의 대답이 불안하기만 했다.
그의 고집스런 성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번 결심한 바는 절대 꺾지 않을 위인이다.
차라리 검찰이 무혐의 발표를 영영 안 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들었다.
***
“나한텐 솔직하게 말해 봐. 변시들 집합 시킨 거 너지?”
“아닙니다.”
“그럼 갑자기 저놈들이 시위를 했다고?”
“가려운 부분 슬쩍 긁어 주긴 했는데…….”
“이놈이 어디서 말장난을.”
감사원에서 자료가 돌아오니 오 과장도 한숨 돌린 모양이다.
우중충하던 얼굴에 미소가 걸렸고, 말투도 가벼워졌다.
“나한테만 말해 봐. 변시들 어떻게 부추겼냐?
“별 얘기 안 했습니다. 우리 공정위가 잘못 된 걸 바로 잡아 줬는데, 왜 이해 당사자들은 침묵했냐고 쏘아붙였죠.”
“그 일장연설에 감동을 해 버렸다?”
“감동은 좀 그렇고. 결국 자기들 밥그릇 깨질까 봐 그런 거 아닐까요. 흐흐.”
두 사람은 오랜 만에 오붓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나저나 분위기는 뭐 알지?”
“네.”
“검찰이 기소 취하한 건 사실상 무혐의야. 쪼잔하게 그 발표는 없었지만.”
“국장님께선 바로 복귀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다. 그래도 아직 검찰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니.”
“언제쯤 하시는 겁니까.”
괜히 불안감이 들었다.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시 생각하는 국장님 아닌가.
설마 이 일 때문에 다른 마음이 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직무 정지 1월 끝나면 복귀하시지 않겠어?”
“혹시 국장님께서 딴 마음을…….”
“그런 염려는 마라.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단 있으신 분이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업무 정상화는 다 하고 가실 거다.”
나오는 말과 달리 오 과장도 이 부분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아무튼 이제 우리도 재심의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데.”
“과장님 볼 것도 말 것도 없었습니다. 이 사태는 변협이 먼저 변호사들을 무단 징계해서 벌어진 사태였습니다. 저희가 변협을 징계한 건 시장질서 수호 면에 있어 정당했습니다.”
준철은 사견을 덧붙였다.
“아울러 이 사건은 표적 수사 냄새가 진하게 납니다.”
“뭐?”
“이게 무슨 시의성 있는 사건도 아니고, 증거도 하나 없었는데 수사 팀만 비대했단 말이죠. 이건 사주 없이 벌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지 알 것 같다.
법조계를 마음껏 주무르며, 여의도 의원들까지 부추길 수 있는 사람. 없는 죄도 만들어 뒤집어씌울 사람.
그리고 공정위에 두 번 연속 당하고 자리를 내 준 사람.
“한명 그룹 최영석 부회장…….”
“그만!”
위험한 소리가 나오자 오 과장이 즉각 입을 막았다.
“하여간 틈만 주면 위험한 소리야.”
“과장님…….”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 그쪽에선 그냥 의혹만 제기했을 뿐이야. 이거 가지고 또 깊게 들어가면 언론 탄압이니 뭐니 말 나올 거다.”
“그럼 저희도 그냥 의혹만 제기해 보죠. 뒤탈 없게끔.”
오 과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