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무혐의 (3)
“이 얘기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출처를 찾아야죠. 저희도 의혹이면 됩니다.”
의혹의 편리함은 그들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정위도 같은 의혹을 제기하면 그만이다.
결정적 증거도 안 나오는 사건이 왜 이리 커졌는가?
“지금 당한 만큼 갚아 주겠다는 거야?”
“갚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의혹을 제기할 땐 대가가 뒤따른 걸 이해시켜 줘야죠.”
“뻔지르르한 말로 둘러대지 마. 그냥 복수하고 싶다는 거잖아.”
“……예. 전 당한 만큼 꼭 돌려주고 싶습니다. 솔직히 이 사태가 누구의 사주로 벌어졌는지 짐작 됩니다.”
한명 그룹이다.
변협과 법조계, 대한민국 정치권을 한 힘으로 모을 수 있는 놈들은 그들 밖에 없다.
“사실 대의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대의?”
“이 사태 무탈하게 끝나면 놈들은 호시탐탐 덤벼 댈 겁니다. 싹을 잘라야죠. 한 번만 더 무고한 사람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줘야 합니다.”
단순히 복수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한 번이 쉽지 두 번이 어렵겠나.
한명 그룹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김 국장을 음해하려 들 것이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려면 처절하게 앙갚음해 줘야지.
오 과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긴 고민에 잠겼다.
이 젊은 놈의 생각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한다.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반격에 나서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빤한 일이다.
“과장님.”
“억울한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 거리는 거일 수도 있다.”
“잠자는 사자 아니었습니다. 못 잡아먹어서 안 달 난 사자였습니다. 최선을 다해 물어뜯었는데, 상대를 잘 못 만나 고꾸라진 거죠.”
“옌장. 이미 결심 굳혔나 보군.”
“티 안 나게 하겠습니다.”
오 과장이 피식 웃었다.
이 영악한 놈의 계획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해야 이게 티가 안 나냐?”
“내일 검찰에 저희 재심의 결과 통보할 겁니다. 무혐의 발표 빨리 하라고 재촉해야죠. 당연히 기자들 벌떼처럼 모여 있을 겁니다.”
“그때 슬쩍 한 마디 흘리게?”
“네. 사건 재심의했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청탁으로 볼 만한 내용이 없었다. 검찰이 무슨 증거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끌고 왔는지 우리한테 제출해 달라.”
“크흐흑. 그놈들 입에서 ‘표적 수사였습니다’라는 말 나올 때까지?”
“물론 검찰이 대놓고 그런 시인을 하진 않겠죠. 대신 수사팀의 수장이었던 서울지검장 옷은 벗길 겁니다.”
그 정도면 이 사태가 표적 수사였다는 걸 국민들도 이해해 줄 것이다.
준철의 계획을 다 들은 오 과장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골 때리는 놈.”
어차피 말릴 수도 없고, 말리고 싶지도 않은 오 과장이었다.
이 정도 봉변을 당하고 그냥 물러서고 싶지 않다.
이 젊은 놈이 가져온 계획도 그럴 듯하고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의혹 아닌가? 문제없이 끝나도 아무런 뒤탈이 없는.
“그럼 한번 해 봐. 대신 너무 티 나게 하지 마라. 네 입에서 표적 수사 이런 얘기 안 나와야 돼.”
“당연하죠. 상상력 풍부한 기자들이 제 뜻을 잘 알아듣고 기사 써 줄 겁니다.”
“볼 만 하겠군.”
오 과장은 재심의 결과를 준철에게 줬다.
“원래 사람이 당한 거 갚아 줄 땐 저도 모르게 흥분하는 법이거든? 너무 우쭐 거리지 말고 선 지켜.”
***
최영석은 쏟아지는 뉴스에 표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검찰의 기소 취하는 사실상 무혐의 발표다.
언론사들은 슬슬 이 사태가 왜 시작됐는지 책임을 따지고 들었다.
대한전력 사태와 일감몰아주기 사건이 바로 직전에 있었으니 누구의 사주였는지는 금방 파악될 것이다.
“……검찰도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는 게 무리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아마 곧 무혐의 발표도 할 것 같습니다.”
참패다.
이 정도 흔들면 김 국장이 옷을 벗을 줄 알았다. 그런 부류의 놈들은 치욕을 견디지 못하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수사가 계속 되어도 잡히는 증거는 하나 없었다.
오히려 전 국민을 상대로 그놈이 얼마나 깨끗한지 홍보만 해 준 꼴이다.
“부회장님. 그리고 진짜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공정위가 아무래도 출처를 찾는 거 같습니다.”
반사적으로 한숨이 나왔다.
“출처?”
“수사 규모에 비해 너무 발견 된 정황이 없으니…….”
“어느 정도 수준일 것 같아?”
“근본적으로 다 따져 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희가 변협을 부추긴 정황이 다 나올지도 모릅니다.”
사실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눈치 빠른 언론사는 이미 냄새 맡고 달려들었다.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최영석이 이를 사주했다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물론 변협도 가만있진 않을 겁니다. 고석춘 회장이 내일 검찰 앞에서 맞불 시위를 열겠답니다.”
“하면 뭐가 달라지나?”
“그럼 언론사도 출처를 찾으려 하진 않을 겁니다.”
다 필요 없는 일이다.
이미 그룹 내부에서도 최영석의 소행이란 소문이 돌지 않은가.
차라리 찍어 눌러서 김 국장을 사퇴라도 시켰으면 최영석의 건재를 과시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힘은 힘대로 썼는데 아무런 결과도 없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최영석은 자괴감만 들었다.
이미 자리를 내 던지며 경영권에서 상당히 멀어진 게 사실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자신이 사주한 정황까지 드러난다면 경영권 승계는커녕 그룹 내 계열사라도 하나 물려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래…… 그거라도 해 봐. 머리를 깎든 단식을 하든 절대 그냥 당해선 안 돼.”
“네. 변협이 꿈틀하면 저쪽도 그냥 덮는 걸 바랄 겁니다.”
“동시에 협상도 계속해. 무혐의 발표 할 테니, 이쯤에서 싸움 끝내자 전해.”
김 국장의 무혐의 발표와 맞바꾼 휴전 협의.
과연 공정위는 여기에 응할 용의가 있을까?
김 실장은 가능성 없는 얘기라 생각했지만, 그 얘길 입 밖에 꺼내진 않았다.
***
-검찰의 기소 취하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힘에 굴복한 검찰의 작태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검찰 앞에선 변협의 마지막 발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고석춘 회장을 위시로 한 변협 간부들은 떼를 쓰듯 이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많은 국민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증거를 찾을 수 없다 해서 죄가 없었던 건 아니라고! 세상엔 죄가 명백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된 사건이 많습니다.
고석춘 회장은 마이크를 붙잡으며 안간힘을 썼다.
-특히나 저희는 이 사건이 변호사들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 된 것에 깊은 회의감이 듭니다. 무분별한 경쟁으로 이미 법조계의 수임 질서가 많이 무너졌습니다. 이를 바로잡고자 했던
저희들의 징계 결정이 국민들에겐 밥그릇 지키기로 보였습니다.
-단언하건데 이는 사주에 의한 정치 공작입니다. 몇몇 불온한 변호사들이 공정위와 결탁해 흠집 내기 집회를 연 것이라 확언할 수 있습니다. 공정위는 이 문제로부터 떳떳한지요?
-이에 대해 출처를 요구하거나, 또 다른 역공을 퍼붓는 건 명백한 정치 보복입니다. 검찰은 엄정 수사를 계속함과 동시에 이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아야 할 것입니다.
맞불 집회는 보는 사람을 짠하게 만들었다.
공정위를 공격하는 척 하지만, 실은 제발 자기 자신들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특종거리가 쏟아지니 기자들만 살판났다.
기자들은 맞불 집회 영상을 생생하게 담으며 이 쇼의 클라이막스를 기다렸다.
“오- 나온다, 나온다.”
“카메라, 카메라!”
바리깡이 등장하자 기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삭발 투쟁은 시청률 보증수표다. 뒤이어 변협 관계자들이 일렬로 도열했고 고석춘 회장의 구슬픔 외침이 들렸다.
-공정위의 변협 탄압과 검찰의 물렁 수사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흐흑…… 협회장님!”
“이건 아닙니다!”
“공정위는 변협 탄압을 중단하라!”
바람잡이들은 눈물 콧물 빼면서 이 상황을 더 구슬프게 보이려 연출했다.
그때 이들 사이로 준철이 나타났다.
“아직도 이러고 계십니까.”
덕분에 경건한 분위기가 한 순간에 산통 깨졌다.
“뭐야, 당신은.”
“공정위 이준철입니다. 오늘 재심의 결과 발표하려 했는데 여기서 이러고 계시군요.”
“옳거니, 주인공 납셨구먼. 당장 탄압 수사 그만해. 오늘은 삭발투쟁이지만, 다음엔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단식 투쟁 할 거라고.”
고개를 돌리니 개리 올드만처럼 멋지게 이발한 고석춘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예쁘게 이발하셨네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이런 걸 투블럭이라 합니다.”
“뭐?”
“저도 마침 내년엔 헤어스타일 좀 바꿔 볼까 했는데……”
그때였다.
준철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바리깡 하나를 낚아챘다.
그러더니 부지불식간 자신의 머리를 밀어 버렸다.
상황 파악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변협관계자는 이 미친놈의 돌발 행동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식간에 머리를 민 준철은 머리를 탈탈 털며 그들을 노려봤다.
“이런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근데 뭐 머리카락 한 달 만 있으면 다 자라지 않겠습니까.”
“이, 이게 무슨.”
“근데 실추된 명예는 한 달이 아니라 1년, 10년이 지나도 복구되지 않아요.”
그까짓 머리카락은 김 국장의 실추된 명예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어느새 머리를 다 민 준철은 씨익 웃으며 원고를 들었다.
“오늘은 저희 재심의 결과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자들은 이 진풍경에 바빠졌다.
“거두절미하고 말씀 드리자면, 징계 번복은 없습니다.”
-찰칼 찰칵.
“변협의 무더기 징계는 부당했고, 법톡의 영업 행위가 수임 질서를 해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건전한 시장 질서 조성을 위해 변협의 징계는 불가피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 드립니다.
공정위의 징계는 정당했습니다.”
변협 관계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아울러 이 사달의 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의문을 제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사 규모에 비해 의혹이 과도했던 건 사실이니까요.”
“그, 그만해. 이건 억지야.”
“변협이야 말로 특정 기업과 결탁해 의혹만 무성하게 제기했던 것은 아닌지요. 사실 검찰은 이미 기소를 취하했음에도 아직까지 무혐의 발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준철은 눈에 힘을 줬다.
“검찰이 하루 빨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길 촉구합니다. 이 수사를 어떤 근거로 진행했던 건지 명확한 설명이 필요할 겁니다. 또한 비리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한마디씩 거들었던
의원님들의 소감도 듣고 싶습니다.”
그때 참을성 없는 기자 하나가 손을 들고 외쳤다.
-지금 표적 수사 의혹을 제기하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