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
2화
인간실격 (2)
-다음 소식입니다. 한명건설에서 일감을 받아 오던 한 하청 업체 사장이 오늘 오전, 유서 한 통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서엔 지나친 공사비 삭감으로 회사가 도산 위기에 빠져 있다 나왔는데요. 실제 이 하청은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3년간 공사를 계속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왜 적자를 내면서까지 공사를 계속했던 걸까요? 김선민 기자가 전합니다.
-(음성변조) 당장에 적자를 보더라도 하청들은 절대 대기업과 거래 못 끊어요. 언젠간 챙겨 주겠지,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면서 계속 버티는 수밖에.
-(음성변조) 막말로 우리 같은 중소 건설이 어디 가서 공사를 따오겠어요? 체급 키울 때까진 무조건 원청 밑에서 일해야 하는 겁니다.
-(음성변조) 죽으라고 등 떠민 거예요. 이 공사에 이 정도 견적이면 원청이 하청 사장 죽인 겁니다.
-한명건설 하청사들과 유가족들은 해당 내용을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책임자 엄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며 본사 앞에서 삭발 시위를 예고했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갑질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만한 국회 차원의 법 개정이 시급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만 아무래도 덮기 힘들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의 보고에 회의실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유가족들한테 우리 뜻 전달했나?”
“얘기도 못 꺼냈습니다……. 저희 명의로 보낸 조화를 장례식장에서 패대기치더군요. 아무래도 검찰 고발은 강행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몹시 좋지 않다.
심 사장의 죽음으로 현재 청와대 게시판엔 ‘갑질방지법’이 청원에 올랐고 하루 20만 명이 서명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이라고 불렀다. 조용히 덮는다 해도 추락한 회사의 위신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부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다 미간을 짚었다.
“이거 만약 검찰에서 수사하면 어디까지 털 것 같아?”
“여론이 좋지 않다 보니 수사 강도가 셀 것으로 예상됩니다.”
“긴말하지 말고.”
“전 계열사 모두 수사 대상입니다. 그간 하청들 특허 빼냈던 거, 단가 내렸던 거 모두 먼지 털 듯 찾아낼 겁니다. 이밖에도 경영상 작은 실수까지 잡아내 어떻게든 책임을 물을
겁니다.”
일벌백계.
업계에서 관행처럼 이어져 오던 갑질이 한 번에 심판을 당한다.
인민재판이라고 누굴 탓할 수도 없다.
대기업의 명백한 갑질로 사람이 죽지 않았나?
민감한 여론을 의식한 듯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고, 정치권도 여야 합심해 관련자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저희 법률팀을 알아봤습니다만…… 박앤장과 을촌 쪽에선 거부해 왔습니다.”
막대한 수임료를 제시했지만 대한민국 최대 로펌 두 곳도 손발을 들었다.
이들이 거부했다는 건 1심에서 중형을 막을 수 없단 뜻과 같다.
답답한 보고가 이어지자 부회장이 넥타이를 풀며 손을 휘저었다.
“본부장만 빼고 다들 나가 봐.”
회의실엔 또다시 김성균과 부회장만 남게 되었다.
“육시랄- 사람 하나 죽은 게 뭐 대수라고. 하여간에 한국 놈들 냄비근성은 알아줘야 돼.”
부회장은 공연히 큰 소리로 말하다 목소리를 바꿨다.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인데 하필 상황이…….”
김성균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는 너무 뻔하다.
부회장은 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김성균에게 서류 몇 장을 건넸다.
“이거 어차피 자네한테 넘기던 계열사였는데, 지분 작업 일찍 끝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또 시기적으로 맞는 것 같고.”
이번 사건을 뒤집어쓰란 얘기다.
주기로 했던 자회사 몇 곳 빨리 넘겨줄 테니.
“이런 말 뭣하지만 그냥 출장 한 번 길게 간 셈 치자.”
“제가 뒤집어쓴다고 해결이 될까요. 오해는 마십쇼. 하기 싫다는 게 아닙니다. 국민들 눈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자백하는 거보단 백번 나아. 그리고 저게 얼마나 가겠어? 여론 잠잠해지면 곧 아무도 이 사건 신경 안 써.”
그리 말하다 부회장이 눈치를 살폈다.
“본부장. 나 자네 믿어도 되지?”
그룹 경영권이 코앞이다.
본부장이 폭탄을 떠안고 자폭해 주면 직접적인 책임을 피할 수 있다.
“실형은 당연히 피할 수 없겠지요?”
“홍 이사 말로는 1심에서 5년 정도 떨어질 거라더군. 근데 나 그때까지 자네 옥살이 안 시켜. 2심에서 뒤집든, 가석방 특사로 빼든 어떻게든 자네 일찍 구할게.”
뻔뻔한 놈.
똥물 튀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놈이 시답잖은 약속만 남발한다.
하지만 이제 와 그건 당신 지시였다고 따지고 싶진 않았다.
어찌 됐건 악역을 맡은 건 본인이고, 심 사장의 읍소를 뿌리친 것도 자신 아닌가?
“알겠습니다. 그럼 검찰에 그리 진술하겠습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지금 여론이…….”
“걱정 마십쇼. 오 부장이 최종 책임자는 저였다고 진술할 겁니다. 하청들한테 지침을 전달한 것도 저였으니, 검찰 수사는 거기서 그칠 겁니다.”
김성균이 그리 말하자 부회장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이런, 내가 더 부끄럽구먼.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성균이 나갈 때, 부회장이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본부장. 그간 고생 많았어. 내가 늘 고마워했던 거 알지?”
어쩐지 좀 거슬리는 인사를 뒤로하고 김성균은 자리를 나왔다.
***
“당분간은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기자들이 벌떼처럼 대기하고 있을 거야.”
“여보.”
“내 걱정은 말고 애들이나 챙겨. 회사에 다 매뉴얼이 있으니까 얼마 안 가 잠잠해질 거야.”
경부고속도로.
처가로 내려가는 길.
김성균은 부회장과 나눴던 얘기를 아내와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무덤덤하던 아내의 얼굴은 금세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실형은 피할 수 없다는 거야?”
“아무래도.”
“그런 게 어디 있어? 당신이 한 일 아니라며! 그럼 부회장님이 책임지셔야지!”
“다 사정이 있으니까 그래. 그냥 긴 출장 간 셈 쳐. 어차피 곧 가석방으로 나올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이를 대가로 한명건설의 자회사 세 곳을 넘겨받았단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돈 하나 때문에 몸과 마음 자존심까지 팔았단 얘기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김성균은 자동차 내부 미러로 슬쩍 두 아들들을 봤다.
두 아들 녀석도 이젠 고등학생이다. 대강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안다. 뉴스에서 떠드는 갑질의 주인공이 아버지라는 것쯤은 알 나이다.
어쩐지 두 아들 녀석 눈빛이 ‘살인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성균은 애써 무시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애들 전학은 다 시켰어?”
“그건 문제없는데……. 모르는 번호로 자꾸 문자랑 전화가 와. 애들 번호로도.”
“그럼 그냥 번호도 바꿔. 부산에서 딱 1년. 일 정리되면 곧 서울로 올라올 수 있을 거야.”
시련은 잠깐이다. 부회장을 대신해 옥살이하고 나오면 한명건설의 계열사 세 곳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억울한 옥살이도 아니었다.
퇴직금을 두둑이 받는 대가로 조금 고된 일을 맡았을 뿐…….
그렇게 위안하는 김성균이었지만 허망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회사를 위해 지금껏 수많은 하청사를 상대로 갑질을 일삼아 왔지만, 사람이 죽은 적은 없었다.
정말 회사를 위해 하청들을 쥐어짠 건가? 아님 부회장이란 줄을 타기 위해 갑질에 동조한 건가?
이 물음엔 자신도 자신이 없었다.
심영수 사장의 읍소하던 얼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 재판 진행하면 검찰에서 내 금융 기록 털 거야. 혹시 몰라 당신 계좌로 옮겨 놓긴 했는데…….”
“어, 어? 여보!”
김성균이 무어라 말하려 할 때였다.
자동차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며 무서운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뭐, 뭐야?”
놀란 마음에 브레이크를 연신 밟았지만 자동차 속력은 되레 더 빨라졌다.
-빠앙
그렇게 당황하는 사이, 운전대가 휘청거리며 차가 중앙선을 넘었다.
직감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 없단 생각이 든 김성균이 다급하게 말했다.
“다, 다들 안전벨트 매!”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처하려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브레이크 고장이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손발이 떨려 왔다.
“왜 그래! 속력 좀 줄여!”
“브, 브레이크가 안 먹혀. 이게 뭐야?”
그러기도 잠시.
역주행으로 달리던 김성균의 차가 전방에서 나타난 승용차와 부딪쳐 완전히 전복되고 말았다.
중형 세단은 사고 지점에서 여섯 바퀴나 더 돌며 고꾸라졌고, 그 뒤에서 달려오던 화물 트럭과 2차 추돌하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