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0
20화
그래, 재판 가자 (2)
[속보 – 한경모비스 한지호 부사장, 영장 발부]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구속할 계획]
[檢, 핵심 임원 5명 등 모두 구속 예고]
판결까지 가기 전 양자가 합의할 거란 예측과 달리 구속이 결정되었다.
피해자 확보도 안 된 상태에서 구속 수사는 이례적인 일이다.
언론들이 앞다퉈 기사를 내보내자 한경모비스 주가는 지지선인 3만 원대가 무너졌다. 하지만 이는 추락의 서막이었다.
검찰의 구속 결정은 여러 추측을 낳았고, 증권 지라시를 통해 ‘피해자가 확보됐단’ 유언비어가 퍼지며 2만 5천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한 말씀만 해 주십쇼. 대리점에 강제 매입을 지시한 적 있습니까?”
“피해자가 확보됐단 사실은 모두 사실입니까?”
한지호 부사장이 검찰로 출석하는 당일엔 수많은 기자가 몰렸다.
기자뿐 아니라 시민 단체들까지 모여 그의 출석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본사갑질! 회장책임!]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맙시다!]
[한경모비스 불매운동!]
시뻘건 플래카드들을 보며 한지호가 입을 뗐다.
“대리점에 강제 매입한 정황은 단연코 없습니다.”
“그럼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는 뭡니까? 대리점에 과잉 매출 목표를 설정하고, 제품 강매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저희 본사가 대리점들과 ‘자율적’으로 협의한 목표 매출입니다.”
“70% 대리점이 피해를 호소했는데, 자율적이라고요?”
“물론 그 과정에서 저희 의욕이 과했다는 부분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매출이 늘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건 대리점들입니다.”
“안 팔리는 제품까지 끼워 파는데 어떻게 대리점 이익입니까?”
“타사 제품 못 받게 밀어넣기를 했는데 어떻게…….”
“자세한 내용은 모두 검찰 조사에서 소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취조실에 도착한 한지호는 주눅 든 기색 전혀 없이 자리에 앉았다.
검사가 오기 전 넥타이도 풀고 양말도 벗어 던졌다.
뒤늦게 도착한 준철은 제집 소파처럼 앉아 있는 한지호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편안한 차림으로 오셨네요?”
“뭐 나 같은 사람이 검찰 취조실에 한두 번 옵니까? 영장 쳤다고 겁먹을 줄 알았다면 오산입니다.”
“그럴 리가요. 마침 취조 일정이 빡빡해서 걱정했는데, 적응 잘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그는 준철이 내민 취조 일정표를 보자 금세 얼굴색이 바뀌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
그야말로 검사가 출근해 있는 시간엔 모조리 다 취조다.
“젊은 팀장님. 이거 너무 무모하단 생각은 안 하십니까?”
“무슨 말씀이죠?”
“공론화시켜서 회사 망신 준 건 그렇다 칩시다. 근데 피해자 확보도 안 됐는데, 임원들 전원 구속? 이러면 우리가 백기 투항이라도 할까 봐?”
그는 언성을 높이다 스케줄표를 던졌다.
“대체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이십니까?”
“그러니까 저희가 신사적으로 대해 드릴 때 협의하면 좋았잖아요.”
“뭐?”
“대리점들 뒤에서 협박했죠? 공정위 수사에 협조하면 가맹 끊어 버릴 거라고.”
“그거, 증거는 확보하고 하는 소리요?”
“똥인지 장인지 꼭 먹어 봐야 압니까? 익명투표에선 일관되게 피해를 호소해요. 근데 이름 밝히는 건 꺼리고.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준철은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다른 서류를 건넸다.
“긴말 안 하겠습니다. 이 상황을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리죠.”
“또 그 소리요? 관련자 징계하고 피해 보상하라?”
“잘 아시는군요. 동의의결안 다시 쓰세요.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 보이면 검찰에 고발 취하하겠습니다.”
공정위엔 전속고발권이 있다.
갑질, 독과점, 담합 같은 기업 범죄는 검찰이 단독으로 기소 못 하고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해 공정위가 취하하면 수사를 끝낼 수도 있단 얘기다.
하지만 이런 회유는 한지호 귀에 다른 의미로 들렸다.
“동의의결안 다시 써 와라? 그러니까 아직도 피해자 확보 못 했다?”
그는 비열하게 웃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젊은 팀장님. 이런다고 대리점들이 입을 열 거 같소?”
“못 할 거도 없다 생각합니다만.”
“천만에 말씀. 애초에 그럴 사건이었으면 5년이나 끌지 않았어. 백번 양보해 당신들이 대리점 설득했다 쳐. 우린? 진술 내용 들으면 어떤 대리점인지 다 알 수 있어. 그럼 재판
당일에 그 사람들 출석도 못 할걸?”
재판에 무단으로 불출석하면 실형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본사에서 가맹이 끊기는 건 이보다 무서운 형벌이다.
“나야말로 이 문제를 제일 빨리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죠. 우리가 낸 동의의결안 수용하고, 구속 푸쇼. 그럼 우리도 사과 성명 내는 것으로 마무리하리다.”
더 들을 필요도 없다 생각한 준철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 우리가 피해자 확보하는지 못 하는지.”
***
“어떻습니까?”
“끄떡없네요. 오히려 대리점들이 입 열면 바로 보복할 거라고 협박까지 하더군요.”
“네? 아니 지금 누가 누구한테 협박을.”
“그만큼 입단속에 자신 있다는 거겠죠. 그간 대리점들 입 못 열게 한 건 확실합니다.”
취조 내용을 전해 들은 박 팀장은 분통을 터트렸다.
왜 5년 동안 수사가 안 풀렸는지 확인했다. 부사장 놈이 뒤에서 계속 협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게 생각하세요. 그래도 일당 모두 구속시키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렇게 나올 줄 알았다면 노민기 회장도 구속시켜야 했는데.”
“한경 그룹의 기둥 하나가 날아갔으니 회장도 정신없을 겁니다. 수습하기 전에 얼른 마무리 짓죠.”
이젠 피해자를 확보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다.
“지금 대리점들 반응 어떻습니까?”
박 팀장은 서류를 내밀며 조심히 말했다.
“구속시키니 확실히 분위기가 다릅니다. 주요 대리점들이 먼저 연락해 현 수사 상황에 대해 물어 왔습니다.”
“혹시 증언하겠단 곳도 있었습니까?”
“아직은요.”
수사 상황에 관심은 많은데, 나서진 않는다.
이건 그들도 분위기를 살피고 있단 증거다.
준철은 한경 매출 1-10위까지인 서울 대리점 명단을 보며 박 팀장에게 물었다.
“박 팀장님. 이 사장님들 전부 모아 주실 수 있습니까?”
“한번에요? 그것보단 차라리 각개격파가 낫지 않습니까? 다른 대리점에선 이런 말도 하더라 하면서 떠볼 수도 있고.”
“5년 동안 시달렸던 사람들이라 택도 없을 겁니다. 시간도 급하고요. 그냥 전체 소집해 주세요.”
관건은 그들이 느끼고 있을 불안감을 없애는 것이다.
만약 충분한 설득을 했는데도 그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그땐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 검사의 말대로 한경모비스 시정안에 동의하는 수밖에.
부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준철은 서류를 정리했다.
***
처음 만난 대리점 사장들은 하나같이 다 수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공정위에 대한 경계심일까, 아님 한경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일까?
“상황 다 아실 테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저희 공정위는 모든 증거를 다 갖췄는데 가장 중요한 게 없습니다. 피해자요.”
“…….”
“그리고 저희가 다섯 번에 걸쳐 익명투표를 진행했는데 대다수 대리점들이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이젠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저희도 여러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협조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공정위도 나서지 않겠다.
준철이 적당한 압력을 넣어 말하니 사장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저…… 한 말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저흰 이게 생계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본사가 어떻게 보복할지도 두렵습니다.”
“맞습니다. 본사가 대리점들에 보복할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그 대책도 없이 저희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어렵습니다.”
선두에 선 사내들이 그리 묻자 준철이 대답했다.
“그럼 먼저 사실관계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본사에서 과잉 목표 매출을 설정하고 물건을 강매했습니까?”
대답이 없자 준철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익명투표다 생각하고 말해 주십쇼. 오늘 회의 내용은 제 직을 걸고 외부에 말하지 않겠습니다.”
“……있습니다.”
“끼워 팔기, 밀어넣기, 할인 행사 강요. 3가지 부당 행위 모두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한경모비스에도 인정한 부분입니다. 근데 이 사람들이 재밌는 동의의결안을 가져왔더군요.”
준철은 그 서류를 보이며 말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앞으론 안 그러겠다는 겁니다. 관련자는 바뀌지 않을 거고, 여러분들 피해액은 상생기금으로 보상하겠다 합니다. 이 의결안에 여러분들도 동의하십니까?”
그리 말하자 곳곳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담당자도 안 바뀌는데 앞으로 뭐가 바뀐다는 겁니까?!”
“상생기금은 어디에다가 쓸 건데요?!”
“전혀 말도 안 됩니다.”
“이건 시정안도 아니에요.”
준철이 웃었다.
“그렇죠. 바뀌어야겠죠. 그래서 제가 제안드리는 건 이겁니다.”
준철이 내민 서류를 본 최 사장이 놀랐다.
“이, 이건 단체 구성권 아닙니까?”
“예. 보복 때문에 두려워하신 거잖아요. 앞으론 대리점들 단체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 협약을 근거로 본사와 가격 거래까지 할 수 있어요.”
대리점 단체 구성.
한마디로 대리점의 노조 권한으로 보면 된다.
대리점이 단체 구성을 하면 가격 협상을 할 수도 있고, 부당 행위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통과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정착 단계의 법이라 이를 아는 대리점은 얼마 없었다.
알고 있어도 감히 단체 구성을 요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사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떤 대리점이 이를 주도할 수 있겠나?
“제가 이걸 도와드리겠습니다. 한경모비스에 단체 구성 지위를 인정받고 앞으로 협상할 수 있죠.”
“하면…….”
“본사에서 보복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낼 겁니다. 그땐 여러분들이 파업 같은 강수를 둘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보복에 대한 과징금은 손배가 3배입니다. 징벌적 손해보상이라 액수에
‘0’ 하나가 더 붙을 거예요.”
대리점들이 뭉쳐 있으면 나중에 보복당할 우려도 줄어든다.
이들은 준철의 제안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사내가 물었다.
“만약 저희가 공정위를 돕는다면……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드디어 그들이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