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화려한 귀환
강원도 산골에 위치한 한 대강당.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신입 사원 연수 교육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일반 신입 사원 OJT와는 조금 다른 풍경.
참석한 이는 사회 초년생부터 40대 아줌마, 60대 할아버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럼 저희 뉴테크놀로지의 수석 멘토이신 김영창 멘토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참석자들은 필기구에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는 최근 SNS 등지에서 고수익 알바로 유명해진 ‘이노베이션 마케팅’ 회사였다. 이름이 좀 거창하지만 대강 혁신적인 마케팅을 구사하는 곳.
채용도 혁신적이어서 이곳은 나이불문, 학력불문, 경력불문 오로지 열정만 평가하여 신입 사원을 뽑았다.
수상한 무리가 단톡 방에서 쑤군거리고 있는 사이, 연단엔 머리가 훌렁 벗겨진 50대 사내가 등장했다.
요주의 인물이 등장하자 광역수사대 단톡 방이 바빠졌다.
광역수사대 조 반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연단에 등장한 놈은 김영창이 아니었다.
광역수사대가 벌써 5년째 쫓고 있는 다단계의 왕, 김상두였다.
놈은 이름만 다섯 개에 중국 밀항을 밥 먹듯이 해 대는 희대의 사기꾼이었는데 지금까지 보고된 피해액만 380억에 달했다.
“저희 뉴테크놀로지는 K-뷰티의 선두 주자로 이미 중국에 400여 개가 넘는 가맹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화장품들은 이미 중국에서 시중에 유통된 상품입니다만. 관세
등의 문제로 인해 시중에 유통할 수 없는 애로가 있죠.”
세상에 그런 화장품은 없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사이비교주를 영접한 광신도들처럼 격하게 끄덕였다. 이들은 업자들이 엄선하고 엄선한 바로 ‘절실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이, 아가씨. 교육 안 끝났는데 어딜 가?”
“부, 부모님이 아프셔서요.”
“부모님 아프시면 이 강원도 산골에 택시 기사가 달려와 줘? 흐흐.”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가려거든 할당량은 채워서 나가. 이거 시장에다 팔면 최소 600은 챙길 수 있는 물량인데, 아가씨는 400에 가져가.”
“예? 제가 돈이 어디 있어요. 전 취업준비생이에요. 신입 사원 연수 교육인 줄 알고 왔단 말이에요.”
“그래서 취업시켜 줬잖아! 당신은 오늘부터 우리 회사 직원이야.”
이곳은 남녀노소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지만, 나갈 땐 반드시 한 가지 규칙을 지켜야 했다.
바로 400만 원 상당의 화장품을 사가야 한다는 것.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쩔쩔매자 직원이 핸드폰을 낚아챘다.
“정 돈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이거 핸드폰으로 결제시켜 놓을 테니까 아가씨가 다음 달에 갚아요. 대신 수수료 10%가 따로 붙습니다~.”
‘오냐 새끼야. 네 형량도 10%도 더 붙여 주마.’
이 광경은 잠입한 광수대 형사들의 캠코더에 적나라하게 녹화되고 있었다. 법원에서 증거 영상으로 쓰일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러는 사이.
김상두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강의를 끝마쳤다.
“뉴텍의 대표로서 저 김영창은 여러분들의 앞날을 기원합니다. 그럼 이만…….”
그때.
청중석에서 젊은 남자가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대표님, 이거 진짜 K뷰티의 선두 주자 화장품 맞습니까. 그냥 싸구려 화장품에 라벨만 바꿔 낀 게 아니고?”
“……뭐라?”
“꼭 김상두 씨랑 똑같네요. 사람은 그대론데 이름만 바꿔서 사람 등쳐 먹잖아요?”
청중석이 술렁였다. 지금 저 젊은 놈이 뭐라 하는 건가.
그중 더러는 입이 떡 벌어졌다.
김상두라는 이름을 뉴스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사람들이다.
“뭐야? 저 사람이 김상두야?”
“그러고 보니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준철은 술렁거리는 사람들 비집고 김상두 앞으로 갔다.
김상두는 처음 보는 이 젊은 놈에게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제 목소리 기억하시죠?”
“누구?”
“공정거래위원회 이준철 과장이라고 합니다. 우리 1년 전에 통화도 한 적 있는데?”
그제야 김상두는 왜 이 젊은 놈에게 기시감이 느껴지는지 알 수 있었다.
1년 전, 중국으로 밀항하기 직전.
웬 젊은 놈 하나가 이상한 전화를 해 왔다.
-자수하면 5년. 그 배 타면 10년.
“미친 새X!”
대화는 그게 전부였지만, 젊은 놈 말투가 하도 당돌해서 목소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준철은 씩 웃으며 그때 못다 한 말을 마저 이었다.
“김상두 씨, 잡혔으니까 10년이에요.”
“이 미친놈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 새끼 처리해!”
김상두의 지시가 떨어지자 풍채 좋은 건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내들의 손길은 준철의 머리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으악!”
우지끈! 뚝딱! 퍽!
별안간 뒷좌석에 소란이 일더니, 뼈가 부러지고 사람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광수대 조 반장이다. 상두야~ 우리가 너 얼마나 찾았는 줄 아니? 이젠 다시 빵으로 가자.”
그는 이미 사기 전과 5범으로 조 반장과 구면이었다.
놈은 심각함을 느끼고 곧바로 줄행랑을 쳤지만, 경호원으로 위장한 잠복 형사들에게 순식간에 목덜미가 잡혔다.
“이거 놔! 이게 뭐 하는 짓들이야! 네들 영업 방해야!”
놈은 아등바등하며 준철 앞으로 끌려왔다.
준철은 1년 동안 묵혀 두었던 영장을 내밀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넌 내가 최소 20년 이상 썩게 해 줄게, 새끼야.”
***
준철의 직속상관이자 조사국장인 민병호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일망타진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잡기 쉽지 않은 놈이었을 텐데?”
“이준철 과장이 형사들하고 직접 잠입까지 했답니다.”
신현수 과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또한 행시 출신으로 동기들에 비해 진급이 빠른 편이었다. 업무 능력 하나만큼은 자타공인 1등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전 발령 온 신출귀몰한 놈 앞에 그 자신감이 바래졌다.
“신 과장이 얼마나 더 선배지?”
“5기수 빠릅니다만……. 솔직히 선배라 하기에도 그렇습니다.”
“왜?”
“이놈은 제가 뭐 가르친 게 없으니까요. 딱히 저한테 뭘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빈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서울에서 끗발 날리던 놈이라도 본청에 오면 주눅 들기 마련이건만. 이놈은 적당히 상사 대접만 해 줬을 뿐,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일했다.
“진급에도 딱히 관심 없는 것 같고요.”
그건 민 국장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원래 행시 출신 신입 과장들은 폼 나는 사건을 좋아한다.
비리 액수가 커서 주목받기 좋거나, 이름난 대기업을 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놈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지 2년 동안 민생 사건만 골몰했다.
“알고 있다. 그랬으니까 이걸 나한테 제출했겠지?”
민 국장은 준철이 신청한 [인사 지원서]를 툭툭 쳤다.
“국장님, 근데 진짜로 이 과장이 서울 종합국으로 보직 신청했습니까.”
“그래. 최소 근무 연수 끝나자마자 바로 신청했어.”
“허……. 참.”
“신 과장이 봐도 이상하지?”
“네. 서울 종합국은 전문성도 없고 진급도 잘 안 되는 부천데…….”
두 사람은 사실 약간 혼란에 휩싸였다.
사실 이준철은 욕심 없는 놈이란 표현도 아깝다. 머리가 모자란 놈이란 표현이 더 제격이다.
지금 커리어로 원하는 직에 골라서 갈 수 있는데, 가장 어렵고 진급도 안 되는 길로 자청했으니 말이다.
“뭐 사실 사연이 있는 놈이라 그럴 수도 있단 생각은 든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가 이놈 친정이잖아? 근데 사고를 하도 치고 다녀서 전임 국장이 부득이 물러나게 됐더군.”
“아, 그 사건이라면 혹시…….”
“그래. 죄책감이 좀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신 과장도 조금 수긍이 갔다.
“그렇다면 이해가 좀 되네요. 어쩐지 본청 와서도 민생 사건만 골몰하더라고요.”
“아니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요?”
“그냥 이런 부류의 일 자체가 놈의 적성에 맞는 거야. 애초에 여기 있을 놈이 아니란 거지.”
신 과장은 조심히 물었다.
“그래도 설득은 한번 해 보실 거죠?”
“고민 중이다. 딱히 설득이 되는 타입이 아닐 텐데, 그게 의미가 있는지.”
“시간을 가지고 계속 회유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시간? 별로 없어. 서울 종합국은 기피 보직이라 늘 TO가 있거든.”
진급 결정은 최대 보름 안으로 이뤄질 것이다.
사실 민 국장이 도장만 찍어 주면 내일 당장 발령 날 수도 있었다. 서울 종합국은 만성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상시 채용직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한번 살살 꽤 보겠습니다. 제가 또 그런 거 잘합니다.”
“그래. 너무 또 덥석 보내 주면 서운한 법이지.”
신 과장이 살랑거리면서 나가자 더 큰 아쉬움이 들었다.
딱 사회성이 저 반만 되는 놈이었으면 오죽 좋았을까.
아니지. 그 정도 업무 능력에 사회성까지 좋았으면 선배들 머리 꼭대기에 오르려 했을지도 모르지.
평양감사도 제 싫다면 그만이랬다.
민 국장은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전화를 들었다.
-아이고. 우리 민 국장이 어인 일로 전화를 다 했어?
“그냥 오랜만에 동기 생각이 좀 나서.”
-그래? 우리가 확실히 통하긴 해. 나도 요즘 들어 부쩍 자네 생각나던데.
상대방의 반응에 민 국장이 혀를 찼다.
“무슨 용건인데?”
-내 부탁이야 늘 빤하잖아. 사람 좀 보내 줘. 여긴 어째 팀 과장들이 도망가기 바쁘다.
“그러니까 거길 왜 자처해서 가?”
-그럼 어떡하냐. 전임 국장이 정치 보복 당해서 아무도 자리에 안 가려 하는데. 어디 뭐 쓸 만한 놈 없냐? 성질은 더러운데 야근은 좋아하고, 또 궂은 일 마다 안 하는 놈.
민 국장은 어쩌면 두 사람의 궁합이 참 잘 맞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한 놈 있는데 보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