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화려한 귀환 (2)
“와- 김상두가 드디어 잡혔어?”
“그러게요. 이놈 광수대가 10년 동안 쫓아다닌 놈인데.”
“이것들 안 잡힌 이유가 있더라고요. 경찰도 못 잡게 강원도 오지에도 다단계 시판을 했대요.”
이미 파다하게 퍼진 뉴스로 공정위 본청은 한껏 들떠 있었다.
피해액만 400억을 넘나드는 불법 다단계.
공정위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본디 다단계란 위법과 합법의 경계가 애매하여 공정위의 판단에 따라 유무죄가 결정되었으니 말이다.
김상두를 다단계 시판 업자로 판단하고 경찰에 처음 넘긴 것도 공정위였다.
하지만 신출귀몰한 행각에 5년 동안 그림자만 쫓고 있었으니……. 공정위도 여간 애를 태우던 게 아니었다.
“이거 또 이준철 과장이 마무리 지었답니다.”
이렇듯 큰 골칫거리를 해결한 것이 준철이었다.
그의 무용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한 편의 액션 영화였다.
경찰과 합동 수사팀을 꾸려 강연장에 직접 잠입, 놈 앞에다 영장을 들이 밀었더란다. 1년 전 검찰이 밍기적거리다 미처 전달하지 못한 그 영장을!
후속 조치는 또 얼마나 기가 막힌가.
체포 즉시 김상두의 해외 자산을 모두 동결시켜 환수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미력하지만 이 돈은 피해자들의 보상액이 될 것이다.
“하여간 진짜 일에 미친놈이야.”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입 아픈 이 과정은 단 2개월 만에 이뤄졌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
“진급 욕심도 없어. 본청 온 지 2년 동안 민생 사건만 팠잖아?”
“근데 이 과장 이번에 서울 종합국으로 인사 신청 냈다는 소문 있더라.”
“뭐? 본청에서 서울 종합국이면 사실상 좌천이나 다름없는데……?”
“에이- 헛소문이겠지. 세상에 그런 멍청한 놈이 어디 있어?”
이것이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지금 실적 유지하면서 한 5년만 더 버티면 국장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굳이 출세가 아니더라도 일하기 힘들고, 지휘부 눈에서 멀어지는 서울 종합국으로 갈 바보는 없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느지막이 출근한 준철은 그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짐 정리를 마친 준철은 전 부서를 돌며 시보떡을 돌렸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홍 과장님.”
“아니, 뭐야. 자기 진짜로 가?”
“예. 오늘 인사 결정 났습니다. 시보떡 드세요.”
홍 과장이란 사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시보떡을 받았다.
행시 3년 선배이기도 한 그는 준철에게 각별히 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귀찮고 힘든 민생 사건이 생길 때마다 준철에게 일을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홍 과장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떡 받을 군번인가. 오히려 자기한테 떡을 줘도 모자랄 것 같은데.”
“별말씀을요. 선배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 말해 준다면 고맙고. 근데 자긴 참 넉살도 좋다. 시보떡은 좋은 자리로 영전(승진)했을 때나 돌리는 떡이야. 본청에서 서울종합국은…….”
사실상 좌천.
“원하는 보직으로 가게 됐으니 영전이나 다름없죠.”
준철은 전혀 개의치 않는 건지, 미련 하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본인이 원한다면 가야지. 언제 가?”
“오늘 국장님과 면담한 뒤에 바로 갈 것 같습니다.”
“그럼 아직 도장은 안 찍었다는 거네?”
“네. 돌면서 인사 좀 드리고 국장님께 결재 받을 겁니다.”
“그럼 여기 한 바퀴 돌면서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도망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으니.”
“하하. 알겠습니다.”
준철은 인사 하러 가는 곳마다 같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결심엔 변함이 없었다.
뉴스에선 연일 최영호 회장의 앞날이 멀지 않다 떠들어 댔고, 삼 형제도 보폭을 높여 가고 있었다.
회장이 죽으면 삼 형제들도 본격적으로 경영권 싸움에 돌입할 것이다. 아니, 죽기 직전부터 수상한 움직임이 있겠지.
‘최영석 부회장…….’
세종에 발령 난 이후, 아니 준철로 눈을 뜬 이후부터 단 한순간도 놈을 잊은 적이 없었다.
이제 곧 그놈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2년 전 서울 종합국으로 부임한 유경민 국장은 상기된 얼굴로 빅뉴스를 전했다.
“오늘 아주 기똥찬 놈이 하나 올 거야. 다들 기대해도 좋아.”
과장들에게 이렇게 밝은 얼굴로 얘기하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사실 그가 부임한 2년 전 종합국은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전임 국장이 정치 보복으로 자리를 떠나며 아무도 종합국 국장 자리에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위원장님이 사정사정하지 않았더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터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부임한 곳이었지만, 그는 나름의 사명을 가지고 종합국 재건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뭐야? 다들 표정이 왜 그래?”
하지만 이 기쁜 소식이 다른 과장들에겐 썩 반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국장님, 이번에 온다는 그 친구가 이준철 맞습니까.”
“그래. 여기 종합국 출신이라더만, 다들 알지?”
“저희가 왜 모르겠습니까. 가뜩이나 기피직이었던 종합국을 폐가 망신시키고 간 놈인데.”
사실 과장들이 기억하는 이준철은 그렇게 좋은 놈이 아니었다.
실적에 눈 먼 팀장. 주목 받기 좋아하는 관종 사무관. 이것이 동료 과장들의 냉혹한 평가였다.
“김태석 전 국장님이 물러나신 이유가 바로 이놈이 사고 쳐서 일어난 겁니다.”
“혼자서 온갖 민감한 사건을 맡아 대다 정치권에 미운털이 박힌 거라고요.”
“전 솔직히 기가 막혔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찾아오는지!”
“그놈이 다시 여기 오면 종합국이 또 한 번 초토화될 것 같습니다.”
유 국장은 악평을 무덤덤하게 듣다 한마디 거들었다.
“그게 왜 그 친구 잘못이야? 나쁜 짓 해 놓고 덮어 달라 했던 금배지들 잘못이지.”
“국장님.”
“나도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안다. 근데 아무리 들어도 소신껏 일한 죄밖에 없던데?”
“저희도 다 소신껏 일하지만 뒷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합니다. 근데 이놈은 그런 부류가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이놈 그냥 돌려보낼까?”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종합국은 공정위의 소방수 같은 부서였다. 카르텔국, 소비자국, 정책국 등에서 인력 요청하면 가서 불 꺼 줘야 하고, 쏟아지는 민원까지 상대해야 하는 부서.
불평을 쏟아 내긴 했지만 사람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놈은…….”
그래도 반응이 시원치 않자 유 국장이 솔깃한 제안을 꺼냈다.
“추 과장, 우리 그때 카르텔국에서 협조 요청 온 거 있지?”
“아, 예. 양계장 담합 사건요.”
“어떻게 돼 가?”
“담합 자체는 사실로 보이나 증거 잡기가 힘든 터라……. 전국에 있는 양계장을 다 돌아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인력난이구먼. 그럼 오늘부로 손 떼.”
“……예?”
“그놈한테 넘기라고.”
추 과장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른 과장들도 인력난 때문에 못 맡는 사건 있으면 넘겨 봐. 어차피 그놈은 종합국 출신이니 별도 교육 없이 바로 투입시킬 거야.”
‘그래, 썩어도 준치라고. 사람이 없는 것보단 낫지.’
그렇게 준철은 과장으로 부임하기도 전에 벌써 업무 5개를 배정 받았다.
“이쯤하면 자네들도 불만 없겠지?”
“……국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 친구와는 거리를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예전엔 오 과장이 그나마 이놈을 통제했는데, 이젠 오 과장도 없어요.”
“팀장이었을 때도 그렇게 사고를 쳤는데, 이젠 과장까지 달았으니……. 얼마나 혈기왕성하게 덤빌지 우려스럽습니다.”
유 국장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참고는 하지.”
***
2년 만에 돌아 온 고향은 그새 참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답답한 사무실들은 그대로였지만,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전출을 가고 없어진 지 오래였다. 순환 보직인 공무원에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김 반장님, 박 조사관님도 다 다른 곳으로 차출됐네……. 하긴 뭐 이젠 팀장도 아니라 직접 얼굴 보긴 힘들지만.’
변화는 한 가지 또 있었다.
바로 과장으로서 자신의 집무실을 배정 받았다는 것.
이제 준철은 지휘를 내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며, 팀장들에게 보고를 듣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 집무실은 그런 용도로 쓰게 될 것이다.
‘여긴 옛날에 오 과장님이 쓰셨던 집무실인데…….’
공교롭게도 준철은 과거 오 과장이 쓰던 집무실을 물려받게 되었다.
겨우 집무실만 물려받았을 뿐인데,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민감한 사건을 들고 갔을 때 오 과장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혹여 팀장들 중에 나 같은 놈이 있으면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새 철들었나 보군.’
입장을 바꿔 보니 김 국장과 오 과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었는지 깨달았다.
준철은 적막한 집무실에 짐 가지를 정리해 나갔다.
본청에서 보낸 지난 2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쳐다보지 않았고, 오로지 민생 사건에만 골몰했다. 사방에서 다 자신을 노린다는 걸 알았고, 스스로 힘을 키울 시간이 필요했다.
-쓱쓱.
준철은 사무실 한편에 있는 명패를 쓱 문질렀다.
물론 팀장에서 과장이 됐다 한들 엄청난 권한이 생긴 것은 아니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는 거, 그리고 밑에 있는 팀장들을 부릴 수 있다는 것. 과장은 딱
그 정도의 위치다.
-똑똑.
“누구……?”
“유경민 국장이다.”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준철이 벌떡 일어났다.
“아, 국장님.”
“뭘 그렇게 토끼눈을 뜨고 그래?”
“짐 정리하고 올라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됐어. 자네가 아주 유명 인사던데 내가 어디 궁금해서 참을 수 있어야지.”
유경민 국장.
운 좋게도 그는 본청에 있던 민 국장과 행시 동기였다. 덕분에 그의 성격에 대해 조금은 엿들을 수 있었다.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기는 타입으로, 그 또한 출세에 큰 욕심 없다 했던가?
하긴 출세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절대 이런 자리에 쉽게 안 오겠지. 그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과장은 여기가 친정이지?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어때?”
“얼떨떨합니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더군요.”
“흐흐, 그게 순환 보직의 숙명이야. 잠깐 전출 갔다 오면 사람이 다 바뀌어.”
“네. 팀장으로 첫 부임했던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유 국장은 끌끌 웃었다.
“그 자세로 일하면 안 된다. 과장은 업무 지시를 내리는 사람으로 좀 다른 역할이 요구될 거야. 뭐 그 얘긴 내가 굳이 두 번 설명 안 해도 잘할 타입 같고.”
첫 인사 자린데 어쩐지 유 국장은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말 뭣하지만 지금 우리 종합국에 인력이 좀 부족하거든. 들어 봤지?”
“아, 예.”
“해서 하는 말인데…….”
유 국장이 쓱 서류를 내밀었다.
“카르텔국에서 업무 요청이 왔어. 양계장이 닭값을 담합 했나 봐. 그것 때문에 치킨값이 뭐 엄청 올랐다나 뭐라나.”
대화가 심상치 않다. 보통 발령 첫날은 커피나 마시면서 덕담 나누는 게 관례 아닌가?
“내일 카르텔국에서 과장급 회의하는데 자네가 한번 가 봐.”
“……혹시 바로 업무 투입입니까?”
“응. 자네가 일벌레란 소문이 자자해서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첫날인데, 이건 무슨…….
“표정을 보니 아주 좋아하는 것 같군.”
“예…….”
“자세한 내용은 서류에 나와 있으니 찬찬히 한번 읽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