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TF장 이준철
“젊은 놈이 음흉한 구석이 있네. 인력을 주기 싫으면 싫은 거지, 왜 말을 저따위로 해?”
“그러게나 말이야. 우린 뭐 허수아비라서 못 하는 줄 알아?”
회의가 끝난 후.
카르텔국 과장들의 격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닭고기는 유통 규모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신선품이다. 이번 조사는 그 유통 과정 전반을 뒤져 어디서부터 담합이 이뤄졌는지 파악해야 하는 고난도 조사다.
7개 팀으로도 턱없이 부족하겠건만, 이걸 5개 팀으로 진행하겠다고?
“소문대로 아주 건방진 놈이구먼!”
이들에게 준철의 자신감은 도발로 느껴졌다.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만들 해.”
“이게 어떻게 악의가 아니에요? 지는 5개 팀 데리고 할 수 있다잖아요. 그럼 우린 다 무능해서 7개 팀으로 하자는 거야?”
“내 팀장들 얼굴 보는데 쪽팔려서, 원.”
이들은 소위 말하는 담합‘통’들이었다. 공직 생활 내내 가격 담합만 조사한 전문가들.
그런 이들이 타 조사국 사람에게 한 방 맞았으니 울화통이 치밀 수밖에 없었다.
“무슨 심정인지는 아는데, 우리도 차분하게 생각 좀 해 보자.”
“김 과장은 자존심도 안 상해?”
“종합국에 증원 요청한 건 우리야. 그 젊은 놈 욕해 봤자 우리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라고.”
김 과장의 말에 더 이상 험악한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끼리 있으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그 친구 제안 어떻게 생각해?”
“그게 생각해 볼 문제야? 다섯 팀 가지곤 절대 어림도 없어. 그냥 국장님께 보고하고 우리 카르텔국 안에서 2팀 더 차출해.”
“……오 과장님 그건 더 현실성 없어요. 이 다섯 팀도 겨우 끌어다 모은 거 아닙니까.”
“아니면 5팀이 7인분을 해 줘야지. 별수 있어?”
추후 방향은 카르텔국 안에서도 분분했다.
또다시 격렬한 회의가 오가던 끝에 김 과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한번 맡겨 보는 건 어때?”
“뭐?”
“우리도 사람 하나하나가 아쉽잖아. 그 친구가 TF장 맡아 주면 우리도 편해. 팀장들이 우리한테 일일이 보고 안 해도 되니까.”
TF팀이 출범하면 이를 진두지휘해 줄 지휘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과장들 모두 이 일을 전담할 여유는 없었다.
“그 친구가 컨트롤타워 역할만 해 줘도 우리 일은 확실히 줄어. 본청에서 과장 생활 2년이나 해 봤으니, 팀장들 지휘하는 건 많이 해 봤을 테고.”
“그렇다고 경험도 없는 놈한테 이걸 맡기는 건 좀…….”
김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저 친구가 경험 없는 친구는 아니야. 예전에 여야 한번 뒤집어 놨던 군납 담합, 철강 담합 모두 저 친구가 팀장으로 있었을 때 맡은 사건이라고.”
“아 맞다……. 저거 미친놈이었지!”
“근데 농축수산업은 달라. 조심히 접근해야 돼.”
“비슷한 업종으로, 어민협동조합을 한 번 박살 낸 전력도 있더군.”
“……진짜?”
과장들 사이에서 헛기침이 나왔다.
이 정도 이력이면 경험 없는 놈으로 치부할 순 없다.
“뭔 자신감인가 했더니만…….”
“속는 셈 치고 한번 맡겨 보자고. 뭐 자기 입으로 된다 했으니, 나중 가서 딴소리는 안 하지 않겠어?”
과장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봤다.
그래, 뭐 자기가 할 수 있다는데 맡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게 닭고기 가격 담합 TF장은 자연히 준철이 맡게 되었다.
***
‘닭고기 담합이라.’
준철은 보고 자료를 샅샅이 훑어보며 긴 상념에 잠겼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생닭의 출하량과 할인률을 고의적으로 조작한 흔적이 보인다.
‘잘만 하면 세 팀 정도로도 되겠는데?’
아마 과거 팀장 시절에 이걸 봤다면, 혼자서도 하겠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준철은 조금 달랐다.
사실 최영석 부회장과 만남 이후 준철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바로 더 이상 불명의 통증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
수많은 사건을 만져 봤지만 늘 사건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던 통증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특별히 아쉽거나 섭섭하진 않았다. 본청에서 지낸 2년 동안 증명하지 않았나. 자신의 직감과 업무 능력으로도 월등한 실적을 올릴 수 있다는 걸.
아마 그 기연은 부회장과의 만남까지만 유효했던 것 같다.
‘할 수 있어. 해 보자.’
자료 정리를 끝낸 준철은 인터폰을 들었다.
“TF팀. 전부 종합회의실로 모여 주세요.”
***
정식 TF팀의 첫 발표는 이전보다 더 긴장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팀장들 모두 반신반의하는 표정들이다.
다른 과장들 모두 다섯 팀으론 안 될 거라 반대하는데, 저 젊은 과장은 그걸 할 수 있다 하니.
“자료는 다 읽어 봤으니 따로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현 조사에서 뭐가 가장 큰 애로인지 말씀해 주세요.”
준철의 말에 황기철 팀장이 일어났다.
“담합은 확실합니다.”
그는 매우 확신에 찬 어조였다.
“비슷한 신선품, 농수산물을 조사한바,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가격이 폭등한 품목은 없었습니다.”
“그럼 몇 년 치 담합으로 추정하십니까?”
“최소 3년, 아니 못해도 10년 이상일 겁니다.”
“음……. 그렇게 장기간 동안 담합을 유지하려면 공모자가 많았겠네요?”
“네. 한국육계원뿐 아니라 이를 사는 주요 업체들 모두 이 담합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근데 생닭 시세가 오르면 이를 사는 업체들에겐 불리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업체들은 지정 시세를 내고 샀겠죠. 시중에 풀리는 생닭만 가격이 올랐을 겁니다.”
지정 시세는 따로 공급하는 시세를 뜻한다.
이렇게 팔면 업체에 공급되는 가격은 싼데, 소비자들 밥상물가만 높아진다.
“그리고 시중 가격이 올라야 가공품 가격 인상하기에도 용이합니다. 실제로 치킨, 삼계탕 등의 가공식품 가격은 생닭 시세와 함께 꾸준히 올랐습니다.”
시원한 보고에 준철의 기분도 좋아졌다.
“그럼 국내 유통권을 꽉 쥐고 있는 한육원을 먼저 쳐야겠군요.”
“다만…… 거기엔 좀 애로 사항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최근에 그들이 세력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력화요?”
“네. 이게 지금 한육원에서 전국 양계 조합원들에게 보낸 공문입니다.”
황 팀장이 어렵게 입수했다던 공문은 제목부터 무시무시했다.
[400만 양계 가족 여러분! 치솟는 사료비와 조류 풍토병 때문에 얼마나 고생들이 많으신지요. 우리는 국가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산업역군으로서 오직 사명감으로 일한다 해도 과언이아닐 것입니다. ……(중략)…….
하지만 공정위의 일부 몰지각한 작자들은 그저 닭값을 내리기에만 혈안입니다. 저희 협회는 몇 차례 소환을 받아 현 생닭 가격에 문제가 있단 지적을 들었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 입
아프지만 요지는 결국 닭값을 내리란 통보에 가까웠습니다.]
닭값을 인하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양계업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모두 뛰쳐나와 시위에 참여해 달라.
이것이 협회장 양철기의 이름으로 발송된 공문 내용이었다.
공문을 다 읽은 준철은 미간을 짚었다.
“법으론 안 될 것 같으니 투쟁 노선으로 가겠다는 건가요.”
“네. 이 때문에 양계 사장들의 협조도 요원한 상황입니다. 근데 이건 완전히 허위 날조 공문입니다.”
“허위 날조요?”
“그렇습니다. 현재 생닭 시세가 비싼 건 유통 과정에 거머리들이 잔뜩 붙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것도 협회 측과 주요 업체들이 짜고 잔뜩 부풀린 유통비로.”
닭값은 비싸졌지만 정작 양계원에 돌아가는 돈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일전에 브리핑했듯, 현재 닭값은 운반비와 염장비 등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저희가 지적하는 건 이 제반비를 지적하는 겁니다. 닭값을 인하해도 양계장에 갈 피해는 적습니다. 다만…….”
“설득이 쉽지 않겠죠?”
“네. 그게 제일 문젭니다.”
사실 이건 양계장 주인들을 탓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만든 상품 가격이 하락한다는데 누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나.
“양 회장도 이 점을 알고 양계장들 부추기는 데 혈안입니다.”
만약 놈의 계획대로 세력화에 성공하면? 그땐 법이고 상식이고 다 필요 없다. 양계장들이 국회 앞에서 드러누우면 없던 법도 만들어져 생닭 시세를 비호해 줄 것이다.
“그럼 그 양 회장은 업계에서 평판이 어떻습니까?”
“임기가 2년제인 협회장을 3연임 했을 정도로 신망이 두텁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부임한 시절에 생닭 시세가 꾸준하게 올라 줬으니……. 오히려 조사를 나간 저희 조사원들이 달걀
세례를 맞았을 정도입니다.”
참으로 기가 찬 일이다.
따질 거 다 따지면 양계 조합의 주적이라 해도 될 만한 놈인데, 닭값을 크게 끌어올렸단 이유 하나만으로 업계에선 신망이 두터웠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준철은 다섯 팀장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가 보기에 이 사건은 법과 상식보다 여론전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네.”
“황 팀장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팀장님들이 팜플렛 만들어 주세요. 생닭이 유통되는 모든 과정, 그리고 각 과정마다 얼마가 투입되고 있는지.”
준철은 양 회장의 실체를 먼저 까발려서 확고한 신뢰부터 무너트릴 계획이었다.
“거기에 있는 숫자 다 밝혀지면 신뢰하는 게 더 힘들 겁니다.”
“그걸 다 만드신 다음엔요?”
준철은 좀 미안한 얘길 꺼내야 했다.
“양계장을 직접 돌면서 설득을 해야죠.”
“헉…….”
“지금 저희를 적대하는 분위가 큰데…….”
“좀만 수고해 주세요. 곧 달걀 세례는 양 회장이 맞을 겁니다.”
다들 침통한 얼굴이 되었다. 담합 사건은 보통 대기업들을 상대하는 일로, 실사 나간 조사관이 달걀을 맞고 돌아오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근데 그 지옥에 또 들어가야 하다니.
“……알겠습니다.”
네 팀장들이 힘없는 목소리로 흩어질 때, 준철이 고개를 돌렸다.
“황 팀장님은, 다른 분보다 이 사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계시네요.”
“네. 양계장에서 첫 빠따로 달걀 맞은 게 저희 팀입니다. 지금 나온 보고서도 거의 저희가 작성한 내용이고요.”
“그럼 혹시 양 회장도 만나 보셨습니까?”
“네. 아주 표리부동한 놈입니다.”
황 팀장 목소리엔 노기가 서려 있었다.
“우리랑 만날 땐, 다 잘못했다 법대로 처벌받겠다 하면서 뒤에선 이런 일을 꾸몄더군요.”
아직도 놈의 얼굴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처음엔 소환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더니, 나중에 상황이 좀 유리해진다 싶었던지 이젠 공문에 반응도 안 합니다.”
“믿는 구석이 생겼나 보군요.”
“네. 상황 파악 빠른 아주 뱀 같은 놈이에요.”
준철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분 빠른 시일 안으로 면담 좀 잡아 주세요. 제가 직접 만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