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TF장 이준철 (2)
축구협회장은 꼭 축구 스타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배구, 빙상, 축산, 농수산 등 유수의 협회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육계원 양철기 협회장 또한 양계 시장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그는 농림축산부에서 과장을 역임한 관료 출신이었다.
-닭똥도 안 치워 본 놈이 어떻게 육계원 회장이야!
-집에서 삼계탕이나 끓여 봤겠어?
당연히 전국 양계 조합원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는 부임 2년 만에 이러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정부가 닭고기 관세를 인하할 조짐을 보이자, 세력을 규합해 무산시켜 버렸고.
조류 인플루엔자가 돌면 폐기 처분 보상금을 톡톡히 받아 내 주었다.
-암, 협회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곳이지.
-그런 건 책상물림이 잘해.
그렇게 쌓은 신망으로 그는 3년짜리 임기인 한육원장을 무려 세 번이나 연임했다. 지난 10년 육계 시장은 양철기의 일인독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우는 법.
임기 중반부터 그는 이따금씩 이상한 지시를 내려 조합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멀쩡한 병아리를 폐기 처분 하라지 않나, 생닭 출하량을 줄이라지 않나, 보통 헐값에 파는 노계(老鷄)를 싸게 팔면 경고를 주지 않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양계업자들은 불만을 터트릴 수 없었다.
물량을 엄격히 통제한 덕분에 해마다 생닭 시세가 올라 주었기 때문이다.
-근데 왜 이렇게 우리한테 떨어지는 돈은 없지?
-맞아. 출하량 통제 하나 안 하나 마진은 그대로야.
-그리고 우리끼리 출하량 조정하는 거, 불법 아닌가?
-그런 소리 마. 양 회장이 가격 방어 안 해 줬으면 이것도 못 건졌어.
-불법은 닌장! 지금 닭값 시세 유지 못 하면 양계장 태반이 다 망한다!
닭고기의 원가가 오른 게 아니라, 염장비와 운송비만 올랐으니 남는 돈이 없을 수밖에. 하지만 이런 얘기는 전문가가 자세히 따져 보지 않는 한 알기가 힘든 법이다.
대신 협회 이름으로 발송된 투쟁문은 직관적이라서 이해하기 쉬웠다.
한마디로 죽는다.
지금도 빠듯한데, 닭고기 값이 내려가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공문을 받은 전국 양계 조합원들은 공통적으로 생각했다. 생존권을 위해서라도 공정위의 미친 만행을 막아야 한다!
***
“어떻게 되어 가나?”
“예, 협회장님. 오늘 양계 조합원들의 10만 서명이 완료되었습니다. 농림축산부, 시도관계자, 국회 등 압박할 수 있는 곳에 다 보내려 합니다.”
양철기는 끌끌 혀를 찼다.
“개싸움 한번 나겠구먼.”
“예.”
“그러니까 상대를 좀 봐 가면서 건드릴 것이지. 쯧쯧.”
양 회장은 책상에 놓인 공정위의 공문을 째려봤다.
[생닭 시세와 관련한 소명 요구장] 그렇게 쓰여 있는 서류엔 온갖 민감한 얘기들이 다 담겨 있었다.
왜 닭고기 원가보다 염장비, 운송비 등이 더 드는 것인지, 양계장에 병아리 폐기 처분은 왜 내린 것인지……. 이건 사실 소명장이 아니라 ‘경고장’에 더 가까웠다.
이미 증거를 다 잡았다고 공정위가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시위에 나서면 얼마나 모일 것 같아?”
“서명을 10만이 했으니, 최소 3천명 이상은 모일 겁니다.”
“김 지사, 일을 그렇게 물러 터지게 해서 되겠어?”
“……예?”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3천 명 가지고 시위야! 그거 모은다고 뉴스에 나오겠냐고!”
양 회장은 절대로 공정위 소명 요구에 순순히 응할 생각이 없었다.
이건 정공법으론 답이 안 나오는 싸움이다. 이미 담합 증거 상당수가 잡혀 버리지 않았나.
이걸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여론전이며, 그는 국회의원들이 이쪽 업계 사람들에게 약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좀 더 부채질해! 닭값 내려가면 양계장 절반이 파산이다, 양가 농장의 이익을 위해 협회가 대신 칼질 당하는 거다. 응? 좀 호소력 있게 설득 하란 말이야.”
“아, 예.”
“최소 1만. 시위꾼을 사든,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하든 반드시 광화문 앞에 1만 명 운집시켜.”
“예……. 책임지고 모으겠습니다. 서명도 20만으로 늘려서 당장 국회로 보내겠습니다.”
김 지사가 허둥지둥 나가려 할 때, 양 회장이 다시 그를 불렀다.
“김 지사, 이거 지금 조사 누가 하는지는 파악했어?”
“예. 이준철 과장이라고 이번에 새로 부임한 과장이더군요.”
이준철?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양 회장은 이미 공정위에 다섯 차례나 소환되며 카르텔국 과장들 신상은 다 꿰고 있었다.
“알아 보니 행시 출신의 종합국 과장이었습니다.”
터럭 웃음이 났다.
행시 출신이면 고작 서른 줄의 애티도 못 벗었을 터. 게다가 종합국이면 담합 사건 전문가도 아니다.
“안 그래도 지금 계속 만나자고 압박하는데……. 어떡할까요.”
“내가 지금 이놈 만나는 건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니야.”
말은 그리했지만 이미 다 잡힌 증거에 변명할 말도 마땅치 않았다.
“대신 이 공문 뒷장만 복사해서 조합원들한테 돌려. 투쟁 독려문과 함께.”
“앞장이 아니라 뒷장요? 거긴 TF팀 전화번호밖에 없는데요?”
째릿-.
양 회장이 다시 살기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아, 예. 예. 분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
오늘도 가장 일찍 출근한 준철은 구석진 자리에서 팩스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육원에 소명 요구를 보낸 지 벌써 한 달째.
답변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어째 감감무소식이다.
그사이 TF팀은 양 회장 주도로 병아리를 폐기 처분 한 정황과, 생닭의 출하량을 제한했던 정황을 포착했다.
이번 담합에 한육원과 기업이 공모한 정황도 한둘씩 밝혀지고 있던 터였다.
“공문 뒷장에 저희 TF팀 전화번호 남긴 것 맞나요?”
“예.”
“아니면 우리의 연락을 기다리는 걸까요?”
“사실 그 뒤에 저희 쪽에서 몇 차례 연락을 해 봤습니다만……. 책임자가 늘 부재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TF팀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2차, 3차, 4차 공문을 보내 가며 그들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보내는 공문마다 함흥차사다.
“부재중이면, 왜 다시 연락이 안 올까요?”
“이번 달엔 예정된 미팅이 많아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에휴-.”
뒷얘긴 들어 보고 말 것도 없다.
한육원이 공정위의 전화를 피한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럼 이제 기소해 주세요.”
김 팀장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상대는 앞으로도 우리 전화 안 받을 겁니다. 먼저 연락 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고요.”
준철은 지겹고 힘든 이 짝사랑을 오늘 그만둘 계획이었다.
“과장님, 정말 기소를 이렇게 쉽게 하신다고요?”
“쉬운 결정 아니었습니다. 무려 한 달이나 기다렸는데.”
“물론 그 심정은 압니다만 기소는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충수라뇨. 증거가 이렇게나 많은데.”
누가 지금 증거 얘기를 하고 있나!
상대는 축산 업계를 대표하는 육계조합원이다.
농축산업은 한국에서 사실상 안보 산업으로 분류되며 정부가 유통 독점까지 허락해 줄 만큼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다.
파업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도 쌀직불금, 축산 보조금 등의 시위에 대해선 그런 대로 이해해 주는 편이다.
양 회장이 공정위를 상대로 안하무인 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 뒷받침되어 있어서다. 한데 그 협회 측을 바로 기소해 버리겠다니!
‘이건 법과 상식으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김 팀장이 그리 생각할 때, 준철이 말했다.
“뭘 걱정하시는지 아는데요. 지레 겁먹으면 아무 것도 해결 못 해요.”
이게 과연 지레 겁일까.
“과장님, 이건 괜한 겁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진짜 합니다.”
김 팀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농어민들은 정말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 버스 시위, 무력 시위 할 수 있는 거 다 하는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전 벌집을 굳이 쑤실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대화와
타협으로 하시는 게.”
“그래서 대화 좀 하자는데, 대화를 안 하겠다잖아요.”
“…….”
“호랑이가 안 나오면 굴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준철도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축산업자들 상대로 싸우는 게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저흰 축산업자들과 싸우는 게 아니에요. 도와주는 거지.”
“……도와준다뇨?”
“생닭 한 마리가 2천 원인데, 원가가 천 원. 나머지는 다 운송비와 염장비예요. 근데 어떻게 닭을 사육하는 사람보다 운반하고, 염장하는 사람이 더 받습니까?”
유통 과정에서 피라미가 너무 붙어 있다. 그 피라미 중엔 분명 협회 고위직과 결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양 회장이 이렇게 공정위를 피해 다니지 않겠지.
“정말 끝장 수사를 하실 모양이군요.”
“네. 이 담합은 너무 오래됐습니다. 그야말로 카르텔의 끝판 왕이에요.”
“알겠습니다.”
김 팀장은 곧 준철의 지시에 따랐다.
준철은 처음으로 과장이란 직책의 편리함을 느꼈다.
사실 과거 팀장이었으면 생각도 못 해 볼 지시 아니었나. 민감한 결정은 지휘부인 과장님의 결정이 필수였다.
‘결재 라인 하나 없어졌는데도 일이 엄청 편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불명의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울렸다.
“여보세요?”
-당신이 이준철이오?
“예. 제가 공정위 이준철 과장입니다만…….”
-야 이 똥물에 튀겨 죽일 새꺄! 치킨 만들 때 쓰는 닭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냐? 국민 세금 받아먹는 놈이 왜 국민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너무 당황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렇게 물었지만 이미 전화는 끊겨 버렸다.
그러길 잠시.
또다시 불명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당신이 이준철이에요?
“…….”
-맞네, 이 미친놈! 야, 너 양계장에서 닭똥 안 치워 봤지? 우린 그 닭 하나 팔아서 겨우 400~500원 남겨 먹어. 근데 그걸 깎아? 네가 사람 새끼냐!
그것을 신호로 고요했던 TF사무실에 전화가 빗발쳤다.
-이 세금 버러지들아!
-닭 똥물에 튀겨 죽일 새꺄!
-의사당이랑 공정위 사무실이랑 엄청 가깝던데 각오해!
-닭 짓는 소리로 하루 종일 괴롭혀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