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TF장 이준철 (3)
“허허~ 안녕들 하셨습니까?”
전화 폭탄이 이어진 다음 날.
양철기 회장이 예고도 없이 TF사무실을 방문했다. 조사 면담은 최소 일주일 전에 잡는 게 관례이건만, 그는 제집 안방처럼 편하게 들렀다.
“결례를 용서하십쇼. 날짜를 잡고 방문하려 했는데, TF팀 번호와 과장님 핸드폰이 모두 꺼져 있더군요.”
사실 TF팀 전화기는 모두 전선을 뽑아 놓은 상태였다.
TF조사단은 어제 하루 온종일 민원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불명의 전화에선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조사단들은 이제 전화기만 울려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네. 실력 구경 한번 잘했습니다. 아직도 귀청이 떨어질 것 같군요.”
이 사태의 모든 원흉이 누구겠는가.
양 회장은 굳이 부정하지 않고 껄껄 웃음을 보였다.
“피곤한 건 피차 마찬가집니다. 무고한 저도 공정위의 소환 조사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원.”
“무고하시다고요?”
그런 놈이 소명 요구를 한 달째나 거부해?
“뭐 엄격한 법적 절차를 적용하면 실수한 게 몇 있겠죠. 하지만 큰 그림을 봐 주세요. 우리 축산업자들. 열악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들 먹거리 사업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말이 가벼워 먹거리 사업이지, 식량안보사업의 역군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는 관료 출신답게 말 한번 뻔지르르하게 잘했다.
“닭값 시세 줄인다고 국민들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지겠습니까? 축산업자들은 모두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저희들의 의욕을 꺾지 말아 주십쇼.”
가만히 들어 주던 준철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의욕을 꺾는 게 아니라요. 지금 그 의욕을 꺾고 있는 놈들을 때려잡겠다는 겁니다.”
“……예?”
“한육원이 병아리 감축을 지시했더군요. 멀쩡한 닭도 살처분하고. 이건 일을 더 하겠다는 사람들 뜯어 말린 거 아닙니까?”
양철기는 눈썹을 치켜떴다.
분명 어제 폭탄 민원으로 혼쭐이 단단히 났을 텐데?
고분고분해진 태도를 기대했지만 상대의 눈엔 오히려 독기가 가득했다.
“대답 못 하시는 걸 보니 역시 물량 감축 지시하셨네요.”
“출하량 조절하는 건 양계 업계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물량이 너무 많아지면 가격이 폭락해 모두가 죽는다고.”
준철은 시답지 않게 웃었다.
“해서 저희도 그때 당시 생닭 시세를 알아봤거든요? 근데 출하량 조절했을 땐 생닭 대란이라 불렸을 만큼, 시세가 천정부지로 솟았던 때예요.”
“그건…….”
“심지어 닭값은 10년 동안 다른 식자재에 비해 월등히 인상되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물량 조절했던 이유가 뭡니까?”
이유가 딱히 있겠나. 원래 모자랄 때 물량을 통제해야 가격이 더 잘 치솟는다.
양철기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인정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불철주야 고생하는 양계 농장들의 노고를 생각해 달라는 겁니다. 생닭 시세? 그래 봐야 200~300원뿐이 안 오릅니다. 이 금액이 행정
처분 대상입니까?”
“협회장님, 그럼 그 돈이 정말 양계 농장주들의 주머니로 갔습니까?”
“……예?”
면전에 서류를 들이대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생닭 시세 절반이 다 염장비와 운송비더군요.”
“…….”
“마진을 분석해 봤는데 닭의 원가는 거의 평이했습니다. 오른 건 염장비와 운송비 등의 제반 비용이에요.”
현재 생닭 시세는 기업들의 이익만 높아지는 구조였다.
닭의 원가는 평이하게 올랐고 가공비만 잔뜩 높았으니까.
실제로 국민들의 닭고기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전국 양계장 현황은 되레 줄어 있었다.
“담합으로 얻은 이익이 딴 주머니로 갔으니 이런 역주행이 나왔겠죠?”
반면에 생닭을 가공하는 주요 업체들의 영업 실적은 미어터질 지경.
양계장은 폐업하기 바쁜데 닭을 취급하는 업체들은 문어발로 사업을 확장하기 바빴다.
정말이지 우스운 일이었다.
놈의 말대로 한육원은 양계 농장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다. 그럼 기업들의 가공비에 강하게 항의하고 가격을 낮춰야 한다. 그렇게 닭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양가 농장에 이익이
돌아가지 않겠나.
그래야 할 놈이 병아리 감축을 지시하고, 멀쩡한 닭을 살처분했다. 마진이 크게 늘지 않았는데 물량도 없으니 양가 농장 폐업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어째 말씀이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우리가 기업들하고 결탁하기라도 했다는 거요?”
“우리가 아니고 당신이.”
“뭐, 뭐?”
“10년 동안 협회장 자리를 꿰차고 있던 건 본인 아닙니까.”
“이놈이 어디서!”
“거기에 대한 답을 들어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민원 폭탄이 도착하더군요.”
준철은 싱긋 웃었다.
사실 아리까리하던 차였는데, 덕분에 확신하게 됐다.
“대체 업체들과 무슨 관계입니까?”
쾅-!
“젊은 새끼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준철도 이젠 공무원 생활 5년 차로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다. 상대방이 이렇게 발끈하면 대부분 다 맞게 조사하고 있단 것이다.
양철기가 노발대발해 대자 준철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나머지 얘긴 검찰에서 들어야겠군요.”
“뭐?”
“기소장입니다. 만약 자백하신다면 축산 업계 특성을 고려해 과징금과 행정 명령에서 끝내겠습니다. 협회 간부들의 형사 처벌 없이요. 하지만 계속하신다면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양철기는 면전에 대고 기소장을 찢어 버렸다.
자백을 하면 형사 처벌을 안 할 수가 없는 내용들이었고, 딱히 이 젊은 놈이 약속을 지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조사를 빨리 끝내려고 해 보는 말이다.
“나야말로 경고 하나 하지. 양가 농장의 투쟁이 민원 전화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
“왜 자꾸 양가 농장을 끌어들여요. 우린 지금 협회랑 업체들의 관계가 수상스러운데?”
“그게 물과 기름처럼 분리가 되는 줄 알아? 우리가 업체랑 협력해 가격을 끌어 올렸지만 그 이익은 양가 농장에 돌아가기도 했어. 만약 가격 떨어진다 싶으면 그 사람들이 가만있을 거
같아?”
젠장. 녹음기를 왜 안 켜 두었을까.
놈은 얼마나 급했는지 협박하는 와중에 담합 사실을 인정해 버렸다. 물론 이미 증거가 수두룩해서 당사자의 자백이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다.
“시위라도 하시게요?”
“겨우 그걸로 끝날까. 농림식품부에 진정 걸어서 당신 징계시킬 거야.”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축산 업계에서 출하량 조절하는 건 아주 오래된 관행이다, 공정위가 직권을 남용해 국가에서도 인정한 독점 유통권을 흔들려 한다. 이는 양계 농장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일이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와 같은 잣대는 풍년에 밭 갈아엎는 농부들도 구속감이다. 행정권을 남용하고 있는 네놈을 파면시켜 달라.”
그는 확실히 관료 출신다웠다.
공무원들이 무엇에 약하고, 귀찮아하는지 정확히 안다.
“내가 못 할 거 같으면 기소해 봐. 어디 한번 끝장을 보자고.”
그는 처음에 왔던 그 득의양양한 모습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
준철은 다시 한번 과장이란 자리의 편리함을 느꼈다.
보통 이런 난리가 터지면 조직에선 재고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절차적 하자가 없었는지 수없이 확인하고, 증거 자료를 다시 검토한다.
상대가 노조, 농어민처럼 극성스러운 집단이면 원점 재검토에 들어갈 수도 있다.
“기소 처리. 오늘 내로 해 주세요.”
하지만 준철은 이 사건을 오래 끌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미 잡힌 명확한 증거들. 거기에 직접 찾아온 양 회장이 쐐기까지 박아 줬다.
“……저희 정말 괜찮을까요?”
팀장들은 한 차례 겪은 폭탄 민원으로 이미 공황에 빠진 상태였다.
“민원 전화는 예고편에 불과할 겁니다. 다음 투쟁은 무조건 여의도 시위예요.”
상대가 상대인 만큼 신중하게 움직이고 싶었다.
“과장님,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잖아요. 살짝 돌아가는 것도…….”
“가야 할 길이면 앞길이 똥밭이라도 밟고 가야죠. 여기서 주춤하면 저쪽은 더 과격해집니다.”
준철도 어지간하면 봐줄 요량이었다. 배추 농사 풍년이라고 밭 갈아엎는 게 어디 뭐 기상천외할 일인가?
농수산물의 출하량 담합은 정부도 적당히 묵인해 주는 작은 편법 중 하나다. 맑은 물에 고기가 살 수 없듯,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한국에서 농업에 종사할 사람 없다. 실제 한국이
축산업 하기 좋은 환경도 아니고.
하지만 득의양양 찾아온 양 회장이 확신을 주었다. 닭고기 유통 시장은 뿌리부터 썩었을 거라는.
이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축산업자들의 근로 환경은 더욱 열악해진다.
“모두 맡은 바 소임 다해 주세요.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공정위 – 치킨과의 전쟁?] [한국육계원 담합 조사, 생닭 시세 크게 부풀렸다고 설명.] [프랜차이즈들도 가담자? 10여 곳 나란히 영장 신청]준철의 지시에 따라, TF팀은 협회 간부 다섯 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함께 국내 프랜차이즈 십여 곳에 나란히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만약 담합으로 생닭 시세를 올린 것이면, 업체들의 거래 내역에 그 수상한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이 미친놈이!”
뉴스가 터진 당일.
양 회장은 뒷목을 잡고 넘어가 버렸다.
“이 새끼 재정신이야?!”
이 모두 불과 사흘도 되지 않아 펼쳐진 일이다.
공정위 전화기를 다 먹통으로 만들어 놨는데,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회장님. 아무래도 저희가 전략적으로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자는 상식적인 놈이 아니에요.”
“여의도 앞에서 시위를 펼쳐도 눈 하나 끔뻑 안 할 것 같습니다.”
조사에도 밀당이란 게 있다. 이쪽에서 민원 폭탄 한번 날렸으면, 그쪽도 사려야 하는 게 이 바닥 룰이다.
한육원은 그렇게 처벌 수위를 적당히 협상하고, 마지막엔 못 이기는 척 승복하려던 차였다.
하지만 그 젊은 놈은 정말 타협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것인지, 바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어떡하죠? 프랜차이즈 업체 10여 곳에도 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압수수색 들어가면, 업체들이 사재기한 정황도 나올 겁니다.”
당연하지만 이 담합은 한육원 혼자 결심한다고 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담합에 공모한 업체들은 생닭을 순번대로 사재기해 냉동시키거나 폐기해 버렸다.
협회의 물량 통제와 업체들의 사재기.
이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생닭 시세가 천정부지로 솟았다.
업체들은 이 시세를 근거로 치킨 등의 가공품 가격을 올렸다.
생닭 시세를 500원 정도 끌어올리면, 가공식품에서 3~4천 원 이상 올려 버릴 수 있으니 폐기시킨 닭값은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자칫하면 지금까지의 담합을 다 들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짬짜미해 왔던 게 벌써 10년.
과징금이 얼마나 떨어질지는 예측도 되지 않는다.
양 회장은 침음성을 삼켰다.
“일단 업체들 연락해서 회의 한번 소집해. 그리고 공정위 규탄 시위 서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