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양계 농장 총파업
강남에 위치한 어느 한 일식 집.
매니커, 한림, 하봉 등 굴지의 닭고기 업체 사장단들이 경색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젓가락질도 함부로 못 할 만큼 분위기는 무거웠다.
“양 회장님.”
한 사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분명 그때 공정위와 얘기가 잘되어 간다 하지 않았습니까? 권고로 끝날 문제라 하셨던 것 같은데.”
양 회장은 공정위에 다섯 차례나 소환됐지만 늘 별일 아닌 일이라는 듯 설명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니었다. 공정위는 축산 업계의 강한 반발을 우려, 좀체 조사 속도를 못 내던 터였다.
그랬던 일이 과장 하나 바뀌고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대답을 좀 해 보세요. 공정위가 영장을 신청했다는 건 형사 처벌도 고려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사장단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임은 한두 해, 한두 번 있던 자리가 아니었다. 한육원과 주요 업체들은 장장 10년 동안 생닭 시세를 끌어 올렸는데, 담합 이익이 얼마였는지는 이제 계산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이는 곧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란 얘기이기도 했다.
사장단들의 목소리가 격앙되자 한 사내가 식탁을 두드렸다.
“지나간 얘긴 그쯤 합시다. 오늘은 앞으로 어떻게 수습할지 논의하기에도 바쁘다고.”
국내 1위 업체인 의 최 사장이었다.
“양 회장님, 이젠 우리도 솔직한 말을 들어 볼 때 같군요. 현재 공정위 조사가 어디까지 진행된 겁니까?”
“……많이 좋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 육계 협회가 출하량 조절한 건 들켰습니다.”
“병아리 감축과 생닭 살처분 지시한 정황 말인가요?”
“예.”
“시세가 폭락하면 양계 농장의 피해가 극심했을 거라 둘러대 보세요. 그건 축산 업계 특수성으로 충분히 변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양 회장은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필 제가 감축 지시를 내렸을 때가 생닭 대란이라 불렸던 때라…….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대 과학의 발달로 병아리가 닭고기가 되기까지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이는 곧 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 납품량을 조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한육원이 출범한 이유도, 시장 변화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장에 품귀가 빚어져도 협회에선 오히려 감축을 지시했으니, 빼도 박도 못할 담합 증거다.
“물론 이것 자체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진짜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저희가 물량을 통제할 때, 업체 측에서 사재기한 사실도 파악한 모양이더군요.”
업체들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들은 삼계탕이 금계탕 소리를 들을 때, 시장에 얼마 없던 생닭마저 사재기 해 시세를 더 끌어 올렸다. 이는 한육원이 출하량을 늘리지 않을 것이란 약속 없인 절대로 할 수 없는
행위다.
이렇게 인상된 가격을 빌미로 치킨, 닭 가슴살 업체들은 일제히 가격을 인상시켰다.
업체 사장 중 하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거까진 들켜선 안 됩니다. 양계 농장을 위한 일이었다, 뭐 이렇게 빠져나갈 수 없어요?”
근데 그렇게 번 돈이 양계 농장 소득으로 돌아갔는가? 그것은 또 전혀 다른 얘기였다.
닭 시세 대부분은 운송비와 염장비 장난으로, 이 또한 기업의 주머니를 배 불리는 일이었다.
“공정위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진 않습니다.”
양 회장의 설명이 끝나자 사장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생닭을 사재기한 적이 몇 번이었더라……? 염장비와 운송비 장난질한 건 감추지도 못할 텐데……?
압수수색을 당함과 동시에 구속영장까지 날아올 것 같다.
현재 닭고기 시장은 한육원이 각본을 짜고, 업체들이 제작비를 댄 한편의 사기 영화나 다름없었다.
의 최 사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아무 대책도 없이 우릴 부르진 않았을 거라 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요?”
“일단 농림식품부에 진정을 걸어 축산 업계의 특수성을 설명했습니다. 그럼 그쪽에서 제동을 좀 걸어 줄 겁니다.”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전력질주로 달려오는 상대방에게 허들 몇 개 설치한다고 막을 순 없다.
“또한 전국에 있는 양계 농장들에 시위를 독려하고, 파업에 동참시키고 있습니다.”
“양계장 시위가 공정위에 먹힐까요?”
“그놈들한텐 안 먹혀도, 그놈들이 어려워하는 놈들한텐 먹힙니다.”
공정위가 어려워하는 놈들은 바로 국회의원들을 뜻한다.
“마침 의사당과 공정위 사무소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더군요. 총력을 동원해 여의도를 뒤집어 놓을 겁니다.”
양 회장은 깡도 좋고, 머리도 비상한 사람이었다.
국회의원들이 농축수산업계를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그리고 시위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잘 안다.
만약 양계 농장주들이 한곳에 모여 대대적인 시위를 한다면?
이는 곧 국회의원들 귀에도 들어갈 것이고, TF팀 신경도 거슬리게 만들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다.
비록 법적으로 잘못됐다 한들, 축산민들의 시위를 외면하는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
적당한 타이밍에 거물급 국회의원이 중재하면 마지 못하는 척 항복해 버릴 계획이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요.”
“그나마 제일 나은 것 같습니다.”
“시위꾼 필요하면 우리도 돕겠습니다.”
사장들도 양 회장의 이 말만큼은 동조해 주었다.
양 회장은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걱정이 많겠지만, 너무 염려 마십쇼. 이 문제는 나와 우리 양계 가족들이 한번 돌파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
-양계 농장 탄압하는 파렴치한 공정위를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국가 세금으로 운용되는 공정위! 국가 먹거리사업 망치는 매국노!
-매국노! 매국노!
이튿날 아침, 여의도 아침은 수탉 울음소리가 깨웠다.
수많은 양계 농장주들이 모여 의사당과 공정위 앞을 점령했던 것이다.
-생닭 시세 인하! 축산 업계의 생존권 위협!
-양가농장 총파업 D-5, 국회가 결단하라!
이들은 조사가 더 진행되면 아예 닭 공급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양계 농장은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이고, 단합력도 좋다. 이들이 한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사정을 전혀 모르고 출근하던 준철은 아침부터 큰 곤욕을 치렀다.
-저기다! 저기 저놈이 이준철이다!
-아니, 완전 새파랗게 어린 놈 아니야?
-저 매국노 새끼 죽여!
그를 신호로 달걀 폭탄이 준철에게 날아들었다.
“뭐, 뭐야.”
당황하기도 잠시.
준철은 서류 가방을 휘적거리며 날아드는 계란을 막았다. 하지만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다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미처 막지 못한 계란이 안면을 강타했고 양복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사람이냐?”
“책상에 앉아 돈 버니까, 우리들이 우습지?”
성난 군중 몇몇은 준철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들었다.
이를 제지해 준 경찰이 없었다면 정말 대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과, 과장님.”
TF조사단은 만신창이가 된 준철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안 그래도 시위대의 위세에 잔뜩 위축되던 차였다.
하지만 준철은 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피부가 좀 좋아진 것 같지 않나요?”
“예?”
“달걀 마사지가 확실히 미백에 좋긴 하네요.”
지금 농담이 나오십니까?!
대부분 그런 반응이었다.
“저 사람들 언제부터 왔어요?”
“새벽부터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답니다. 더러는 의사당 앞으로 갔고요.”
준철은 수건으로 얼굴을 쓱쓱 문대더니 창밖을 봤다.
“얼마나 모인건가요?”
“협회 측 추산 20만 파업이라 합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경찰 추산으론 5천 명이라 하고요.”
보통 이럴 땐 경찰 측 추산이 맞다. 세력을 과시하려고 일부러 숫자를 과장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러나저러나 한 사건 때문에 5천 명이 달려오는 건 흔한 광경이 아니었다.
“요구 조건은 당연히 조사 중단이겠죠?”
“네. 5일 뒤엔 양계장 총파업까지 강행하겠다고 하는군요. 결기로 봐선 빈말이 아닐 것 같습니다.”
조사단은 준철의 대답을 기다렸다.
솔직히 너무나 성급했다. 절차적 하자가 없었다고는 하나 특수성을 감안해야지. 농축수산업은 손에 꼽을 만큼 극성스러운 집단이며, 여느 파업과 달리 국가에서 적당히 넘어가 주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대로 강행해 버렸으니 이런 파국이 오는 것은 당연했다.
“검찰에서 영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하지만 또다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곧 결과가 나올 것 같긴 합니다만……. 과장님, 정말 계속 강행하실 겁니까?”
“안 하면요.”
“총파업 얘기까지 나온 마당인데 일단 좀 지켜보시죠.”
준철이 고개를 저었다.
“시간 내서 시위 참가하는 거랑, 총파업은 다릅니다.”
“그래도 우려가 많습니다. 할 가능성도 크고.”
“그럼 감수하죠.”
그 소리가 어떻게 그리 쉽게 나와!
국민들이 불편을 느끼기 시작하면 조사에도 압박이 들어 올 텐데!
하지만 준철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너무나 확실하고 명백한 담합이다. 이건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성장통이 되겠지.
그리 생각할 때 TF팀 전화기가 울렸다.
한동안 민원 폭탄에 시달린 터라, 이젠 전화 소리만 들어도 다들 긴장했다.
조사단 한 명이 전화에 응대하더니 낙담한 얼굴로 말했다.
“과장님…… 검찰에서 압수수색 영장 나왔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군.
준철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제 기업들 자료 한번 털어 볼까요.”
조사단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1, 3팀이 해동, 원성, 동향 식품 등 가공 업체 위주로 자료 압수해 주세요.”
“네.”
“2 ,5팀은 치킨 업체들 위주로.”
“알겠습니다.”
“닭 시세를 끌어 올렸으니 분명 사재기한 정황 등이 나올 겁니다. 이런 자료들 캐치했다 싶으면 바로 보고로 올려 주세요.”
조사단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고, 역할을 배정받지 못한 4팀만 남았다.
4팀장은 짐짓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 4팀은 특별 지시 사항인가요?”
준철은 끄덕이며 서류판을 건넸다.
“전문용어 전부 다 빼고. 지금 생닭 시세의 기형적인 가격을,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도표로 만들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검찰 제출용인가요?”
준철은 아직도 격렬하게 울부짖는 시위대를 보며 말했다.
“아니오, 저 사람들 설득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