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양계 농장 총파업 (2)
총파업 예고와 가두시위, 그리고 여의도 의원들에게 보내는 팩스 폭탄.
양계 농장주들의 공세는 융단폭격에 가까웠다.
시장은 수급 불안 우려로 생닭 시세가 치솟았고, 농림식품부는 우려 성명을 내며 조속한 합의를 촉구했다.
사실 준철은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였다.
시장군수부터 지역구 의원까지 안 오는 전화가 없었다. 그래도 각자의 입장이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려 했는데, ‘그놈’들의 전화는 도무지 참아 줄 수가 없었다.
“실망입니다. 농림식품부는 누구보다 엄정 수사를 촉구해야죠.”
-허허. 누가 들으면 저희가 수사 무마라도 청탁한 줄 알겠습니다?
“합의를 할 수 없는 사건을, 자꾸 합의하라고 하시니 청탁 맞습니다.
-뭐요? 청탁?
상대방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양계 농장이 총파업 선언하면서 지금 생닭, 계란 시세가 얼마나 오른 줄 알아요? 국민들의 밥상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우리 농림부의 소임입니다.
“그래서 그 밥상 물가가 왜 이렇게 올랐는지 우리가 조사하는 거 아닙니까. 엄밀히 말해 이것도 농림부 소관이네요. 눈대중으로 봐도 한육원과 업체들의 담합이 보이는데 농림부는 조사
안 해 봤습니까?
-그건…….
농림부 관계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국육계원은 이익 집단이지만, 농림부는 엄연한 공익 집단이다. 비리가 의심되면 양계 농장을 고발해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대다수 업계 관계자는 농림부를 자신들을 보호해 줄 기관으로 여기지, 조사 기관이라 여기지 않는다.
-저희 사정 아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불편한 전화 한번 없이 총대 매 드렸습니다. 이건 모르세요?”
농림부관계자는 혹 떼려다 혹을 왕창 붙인 기분이었다.
“참고로 이 담합 최소 10년짜립니다. 추정 이익 최소 2천 억대. 과징금 한두 푼으로 끝날 사건이 아니죠.”
-…….
“마침 저희도 일손이 부족하던 참인데, 얘기 나온 김에 도움 요청 좀 해도 될까요?”
전화기 너머로 장탄식이 들렸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런 전화드릴 군번이 아니었는데.
“그럼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양계장이 총파업을 하든, 가두시위를 하든 저희는 이 조사 중단할 마음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낄 불편은 최소화해야…….
“그러니까 시장 상황 잘 통제해 주세요. 비축분이나 냉동 닭 풀면 일단 시세는 잡힐 겁니다. 최장 한 달. 그 안으론 이 사건 다 끝낼 겁니다.”
준철은 전화를 끊고, 지금까지 이 대화를 지켜보던 팀장들에게 말했다.
“급한 불 껐습니다. 앞으론 시장 상황 눈치 보지 말고 조사에만 매진해 주세요.”
별반 놀랍지도 않았다.
국회의원 전화도 뿌리친 과장이 농림부 전화에 주춤할 거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이제 뺏어 온 기업들 자료 추적해서 사재기한 정황, 멀쩡한 상품 폐기한 정황 잡아 주세요.”
“네.”
“그리고 한육원이 병아리 감축, 닭 살처분 지시한 증거 좀 더 캐 주세요. 이 자료 가지곤 5년치 담합밖에 입증 못 합니다.”
“알겠습니다.”
모두가 물러갈 때, 4팀장이 슬며시 다가왔다.
“과장님, 사실상 조사는 끝났습니다. 아까 팀장들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이미 사재기한 정황, 닭 폐기한 정황 다 나와 있었답니다.”
이젠 이 내용을 법원 제출용 증거 양식으로 바꾸는 일만 남았다.
“문제는 양계 농장을 설득하는 일인데…….”
“그새 시위 가담자들이 좀 늘었네요?”
“네. 닭값이 내려가면 그 피해가 양계 농장에도 어느 정도 미치니 저 사람들도 필사적입니다.”
1차 시위는 고작 몇 천에 그쳤는데, 이젠 어림잡아도 1만을 훌쩍 넘는다.
각계 고위 인사들이 왜 수시로 전화해 대는지 알 만한 인파다.
“해서 말인데 이젠 저희도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지 않나 싶습니다.”
“아직 부족해요.”
“……네?”
“1만이 뭐예요, 한 2만은 모여야 폭죽놀이 하는 맛이 나지.”
다급한 4팀장과 달리 준철은 여유만만이었다.
준철은 저들의 분노를 오히려 조사 동력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저들은 가격 안정화를 위해 유통권을 한육원에 양도했다. 양 회장이 유통권을 엉뚱하게 써먹었단 걸 알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썩은 달걀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건 어떻게 됐습니까?”
“예. 조사를 좀 해 봤는데,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긴 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양 회장이 욕먹기 좋을 만한 증거도 몇 가지 잡혔다.
“기업들 회계 자료에서 이상한 곳으로 입금된 정황이 몇 건 잡혔습니다.”
“얼마나요?”
“각 기업당 두 번씩, 총 40억요. 다만 이 입금된 계좌가 양 회장 계좌인지는 확인 안 됐습니다.”
“돈 받을 땐 당연히 차명으로 받죠. 이건 분명 양 회장 겁니다.”
“네. 근데 그걸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재의 닭값은 원재료보다 가공비가 더 많은 기형적인 구조였다. 만약 정상적인 한국육계원 대표였으면 당연히 이를 따졌어야 한다.
하지만 양자 간 사이는 너무 돈독했고, 이는 리베이트 의심으로 이어졌다. 기업들 회계 자료에서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다. 출처 불분명의 40억 입금이 확인된 것이다.
“입금자명이 누군데요?”
“오산서라는 40대 남자예요. 협회 간부는 아니었습니다. 일한 경력도 없고요.”
준철이 혀를 찼다.
돈 받을 때 만큼은 철두철미하게 받아먹었다.
“그럼 금감원에 계좌 확인 요청하겠습니다. 넉넉잡고 사돈에 팔촌까지 확인해 보면 되겠죠?”
“네. 그 안에 있을 겁니다.”
뭐 특수 관계인들 다 조사하면 그 안에서 잡히겠지.
***
-다음 소식입니다. 전국 양계 농장조합이 총파업을 선언한 가운데, 공정위가 조사 강행을 표명했습니다. 공정위는 해당 담합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일어난 범죄라며 엄정 수사의 뜻을
내비쳤는데요.
-농림부의 중재로 1차 파업은 넘겼지만, 양계 조합은 일주일 뒤를 다시 예고하며 파업 강행 의사를 다시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생닭 수급이 불안정해지며 생닭 시세가 4,900원까지 올랐습니다. 농림부는 파업이 현실화 될 시 시세가 6천 원까지 솟을 것이라 설명하며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은
요원해 보입니다.
상황은 뉴스 보도대로 파국에 치달았다.
양계 조합의 파업 선언과 공정위 조사 강행. 거기에 재파업 선언까지 겹치며 닭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다.
⌞이야~ 닭도 날 수가 있는 동물이구먼. 가격이 하늘을 뚫었어.
농림부는 즉각 냉동육과 비축 상품을 풀며 시세를 잡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닭값이 더 치솟을 것이란 불안에 시장에선 사재기까지 펼쳐졌다.
상황이 강대강으로 치닫자 주식시장에도 한파가 찾아왔다.
닭고기 관련주 200여 종이 내리 폭락하며 도박판이 되었다.
-이거야 말로 치킨 게임~
공정위 허세에 쫄아서 주식 파는 흑우 없제?
⌞ㄹㅇㅋ 고작 공정위가 축산 업계를 어떻게 이겨?
⌞진짜 파업 돌입하면 수사팀 즉각 해단식.
⌞건드릴 게 따로 있지. 한국에서 농축수산업을 건드리냐? 에라이~
-여러분 주식을 팔고, 그 돈으로 닭을 사세요.
되팔면 최소 8% 먹습니다. 파업까지 일어나면? 최소 20%!!
⌞ㅇㅇ 뭘 좀 아네. 조류독감 때 닭값 두 배까지 뛰었다.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냉장고에 닭 천지야.
-근데 왜 치킨값은 안 오름?
생닭 500원 오르면 치킨은 3천원 오르는 게 국룰 아니냐? 웬일로 치킨 업계가 앓는 소리를 안 하냐?
⌞치킨은 냉동육으로 만들어서 아직 수급 대란 안 옴
⌞그게 아니라 국가적 위기 상황이니, 기업이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가격 안 올리는 거지.
⌞⌞위엣 놈 주식 사놨냐? 뭔 국가적 위기에 출혈을 감수해. 생닭 대란 때 삼계탕을 금계탕으로 판 놈들이 기업들인데.
확실히 여느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주 작은 요소에도 미친 듯이 가격을 올렸던 치킨 업체들이 웬일로 조용했다.
-근데 이렇게 닭값 내려가면 치킨값도 좀 내려가냐?
그간 원재료 가격 인상 때문에 치킨값도 오른 거잖아. 그 반대면 치킨값도 내려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려가겠냐? 치킨 만들 때 원재료값이 얼마나 든다고.
⌞얼마 안 들어? 그럼 왜 닭값 오를 때, 치킨값도 올라?
⌞건수, 건수 이노마. 생닭 시세가 올라야 기업도 가격 올릴 건수가 생기는 거지.
-그나저나 이러면 닭값 더 오르는 거 아니야?
닭값이 금값이다. 무섭다.
⌞양계 농장들이 총파업이 들어갔던데
⌞양계장이 닭 안 넘기면 총파업이잖아.
⌞아, 그럼 업체들 또 치킨값 올릴 텐데. 그냥 좀 빨리 끝내면 안 되나……?
국민들도 파업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편이었지만 이번 생닭 대란은 그 파장이 남달랐다.
공정위가 현재 의심하는 기한만 10년. 액수로는 2천억대다. 이건 끝장을 보겠단 뜻이며, 양계 조합 역시 사즉생 각오로 임할 게 분명했다.
-공정위의 끝장 조사! 중단하라, 중단하라!
-양계 조합 피 빨아 먹는 조사팀, 해산하라! 해산하라!
이런 우려와 함께 시위의 규모는 날로 불어났다.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자, 각지에 있는 양계 조합원들이 우후죽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의도는 늘 닭 울음소리로 아침을 맞았고, 그 소리로 저녁을 닫았다.
그리고 그때.
이 여론을 한 번에 반전시켜 줄 뉴스가 터져 나왔다.
-공정위, 한국육계원 양철기 회장에 구속영장 청구.
-기업 간부 6명에도 구속영장.
-협회와 기업의 묘한 동거.
-출처 불명의 40억. 양 회장의 차명 계좌?
금감원에 요청한 계좌 확인 내용이 도착한 것이다.
추측했던 대로 이는 양 회장의 사촌동생 계좌였고, 10년 동안 상납금을 받아 온 정황이 묵직하게 포착되었다.
보통 당사자의 자백 등의 상황이 나오지 않는 이상 보도 자료는 꺼리는 편인데 준철은 계좌 확인이 되자 바로 이를 언론에 뿌려 버렸다. 그만큼 상황이 급했다.
-뭐야, 이 미친놈!
-양계 협회를 대변해야 할 놈이 기업들한테 돈을 받아?
-40억?
그 내막은 정말이지 자세했다.
몇 날 몇 시에 누구 계좌로, 어떤 대가로 돈이 입금된 것인지 모두 나와 있었으니 말이다.
그 돈의 대가는 양 회장의 물량 잠금비였다. 양 회장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양가 농장에 병아리 감축을 지시하면 업체들이 대가를 줬다.
그렇게 차명계좌를 통해 받은 돈이 40억.
그는 결코 양계 농장을 위한 사람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사람이라는 게 명백해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여론이 반전된 당일.
준철은 기업 사장단을 한자리에 불렀다.
“우리 이제 진솔한 얘기 좀 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