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스스로 판 무덤 (2)
“이 마진도표는 대체 뭐야?”
“닭값 시세 오른 게 기업들 배만 불려 준 거였어?”
“양 회장님, 뭐라고 말 좀 해 보세요.”
시위대가 대답을 재촉했지만 양 회장은 아무 대답도 꺼낼 수 없었다.
공정위가 돌린 팸플릿은 현 유통 구조를 너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었으니.
“어, 억측입니다. 무리한 조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고작 꺼낸 대답은 무작정 매도하기.
하지만 그것도 이젠 약발이 시원치 않았다. 준철은 더 이상 놈의 헛소리가 지속되게 놔 둘 생각이 없었다.
“조사 정당화가 아니라 리베이트성 담합이었죠. 양철기 씨는 지난 10년 동안 기업들에게 각종 리베이트를 받아 왔습니다. 차명 계좌로 입금 받은 돈만 40억. 명절 때마다 받은
백화점 상품권 3억 원.”
“뭐, 뭐야?”
“뿐 아니라 해외 출장 등에 갈 때 기업에서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까지 받았습니다.”
양 회장은 관료 출신답게 돈 받아먹을 줄 아는 놈이었다.
때마다 기업들에게 명절 선물을 받아 냈고,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 법인 차 대절 등의 간접 로비도 받았다. 그렇게 직간접적으로 받은 돈만 총 63억대. 이 모두 기업에서 직접
시인한 내용들이다.
“이 모두 10년 동안 이뤄진 내용들입니다.”
준철은 기업에게서 받은 자백 내용을 시위대에 공개했다.
하지만 언제나 진실은 받아들이기 괴로운 법. 몇몇 광신도들은 오히려 더 크게 역정을 부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양 회장님이 부임한 지가 10년이야, 10년! 그 기간 동안 리베이트 받았다는 게 말이 돼?”
“…….”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양 회장님 없었으면 지금처럼 닭 시세 높지도 않았어. 누구보다 양계 농장을 위해 힘쓰신 분이라고.”
“…….”
“양 회장님! 시원하게 반박 좀 해 보세요. 저거 과잉 조사, 명예훼손으로 다 걸고넘어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양 회장은 땅만 바라봤다.
자신을 향한 믿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도 이제야 실감했다. 공정위가 제시한 증거는 모두 반박할 수 없었다.
“아, 말 좀 해 보십쇼.”
“이건 아니잖아요.”
함께 지켜보던 준철이 도리어 딱한 눈빛을 지었다.
저런 전폭적인 믿음을 뒤로하고 뒷돈을 받아먹었으니 뭐라 할 말이 있겠나. 마음 같아선 당장에 저 시위대를 바로 해산 시키고 싶을 것이다. 공정위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이 자리가
공개 처형장으로 느껴질 것이다.
“여러분……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이윽고 그가 입을 뗐다.
“정부에서 닭고기 관세 인하한다 했을 때, 누가 앞장서서 그거 막았습니까.”
-아, 두말해 뭐 해? 양 회장님이지!
“조류독감이다 뭐다 정부에서 닭 살처분 지시 내려왔을 때, 제가 보상금을 얼마나 받아 내 드렸습니까!”
양철기는 목청이 찢어질 듯 외쳤다.
“그거 다 이 양철기가 해냈습니다! 우리 양계 조합을 위해 양철기가 불철주야 뛰어다녔다는 점, 여러분들 오직 그거 하나만 잊지 말아 주십쇼.”
아주 예수님 납셨구먼.
준철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발악을 감상했다.
“이 양철기 오로지 양계 조합을 위해…….”
-듣자듣자 하니까 왜 자꾸 딴소리야! 묻는 말에나 대답해, 당신 기업한테 돈 받았어?
“그나마 닭 시세가 올랐기에 여러분들의 수익이…….”
-대답하라고! 당신 우리 몰래 돈 받았어? 공정위가 하는 말들 다 사실이야?
하지만 그 쇼가 계속될 순 없었다.
동문서답이 계속되자 시위대가 더 격렬하게 대답을 요구했다.
“조, 조금의 접대는 받았습니다.”
-접대? 조금?!
“……하지만 여느 회사원들이 받는 수준의 접대였습니다. 비즈니스 하면서 어떻게 술 한잔 부딪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해를 바라는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누가 술 받아먹었다고 이래?! 술이 아니라 돈을 받아먹었잖아.
-어떤 미친놈이 차명 계좌로 기업한테 접대를 받아!
“하, 한 번만 굽어 살펴 주세요.”
이쯤 되자 시위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미친놈, 공정위 말이 사실이네!
-닭고기 유통권을 꽉 쥐고 있는 놈이 기업한테 리베이트를 받아?
-누가 그러라고 한육원한테 독점권을 양도한 줄 알아?
공정위 조사단들이 부랴부랴 시위대를 막았지만 이들의 분노를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우리한테 병아리 감축 지시한 것도 다 네 뒷돈 챙기려고 그런 거냐?
-멀쩡한 닭을 왜 살처분 지시했어? 노계를 헐값에 파는 건 왜 막았어?
-모두 우리를 위한 일이었다며! 다 네 주머니를 위한 일이었잖아!
당해도 싼 놈이었다.
국가에서 열악한 양계장 환경을 생각해서 독점 유통을 허락해 줬는데, 그 권한을 엉뚱한데 써먹었으니.
-죽어!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그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땐 하늘에서 또다시 계란 세례가 쏟아졌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남은 절차는 저희 공정위가 제대로…….”
퍽-!
준철은 이를 뜯어 말리는 과정에서 2차 계란 폭탄을 맞아야 했다.
법적 절차대로 놈을 처벌할 것이라 호소했지만 요지부동. 성난 군중은 계란을 던지고 메가폰 볼륨을 키우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각 팀장님들은 일단 시위대 수습해 주세요.”
“예.”
“황 팀장님, 일단 여기 벗어납시다.”
준철은 만신창이가 된 양 회장을 엄호하며 건물 본사로 급히 피신했다. 도망가는 와중에도 계란 폭탄이 뒤통수에 꽂혔다.
본사로 피신하니 또다시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놈이 끌어모은 시위대는 완벽하게 공개 처형장이 되어 버렸다.
“괜찮으세요?”
준철은 수건을 건네며 양 회장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양 회장은 손을 달달 떨며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긴 지금까지 담합을 한 게 얼마인가. 이 죗값을 다 감당하려면 정말이지 보통 정신으론 될 게 아니었다.
“모든 절차는 다 법대로 집행될 겁니다. 이쯤 됐으면 자백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
“더 이상 잡아떼지 않으실 거죠?”
이에 대한 대답은 굳이 들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양 회장의 얼굴이 준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
[10년 독재자의 몰락, 양철기 회장 혐의 시인] [차명 계좌 등을 통해 기업들에게 대가를 받아] [양계 농장 조합, 엄벌 촉구 요구하며 한육원 앞 시위] [수사 내용 모두 밝혀라!]반전된 분위기는 언론사들을 통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란 말이 지금처럼 잘 들어맞을 수가 없다.
양철기의 10년 천하는 온갖 비리투성이였다.
그가 받은 엽기적인 리베이트 방식은 만천하에 다 드러났다.
이에 공정위는 즉각 양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하루 만에 이를 받아들였다.
양 회장의 구속 집행 당일엔 또다시 시위대가 모여 엄벌을 촉구했다.
“양철기 씨, 보석 신청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바깥이 더 위험할 거예요.”
준철은 잡혀 온 그를 보면서 그리 조언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이미 시위대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는 터라, 이를 방어하는 경찰들이 난감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바깥보다 더 안전할 것이다.
“검사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준철은 담당 검사에게 그리 부탁하고 한육원 본사로 다시 향했다.
한육원 본사엔 비상대책위 간부 1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사실 여긴 여기대로 지옥이었다. 양 회장의 최측근 네 명도 동시에 구속되었으니 말이다.
그 네 명 모두 한육원 요직에 있던 자들로 양 회장 못지않게 기업들에게 리베이트를 받은 자들이었다.
“저희 상황을 잘 아실 테니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대위원장 오인성 재단이사가 말했다.
“현 비대위 10인 간부는 모두 양철기 회장과 관계없는 사람으로, 기업들에게 뒷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네. 그건 확인했습니다. 반대 파벌이셨더군요.”
준철이 그리 말하자 조금 안심한 기색들이었다.
“……한육원에 대한 처벌은 피할 수 없겠지요?”
“네. 국가에서 허용한 독점 유통권을 허튼 데 쓰셨으니 제재가 뒤 따를 겁니다.”
“처벌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준철이 서류를 꺼냈다.
“이게 기업들에게 부과한 과징금입니다. 규모 1위인 해림에 400억 등 도합 16개 기업에 1,500억대 과징금이 부과되었죠.”
듣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해졌다.
과징금 1,500억대.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 액수다.
“기업들 모두 이 과징금에 승복했고요.”
그걸 단숨에 승복해 버리다니 이젠 끝난 게임이나 다름없다.
오인성 이사는 쓴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희 처벌을 말씀해 주십쇼.”
“협회에 대한 과징금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총 15억 3천만 원.”
“추가 제재는 뭡니까?”
“독점 유통 지위를 3년간 박탈하고, 정부 보조금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유통권 독점은 한육원 자체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이러면 양계 농가에 가는 피해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출하량 조절 등의 역할은 농림식품부가 대신할 계획입니다.”
“하면 3년 후엔……?”
“양계 농장주들 의견에 따라야죠. 하지만 그 지위를 회복한다 해도 예전과 같을 순 없을 겁니다. 협회 간부 3인은 반드시 외부 인사로 협회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
“더불어 4년마다 농림식품부에서 정기 감사를 실시할 겁니다. 만약 수상한 이유로 닭을 살처분하거나 병아리 감축을 지시했다면 많이 곤란해질 겁니다.”
한마디로 국가기관의 감시를 꾸준히 받는 것이다.
외부 인사를 간부로 앉히면 협회 내 자리 돌려 먹기도 막을 수 있다.
“잘못은 인정합니다만 너무 과한 부분이…….”
“만약 거부하신다면 재판으로 가야죠. 근데 재판으로 가신다면 과징금은 최소 두 배에, 한육원의 지위도 이보다 더 제한될 거란 걸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사실 오늘은 간담회 자리가 아니었다.
승복 안 하면 정말 한육원을 초주검으로 만들겠다는 협박의 자리지.
사실 과장으로의 편리함은 여기서도 작용이 됐다. 처벌 수위를 정할 때도 엄청난 보고가 잇따르지 않나. 이제는 그런 과정이 없다.
재단 이사는 눈치를 살피다 말을 이었다.
“……승복하겠습니다. 그리고 공정위의 시정 조치 또한 받아들이겠습니다.”
준철이 지그시 웃었다.
드디어 10년 담합의 종지부를 찍었다. 치킨값이 좀 싸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