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스스로 판 무덤 (3)
-다음 소식입니다. 10년간 담합을 주도했던 요식업체와 한국육계원이 담합 사실을 모두 시인했습니다. 생닭 시세를 인위적으로 인상시키고, 자사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한 건데요.
기업들은 순번을 정해 생닭을 사재기하고 폐기했습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왜 이랬던 걸까요?
-(공정위 관계자) 가공품 가격이 원재료보다 수배 이상 비싸다는 점을 악용했습니다. 실제 생닭의 가격이 킬로당 100원 오를 때, 치킨, 닭가슴살 통조림 등의 가격은 1천 원 이상
올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공정위는 이를 주도한 한육원 양철기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또한 양 회장이 기업들에게 받은 수십억의 리베이트 정황까지 공개했는데요. 법원은 이틀 만에 영장을 발부하며 그
증거를 상당수 인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육계 시장에 큰 파장이 미칠 전망입니다.
기업과 한육원이 모두 처벌에 승복하며 관련 사실이 뉴스로 보도되었다.
국민 간식 치킨이 비싸진 건 수요 때문만이 아니었다.
공정위가 파악한 담합 이익만 총 5천억대.
10년 동안 기업들은 43차례 물량 사재기를 했고, 양 회장은 56차례나 병아리 감축을 지시했다.
밥상 물가와 직결된 만큼 커뮤니티에선 ‘닭플레이션’ 도표가 성행하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치킨과 닭고기 통조림 시세를 나타낸 도표였는데, 그 내용이 기가 막히게 자세해 법원에 증거 자료로 써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한육원이 보상하라!
-멀쩡한 닭 살처분 누가 지시했나!
-우린 누구에게 보상받는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담합의 최대 피해자는 양계 농장들이다.
5천억대 담합 이익 중 양계 농장으로 들어간 돈은 전무했다. 부풀린 닭값은 다 염장비와 운송비로 빠져나가지 않았나.
이들은 양철기란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렸다.
거대 유통사들로부터 양계 농장을 보호해야 하는 게 한육원의 역할이거늘. 보호는커녕 협회 수장이 뒷돈 챙겨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닭값 인상시켜 줬다고 한없이 고마워했으니…… 자괴감이 두 배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처벌은 처벌이다.
준철은 담합의 지속성, 추정 이익 등을 근거로 총 1,600억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 규모가 농축수산업계에선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과징금이었다.
이 처벌이 얼마나 컸던지, 세간에선 어협, 농협 등이 벌벌 떨고 있단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사실 이건 굉장히 기이한 광경에 속했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은 과징금에 잘 승복하는 집단이 아니지 않나.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닌 회사 대들보를 뿌리째 뽑아 가는 1,600억대 과징금이다.
“아니, 기업들이 이걸 다 승복해? 행정소송도 안 하고?”
“응, 이야기 들어 보니 형사처벌 가지고 합의 봤대.”
“아, 기업들한텐 형사처벌 안 한 거야?”
“양철기만 집중 타격한 거지.”
사실 돈을 받은 놈 못지않게 준 놈도 나쁜 놈이지만,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다.
준철은 돈을 건넨 기업들 책임자는 모두 불기소처분으로 끝냈다.
이 덕분에 빠른 자백을 받아 내며 조사를 쉽게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언론에 해당 내용이 모두 나갈 때, TF팀은 공식적으로 해단식을 가졌다.
“담합 규모가 꽤 커서 다루기 힘들었을 텐데, 조사단 여러분 덕분에 조사가 수월했습니다.”
준철은 고개를 돌렸다.
“특히나 4팀. 누가 들어도 알아듣기 쉽게 팸플릿 준비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거야 과장님이 다 지시하신 거죠.”
조사를 성공적으로 끝내서일까, 다들 얼굴이 밝았다.
사실 카르텔조사국에서 기업들의 승복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았다.
보통 담합은 기본이 천억대 심하면 조 단위로 터졌으니까.
범행을 들키면 그때부턴 과징금을 최대한 깎으려고 1, 2심은 기본으로 갔다.
하지만 젊은 과장이 지휘하며 이 모든 걸 한 방에 해결하지 않았나.
모든 과장들이 7개 팀은 필요할 거라 했는데, 2개나 적은 5개 팀으로 토벌해 버렸다.
익히 소문은 들었다만, 그 솜씨에 경외감이 들 지경이었다.
***
똑똑.
“국장님, 이준철 과장입니다.”
“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르텔국 조상호 국장이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 말씀 나누고 계셨으면 나중에 올까요?”
“나중은 무슨, 한창 자네 얘기 중이었는데. TF팀은 해단했나?”
“예, 오늘로써 사건 모두 종결지었습니다.”
유경민 국장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우리 조 국장은 이 과장한테 크게 한턱내야겠다. 알지? 담합 사건은 기업들이 어지간해선 승복 절대 안 하는 거.”
“그렇게 말 안 해도 내가 술 한잔 사겠다 말하려 했어. 유 국장은 꼭 초를 치더라.”
“난 또 커피로 때울까 봐, 하하.”
조 국장은 준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카르텔국 조 국장이야. 이번에 발령받았다고?”
“예, 처음 뵙겠습니다, 이준철 과장입니다.”
“소문은 익히 들었어. 팀장 때도 굵직한 사건만 맡았다더니, 이번에 아주 실력 구경 제대로 했네.”
준철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에 대한 소문이 그리 좋지는 않을 텐데.
“감사합니다.”
“종합국이면 앞으로 우리랑 업무 보조 할 일 많을 테니, 잘 좀 부탁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유 국장은 흐뭇하게 웃더니 한마디 거들었다.
“조 국장님,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잘 좀 부탁합니다. 우리 종합국은 급할 때마다 불 꺼 주러 다니는데, 꼭 일 끝나면 찬밥이더라.”
“또 그 소리야.”
“늘 뒷얘기 많이 나오잖아. 특별히 부탁해.”
국장들은 조사가 끝날 때마다 고과 점수를 매긴다. 특히나 이번처럼 큰 사건의 경우, 누구를 밀어주느냐에 따라 공정인 상 수상자가 가려질 수도 있다.
고과는 당연히 그 역할에 따라 점수가 배분되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어지기 마련.
종합국은 일만 실컷 도와주고 변변한 점수도 못 얻어 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걱정 마. 이번 사건은 이 과장 안 밀어주고는 나도 못 배길 것 같으니까.”
“흐허허.”
“그럼 나중에 좋은 자리에서 한번 보지.”
조 국장은 준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를 떠났다.
유 국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한결 편한 자세로 말했다.
“나도 실력 구경 한번 잘했다. 아주 시원시원하게 일 처리 잘했더군.”
“감사합니다.”
“근데 성미를 보니 영 고과 점수 같은 거엔 관심이 없나 봐?”
점수뿐만 아니라 아예 출세에 욕심이 없는 놈이다.
세종 본청으로 갔다가 여기로 돌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공정인 상도 한번 타 보고, 해외 연수도 다녀와 봐서…… 딱히 큰 욕심이 없었습니다.”
유 국장이 혀를 찼다.
“자넨 나한테 생색내는 법 좀 배워야겠구먼.”
“예?”
“팀장으로선 그래도 돼. 일 잘하고 생색도 안 내는 팀장은 보물이니까. 근데 과장은 지휘부다. 일만 잘하고 성과는 못 챙기는 과장을 어떤 팀장이 따르겠어?”
준철은 그 뜻을 한 번에 알아들었다.
평사원에서 임원까지 진급해 본 김성균 아닌가.
회사 생활할 때 가장 따르기 싫은 상사는 일만 잔뜩 받아 오는 멍·부들이었다.
“제가 또 그렇게 멍청하고 부지런한 유형은 아닙니다. 챙길 땐 확실하게 챙깁니다.”
유 국장은 준철을 슬며시 훑었다.
살짝 발끈하는 걸 보니 성격이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국장님이 보시기엔 많이 부족할 겁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흐허허, 자네 입에 발린 소리도 좀 할 줄 아는구먼.”
적당히 자신을 낮추면서도 할 말은 할 줄 안다.
유 국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마음에 든다.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고.”
“네.”
“그나저나 자네 과의 팀장들은 다 만나 봤나? 부임하자마자 내가 사건을 맡겨 버려서 좀 걸렸는데.”
“팀장 2명이 파견 나가 있더군요. 그 친구들 빼곤 다 만나 봤습니다.”
사실 준철은 왜 유 국장이 이런 말을 대뜸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첫 대면에서 팀장들이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비단 경험이 부족하고 나이가 어려서 때문만이 아니다. 새로 부임한 과장이 팀장 시절 어떤 사건을 맡았는지 알고 있으니, 모두 거리를 두는 거겠지.
유 국장은 아무래도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를 읽은 모양이었다.
“그 친구들은 다음 주에 다 복귀할 거야. 신상은 알지?”
“예, 행시 출신 사무관이라고 들었습니다.”
두 명의 남자 사무관이라고 들었다.
모두 20대 후반으로, 준철보다 나이도 어린 직속 후배들이다.
“나이 많은 팀장들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수월할 거야.”
“네.”
“좀만 있으면 정기회의지?”
“그렇습니다.”
“그때 인사 나누고, 또 다른 팀장들하고 좀 더 친해져 봐.”
유 국장은 어깨를 툭툭 쳤다.
“나이 많은 팀장들이 불편하겠지만 그것도 한때다. 집무실로 불러서 커피 자주 타 줘. 그것만큼 좋은 게 없더라.”
“명심하겠습니다.”
준철도 기분 좋게 조언을 들었다.
꼭 손자에게 격대 교육을 시켜 주는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고 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다른 팀장들하고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에 있는 유 국장과는 빨리 가까워질 것 같았다.
***
닭고기 파동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공정위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준철은 각 팀장들이 올린 보고서와 업무 내용을 보고받았다.
종합국은 담합, 갑질 등 공정위에서 안 맡는 사건이 없다. 준철은 조사 내용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결재를 도맡았다.
그렇게 사건을 보고받고 결재 사인을 하는 날이 많아지자, 새삼 과장이 어떤 자리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거 조사 꼬이면 다 내 잘못이 되는 거지?’
권한이 높아졌다는 건 책임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지금 갈긴 사인 하나가 어쩌면 징계위원회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리 생각하니 사건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쏟아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새삼 오 과장과 김 국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자기 같은 놈이 밑에 팀장으로 들어온다면, 그들처럼 믿어 주고 지켜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가만있자. 정기회의가 언제지?’
준철은 달력으로 눈을 돌렸다.
정기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행사로, 현황을 듣는 자리다.
주로 월초에 진행되는데, 마침 다음 주 월요일이 월초였다.
‘지난번에 인사 못 한 두 팀장도 있다 했지?’
행시 출신이라고 들었다.
뭐 다음 주가 되면 겸사겸사 얼굴을 볼 수 있겠지.
‘어떤 타입일까?’
현실에 찌든 팀장? 아니면 자신의 옛날 모습을 보는 듯한 열혈 팀장?
되도록 후자였으면 좋겠다.
진짜로, 제대로, 잘 가르쳐 줄 자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