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정기회의
“아휴, 복귀하기 싫다.”
“왜 또 앓는 소리야?”
“일해 보니까 딱 알겠어. 난 종합국 체질이 아니야.”
“약관심사과에 처음 파견 왔을 때도 같은 소리 했잖아. 네 적성 아니라고.”
“배부른 소리였지. 겪어 보니까 공정위 최고 보직은 약관팀이야. 정시 출퇴근 보장되고, 현장에 실사 안 나가도 되고. 얼마나 좋아?”
행시 동기 서도윤과 배명철은 담배를 피우며 넋두리를 했다.
이제 겨우 2년 차인 두 사람은 고시 동기들 사이에서 불운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공정위로 왔건만, 하필 첫 발령지가 자타공인 기피 부처인 종합국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지난 1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담합 터지면 갑자기 카르텔국으로 차출되고, 갑질 터지면 기업거래국, 과장 광고 터지면 안전정보과로 차출되는 게 종합국의 숙명이었다.
연이은 파견에 두 사람은 전임 과장에게 하소연도 해 보았다.
-고충은 이해한다만,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행시들은 다 국장 이상 급으로 진급하는 거 알지? 많은 사건을 경험해 보는 게 두 사람에게도 좋아. 적응만 하면, 종합국처럼
편한 곳이 없어.
그렇게 둘러대던 전임 과장은 정작 기회가 오자 미련 없이 종합국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화장실로 자리를 옮기는 와중에도 서도윤의 불평이 계속됐다.
“오늘따라 엄살이 심하네? 새로 부임한 과장 때문이지?”
“그래, 얘기 들어 보니 완전 미친개라더라.”
“야, 말조심해, 미친개라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뭐, 내가 지어냈냐.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부르던데.”
오늘따라 서도윤의 불평이 심했던 건 새로 부임한 과장 때문이었다.
“이번에 한육원 담합 사건 봤어? 전국 양계장들이 공정위 앞에서 벌 떼처럼 시위하던데,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
“그래…… 뚝심은 있어 보이더라.”
“뚝심이 아니라 그건 똥고집이야. TF조사단이 달걀 세례를 그렇게나 맞았대.”
다른 과장이었다면 절대로 이 사건 이렇게 해결 안 한다.
적당히 만지다 권고로 끝내거나, 농림부 같은 관할 부처에 사건을 넘겼을 것이다.
그럼 비록 비리 규모를 다 드러낼 순 없겠지만, 누가 뭐 그거 다 밝혀낸다고 포상해 주나?
하지만 그 미친개는 기어코 조사를 강행했고, 축산업계에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600억대 과징금을 부과해 버렸다.
“그리고 그 양반 팀장 때 맡았던 사건들 들어 봤어?”
“군부대 입찰 담합?”
“그건 애교지. 은행들 금리인하권, 대한전력 하청 근로자 사망 뭐 정치권에서도 뜯어말리는 사건들 죄다 건들고 다녔어.”
준철의 팀장 시절 활약상은 도시괴담이 아닐까 싶을 만큼 파란만장했다.
의문이 생기면 의문이 풀릴 때까지 파는 집요한 유형이다. 새로 부임한 과장은 미친개라는 표현이 딱히 과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전임 국장이 정치권에 미운털 잔뜩 박히고 퇴임했다잖아.”
“근데 그건 그 과장 잘못이 아니지 않냐? 재임 자료 턴 건 정치권이 옹졸했던 거지.”
“위에서 눈치 주면 적당히 눈치 보는 것도 공무원 소양이야! 내가 봤을 때 우리 과장은 딱 눈치 없이 일만 멍청하게 하는 사람이야.”
쏴아악.
그때 변기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며 웬 사내가 세면대로 왔다.
‘이크, 들었나?’
두 사람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는 한눈에 봐도 행시 출신으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종합국에 행시 출신은 없었기에 두 사람은 조금 안도했다.
뭐, 타 부처 사람이면 욕하는 소릴 들었더라도 상관없지.
젊은 사내는 이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며 비누로 손을 씻었다.
“서 팀장, 얼른 가자. 정기회의 곧 시작하겠다.”
“어, 그래. 306호 회의실 맞지?”
“응.”
그때 문득 손을 씻던 사내가 말했다.
“아, 그럴 필요 없어. 두 사람은 내 집무실로 올라가.”
‘이게 뭐지?’ 하기도 잠시.
“오늘 종합국 정기회의는 내 집무실에서 하기로 했거든, 간단히 팀장들하고만.”
“……예?”
“두 사람 종합국 소속이지?”
배명철과 서도윤은 메두사 대가리를 본 것처럼 몸이 굳어 버렸다.
설마…….
“반갑다. 내가 종합국 미친개, 이준철이야.”
***
“부임하자마자 사건을 맡아서 제대로 인사 나눌 겨를이 없었네요.”
정기회의는 가벼운 차담회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준철은 커피 7잔을 손수 타며 말을 이었다.
“제 집무실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어려운 일 있으면 자주 찾아와서 의견 나눠 주세요.”
일전에 다소 뻣뻣했던 팀장들 얼굴이 오늘은 좀 누그러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육원 담합 사건은 이미 공정위 내 파다하게 퍼진 터였다. 1,600억대 과징금을 깔끔하게 승복시켰다던가?
기업들은 160억 과징금도 승복하는 족속들이 아니다. 근데 그 열 배인 1,600억대 과징금을 어떻게 승복시켰담?
비록 함께 사건을 맡은 건 아니지만, 신임 과장의 업무 실력이 어떤지 눈에 그려졌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자주 와야겠네요.”
“네. 구내 카페다 생각하고 자주 들러 주십쇼.”
“오- 과장님, 커피 맛이 일품인데요?”
“제가 또 본청에 있을 때 별명이 바리스타였습니다.”
빈말이 아니다.
사실 과장도 지방사무소에서나 지휘부지 본청에선 말단이다. 거긴 복도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이 다 행시들이다.
회의만 했다 하면 최소 국장급, 차관급이었으니, 준철 같은 과장들은 커피만 부지런히 날랐다.
“아예 드립커피기를 여기에 배치해서 종류별로 준비해 놓을까 합니다.”
준철의 넉살스러운 반응에 집무실엔 웃음꽃이 폈다.
하지만 모두가 웃는 와중에도 배명철과 서도윤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젠장, 회사에서 제일 입조심해야 할 곳이 화장실이라더니,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게 뭐람!’
-반갑다. 내가 종합국 미친개, 이준철이야.
방금 전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 어떠한 변명도 필요가 없다. 오늘부로 단단히 찍혔다.
“배 팀장, 서 팀장?”
“예, 예?”
“커피가 입맛에 안 맞나?”
“아, 아닙니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는 처음 먹어 봅니다.”
“입에도 안 댔으면서 무슨.”
그 말이 또 위협적으로 들렸는지 두 사람은 그 뜨거운 커피를 바로 원샷으로 때렸다.
준철은 피식 웃으며 찻잔을 내려놨다.
“사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저에 대해서 잘 아실 겁니다.”
“…….”
“제가 팀장 시절 종합국에서 일하기도 했고, 또 민감한 사건도 많이 만져 봐서 억울하게 유명 인사가 된 감이 있습니다. 근데 제가 또 힘든 사건 좋아하는 만큼, 그 성과도 확실히
챙겨 가는 사람이거든요.”
배명철과 서도윤은 이게 꼭 자신들을 저격하듯 꺼내는 말 같았다.
“수고한 만큼 반드시 그 성과도 챙겨 드릴 거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이에 1팀장이 말했다.
“그래 주신다면 너무 감사하죠. 솔직히 타 부처는 우리 종합국을 무슨 막노동 잡부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귀찮고 힘든 일은 전부 저희한테 떠밀고 자기들은 서류 작업만 하는 감이 있어요.”
“물론 업무 특성상 저희가 보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긴 한데…… 그래도 좀 고과는 공평하게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툭 터놓고 대화하니 이들이 왜 처음에 경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늘 찬밥 신세로 당하고 사는 게 이들 아닌가. 민감한 사건 좋아하고, 큰일 마다하지 않는 과장이 못내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염려 마세요. 타 부처에서 협조 요청 오면, 저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담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업무 얘기가 나왔다.
“저희 1팀은 현재 갑질 사건을 조사 중입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가맹점에 비싼 수수료를 물게 했더군요. 판촉비도 가맹점들에게 전가시키고.”
“저희 2팀은 기업거래국과 산재 사건을 조사 중입니다. 건설업계 쪽인데, 원청에서 산재 사망 사고를 덮은 것 같습니다.”
공정위의 토탈팀인 만큼 종합국이 맡는 사건은 각양각색이었다.
“해서 이 문제는 바로 소환조사를 할까 싶은데요.”
“소환조사로 이게 될까요?”
“하면…….”
“영장 작업 하세요.”
참으로 이색적인 회의였다.
보통은 팀장들이 조사 수위를 높이면 과장들은 뜯어말리기 바쁘다. 결과가 없으면 과잉 조사로 역공을 당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젊은 과장은 상당히 공격적인 조사를 지시하고 있었다.
“그 사건은 구속영장까지 친다 생각하고 빨리 진행하는 게 좋겠네요.”
“아, 예…….”
“근데 아마 검사들이 영장 잘 안 써 줄 겁니다.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준철은 팀장들에게 폭풍 같은 지시를 내린 후, 혈기 왕성한 신입 팀장들에게 눈을 돌렸다.
“두 사람은 약관심사과에서 이제 막 복귀했지?”
“아, 예.”
“무슨 사건이었어?”
서도윤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과잉 진료를 유도하고, 그 비용을 전부 보험사에 청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음- 굉장히 평범한 사건이었네?”
병원과 보험사가 싸우는 건 이 업계에서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
의사들의 ‘가라 진단’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허리 잠깐 삐끗한 환자에게 CT와 MRI를 찍어 버리는 경우는 다반사.
때론 환자가 의사에게 과잉 진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의사가 꼭 필요한 진료였다고 둘러대면 모든 비용을 보험사에서 지불해야 했으니.
“네, 약관팀에선 굉장히 흔한 사건이라 하더라고요.”
“근데 그건 공정위가 딱히 나서 줄 수가 없는데?”
“네, 양측 다 기업들이라 적당히 중재로 끝냈습니다.”
솔직히 공정위가 누구 편을 들어 줄 수 있겠나.
이건 그냥 보험사랑 병원이랑 알아서 잘 해결해야 한다.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사실 이건 문제라 볼 수 있을까 싶은데…….”
배명철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 과정에서 투서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투서?”
“한성대병원이 제약업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제보였는데요.”
준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리베이트?
“보험사랑 대학병원이 싸우는데, 왜 갑자기 제약 회사 리베이트 얘기가 나와?”
“아무래도 보험사가 악의적으로 우리 쪽에 제보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대강 그려졌다.
보험사는 대학병원이랑 싸웠을 것이고,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공정위에 투서를 날린 거겠지.
“근데 그 내용이 상당 부분 그럴듯하더라고요.”
“자세해?”
“네. 저희가 슬쩍 한성대병원 처방 기록을 회수해 봤는데요. 7년 동안 한 제약업체에게 처방을 몰아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감정싸움으로 끝낼 문제가 아닌 듯 보였다.
보통 이렇게 적대적 관계의 기업이 날리는 투서가 신빙성은 높다.
“약관팀에선 뭐래?”
“공식적으로 신고된 사건은 아닌지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근데 또 거기에 앙심을 품고 2차, 3차 제보를 투척해서…….”
“그래서 한 달 동안 파견에서 돌아오지 못한 거야?”
“예. 근데 저희 쪽에서 무시하니 결국 그쪽에서 포기한 것 같습니다.”
준철은 턱을 쓰다듬더니 대뜸 말했다.
“그럼 그 제보 좀 가져와 봐.”
“예?”
“원래 기업들끼리 진흙탕 싸움할 때 신빙성 있는 뒷얘기가 많이 나오거든. 그 자료 나도 한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