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정기회의 (2)
메디신제약 김성득 대표는 아침 회의에서 고성을 질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대체 왜 불똥이 우리한테 튀어!”
사실 한성대병원의 과잉 진료는 업계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다.
의료진들의 실력에 비해 병상이 턱없이 부족했고, 재단은 만년 적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병원’이란 자부심을 집어치우고 2인 병실을 vip병동으로 개조하거나, 과잉 진료, 비급여 처방을 남발하는 등의 수익 사업에 골몰했다.
업계에선 칼 대신 메스를 든 강도란 비아냥이 나왔다.
이번 사건도 그 장사치 기질을 못 버려 터진 것이다.
보통 대학병원은 환자들에게 보수적인 치료로 유명하건만, 이건 뭐 접촉 사고 환자도 CT, MRI를 기본으로 찍어 버리니.
참다못한 보험사 세 곳이 연합해 이를 항의했고,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다들 뭐라 말 좀 해 봐. 우리가 한성대병원에 리베이트한 자료가 왜 보험사들 손에 들어가 있어?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
“입 안 열 거면 내가 한번 맞혀 봐?”
두말해 뭐 하겠나.
바로 이 회의실에 쥐새끼가 한 마리 있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한 마리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누차 강조했을 거야. 딴 놈한텐 다 술 얻어먹고 다녀도 절대 보험사들한텐 접대받지 말라고.”
“…….”
“누구야? 어떤 새끼가 우리 리베이트 자료 깠어?”
십여 명의 임원들이 모두 고개를 책상에 처박았다. 이럴 땐 눈도 함부로 마주쳐선 안 된다.
모두가 침묵을 지킬 때 메디신의 2인자인 홍영수 사장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보험사들이 제약 회사들 리베이트 자료 쥐고 있는 건 공공연한 일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보험사들이 금도를 어겼습니다.”
사실 보험사들은 꾸준하게 병원들의 약점거리를 찾는 족속들이다. 늘 싸우는 존재들이니.
그래도 어지간해선 그 비밀을 안 푸는데, 이번엔 보험사들이 그 금도를 완전히 어겼다. 물론 한성대병원의 횡포가 그만큼 심했던 거겠지만.
홍 사장의 읍소에 김 대표의 머리도 한결 차가워졌다.
“그럼 홍 사장이 향후 대책도 말해 봐. 우리 지금 뭐 해야 돼?”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입니다. 보험사에서 투서를 계속 날렸다고는 하나 공정위에선 여타 할 반응이 없잖습니까.”
“투서 내용 못 봤어? 이미 자세하게 폭로됐다.”
“근데 아직 반응이 없습니다. 공정위도 이 제보 자료가 무슨 목적인지 아는 겁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공정위는 이 투서에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찝찝함을 다 지울 순 없다. 보험사들의 투서 내용이 작정이라도 한 듯 자세하지 않았나. 만약 별건 조사가 시작되면 리베이트를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대표의 불안함을 읽은 건지 임원들도 한둘 입을 열었다.
“대표님, 너무 염려 마십쇼. 만약 공정위가 별건 조사 들어갔을 거라면 진작 했을 겁니다.”
“그리고 한성병원이 저희한테만 리베이트를 받았겠습니까?”
“아닌 말로 제약 회사한테 리베이트 받는 대학병원이 한두 곳인가요. 한성병원 까면 다른 곳도 다 까야 되는데 이건 공정위도 감당 못 합니다.”
공정위가 왜 이렇게 자세한 제보를 받았는데도 별건 조사를 하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제약 회사 리베이트는 업계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는 일이니 손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의료인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만 모인 특수 집단. 여느 기업과 달리 여긴 파업할 기미만 보여도 온 국민이 불안에 떤다. 근데 이 벌집을 들쑤실 미친 공무원이 과연 있을까?
생각이 이쯤 미치니 김 대표 얼굴에도 불안감이 많이 가셨다.
“빌어먹을 놈의 보험사들. 병원이랑 얘기 안 풀린다고 이걸 찔러? 쯧쯧, 근데 그 제보 내용은 얼마나 자세했어?”
“저희가 재단에 장학금 기부한 내역이랑 의사들 회식비를 저희 법카로 긁은 게 걸렸습니다.”
“그 두 개만 걸린 거야?”
“병원장에게 명절마다 백화점 상품권 돌린 것도…….”
“해외 학회 참석에 저희가 비행기를 업그레이드시켜 준 것도…….”
김 대표가 혀를 찼다.
“걸릴 건 다 걸렸구먼.”
“사실 그렇습니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도 이제 좀 리베이트 그만하면 안 되나?”
메디신도 피해자라면 피해자다.
대학병원이 원청이면 제약 회사는 납품 업체. 이번 사건도 한성대병원이 리베이트를 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해서 들어 준 것이었다.
“내가 안 그래도 떡값이 너무 들어서 한번 결딴내려 했어. 그것들은 무슨 회식만 했다 하면 천, 2천에, 비행기는 꼭 퍼스트클래스야. 이번 기회에 떡값 좀 줄여 봐.”
임원들은 펄쩍 뛰었다.
“대표님, 그건 절대 안 됩니다!”
“한성병원은 리베이트 안 받으면 절대 처방전 안 써 줘요.”
“저희가 떡값 줄이기 시작하면 귀신같이 타 제약 업체로 바꿔 버릴 겁니다.”
이전과 달리 거의 김 대표를 잡아먹을 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잠깐의 풍파다. 한데 만약 이것 때문에 리베이트를 안 한다면? 한성병원은 당연히 납품을 끊을 것이고 그 빈자리는 다른 제약 회사가 채울 것이다.
과징금은 고작 수십억이지만, 거래가 끊기는 건 수백억 손해.
사실 대표가 구속된다 한들 한성병원에 대한 리베이트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 답답해서 넋두리 한번 해 봤다. 그래도 조심해야 할 건 하자고.”
“예.”
“홍 사장, 혹시 모르니까 한성병원에 납품하는 다른 제약 업체들도 만나 봐. 혹여나 말을 맞춰 놓을 수 있는 건 다 맞춰 놓으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공정위 동향 계속해서 주시해. 리베이트 사건 별건 조사 들어가면 당해 낼 재간 없다.”
***
“김 이사, 요즘 한명건설 왜 이렇게 시끄러워?”
“투서 말씀이십니까?”
“한두 건이 아니야. 뭐 최영석 부회장이 페이퍼 컴퍼니로 비자금 만들었다, 건설자재 빼돌린다, 산재사고 은폐했다.”
“하하, 원래 큰 공사 뜨면 업계에 악의적 제보가 판을 치지 않습니까.”
“제보 내용 보니까 상당수 일리 있어 보이던데?”
“그게 다 사실이면 한명건설이 어떻게 도급 1위겠습니까. 본래 1등은 적도 많은 법이죠.”
“이거 원 불안해서 일을 맡길 수 있어야지.”
“염려 붙들어 매십쇼. 모두 사실무근입니다.”
큰 공사 한 건 뜨면 건설 업계에선 투서가 날아다녔다.
업계 상도? 금기? 수천억의 이권 앞에선 다 부질없는 말이다.
경쟁사의 산재 은폐, 비자금 내역 등 모든 치부를 폭로해 관할 부처에 고발했다.
업계 1위였던 한명건설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제보에 시달려야 했는데, 이를 무마하고 공사를 따내는 것이 김성균의 주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우스운 사실은 이 내용이 먼 훗날엔 다 사실로 드러난다는 것.
제3자에겐 악의적 제보로 보이지만, 사실 기업들이 엄청난 정보력과 철저한 검증을 통해 만든 팩트 자료인 것이다.
준철은 그래서 더 잘 알 수 있었다.
보험사들이 폭로한 내용도 결코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닐 것임을.
“서 팀장, 배 팀장하고 지금 내 방으로 올라와 봐. 아니, 별일 아니니까 그냥 빈손으로 와.”
인터폰을 끊고 준철은 의자에 몸을 뉘었다.
한성대학병원. 이곳은 한성재단의 지원을 받는 국내 10위의 대학병원이었다.
하지만 이름만 지원이지 사실은 한성재단의 소년가장이라 봐도 무방했다. 전신인 한성대학교가 부실 대학에 오르내리는 적자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 쓰여야 할 병원 기부금이 기숙사 신축에 쓰이다 적발된 적도 있었다. 이에 재단 측은 의대생 기숙사라 변명했지만, 실사를 나가 보니 전교생이 쓰는
기숙사였다.
백 번 양보해서 의대생 기숙사였다 해도 이건 명백한 배임이다.
‘기숙사는 등록금으로 충당해야지 왜 병원 기부금으로 짓고 있어?’
만약 기업에서 벌어졌다면 부당 계열사 지원으로 엄청난 과징금이 뒤따랐을 문제다.
하지만 등록금 인상은 정부에서 살벌하게 통제하는 문제기도 했고, 의대생 지원이 큰 맥락에선 환자들 복리 증진과 연결되기도 했으니 천만 원대 과징금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하지만 뒤이어 또 사고가 터져 버렸으니.
한성대병원 간호사 노조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보통의 파업, 특히나 의료직 파업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으나, 그건 도리어 여론에서 동정론이 일어날 정도였다.
한성대병원은 간호 업계에서 회전문으로 통할 정도로 신입 간호사들의 퇴사율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3교대 간호사들이 거의 2교대처럼 일했으며, 오버 타임 수당은 없었다.
업무 특성상 여자가 많은 집단인데 출산 휴가를 쓸 땐 위에서 퇴사 압박을 가했다.
결정적으로 8년째나 임금이 동결되며, 간호사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참고 일한 사람들이 보살이네.’
이와 같이 한성병원을 둘러싼 사건들은 끊임이 없었다.
준철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다 재단 적자 때문에 발생한 사건들이다.
경험상 이런 재단은 리베이트의 유혹으로부터 취약하다.
“부르셨습니까, 과장님.”
그리 생각할 때, 서도윤과 배명철이 집무실에 도착했다.
확실히 젊은 게 좋다. 파견에서 복귀한 두 사람은 일주일 새 혈색이 좋아졌다.
“다들 얼굴색 좋아졌네?”
“예, 야근도 없고 주말에 출근도 잠을 많이 잤습니다.”
“그래, 잠이 보약이지. 커피 한 잔씩 할까?”
“아, 괜찮습니다. 방금 마시고 왔습니다.”
“그럼 한 잔 더 마셔. 당분간 밤 좀 많이 새워야겠다.”
“……예?”
준철은 서류를 넘겼다.
“지난 정기회의 때 다뤘던 한성대병원 말이야. 이거 제보 자료 탄탄하던데 왜 별건 조사 안 했지?”
“아 그건 보험사에서 악의적으로 투서한 자료라…….”
“뭐 당연히 꿍꿍이가 있어 투서했겠지만 내용 자체는 틀린 말이 없던데?”
두 사람은 적잖이 당황했다.
“약관심사과에서 이걸 그냥 덮었어?”
왠지 불길한 지시가 떨어질 것 같았다.
“그냥 덮었다기보단……. 사안이 애매해 묻었습니다.”
“뭐가 애매해? 딱 봐도 제약 회사의 리베이튼데.”
“의사가 제약 회사에게 직접적으로 뒷돈을 받은 건 아니라서요.”
보통의 리베이트는 뒷돈을 받은 정황이 명확해야 혐의가 입증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 사람이 기업에게 뒷돈을 받은 정황은 없었다.
“알아. 근데 사람이 받진 않았지만 재단이 돈을 받았잖아.”
“예?”
“메디신 제약이 한성재단에 낸 기부금 말이야. 이게 다 독점 납품에 대한 대가 아닌가?”
“정황상 그렇습니다만, 그건 법정에서 그냥 낸 기부금이라 하면 그만입니다.”
“그럼 메디신이 한성대학교에 낸 장학금은? 이건 병원이랑 관계도 없는데 그냥 냈잖아.”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빠져나간다면 나갈 수 있습니다.”
“의사들 회식할 때 법카로 회식비도 긁어 줬네. 이건?”
두 사람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준철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이거 봐, 이게 어떻게 리베이트가 아니야? 이건 명백한 대가성 기부금이다. 해서 말인데 두 사람이 이거 한번 디벨롭해 보지 그래?”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