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리베이트 (1)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 정확히 맞았다.
신입과장은 보이는 대로 다 물어뜯는 미친개다.
“과장님 이게 저희끼리 조사를 결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알아. 주무부처인 제조업감시과에 협조 요청해야지.”
“그쪽에서 협조할까요?”
안 할 가능성이 크다.
첫 째로 종합감시국은 공정위 내의 대표적인 ‘하청업체’. 다른 과에서 협조 요청 왔을 때 도움을 주는 곳이지,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는 곳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조사 명분도 부족한 실정.
보험사가 악의적으로 찌른 제보를 정식 조사 들어가겠다 하면 면전에서 미친놈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안 하겠다면 우리가 직접 조사해야지. 뭐 별수 있겠어?”
“…….”
“어차피 보험사에서 준 정보들 다 상세하잖아.”
“제보하는 것과 이를 입증하는 건 천지 차이예요.”
목격자가 살인 사건 용의자를 아주 자세하게 진술해 줬다 치자.
인상착의대로 그 용의자를 잡으면 그때부턴 범행도구, 알리바이 등 이놈이 범죄를 저질렀단 사실을 입증까지 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타 주는 커피 많이 마셔 둬. 한동안은 밤 좀 많이 새울 거야.”
두 사람 얼굴에 핏기가 가시자 준철이 타이르듯 말했다.
“원래 사건이란 게 그래. 어렵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지.”
“…….”
“근데 이렇게 자세한 제보가 들어왔는데 공정위가 묵살해 봐. 나중에 또 뒷말 나오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하면 저희가 뭘 하면 될까요?”
준철이 서류를 들었다.
“플랜 A. 제조업감시과와 협업한다. 만약 그쪽에서 본건 조사하면 두 사람이 파견 다녀오면 돼.”
제조업감시과는 제약 업체, 병원 등 리베이트를 전문적으로 감독하는 부처다.
소위 말해 캐비닛 자료가 많다.
어떤 병원이 얼마나 리베이트를 받는지, 특히나 어디 제약 업체가 리베이트가 심한지 등의 업계 동향이 다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플랜 B는요?”
“방금 말한 대로 우리가 맡는 경우. 내가 조사단장 하고 두 사람이 팀장으로서 역할을 해 주면 돼.”
“사실상 플랜 B로 가겠군요.”
“응. 큰 기대는 마. 제조업감시과의 캐비닛 자료만 얻어도 만족해야 돼.”
사실 어떤 조사를 하든 캐비닛 자료가 있느냐 없느냐는 천지 차이다.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범행 수법을 파악하고 있어야 조사 진도도 빠르게 나갈 수 있으니.
아닌 말로 제약 업체가 사과 박스 로비로 납품을 따냈겠는가?
납품 대가로 재단에 기부금을 내거나, 장학금을 내거나 하는 등의 지능적인 로비 방식이 쓰였을 터다.
‘어지간해선 전문 부처가 맡아 주는 게 좋긴 한데.’
준철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또 궁금한 거 있어?”
서 팀장이 조심히 손을 들었다.
“과장님. 정말로 이 사건에 확신이 드십니까?”
“응. 일단 대략적으로 파악해 보니 제보 내용이 얼추 맞는 것 같고, 또 진정성도 엿보이잖아?”
“진정성요?”
“보험사가 얼마나 악에 받쳤으면 대학병원 리베이트 자료를 찔렀겠어. 사실 이런 건 악의적 제보가 아니야. 이판사판 제보지.”
진흙탕 싸움에서 튀어나오는 말만큼 진실한 게 없다.
보험사들이 대학병원에 과잉 진료로 항의를 할 정도면, 한성대병원이 수익 사업을 엄청나게 진행하고 있었단 의미도 된다.
“그리고 냄새가 나.”
“냄새요?
“한성재단 까 보니까 온통 적자투성이더라고. 간호사들이 1년에 세 차례나 파업할 만큼. 이런 병원은 절대로 정상 경영으론 돌아갈 수가 없지.”
준철은 조심스레 사견도 덧붙였다.
“경험상 이런 병원은 절대 한 곳에서만 리베이트 받지 않는다.”
“헉…… 과장님 설마 연루 업체가 더 있는 거라 보십니까?”
“당연하지. 한성병원에 납품하는 제약 업체가 수백 곳인데, 진짜 딱 한 놈한테만 받았겠어? 메디신은 그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컸었던 놈일 뿐이야. 이것들은 까면 더 나와.”
두 팀장은 어느새 준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열악한 재단 재정, 간호사들의 파업, 보험사의 제보. 생각해 보니 구린 구석이 참 많은 병원이다.
다만 문제는 제조업감시과가 이 사건에 협조를 해 줄까 하는 것인데…… 그건 좀체 확신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또 사람 설득은 잘하는 편이니까.”
“……네.”
***
대학병원에서 쓰는 약제품은 모두 공개 입찰을 통해 결정된다.
의사가 개별 처방하는 게 아니라, 병원과 계약된 업체에게 처방전을 내주는 것이다. 의사들의 일탈을 방지하고, 입찰을 통해 약값을 최대한 낮게 책정할 수 있으니 모든 3차병원은
이렇게 약제품을 관리한다.
하지만 이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달리 말해 입찰만 따내면 대학병원에 독점 유통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해서 의약 업계에 만연한 문제가 바로 ‘1원 낙찰’이었다.
이는 제약 업체들이 자사 약품을 공짜로 납품하는 관행이다.
제약 회사들은 병원엔 공짜로 약을 납품하고, 원외처방(병원 주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약 사는 것)에서 바가지를 잔뜩 씌워 수익을 보전한다.
한국은 엄격한 의약분업 국가로 약사는 반드시 의사가 내린 처방전대로 약을 줘야 한다. 대학병원 납품권만 따내면 여기서 내리는 처방전엔 모두 자사 약품이 들어가니, 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죄다 1원 낙찰이네?’
메디신제약은 그런 업계 관행에 아주 충실한 회사였다.
그들이 한성대병원에 단독 납품하는 16종의 약제품은 모두 1원 낙찰로 따낸 계약이었다.
그렇게 한 해 납품하는 약 제품 가격만 3,200억. 이는 한성대병원 납품 제약 업체 중 최고 규모였다.
‘아주 제대로 물었구만. 회사 매출 50%가 다 한성대병원 관련 매출이야.’
메디신제약은 한성대병원 덕에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매출 절반이 한성대에 납품하는 16종 약품에서 발생했으니 말이다.
“쯧쯧-”
준철은 고개를 저었다.
보험사들이 찌른 제보엔 메디신이 약 30억대 리베이트를 해 왔다 폭로되어 있었는데, 절대로 그게 끝이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
준철이 검토한 자료는 제조업감시과에도 통보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종합국 이준철 과장입니다.”
“유철호 과장입니다. 앉으시죠.”
넉살 좋게 인사를 해 봤는데, 냉랭한 반응이 돌아왔다. 이렇게 싫은 티를 팍팍 낼 줄이야.
유철호 과장은 물 한 잔 내오지 않고 한숨부터 쉬었다.
“주신 자료는 잘 검토했습니다. 한데 제가 저의를 잘 파악 못해서. 이걸 저희한테 주신 이유가 뭡니까?”
“달리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건은 조사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유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네. 확실히 문제는 있어 보였습니다. 근데 이 과장님 이게 어디서 나온 제보인지 아시지요?”
“보험사요.”
“그냥 보험사가 아니라 해당 병원과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분쟁 업체죠.”
유 과장이 서류를 툭툭 쳤다.
“저희는 보통 이런 걸 악의적 제보라 부릅니다. 함부로 조사 들어가기 힘든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 말고는요?”
“예?”
“메신저가 누구였는지 말고, 메시지 자체는 어떠셨나요. 이 제보에 근거가 없다거나 빈약하다 등의 문제점 같은 게 있었나요?”
유 과장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준철은 이미 만발의 준비를 마치고 자료를 보낸 터였다. 메디신제약은 한성재단에 꾸준하게 기부금을 내어 왔고, 납품 매출이 늘 땐 덩달아 기부금도 커졌다.
게다가 이들은 병원과 관련 없는 한성대학교에도 장학금 사업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는 누가 봐도 명백한 대가성 기부금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여기 지금 분쟁 업체라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제보 자료 자체만 보면 당장 검찰 수사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명확해요.”
“아니, 이 과장님. 겨우 기부금 내역 가지고 제약 업체 치자는 건 너무 무모한 거 아닙니까?”
유 과장의 언성이 커졌다.
“막말로 제약 업체치고 한성재단에 기부금 안 내는 회사들이 어디 있어? 우리 캐비닛 자료에서 파악한 것만 해도 수십 곳이에요.”
“지당한 지적이십니다. 이참에 그 제약 업체들 한번 다 까 보죠.”
“뭐요?”
“저희도 메디신제약만 억울하게 걸린 거지, 결코 혼자서 리베이트했다고 보지 않거든요.”
유 과장은 잠시 귀를 의심했다.
소문난 또라이라고 듣기는 들었는데, 지금 내가 이해 한 말이 맞나?
“그 수십 곳 제약 업체들 중에서도 한성대병원에 리베이트 대고 있었던 기업이 있을 겁니다.”
“…….”
“이참에 그거 한번 다 털어 보죠.”
자신의 이해가 정확했단 걸 깨달았을 땐 비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 과장님. 진짜 미치…… 아니 의약 업계의 생리에 대해선 아십니까?”
“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의료수가가 가장 낮고,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의약 업계 로비에 대해선 암암리에 넘어가는 편이죠.”
“잘 아시는 분이 대체 왜 이러세요.”
유 과장이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우리가 재단 기부금 털면, 병원은 드러눕습니다.”
“저희도 적당한 건 넘어갈 겁니다. 근데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죠.”
“한성대병원은 그 ‘어느 정도’를 넘었습니까?”
“네. 이것뿐 아니라 제약 업체 법카로 회식한 내역이 넘쳐 납니다. 병원 기부금으로 대학교 기숙사를 지은 내역도 있죠.”
준철은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근데 돈을 이렇게 함부로 쓰면 어떡합니까.”
유 과장도 그 말만큼은 반박할 수 없었다.
같은 한성재단이라고 돈을 그냥 막 가져다 썼다.
기업으로 따지면 흑자 계열사 이익금을 적자 계열사 불 끄는 데 썼다는 건데, 이러면 재벌 총수도 무사할 수가 없다.
“이 모두 병원이란 특수성 때문에 적당히 묵인하고 넘어갔던 문제들입니다. 근데 적당히 묵인해 준 결과가 이 지경에까지 온 거 아닙니까.”
“…….”
“반드시 조사해야 합니다. 업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그는 미간을 짚더니 말했다.
“그래서 이거 조사를 어떻게 하시려고요.”
“주무부처인 제조업감시과가 맡아 주십쇼.”
“죄송하지만 지금 저희는 인력이 없습니다.”
그리 말하는 유 과장 심정도 억울했다.
엄밀히 말해 종합국은 다른 과가 인력 부족할 때 도움 요청하는 곳이지, 이렇게 혹을 붙여 주는 곳이 아니지 않나.
“그럼 저희가 해야겠군요.”
준철도 처음부터 플랜 B를 고려하고 있었기에 별 미련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반응을 보니, 조사도 시원치 않게 할 것 같았다.
“대신 제조업감시과가 가지고 있는 캐비닛 자료 좀 넘겨주세요. 타 대학 병원 재단 기록물, 그리고 제약 업체들이 얼마나 기부금을 내고 있는지 등 자세한 자료 다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