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매를 버네? (1)
한성재단 관계자와 병원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공정위의 조사가 거세지고 있었기에 모두들 얼굴이 좋지 않았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습니다.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알아요!”
“듣자 하니 이 사건 모두 보험사에서 투서한 내용대로 움직이더군요.”
“대관절 사정 기관이 이렇게 기업들 손에 놀아나서야 쓰겠습니까.”
모두들 강경한 발언을 쏟아 냈다.
메디신제약이 압수수색을 당하며, 공정위의 칼날이 턱밑까지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사장님. 이젠 우리도 뭔가 행동을 보여 줘야 할 땝니다.”
“대책이라도 있나?”
“이에는 이, 악에는 악으로 맞서야죠. 언론에 입장문 내고 우리 억울함 적극 피력하시죠.”
이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섣부른 행동이야. 우리가 제약 업체들에게 뒷돈을 받은 건 사실이니.”
“그게 다 병원을 위한 일 아니었습니까.”
“……병원과 관련 없는 곳에도 재단 돈이 쓰였네.”
제약 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은 건 당연하거니와, 한성재단은 기부금을 학교 기숙사 신축에도 썼다.
기업들에게 같은 기록이 발견됐다면 이렇게 세월 좋게 회의할 시간도 없었을 터다.
당장에 구속영장이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겠지.
그나마 상대가 병원이니 공정위가 점잖게 나와 주는 것이다.
“이사장님.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그때, 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한성대병원장 박성만으로 의사들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재단 이사장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지위가 막강한 사람이었다.
“다른 건 차치하고. 저희가 파악하기론 의사들의 회식비까지 걸린 걸로 압니다. 사실이 맞습니까.”
“들은 대로요.”
“그럼 이 모든 혐의가 다 걸렸을 때, 의사들 개인에 대한 처벌까지 떨어지는 겁니까?”
“그 상황은 우리 재단 측에서 최대한 막아…….”
쾅-!
병원장이 성질을 못 이기고 탁자를 내리쳤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제약 회사들한테 접대 몇 번 받았다고 의사들을 개인 처벌해요? 재단에선 이를 방어도 하지 못하고?”
“박 원장. 일단 진정하고.”
“어불성설입니다! 만약 우리 의사들에게 피해가 끼치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어요.”
박 원장 머릿속에 재단의 안위는 별로 없었다.
해당 사건이 의사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끼칠까,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 이 사건에 예민했다.
회식 때마다 제약 업체들의 법카를 긁어 대지 않았나. 의사들이 해외 학회에 참석하면 당연하다는 듯 비행기 업그레이드를 받았고, 제약 업체 영업사원들을 머슴처럼 부렸다.
게다가 이 로비의 정점인 자신은 명절 때마다 상품권도 받았다.
걸린다면 재단보다 의사들이 더 큰 처벌을 받을 것이다.
“최대한 막아 보겠소.”
“그 말로는 부족해요. 절대로 처벌되어선 안 됩니다.”
이사장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안이라도 있소?”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 다 쓰시죠.”
“카드?”
“이번 사건이 보험사의 투서로 시작되었다는 걸 적극 어필합시다. 만약 이게 먹히지 않는다면 우리 응급실 몇 곳 닫아 버릴 겁니다.”
이사장은 사색이 됐다.
“지금 응급실 파업으로 협박하자는 게야?”
“뭐 진짜 할 건 아닙니다만 우리가 의중을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여론이 험악해질 겁니다.”
그 여론의 등쌀에 못 이겨 공정위가 조사를 종결한다.
이것이 박 원장의 계획이었다.
“아서! 지금 공정위가 공론화 안 해 주는 것도 천만다행인 일이야. 대체 왜 우리가 긁어 부스럼 만들어?”
“공론화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그들도 우리의 반발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그 담당자에 대해선 우리가 더 잘 아네. 그자는 지난 양계장 총파업 때도 끄떡 않던 놈이야.”
“양계장이랑 병원이 같습니까? 어디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봅시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생사여탈권이란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다.
대중들이 불안감만 느껴도 공정위의 날개 하나를 팍 꺾어 놓을 수 있겠지.
“제발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하세. 그건 너무…….”
“이사장님이 못 하시면 내가 합니다. 난 공정위가 우리 의사들까지 건드는 꼴 못 봐요.”
이사장은 절망했다.
지금은 위기를 타개해야 하거늘. 박 원장은 머릿속엔 의사들밖에 없는 모양이다.
더욱 애석한 건 이미 회의실 분위기가 박 원장을 지지하는 모양새라는 거다.
“이사장님.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든데 왜 이걸 주저하세요.”
“파업까지 직접 안 이어져도 좋은 협상 카드가 되긴 할 겁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이사장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대신 약속 하나만 하세. 응급실 파업은 절대로, 절대로 일어나선 안 돼. 만약 인명 피해라도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 못 져.”
“저희가 뭐 그 정도로 똥 된장 구분 못 하겠습니까. 걱정 마십쇼.”
병원장은 한심하단 눈빛으로 이사장을 훑었다.
저렇게 겁이 많아서야 어떻게 큰일을 한다고. 쯧쯧-.
***
-다음 소식입니다. 현재 보험사들과 과잉 진료 분쟁을 겪고 있는 한성대학병원이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공정위를 규탄했습니다.
현재 한성대병원은 제약 업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는지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는데요.
재단 측은 이 모두 보험사의 악의적 제보로, 재론할 가치도 없는 문제라 일축했습니다.
병원장의 규탄 성명은 엄청나게 위협적이었다.
-의약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이 문제라면 얼마든 시정하겠습니다. 한데 현 조사는 특정 병원을 찍어 누르기 위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일각에선 공정위가 보험사들에게 사주를 받았단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략)……
한국은 의료수가가 OECD 평균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국가입니다. 현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의사들의 일방적 희생으로 운용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재단 기부금은 이 열악한 환경을 보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제약 업체들에게 기부금을 받는 것이 모양새는 좋지 않아 보일 수 있으나, 환자들의 복리를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이마저도 용인치 않으면 만년 적자인 응급실, 외상외과 등을 어떤 병원이 계속 유지하겠습니까.
저희가 적자 분과 파업이라도 해야 합니까?
저희 의료진 일동은 공정위의 무분별한 조사를 강력히 규탄하는 바입니다.
병원장의 규탄 성명에 여론이 일시에 달아올랐다.
⌞이거 완전 미친놈들이네? 업계 사정상 어쩔 수 없는 건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님?
⌞후레자식들아. 병원이 일 좀 하게 내비 둬라! 환자들 복리를 위한 일이었다잖아.
⌞아니 ㅅㅂ 저러다 병원들이 진짜 적자 분과 파업하면 어쩌려고!!
⌞근데 이거 진짜로 공정위가 사주받은 거 아님?
⌞ㅇㅇ 현재 한성병원은 과잉 진료 문제로 보험사랑 분쟁 중.
⌞이 타이밍에 공정위가 한성병원 치는 건 사실상 보험사 손들어 준 거.
⌞ㅋㅋㅋ 한성병원 리베이트? 진짜 뒷돈 받은 놈은 공정위 아니냐?
⌞ㄹㅇ 공정위 조사관들 한번 털어 봐. 리베이트는 이 새끼들이 받았네!
아무래도 보험사들은 세간의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병원장의 규탄 성명은 공정위를 악의 무리와 결탁한 나쁜 놈으로 만들었고, 병원은 이에 탄압당하는 순교자로 만들었다.
“과장님…… 이거 어떡할까요.”
“저쪽에서 너무 세게 나오는데요.”
서도윤과 배명철은 손을 달달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준철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습이었다.
“조사 더 진행하다간 진짜 저희가 보험사들한테 리베이트 받았다고 욕먹을 것 같습니다.”
“리베이트 받았어?”
“……예?”
“우리가 보험사들한테 리베이트 받았냐고.”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당당하게 조사 진행해. 떳떳한데 왜 우리가 사려?”
준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병원장 말대로 의사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집단이다. 그런 만큼 최대한 그들의 위신을 생각해 조용히 끝낼 생각이었다.
한데 방송국 카메라를 다 불러 저따위 성명을 발표하다니!
사실 공정위가 보험사랑 붙어먹었네 하는 소리는 그런대로 참아 줄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사건 맡다 보면 늘 있는 모함이니까.
근데 넌지시 응급실 파업을 암시하며 조사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의사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근데 과장님. 이거 정말 강행해도 될까요? 성명을 보면 은근슬쩍 파업을 암시하는 것 같던데…….”
“그러니까 더 조져 놔야지. 어디 환자들 목숨 가지고 협박질이야.”
“그러다 정말 파업을 해 버리면요……? 그땐 인명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의사들은 한다면 하는 족속들이다.
의약분업 때 얼마나 많은 응급실의 불이 꺼졌나. 한성대병원이 응급실을 닫으면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건 자명한 일이다.
자칫하면 공정위가 그 책임까지 다 져야 할 수도 있다.
“걱정 마. 저것들 절대로 파업 못 해.”
“그걸 어떻게…….”
“저런 공갈 한두 번 들어 보나.”
근거 없는 확신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해 처먹었는지를 가장 잘 아는 건 본인들이다. 그 죄를 지어 놓고 파업해서 인명 피해까지 발생시킨다?
제아무리 의사라도 이건 뒷감당 못 한다.
“만약 진짜로 강행하면 싹 다 구속시킬 거야.”
두 사람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과장의 고집을 확실히 이해했다.
“일단 일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자. 재단 기부금은 추후로 미뤄야겠어.”
“그럼……?”
“확실한 것부터 쳐야지. 배 팀장 우리 그때 메디신 회계 자료에서 찾은 자료 있지?”
“아, 예. 유흥업소 기록요.”
“어떻게 좀 알아봤어?”
“네. 근데 맞는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유흥업소에서 놀았고, 제약 업체가 법카로 이걸 결제해 줬어요. 문제는 이에 대한 증인 확보인데…… 이게 좀 난항입니다.”
“그 업소가 어디라고?”
“강남에 있는 원프로입니다. 좀 알아보니 여긴 아가씨랑 2차도 나가는 업소 같더군요.”
준철이 병원장의 파업 협박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건, 바로 이 서류에 있었다.
의사들이 얼마나 질펀하게 놀았는지, 제약 회사 법카 내역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재단 기부금이야 어물쩍 변명한다 쳐도, 과연 이 법카 로비는 어떻게 방어하려나?
“좋아. 바로 치자.”
“근데 이거 증인 확보가 될까요? 여긴 고객들 신상 관리가 철저하기로 아주 유명하답니다.”
“그래 봤자 유흥업소야. 지들 죽게 생기면 고객 신상이고 나발이고 눈에 뵈는 게 없어.”
“그건 그렇죠. 그럼 언제 소환하실 겁니까.”
“소환은 무슨, 우리가 직접 가서 담판 지어야지.”
“지, 직접요?”
“그래, 조사관들 다 대기시켜. 오늘 밤은 진짜 화끈하게 놀아 볼 거야.”
“오, 오늘 당장 가실 겁니까?”
준철은 안절부절못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여우 같은 새끼들.’
기가 차서 웃음이 난다.
조사를 막아 보려고 여론을 동원해? 그것도 공정위를 보험사랑 붙어먹은 놈으로 매도해서?
‘이래서 좋을 게 없을 텐데?’
어쩌면 이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의사들 위신 챙겨 준다고 엄청 조심해 가며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나.
그쪽에서 먼저 공론화시킨 문제니, 이젠 성질대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