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매를 버네? (2)
강남에 위치한 고급 룸살롱, 원프로.
“어서 옵셔~!”
오늘은 코스피 지수가 폭락한 날이라서 그런지 예약 손님들이 별로 없다.
하지만 No.1 웨이터 ‘박찬호’는 여느 때처럼 손님들을 맞았다.
그는 업계에서 10년을 구른 베테랑으로 넥타이만 봐도 고객들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찬호야, 바깥에 차 대 놨다.”
“아, 진 사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파킹 좀 부탁해.”
발렛 파킹 한 번에 오만 원.
이곳에 들르는 손님들은 돈을 물 쓰듯 쓰는 거물들이다.
대한민국 상위 1%. 바로 원프로들만 모이는 곳이 바로 이곳이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들! 원프로의 홈런왕자 웨이터 박찬홉니다. 저 박찬호는 삼진아웃 원칙을 반드시 지킵니다. 우리 아가씨들 만약 세 번 이상 빠꾸시키면, 그 술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싹싹하고 능숙한 응대에 그를 싫어하는 손님은 없었다.
물론 그가 모두에게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차 키가 후지거나, 손목에 시계가 없거나 하는 등 빈티를 좀만 내비쳐도 그의 응대는 돌변했다.
“기본 세팅으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필요하면 불러 주세요.”
룸에서 나온 박찬호는 혀를 찼다.
후진 양복에 관리 안 된 피부 그리고 액세서리. 한눈에 봐도 하위 업소만 전전하다 1프로 구경을 하러 온 초짜 손님들이다.
“찬호 형님, 8번 테이블에 술 뭐 넣을까요?”
“볼렌타인 하나 넣어.”
“예? 볼렌타인 그 싸구려 술을요? 저희 업소 취급도 안 하는데…….”
“그냥 편의점에 대충 하나 사 오고 과일 몇 개 깎아서 넣으란 말이야. 저것들 개털이다.”
“아……. 예.”
“그래도 계산서엔 한 300 써라. 관상이 딱 눈탱이 치기 좋은 놈들이야.”
재력 평가하는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서 많은 후배 웨이터들이 그를 따랐다.
그때였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양복쟁이 세 명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옵…….”
인사를 하기도 전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한눈에 봐도 자기 또래로 보이는 젊은 놈 세 명.
답답하게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는 걸 보니 필시 회사원이다.
평범한 회사원이 상위 1프로만 드나들 수 있는 이곳에 오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다.
“계산하러 오셨어요?”
“계산?”
“영진제약에서 오신 거 아니에요? 오늘 그쪽 병원장님들 예약하셨던데.”
얼굴만 보더니 반사적으로 저런 얘기가 튀어나온다.
오호라. 영업 사원들이 계산하려고 들락거린 게 한두 번 아니란 거지?
“아닌데.”
“아니면 태동건설?”
“그냥 손님인데.”
“……손님?”
“테이블 하나 줘 봐. 우리 오늘 좋은 날이라서 진탕 마시고 갈 거야.”
박찬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세 놈이 입은 양복 가격을 합쳐도 자신의 시계 값만 못하다. 돈도 없는 새끼가 어쩜 이리 싸가지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죄송하지만 사장님, 저희는 철저히 예약제입니다. 신원 확인된 고객들만 받는 곳…….”
“여기 사장 오성민이지. 업체 등록은 박성팔로 했는데 그놈은 바지사장이고.”
“……예?”
“지금 내 전화 한 통이면 미국에 있는 오성민이 바로 한국 들어와야 될 텐데, 그래도 되겠어?”
박찬호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혹시 검산가? 화류 업계를 떡 주무르듯 하고. 신상을 이렇게 잘 파악하는 사람은 그쪽밖에 없는데.
‘아니야……. 검사였으면 미리 사장님이 언질을 줬겠지.’
이곳에 오는 검사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목에 검찰 출입증을 버젓이 드러낸다는 것. 내 비록 돈은 없지만 네들이 알아서 기어야 한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검사님들 술값은 뒤에 0을 하나 빼고 받는다.
하지만 세 놈은 결코 검사도 아닌 듯 보였다.
‘씌벌. 저 잡것들은 대체 뭐야.’
아무리 요즘 화류 업계가 불황이라지만 수준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어디 포장마차에서 국수나 먹을 군번들이 손님 운운하는가.
‘보나마나 개털이네.’
웨이터 박찬호는 가장 작은 방으로 세 사람을 안내했다.
그러곤 주방으로 가 기본 서비스를 준비한 후 다시 방문을 열었다.
“기본 세팅으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필요하면 불러 주십쇼.”
“됐고. 메뉴판 좀 줘 봐.”
“예?”
“메뉴판 없이 뭘 주문하라고. 왜? 이 집 혹시 손님들한테 메뉴판 안 보여 주고 술값 눈탱이 치나.”
“그, 그럴 리가요.”
룸살롱에서 메뉴판 찾는 건 보통 술값 흥정할 때나 있는 일이다.
젊은 놈이라 만만하게 봤는데, 이런 데 한두 번 와 본 솜씨가 아닌 모양이다.
웨이터 박찬호는 쏜살같이 달려가 메뉴판을 대령했다.
“가격은 한 100만 원대 하는데 볼렌타인 한 병…….”
“볼렌타인? 여기 뭐 싸구려 나이트클럽이야?”
“아, 아닙니다. 600만 원 선이긴 한데 실버블루가 있습니다. 이건 아가씨 TC 포함요.”
“이 새끼 진짜 손님 볼 줄 모르네. 우리가 고작 그 정도로 보여?”
솔직히 그 정도도 못 할 것 같았지만 왠지 모를 저 당당함에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여기서 제일 비싼 술이 뭐야?”
“예?”
“가장 비싼 술!”
“아……. 예. 아르망뒤 한 병에 1,200만 원입니다.”
싸가지 없는 사내는 부하처럼 보이는 직원에게 눈을 돌렸다.
“서 팀장, 어때?”
“가격 들어 보니까 대충 견적 나오네요. 네, 여기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한 병 시켜 먹어 볼까?”
“가능하시겠어요, 과장님?”
“뭐 운영지원과에 특수 활동비라고 둘러대지, 뭐.”
“전 술맛 잘 모릅니다. 이 가격이면 술 먹다 체하겠어요.”
대장으로 보이는 양복쟁이가 다시 말했다.
“공무원들이 마실 술은 없구먼. 됐고. 우린 그냥 소주 한 병에 노가리 하나 줘.”
“……예?”
“뚜껑은 빨간 거로.”
***
“과장님, 잡았습니다. 카드 긁어 보니까 김밥나라 2천만 원으로 긁히네요. 이 새끼들 포스기 분식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 포스기는 무슨 보쌈집으로 되어 있는데요.”
“오케이. ‘그 내역’하고 다 맞지?”
“네. 사업자 번호 조회해 봤는데, 메디신 법카가 긁은 곳과 동일합니다.”
밤에 더 빛나는 원프로는 그날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갑자기 웬 공무원들이 들이닥쳐 업소를 산산조각 내고 있었으니.
“사,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웨이터 박찬호는 미국에 있는 실사장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게 뭔 개소리야! 우리 다 경찰 끼고 하는데. 오늘 단속 나온단 얘기 없었어!
“그게 경찰이 아니라 무슨 공정한 곳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뭐?
“하……. 이게 들었는데 까먹었습니다. 이게 무슨 평등인가 공정인가 하는 곳에서 나왔다는데…….”
-설마, 국세청이야? 주류단속반?
그때 불쑥 한 손이 전화기를 낚아챘다.
“당신이 여기 원프로 사장 오성민이?”
-뭐야? 너는!
“나 공정거래위원회 이준철 과장이오.”
전화기 너머에서 고래고래 소리가 터졌다.
-공정위고 나발이고 왜 남의 업장에서 지랄이야! 네들 이거 영업 방해인 거 알아?
“그럼 경찰 한번 불러 볼까? 여기 보니까 아주 재밌더구먼. 호텔하고 바로 연결돼서 아가씨들 2차 나가기도 좋고. 술은 업소용도 아니고 편의점용 팔고……. 아이고, 이건 뭐야.
손님이 먹다 남은 술 모아서 새 상품으로 둔갑시켰네? 이거 고객들한테 알려 주면 꽤 재밌겠는데?”
-누, 누구십니까. 저희가 뭘 잘못했나요.
약점을 모두 파악 당하자 상대는 곧 온순한 양이 되었다.
“거 장사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한데, 몇 가지 확인 좀 합시다. 여기 웨이터 박찬호 씨한테 우리한테 협조 좀 잘하라고 당부 좀 해 줘요.”
준철은 전화기를 넘겼다.
웨이터 박찬호는 전화기를 받고 몇 번 끄덕이니 꿀꺽 침을 삼켰다.
“박찬호 씨, 우리 아까 그 얘기 좀 해 봅시다. 무슨 영진제약에서 여길 다녀왔다고? 병원장님들 회식하시는데.”
“죄송합니다! 영업사원이 결재하러 온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너무 동안이시라 저도 모르게 그만.”
“됐어, 사과할 필요 없으니까 그 얘기 좀 자세히 해 봐.”
준철은 마저 말을 이었다.
“여기 그럼 한성대병원 의사들도 왔지?”
“그건 잘 기억이…….”
“경찰 부를까.”
“아, 예! 맞습니다. 한성대학병원 관계자 왔습니다.”
“그 술값은 누가 계산했어요?”
“그건…….”
준철이 찡긋 웃었다.
“메디신 제약 영업사원들이 왔지? 그 사람들은 법카만 내고 갔고.”
침묵은 곧 긍정을 뜻했다.
“얼마나 왔어? 여기 장부 가져와 봐.”
“그, 그건 안 됩니다. 저흰 고객 신상을 함부로 유출 안 해요.”
“그래? 그럼 너도 한번 콩밥 먹어 보자. 서 팀장, 여기 경찰 불러서 아가씨들 2차 나간 거 싹 다 잡아. 배 팀장, 국세청 주류단속반 연락해서 이 새끼들 술 가지고 장난친 거
싹 다 넘겨.”
왜 꼭 사람은 좋은 말로 해선 안 들을까.
그리 말하자 웨이터 박찬호가 납작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장부 다 남아 있습니다. 예약한 기록도 남아 있어요.”
“진작 그랬어야지. 그때 무슨 카드로 긁었는지도 찾아와.”
“……카드 번호만 말씀해 드려도 될까요?”
준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법원에 제출해야 되는데 그걸로 되겠냐? 싹 다 가져와.”
***
“상황이 많이 안 좋다.”
한자리에 모인 한성대병원의 의사들은 모두 얼굴이 굳어 있었다.
“공정위 놈들이 원프로를 쳤다더군. 법카 내역을 다 까 본 모양이야.”
“하면…….”
“제약 회사가 우리 회식비 긁고 다닌 건 들켰어.”
병원장은 노기를 감출 수 없었다.
응급실 파업을 예고하며 협박까지 했건만 눈 하나 깜짝 안한다.
노기 어린 마음 이면엔 불안감도 컸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명절 때마다 백화점 상품권을 받은 내역, 비행기 자리를 예약해 준 내역 등 걸릴 게 천지다.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네들한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걸세. 어차피 다 재단 측에서 감당하기로 했으니. 당분간 제약 업체들한테 로비 받지 말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사실 제약 업체는 의사들에게 완전한 봉이었다.
그들은 의사들 회식뿐 아니라 간호사들 회식 자리에도 불려가 술값을 계산한다. 노래까지 부르고 나오는 영업사원도 많았다.
“그래도 희소식은 있다. 우리가 성명 발표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중재에 들어가 주기로 했어.”
“하면…….”
“적당히 몇 건 잡히다 끝나겠지. 당분간만 참으면 되니까 사고 치는 일 없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