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매를 버네? (3)
무거운 회의가 끝나고 의사들은 한자리에 모여 넋두리를 했다.
“에휴- 당분간 좀 조심해야겠네.”
“아- 제약 회사 법카로 가는 회식이 꽁인데.”
“크큭. 뭘 걱정이야. 잠깐 조심하다 말 문젠데.”
하지만 뭐 그것이 대수겠는가?
조사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며, 제약 회사들의 법카 로비는 계속될 것이다. 다만 오늘은 그간 너무 심하게 놀았으니, 좀 적당히 놀라는 경고 같은 것이다.
“그나저나 그 또라이는 뭐야? 보험사가 찌른 자료로 조사를 해?”
“어- 완전히 보통 놈이 아니래. 미친 새끼지.”
의사들은 낄낄거리면서 뒷담화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 중에는 불안에 떠는 이도 있었다.
“근데 만약 조사가 우리까지 뻗치면 어떻게 되지?”
“맞아. 솔직히 우리가 제약 업체들한테 접대 받은 건 숨길 수 없는 거잖아.”
이에 한 사내가 말했다.
“야! 재수 없는 소리 마. 공정위가 무슨 검찰도 아니고 이게 되겠냐?”
“아무렴. 어떻게 조사해. 괜히 겁먹을 필요 없다고.”
의사들의 자신감은 그날 저녁 9시 뉴스가 방영되며 산산이 무너졌다.
***
-다음 소식입니다.
한성대학병원이 공정위 수사에 반발하며 특별 성명을 낸 가운데, 공정위가 새로운 자료를 입수했다 밝혔습니다. 한성대 의료진들 유흥업소에서 제약 회사 법인 카드를 긁었다는 내용인데요.
발표에 따르면, 한성대 의료진들은 강남 등지에 있는 고급 유흥업소에서 회식을 한 뒤 제약 업체의 법인카드로 계산했습니다.
이른 바 ‘법카 로비’였습니다.
-한편 이번 조사의 쟁점이었던 재단 기부금 또한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병원이 제약 업체를 선정하면, 해당 제약 업체가 재단 측에 기부금을 내는 형식이었는데요.
재단은 이 기부금을 가지고 기숙사 신축을 하는 등 환자들의 복지와 전혀 관련 없는 곳으로 썼습니다.
***
그날 9시 뉴스는 온통 한성대학병원 얘기로 도배되었다.
한성병원이 응급실 파업을 예고하며 양측은 일촉즉발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병원의 치부를 언론에 발표한 건 공정위의 조사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제약 회사들이 해외 학회에 참석한 의사들의 비행기를 업그레이드해 준 것 또한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공정위는 메디신 제약의 회계 자료를 검토, 상당액이 백화점 상품권으로 긁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공정위는 이와 같은 지능적 리베이트가 장기간 이어져 온 것으로 판단, 담당자를 모두 소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공론화는 병원 측에서 먼저 시켰기에 대중의 관심은 더할 나위 없이 뜨거웠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선 한성재단을 둘러싼 의혹들이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한성재단은 부랴부랴 언론 발표를 가졌다.
제약 회사들이 회식비를 계산한 건, 기업 간에 흔히 있는 접대 자리였을 뿐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신약 성분이나, 새로운 의료 기기에 관해 설명을 듣기 위해 양 사가 자리를 가졌을 뿐입니다.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으로…….
이에 준철은 즉각 유흥업소에서 긁은 카드 내역을 공개해 버렸다.
그 접대비가 1년에 무려 10억을 넘는다. 게다가 이곳 유흥업소는 2차까지 나가는 술집. 웨이터 박찬호의 인터뷰가 익명 보도로 나갔고, 한성재단은 모든 언론사와의 접촉을 끊었다.
상식적으로 봐도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그렇게 당당한 술자리였으면 왜 술값이 김밥나라 2천, 보쌈집 3천씩으로 잡혔겠나.
법카를 긁으면 일반 음식점으로 잡혔다.
관련 당국의 추적이 시작되면 따돌리기 위해 포스기를 바꿔 놓은 것이다. 공정위는 수법과 행위 등을 고려했을 때 한두 번 있는 접대가 아닐 것이라 추측했다.
현재 공정위가 추사한 접대는 약 30억대지만 이 또한 겨우 3년 치로 가정했을 때이다.
⌞와 진짜 믿을 놈이 없구나. 열악한 병원 환경이다 뭐다 할 땐 동정심이 들었는데, 아주 재밌게들 놀고 계셨네?
⌞ㅋㅋ의사들 아주 질펀하게 잘 놀았네.
⌞접대는 별개고 재단 기부금으로 제약 업체들 삥까지 뜯었어.ㅋㅋㅋ
⌞무슨 낯짝으로 응급실 파업 운운함? ㅡㅡ
⌞제약 회사 영업 사원들은 다 알지~ 의사들 얼마나 더럽게 노는지~
적나라한 르포기사가 나가자 민심은 180도 뒤집어졌다.
해당 술집은 이미 네티즌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술집에서 어떻게 노는지, 얼마만큼의 돈이 나오지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야 모두 그런 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회사 생활하다 보면 상대 기업에게 접대 한번 받을 수 있지.
-개소리 말아라! 이건 접대가 아니라 청탁, 청탁!
-병원장 저거 완전 철면피네? 제약 회사가 왜 의사들한테 ‘접대’를 해? 정경 유착도 그럼 넒은 의미의 접대냐?
⌞그리고 환자들의 복리 증진에 쓰여야 할 ‘병원 기부금’이 왜 엉뚱한 곳에 쓰여?
⌞누가 그 돈 가지고 대학교 건물 지으래?ㅡㅡ
⌞저 새끼들 저거 한두 번 아님ㅋㅋㅋ 옛날에도 병원 기부금으로 기숙사 신축하다 걸렸는데, 그때 뭐 의대생들 기숙사였다 뭐다 해서 그냥 넘어감.
⌞처죽일 놈의 교육부 새끼들. 그때 뿌리 뽑았으면 이 지경까지 안 왔겠지?
⌞ㅇㅇ 서로 다 한 다리 건너 아는 놈들이라 그때도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감.
⌞이런 일이 기업에서 벌어졌으면 재벌 총수도 구속감 아니냐?
⌞ㅇ.ㅇ 같은 재단 아래 있다고 해서 돈 함부로 못 씀. 부당 계열사 지원이고 이건 보통 총수도 구속됨.
***
“양측 모두 감정이 격해진 상태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합의점을 찾아야지 않겠습니까?”
여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보건부가 중재에 나섰다.
사실상 대한민국 의료계 원톱인 2차관이 나섰지만, 양측은 딱히 진정할 기미가 아니었다.
박성만 병원장과 준철은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두 분 모두 그만하세요.”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준철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겨우 이겁니까? 한바탕 소란 피워 놓고 보건복지부의 중재. 이야- 이거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네요.”
“나야말로 공정위의 파렴치한 행동에 놀랐수다. 의사들이 제약 업체 직원한테 술 얻어먹는 게 대수야? 치사하게 배꼽 아래 문제까지 터트려?”
장관은 청와대에서 내려온 낙하산들이니 차관이야말로 업계 실세다.
보건부 2차관이면 병원에 징계를 내릴 수도 있고, 의사들의 면허까지 박탈할 수 있지만……. 두 사람에겐 이자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치졸한 짓 그만하쇼. 지금 공정위 때문에 의료 업계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거 혹시 다른 신음 소리 아닙니까?”
“뭐?”
“2차 나가는 유흥업소를 그렇게나 들락거렸으니 신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겠죠.”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나 이 얘기 더는 못 하겠습니다.”
병원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유흥업소? 그게 그렇게 문제면 다른 기업도 까 봐. 접대 자리에서 그 정도 일도 없나! 고작 그딴 문제로 언론에 개망신을 줘?”
“공론화시킨 건 한성대병원이잖아요.”
“그럼 우리가 그때 한 말도 잊지 마쇼.”
“응급실 파업요?”
“우리 병원이 적자 분과 유지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병원 기부금이 잘못됐으면 앞으로 안 받으리다. 대신 우리도 돈 되는 병만 고칠 거야!”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보통 기업이라면 이쯤에서 항복 선언이 나오건만 이건 도리어 더 당당하다. 환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이겠지?
차관이 소리쳤다.
“박 병원장 아무리 그래도 말씀은 가려 해야지. 응급실 닫으면 죄 없는 환자들에게만 피해가 간다고.”
“그 얘긴 저쪽한테 하십쇼. 보험사 제보로 시작해서 우릴 죽이려 드는데 우리가 어떻게 가만있어요?”
“……이 과장님, 이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일단 보험사 제보로 시작한 건 사실이니.”
준철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출처가 어디였는지가 중요합니까? 그 내용 모두 사실이었는데.”
“아직 법적으로 사실이란 건 안 밝혀지지 않았나?”
“무슨 말이죠?”
“이미 제약 회사가 자살 폭탄 눌렀을 텐데.”
젠장. 확실히 능구렁이 맞구나.
사실 여론의 집중 포화와 달리, 조사는 굉장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술집에서 긁은 카드 내역, 백화점 상품권 모두 메디신 제약 에서 자사 직원들이 한 일이라고 변명했기 때문이다.
놈들 입장에선 큰손을 날릴 것 같으니 최대한 뒤집어쓰는 것이다.
“이거 법원 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놈은 당당했다.
“제약 회사 영업직들이 자폭하면 우리한테 결국 혐의 못 걸어.”
“놀랍네요. 한두 번이 아니셨나 봐.”
“그걸 다 아니까 지금까지 공정위 모두 넘어갔던 거야. 어디 하룻강아지 새끼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있어?”
아마 준철 말고 다른 조사관들도 이 사건을 조사했던 모양이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겹쳐 아무도 끝장내지 못했지만.
병원장은 득의양양 웃었다.
“좋게 말할 때 그만하쇼. 아니면 우리 병원들이 제약 회사 기부금 안 받아도 될 만큼 의료수가 팍팍 올려 주시든가.”
차관이 쩔쩔맸다.
의료수가 인상은 절대 안 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응급실 파업도 무조건 막아야 했다. 이 사태가 제2의 의약 분업 파업이 되진 않을까, 정치권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이 과장님, 심정은 알지만 이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이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문제예요. 우리 톤을 낮추고 차차 실마리를…….”
“응급실 파업하면 재미없을 겁니다.”
“뭐?”
“만약 사람이 한 명이라도 죽으면, 내가 책임지고 당신들 면허 박탈시켜 드리죠.”
“어디 하룻강아지 새끼가! 우리들 면허가 그렇게 쉽게 박탈되는 줄 알아?”
“그 안 되는 걸 제가 해 드릴 겁니다.”
준철은 뒤돌아섰다.
“제약 회사 영업직들의 증언은 곧 나올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응급실 닫으면 진짜 큰일 날 겁니다.”
차관과 병원장만 남은 회의실은 싸늘해졌다.
차관은 슬쩍 병원장의 얼굴을 살폈다.
위압감 때문일까? 병원장은 노기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두려움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젊은 놈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된 것 같다.
***
“김 대리, 얘기 들었어? 공정위가 완전 돌았대.”
“진짜 다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메디신 제약 업체 영업사원들은 요즘 일할 맛이 나지 않았다.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하면서 회사 분위기는 연일 초상집이었다.
“이거 자칫하다간 우리도 잡혀 들어가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