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약점 공략
“막말로 우린 법카 긁으러 다닌 당사자들이잖아.”
“공정위가 저리 지독하게 조사하는데 우린 봐주겠냐고.”
괜한 걱정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제약 업체들이 리베이트가 걸리면 영업 사원을 손절한다. 회사에선 몰랐던 일이며 개인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과연 우리 회사는 다를까?
“명신제약 박 차장 알지? 그 양반은 대리 수술 하다 적발됐는데도 회사에서 꼬리 잘랐어. 고객들한테 민사 당하고, 형사 처벌까지 당했는데 다 모른 척했다고.”
애석하게도 회사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적당한 기회에 두둑한 퇴직금을 보장하며 자살 폭탄 스위치를 눌러 달라 부탁할 것이다.
“젠장. 왜 하필 내가 한성대병원 맡아 가지고.”
“우리…… 그냥 확 불어 버릴까? 이 나이에 전과자 되면 처자식은 누가 먹여 살려?”
“그래도 그건 신중하게 생각하자. 만약 자백하면 내부 고발자야. 이 업계에서 영영 매장될 텐데 자신 있어?”
“그건 그래. 솔직히 한 놈이 불면 다 끝나는 거야. 회사는 등지더라도 업계 동료를 팔아먹으면 안 되지.”
“보건복지부에서 중재 들어갔다잖아. 일단 반응 좀 지켜보자.”
이러나저러나 이들은 회사에 밥줄을 저당 잡힌 사람들.
함께 고생한 동료들을 생각해서라도 버텨 보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복귀하는데, 영업부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김 대리, 박 대리, 송 사원, 지금 당장 내 방으로 와봐.”
“부장님? 무슨 일입니까?”
“지금 공정위에서 한성대병원 맡은 담당자들 전부 소환했다.”
“예?”
“증언을 확보한대. 지금부터 진짜 말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
“잠깐 내 방으로 와 봐. 긴히 할 얘기가 있다.”
실적 안 나오면 개망신 주기 바빴던 영업부장이 오늘 따라 친절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대강 예상이 간다.
***
“방해하시면 공무집행방해입니다.”
준철은 공무원증을 프리패스 카드처럼 들이밀었다. 앞길을 막던 직원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이 트였다.
조사단은 홍해처럼 갈라진 길을 헤치며 대표실로 향했다.
“피차 바쁘니 긴 설명 안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요청하는 자료 및 영업 사원들을 불러 주세요.”
“대체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김성득 대표는 바로 발끈했다.
“공정위가 왜 중소 제약 업체를 털어요!”
글쎄올시다. 중소라고 하기엔 규모가 제법 되지 않나?
“리베이트를 했으니까요.”
“거짓말 작작하쇼. 한성대병원과 얘기가 안 풀리는 모양이지? 그쪽은 상대하기 버겁고 우린 만만하니 우릴 치겠다는 거잖아.”
확실히 CEO는 다르다.
증인 확보라는 명분으로 여길 치긴 했지만, 솔직히 만만해서 치는 감도 있었다.
대학병원이 응급실 닫아 버리겠다 협박하는데, 그걸 어떻게 쑤실 수 있겠나. 약한 부분부터 공략해야지.
“대화가 제법 통하시는군요.”
준철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길게 끌지 맙시다. 모든 죄 시인하고 저희 조사에 협조하세요.”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당신 뭐 공안 검사야? 없는 죄를 왜 자백하래.”
“잘나가다 왜 이러실까.”
“우린 리베이트한 적 없어. 자백 못 해!”
성질이 뻗쳤지만 한편으론 딱한 마음도 들었다.
메디신 제약이 한성대병원에 납품하는 액수는 700억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최대 바이어다.
병원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고 한들 대신 뒤집어써 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정말 죄가 없어요?”
준철은 은근하게 압박했다.
“그럼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하실래요?”
준철이 내민 자료는 메디신 제약이 백화점 상품권을 결재한 내역과 비행기 업그레이드, 법카 사용 내역이었다.
“뭐 법카 로비 하나만 하다 걸렸으면 접대로 대충 넘어갈 수 있겠습니다만. 비행기 업그레이드, 해외 세미나 지원 등 다양한 루트로 걸리셨던데요?”
“…….”
“유흥업소 결제 내역은 그냥 쐐기를 박은 겁니다. 이젠 못 빠져나가요.”
“그건 우리가 간 거요. 강남 유흥업소 드나든 건 나라고! 내가 임원들 데리고 여기 가서 미친 듯이 카드 긁고 다녔어요.”
준철은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니까 이게 뭐 횡령이나 탈세에 걸리면 딴 놈 말고 날 잡아가쇼.”
“자꾸 이러실 겁니까.”
“죄를 자백하시라매? 내가 했다니까. 나 잡아가쇼.”
준철은 끙- 앓았다.
희번덕 뒤집어진 놈의 눈이 말해 준다. 이 폭탄을 떠안고 자살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성대병원을 보호할 것이라는.
“그럼 백화점 상품권은요.”
“직원들 명절 상여금 대려고 긁었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겨우 100명도 안 됩니다. 무슨 명절 상여금을 1천만 원씩 주셨습니까?”
“예- 한 50만 원씩 주고 차액은 다 내 뒷주머니로 챙겼습니다. 횡령해서 미안합니다.”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는요?”
“병원에서 하지 말라고 뜯어말렸는데, 그래도 영 아닌 것 같아 내가 몰래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의사님들 다 억지로 타고 간 비행기니 날 처벌하쇼.”
딱한 인간 같으니.
병원에서 수술 사고 나도 대신 뒤집어써 줄 기세다.
“이러면 형량이 한 20년은 나올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20년이든 200년이든 당신들한테 할 말 없습니다.”
“협조 안 하시면 후회할 겁니다.”
“마음대로 해.”
준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서 팀장에게 말했다.
“서 팀장, 지금 한성대병원 상대했던 영업 사원들 모두 다 소환해.”
“예. 알겠습니다.”
“뭐, 뭐야! 내가 했다니까! 날 잡아가.”
“대표님, 직원들의 충성심을 믿습니까?”
“……뭐?”
“방금한 진술. 영업 사원들도 똑같이 말해야 돼요. 믿습니까?”
현 상황을 다 횡령이었다고 주장하는 건 한계가 있다.
직원들에게도 같은 진술이 일관되게 나와야 한다. 근데 과연 직원들도 같은 마음일까?
“뭐 대표님이야 형량 20년, 200년도 안 무섭다지만 그 사람들은 달라요. 실형 2년 정도만 돼도 없는 죄까지 자백할 텐데.”
“이봐, 왜 엄한 직원들을 소환해! 소환할 거면 우리 임원들을 해!”
“실무선을 만나야죠.”
준철은 고개를 돌렸다.
“서 팀장, 빨리 내려가서 한성대병원 담당 사원들 전부 신변 확보해.”
***
공정위 사무실.
영업 사원 한석호는 긴장한 얼굴로 조사관을 기다렸다.
처음 와 보는 공정위 사무실은 낯선 곳이었다. 여의도 노른자 땅에 떡하니 있는 빌딩, 그리고 태극 마크. 평범한 영업 사원인 그에겐 모두 위압감 넘치는 곳이다.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마! 보건복지부에서 중재 들어갔다니까 시간만 끌면 돼!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 부장님이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
그는 평사원이었지만 영업 사원답게 눈치가 기민한 편이었다. 한성대병원은 응급실 파업을 예고했고, 공정위는 룸사롱을 털어 그들의 치부를 들춰냈다.
양측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 절대로 보건부의 중재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자칫하면 다음 소환은 공정위 사무실이 아닌 검찰 취조실이 될 터였다.
‘내가 왜 이래야 돼!’
그는 단전에서 울분이 끓어올랐다.
회사를 위해서? 동료들을 위해서? 여기까진 백번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회사는 월급을 주는 존재며, 동료들은 동고동락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한 가지.
‘의사 그 새끼들 위해서 위증하라고?’
지난 5년은 그에게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한석호가 맡은 의사들은 전임의들로 교수 진급을 코앞에 둔 중위직이었다. 하지만 놈들에게선 직위에 맞는 품위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새벽에 불려 나가 유흥업소에서 카드를 긁어야 했으며, 돌아오는 길엔 반드시 대리운전까지 도맡아야 했다.
의사들이 해외 학회에 나가면 졸졸 따라가서 수중을 들어야 했고, 비행기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했다.
서류 복사나 잔심부름은 당연히 영업 사원의 몫이다. 지난 5년은 영업 사원이 아닌 머슴살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충성한 대가가 무엇이었나?
-야 이 새끼야. 한도 천만 원짜리 법카를 가져오면 어떡해? 여기 업소 기본 주대가 2천인 거 몰라?
-한 대리는 다 좋은데 영 사람을 못 챙긴다. 다른 제약사는 명절마다 담당의한테 한우 돌린다더만. 난 어째 닭고기도 못 받아 보누.
-아이참, 이러면 엎드려 절 받기지. 내가 꼭 한우가 먹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니라, 사람이 정이라는 게 있잖아. 정이.
돌아오는 건 술 취한 의사들의 손찌검과 인격 모독.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모멸감에 가까운 말을 듣기 일쑤였다.
그래도 꾹 참았다.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더 나은 내일을 기약했다.
하지만 직급이 오르고, 교수 의사들까지 상대해 봤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병원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망나니들만 늘었다.
‘내가 왜 그놈들을 위해 위증해야 돼!’
그리 생각할 때, 바깥에서 한 사내가 들어왔다.
***
“반갑습니다, 한석호 씨. 이준철 과장이에요.”
악수를 청했는데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시선을 외면했다.
하지만 준철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무시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오는 외면이라는 것을.
“이런 자리 처음이시죠?”
“…….”
“어렵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 뭣하지만 저희도 사실 영업 사원분들까지 조사하고 싶진 않았는데 양쪽에서 다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니.”
“……저 얼마나 있어야 돼요?”
“진실만 말해 주시면 5분 안에도 끝날 수 있죠.”
“……전 진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영업 사원일 뿐이에요.”
만약 일반 기업 사람이었다면 책상을 치며 험한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의 협조가 필요할 때다. 준철은 조용한 말투로 한 서류를 건넸다.
“그럼 아는 것만 대답해 주세요.”
“…….”
“이건 지난 4년 동안 메디신에서 결재한 백화점 상품권입니다. 저흰 당연히 이 돈이 병원장급 등에 떡값으로 쓰였다 보거든요?”
한석호는 무너진 얼굴을 황급히 감췄다.
“근데 김성득 대표는 이상한 변명을 하더군요. 이건 다 직원들 명절 상여금으로 줬답니다. 근데 김 대표 말대로 이걸 계산하면 명절 상여가 1천만 원씩 들어가야 하거든요?”
김성득 대표가 왜 무리수를 던졌을까?
“종국엔 자기가 횡령했다고 우겨 대더군요.”
“회, 횡령한 돈이라고요?”
“네. 이건 한성대병원 대신 자기가 방탄조끼가 되겠다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총알받이죠.”
“…….”
“한석호 씨, 이런 대표 정말 믿을 수 있습니까? 원청 방어하기 위해서 모든 혐의를 다 뒤집어쓰는 대표를?”
한석호는 손이 떨렸다. 극진하게 병원들을 위하는 대표님이란 건 알았지만, 이건 경우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이런 사람들은 직원들 물건짝 취급해요. 그다음 타자는 영업 사원이 될 겁니다.”
“저희가 무슨…….”
“조사 계속되면 넌지시 제안할걸요. 그 법카 네들끼리 유흥업소 간 걸로 하자. 대신 퇴직금 두둑하게 줄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김 대표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그 꼴 보기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저희 조사에 협조해 주세요.”
“…….”
“자칫하면 한석호 씨도 위증으로 처벌될 겁니다.”
준비한 말을 끝내며 슬쩍 그의 얼굴을 훑었다.
좋은 예감이 든다.
한석호는 이미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