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약점 공략 (2)
“과장님 진술 나왔습니다! 모두 다 시인했어요.”
한 시간 뒤.
후속 취조를 맡은 두 팀장이 과장실로 뛰어왔다. 준철도 심란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터였기에 얼굴이 바로 상기됐다.
“범행 다 시인했다고?”
“예. 관련 증거 자료 모두 다 제출하겠답니다. 그리고 장부엔 나와 있지 않은, 개인 돈으로 의사들에게 건넨 로비 자금도 실토했습니다.”
한석호는 공정위의 압박에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는 지금 공정위가 파악한 혐의 모두를 인정해 버렸고, 파악하지 못한 부분도 줄줄이 실토해 버렸다.
취조 기록을 살피던 준철은 흠칫 놀랐다.
“서 팀장, 진짜로 이런 내용까지 진술해 버렸어?”
“네. 저희가 묻지도 않은 부분인데 다 이실직고해 버리더군요.”
“도대체 왜?”
이미 다 끝난 싸움이란 걸 깨달아서? 아니면 정상참작을 바라고?
“당한 게 많아서랍니다. 그간 담당의들 수발들면서 엄청나게 모욕을 많이 당했나 봐요.”
“뭐?”
“새벽에 술값 긁으러 오라고 연락 오고, 한도 낮은 카드 가져가면 따귀 맞고, 그런 병원장들 대리기사 노릇까지 하고.”
조금 황당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합당한 이유였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변호하라니 울화통이 치밀었겠지. 공정위가 파악 못 한 리베이트까지 술술 자백한 걸 보니 원한이 대단했나 보다.
사정이야 어찌 됐건 공정위에겐 환영할 만한 일이다. 준철은 추가된 범행을 읽어 내려가며 자료를 규합했다.
“법원에 제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얘기 정리해 보자. 서 팀장.”
“예. 의사들 회식할 때마다 불려 가서 법카 긁은 거 확인됐고요, 해외 학회 참석에 비행기 업그레이드해 준 내역, 영업 사원들에게 떡값을 요구한 내역 모두 확인했습니다.”
“배 팀장.”
“예. 백화점 상품권도 확인됐습니다. 메디신 임원들이 때마다 병원장 및 간부들을 만나 건넨 것 같다더군요.”
“횡령이 아니라 로비로 쓰인 거 맞지?”
“네. 자신이 직접 돈을 전달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배 팀장은 빽빽하게 채워진 서류를 내밀었다.
조사 이후 최고의 성과다. 유흥업소를 털어서 의사들이 모임을 가졌단 정황도 확보했고, 이 회식 자리에 메디신 법카가 긁혔다는 것 또한 확보되었다.
“일단 기소 칠까요, 영장도 바로 나올 것 같은데.”
“아니면 언론사에 또 흘릴까요? 이 자식들은 망신 좀 더 당해 봐야 돼요.”
모처럼 조사가 뻥 뚫리자 두 사람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준철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증언 확보 좀 더 하자.”
“예? 이미 한석호 씨 증언 나왔는데요?”
“한 사람은 부족해. 만약 한석호가 법정에서 진술 번복해 버리면?”
증인이 법정에서 말 바꾸는 건 무척 흔한 일이다. 수사기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도 하다.
주요 증인의 진술 번복!
“아…… 그럴 수도 있군요.”
“그럼 저희는 뭘 해야 됩니까?”
경험이 많지 않은 두 팀장은 한 가지 더 배웠다.
“한 사람 증언 나왔으니까 영업 사원들 소환해서 재취조해. 참고로 증인과 증거는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
“알겠습니다.”
***
“김성구 씨, 이미 관련 증거가 싹 다 나왔습니다. 이 상태에서 계속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의사들이 법카 회식을 거하게 여셨던데 왜 자꾸 아니라고 하는 겁니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예요. 술값 3천만 원을 영업 사원이 긁었다니. 회사 위한답시고 계속 위증했다간 본인도 감당 못 할 처벌이 내려질 겁니다.”
서도윤과 배명철의 집요한 취조에 영업 사원들이 한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정위는 어떻게 입수했는지 이미 문자, 통화 기록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이건 자신들 중 누군가가 무너졌다는 얘기. 영업 사원들은 이내 전의를 상실하고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상참작을 대가로 법정 증언도 약속해 주었다.
“뭐? 갑자기 사원·대리들이 사표를 썼다고?”
심상치 않은 상황은 곧 김성득 대표 귀로 들어갔다.
“예. 공정위 소환 조사를 당한 사원들이 무더기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이유가 뭐야. 수사 때문에 피로해서 그래? 곧 끝날 일이잖아.”
“…….”
“내가 사비로 인센티브 챙겨 줄게. 정 부장이 그 친구들 좀 붙잡아 봐.
김 대표는 아직 돈으로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였다.
영업부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 아무래도 저희 사원들이 진술한 것 같습니다. 홍 대리 말론 이미 공정위가 통화 목록과, 이메일 내역까지 확보했다더군요. 이건 저희 직원들 협조 없이는 확보 못 하는
증거들입니다.”
“…….”
“곧 있으면 기소도 들어갈 것 같습니다.”
김성득 대표는 휘청거렸다.
믿었던 자사 직원들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리다니. 모든 증거가 확보됐다면 공정위는 곧 기소에 들어갈 것이고, 영장도 칠 것이다.
구속영장의 1번 타자는 누가 뭐라 해도 대표인 자신.
더 이상 발뺌해 봤자 법정에서 위증으로 형량만 추가될 뿐이다.
-아, 왜 이러세요. 지난번에 오셨잖아요.
-저희 회사가 무슨 공정위 안방입니까? 이렇게 예고도 없이 오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때 바깥에서 소란 소리가 들리며 대표실 문이 벌컥 열렸다.
“마침 계셨네요.”
준철은 친근한 얼굴로 김 대표에게 인사했다.
김 대표는 예전처럼 표독스럽게 준철을 대하지 못했다.
“……뭡니까?”
“마침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합석해도 될까요?”
김 대표가 눈짓을 보내자 육탄방어전을 펼쳤던 직원들이 순순히 물러났다.
임원들도 덩달아 일어날 때, 준철이 말했다.
“아, 임원분들은 여기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사내 임원이 병원장에게 법카 로비를 했단 진술까지 나온 터라.”
“예?”
임원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 버렸다.
자사 직원들이 실명까지 언급하며 리베이트 구조를 다 실토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다 영장감일 텐데?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저희를 기소하시겠단 건가요?”
“……제약 업계에선 빈번하게 있었던 일입니다. 우린 단지 액수가 컸을 뿐이에요.”
“……진짜 깡그리 다 잡아다 구속시켜야 맘이 편하시겠습니까.”
준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오늘은 구명보트 드리러 왔습니다.”
“예?”
“메디신 제약이 한성대병원에 리베이트한 금액이 연 60억대. 대부분 재단 기부금을 통한 납품 따내기였죠? 그리고 법카 로비도 벌였고.”
김 대표는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으니.
“근데 한성대병원 재단 기부금을 뜯어 보면 이와 같은 내역이 한둘 아니더군요.”
“무슨 말씀인지…….”
“일단 혐의 인정하시고,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모두 말씀해 주세요. 한성대병원이 메디신한테만 로비를 받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아는 얘긴 모두 다 해 주세요.”
***
임원들을 모두 물리친 후.
준철은 김성득 대표와 독대했다.
김 대표는 긴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응시했다. 공정위는 지금 정상참작을 미끼로 자신에게 진실을 요구하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협조하느냐에 따라 임원들의 생사가 결정될 것이다.
준철은 착잡한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납품 업체 입장에서 원청 고발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예.”
“근데 김 대표님,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지 않겠어요?”
김 대표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정말 저희 임원들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으실 겁니까?”
“네.”
“거기엔 혹시…….”
“대표님도 당연히 포함이죠. 만약 얘기가 정리되면 저흰 이걸 리베이트가 아닌 갑질 사건으로 기소할 겁니다.”
리베이트는 자신들이 공범이 되지만, 갑질 사건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김 대표는 더는 주저하지 않고 결심을 굳혔다.
“……예. 했습니다. 공정위가 파악한 대로 저흰 리베이트를 한 대가로 납품을 따냈습니다.”
그리 말하며 그는 비밀 장부를 꺼내 들었다.
이에 서 팀장의 손이 바빠졌다. 드디어 나왔다. 납품 업체 대표의 자백이.
“저희가 파악한 액수는 총액이 맞습니까?”
“그게…….”
“어차피 전말은 다 밝혀졌습니다. 도우시려면 제대로 도우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한성재단 기부금으로 10억 정도 더 입금했습니다.”
“차명 기부였습니까?”
그는 조심히 끄덕였다.
준철은 내심 놀랐다. 한성재단에서 뜯어 간 기부금은 연 60억대가 넘는다. 근데 차명으로 10억의 기부금을 또 뜯어냈다니.
“업계에서 아주 비일비재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알고 계신 게 있다면 모두 말씀해 주세요.”
이제 진짜로 중요한 것은 과연 이게 얼마나 큰 리베이트였느냐 하는 것.
한성대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는 제약 업체는 수십 곳을 넘는다. 설마, 이 의약품을 모두 리베이트 대가로 돌렸을까?
“아마 기부금을 안 낸 제약 업체는 없을 겁니다. 납품 규모에 따라 기부금 액수가 차이 날 수 있지만, 일단 납품을 하면 무조건 기부금은 내야 합니다.”
“예외가 없다는 뜻이군요.”
그가 착잡하게 끄덕였다.
“시중에서 파는 감기약 효능이 차이가 나 봐야 얼마나 나겠습니까? 특허 걸린 약품 아니면 대부분 다 효능이나 가격이 거기서 거기죠. 의약품 심의에서 가장 큰 기준점은 재단에 얼마의
기부금을 내느냐입니다.”
“그 돈. 재단에서 요구한 흔적이 있습니까?”
“그건 없습니다……. 재단에서 돈 달라는 말 나올 때까지 안 내는 제약 업체는 없거든요. 알아서 기었어야지.”
바이어 입에서 아쉬운 소리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제약 업체가 어디 있겠나.
“뭐 증거까진 괜찮습니다. 대신 김 대표님께서 직접 증언을 해 주셔야겠는데요.”
그가 급당황했다.
“예? 제가 직접요?”
“네. 저희가 법정에서 증인 신청할 겁니다. 거기서 증언을 해 주셔야겠어요.”
“그건……. 어떻게 좀 막아 주실 수 없습니까.”
그가 울상을 지었다.
조사에 못 이겨 죄를 시인하는 것하고, 법정에서 그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은 천지 차이.
“아시다시피 저흰 한성대병원에 거의 종속되어 있습니다. 저흰 정말 그대로 끝입니다.”
준철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세요. 화살은 저희가 돌려드릴 테니.”
“예?”
“리베이트에 가담한 전 제약사들 대표들이 다 증언대에 설 겁니다. 그럼 메디신 혼자 미운털 박힐 일은 없겠죠? 불이익은 없을 겁니다.”
김 대표는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로 모든 제약사들이 이번 일에 증언을 할까? 이건 납품 업체를 모두 설득해 원청을 고발하는 것과 마찬가진데.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 젊은 과장이라면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