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중고차 스캔들
-다음 소식입니다.
연일 뜨거웠던 의약 업계 로비 사건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비단 한성대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었는데요.
공정위가 발표한 3차 병원 모두 사과 성명을 내며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납품 대가로 기부금을 내는 관행이 과연 고쳐질지, 김성한 기자가 전합니다.
***
팽팽했던 양측의 대립은 병원들의 백기투항으로 일단락되었다.
3차 병원들은 특별 성명까지 발표하며 자진 신고를 약속했다.
연루되지 않은 병원이 없어서 병원들의 사과 성명은 묻어가는 분위기였지만, 그중에는 스포트라이트를 피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은 무거운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검찰 출석 당일.
한성 병원 박 원장이 초췌한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영장 동기인 다섯 명의 간부들과 함께.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저희 한성대 병원은 국가 의료 산업 발전에 많은 이바지를 해 왔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의료진들이 밤낮을 거르고, 밥때를 거르며 응급실을 지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적자 분과도 생기고, 돈이 되지 않는 수술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적자를 만회하고자 제약 업체들에게 소정의 기부금을 받아 온 것이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이 시스템의 문제점을 깨닫고 제도적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입장 발표가 끝나자 기자들의 질문이 솟구쳤다.
-정말로 열악한 재정 때문에 기부금을 받아 온 겁니까?
-그런 의료진들이 왜 유흥업소에서 회식을 한 겁니까?
-상당액의 백화점 상품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병원이 아닌 개인 리베이트로 보이는데요?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로 기자들의 질문은 잔인했다.
박 원장은 최대한 빨리 현 상황을 벗어나려 했지만 벌 떼처럼 모여든 기자들이 한 발자국도 터 주지 않았다.
-한성대 병원은 이 문제를 가지고 응급실 파업까지 거론한 걸로 압니다.
“…….”
-일각에선 환자들의 생명권을 가지고 방패 삼았다 합니다.
“…….”
-관련 결정은 누가 내린 겁니까.
그때였다.
“잠시만요, 길 좀 터 주세요-.”
검찰 정문에서 웬 젊은 사내가 나오더니 기자들을 좌우로 갈랐다.
준철은 박 원장에게 귀엣말을 했다.
“아무 말씀 마세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한눈에 준철을 알아본 기자들의 질문이 이번엔 이쪽으로 향했다.
-검찰에 기소하신 이유는 형사처벌 때문이겠죠?
-응급실 파업 협박과 관련해 엄청난 처벌이 있을 거란 예측이 있습니다.
-법정 공방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준철은 어깨를 까딱거렸다.
“조사를 하다 보면 서로 많은 말이 오가곤 하죠. 하지만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을 겁니다.”
-그건 봐주기 조사가 아닌지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더 많습니다!
기자들은 구구절절 옳은 소리만 해 댔고, 박 원장은 땅에 처박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국민들이 얼마나 자기를 증오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서 팀장과 배 팀장이 기자들을 막는 사이, 준철은 박 원장과 함께 겨우 검찰청 정문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오늘따라 기자들이 많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기자들은 사라졌지만 박 원장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담당 조사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저곳을 빠져나오지 않았나.
“왜 저를 도와주신거죠……?”
“큰 의미 부여하지 마세요. 보건복지부에서 특별히 요청했습니다. 죄를 다 시인하고 과징금에도 모두 승복하기로 했으니, 최대한 위신 좀 챙겨 달라고.”
“…….”
“혹시 제가 들은 사실이 원장님 입장과 다릅니까.”
“아니요……. 맞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취조는 일찍 끝날 겁니다.”
사실 그를 더 치욕스럽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적당히 위신을 챙겨 주었다. 이 사태를 한 번에 담판 지어 준 보건부의 특별한 부탁이 있었으니.
그게 아니더라도 웬만해선 배려해 주려 했다.
지금은 조사의 종점이 아닌 시작점. 박 원장을 모욕 주고 망신 주면 타 대학병원들의 자진 신고도 요원해진다. 대의를 위한 일인데 소인배 하나쯤이야.
“먼저 들어가시죠. 저는 나중에 가겠습니다.”
박 원장을 먼저 들여보낸 후 준철은 두 팀장을 불렀다.
“서 팀장, 오늘 취조는 자기가 맡아. 독대로.”
“제가 독대를……?”
“자신 없어?”
“솔직히 너무 거물급 인사라…….”
“거물이든 소물이든 그냥 범법자일 뿐이야. 어차피 조사에 협조하기로 했으니 준비해 온 얘기만 들으면 돼.”
마지막까지 직접 맡고 싶으나 그러진 않았다.
다 끝난 조사다. 이건 경험 없는 신입들에게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배 팀장은 증거자료 맡자. 저쪽에서 맨몸으로 오지 않았을 거야.”
“그 선물 꾸러미 말씀이십니까? 증거 자료들.”
“그래, 그거 정리해서 검찰에 사본 하나 넘겨줘.”
“근데 과장님, 저희 기소 취하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검찰에 따로 넘길 필요는…….”
“그거야 취조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고 결정해야지. 막 이상한 얘기 늘어놓거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딴청 피우면 이 자료를 비수로 이용할 거다.”
준철의 지시를 이해한 두 사람은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휴- 마지막까지 철두철미하네.”
“그러게. 밑에서 일하는 나도 다 질릴 지경이다.”
“오늘 조사 끝나고 한잔 때릴까?”
“술? 얀마, 아직 조사 다 안 끝났어.”
“뭘 걱정이야. 아까 박 원장 얼굴 보니까 이미 다 자백하러 온 눈치던데. 사실상 오늘이 조사 종결이야.
“흠…… 그런가?”
배 팀장이 크큭 웃었다.
“퇴근, 주말 다 반납하고 일만 했는데 우리도 회포 풀어야지! 얘기 들어 보니까 이 정도 스케일의 사건 끝나면 특별 연차도 준대.”
“오- 연차 좋지, 좋지! 근데 술은 담에 하자. 나 오늘 미정이 만나야 돼.”
“여친은 좀 다음에나 만나라. 오늘같이 좋은 날에 무슨.”
“좀 봐줘. 한 달 동안 연락도 제대로 못 해서 단단히 삐쳤다. 근데 명수, 넌 여친 없냐?”
“안 그래도 이번 사건 끝나고 하기로 했다. 흐흐.”
“오- 소개팅. 연차 끝나고 여친 생겨서 오는 거 아니야?”
“기대해. 크큭. 이번 특별 연차 때 아주 광란의 밤을 보낼 거니까.”
***
중소기업청 상생협력과.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는 이곳은 요즘 중기청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됐지?”
“아현자동차 측에서 물러설 것 같지 않습니다. 저희한테 사업 타당성 보고서를 보내 왔습니다. 이르면 오는 시월에 중고차 시장 진입을 본격 발표할 거 같습니다.”
최근 중기청의 최고 골칫거리는 아현자동차의 중고차 진출이었다.
합병을 거듭하며 사실상 국내 독점 자동차 회사가 된 아현이 중고차 시장에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현재 중고차 시장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되었다는 것.
이는 대기업의 영업 행위를 금지하는 초강도 보호 조치다. 아현자동차는 이 적합 업종 해제를 요구하며 강력하게 도전해 오고 있었다.
물론 평소 같았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중기청 본연의 임무가 골목 상권 보호, 대·소기업 상생인데 검토해 주겠나. 하지만 중고차 업계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였고, 중기청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긴 어려운
입장이었다.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지. 어떻게 하면 좋겠어?”
국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과장들이 달려들었다.
“국장님, 검증된 폭탄을 우리가 터트릴 필요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이건 업계의 반발이 불가피합니다. 저희가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해제하면 또 골목 상권 침해 문제가 대두될 겁니다.”
과장들은 이구동성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현자동차는 국민자동차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신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특유의 가성비와 빠른 서비스, 저렴한 부품값으로 엄청난 점유율을 보이고 있었다.
그 거대 기업이 이젠 골목 상권인 중고차 시장까지 진입하려 한다.
“솔직히 게임이 되겠습니까? 아현이 중고차 시장 진입하면 단 몇 년 안에 시장을 평정해 버릴 겁니다.”
“단편적으로만 보지 마. 중고차 업계에 만연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골목 상권 지키다 보면 당연히 부작용도 있겠죠.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 긍정적인 부분은 뭐지?”
기습 질문에 과장들의 입이 싹 다물어져 버렸다.
“국장님,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한 가지만 생각해 주십쇼. 저희 중기청의 역할은 소상공인 상권 보호 아닙니까? 시장 논리 들이밀면 저희는 존재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도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국장은 더 이상 다그칠 수 없었다.
“그럼 아현자동차한테 뭐라 설명할 거야? 우린 중소기업 보호하는 데라서 적합 업종 해제 못 하겠다, 이럴 거야?”
“일단 중고차 연합 대표들과 아현자동차 관계자를 한자리에 모아 보죠. 서로 얘기를 하다 보면 분명 타협점 나올 겁니다.”
“누가 지금 그걸 안 해 봐서 이래?”
“…….”
“양측 초빙해서 벌써 다섯 차례나 회의했다. 아무 진전도 없이 끝났는데 여섯 번째 회의에선 타협이 되겠어?”
사실 ‘중고차 판매자 연합인’ 중연과 아현의 줄다리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시장 진출을 어떻게 할 건지, 국산차만 다룰 건지, 전 차종을 다룰 건지. 꽤 세세한 논의가 있었지만 한 가지도 타협 못 하고 계속 평행선만 달렸다. 시장에 아주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할 판인데, 중연이 타협을 해 줄 리 없다.
그랬던 게 벌써 2년이나 흘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안 없이 반대만 하지 말고 대책을 내놔 봐. 우리가 정말 중소기업 적합 업종 유지하는 게 옳은 거야?”
그리 다그칠 때 한 사내가 손을 들고 말했다.
“국장님, 전 그 말씀이 일리 있다고 봅니다. 업계의 반발이야 불가피하겠지만 중소기업 적합 업종 해제는 이뤄져야 합니다.”
“민 과장?”
“예. 아시다시피 중고차 시장은 이미 40조가 넘는 초거대 사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공정위에 신고된 허위 매물 건수만 4,500여 건. 10년 전부터 꾸준히 늘었고 개선될
여지도 없습니다.”
“계속 말해 보게.”
“뿐이 아닙니다. 강매 신고 400건, 소비자 분쟁 1,200건. 이 모두 공정위에 신고된 자료입니다. 중고차 시장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질 텐데, 피해 사례가 과연 줄어들까요?”
모두가 예스를 외칠 때 노를 외치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동료 과장들이 살기를 띤 눈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민 과장이라 불린 사내는 개의치 않았다.
“아현자동차의 시장 진출은 업자들이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적합 업종 해제를 진지하게 검토해 봤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