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중고차 스캔들
“대기업의 시장 진출은 업자들이 자초한 일이다? 민 과장님, 이거 너무 위험한 발언 아닙니까?”
민 과장의 열변이 끝나자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어떤 부분이요?”
“본인의 소속을 좀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중소기업청. 우리 뭐 하는 곳입니까? 대기업들의 문어발 확장 막고, 골목 상권 지키고, 소상공인 생존권 지키는 데 아닙니까.”
“대기업 진출 막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건전한 시장 관계가 조성되면 오히려 소상공인의 이익이 늘 수도 있죠.”
“그건 무슨 궤변입니까?”
“소비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면 중고차 시장은 더욱 커질 테고, 그럼 전체적인 파이가 커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동료 과장들은 그의 말을 끊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민 과장님. 소비자들 불만이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달라져요? 인터넷에 아현자동차 쳐 보세요. 연관 검색어에 흉기차부터 뜰 겁니다.”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그들 또한 사업자지 시장 구원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현자동차가 중고차에 눈독 들이는 건 이미 내수 시장 평정해서 더 이상 성장 동력이 없기 때문이겠죠.”
“목적은 나도 모릅니다. 근데 아현자동차의 진출이 소비자들에게 해가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마다 찾는 전통시장은 다 없어져야겠네. 뭐 하러 시장가요? 마트에서 장 보면 서비스도 좋고, 시설도 쾌적한데.”
“…….”
“시장 논리 대입하면 중기청은 왜 있습니까? 민 과장님은 진짜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만사를 다 시장 논리에 맡길 순 없지.
한동안 지켜보던 국장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다들 그만. 두 사람 다 일리 있는 말이야. 중소기업 보호가 우리 본연의 임무지만 소비자들의 불만도 무시할 순 없지.”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민 과장 의견은 일리가 있어. 중고차 관련 소비자 분쟁은 해마다 느는 추세고, 아현이 시장 진출 하려는 명분이기도 해. 우리가 무작정 묵살하면 분명 국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거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해서 말인데 이건 우리 혼자서 해결 못 하겠다. 민 과장, 일단 이거 공정위에 협조 요청하자.”
“……공정위요?”
“소비자 분쟁이 다 그쪽으로 신고되는데, 당연히 그쪽 힘이 필요하지 않겠어?”
“아, 예. 그건 그렇습니다.”
“시장 실태 조사 좀 부탁하자. [중소기업 적합 업종] 심사는 공정위가 낸 결과를 참고해 결정하도록 하지.”
***
아현의 중고차 진출은 자율 조정이 다섯 차례나 실패한 안건이었다.
한마디로 타협에 다섯 번이나 실패한 사건.
중기청은 그때마다 적합 업종 해제를 뒤로 미뤘지만 그사이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 진퇴양난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논란이 많은 문젯거리였다.
중고차 시장은 이미 40조가 넘는데, 대기업 진출만 막고 있으니 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중고차 업체는 기업 브랜드가 없으니 마구잡이로 영업을 했다. 허위 매물과 강매가 다반사로 일어났으며 더러 어떤 곳은 불법 대출까지 알선해 소비자들을 기망했다.
뿐이랴.
여름마다 장마가 기성인 한국의 날씨 특성상 침수 차 문제는 해마다 일어났다. 업체들은 당연히 이를 속여 팔았고, 전문 지식이 없는 소비자들은 늘 당할 수밖에 없었다.
중기청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몇 차례나 개선을 요구했지만 시장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여긴 모두 개인 사업자들의 조합. 강력한 통제 기구가 없다.
그랬던 이들도 밥그릇이 달린 문제엔 일체 합심했다.
중고차 시장 중 가장 규모가 큰 4개 업체가 단체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중기청을 압박하고 있었다.
-소상공인 생존권 보장!
-줏대 없는 중기청 각성하라!
-중소기업 적합 업종 해제는 살인!
-우리 업종 해제 할 거면, 대형 마트 규제도 해제하라!
민 과장은 오늘도 한 트럭이나 쏟아진 악성 메일을 확인하며 한숨을 쉬었다.
2년 전부터 시달린 일이었지만 좀체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업계 사람들이 워낙 험한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길 다니기도 무서웠다.
“과장님, 차 대기시켰습니다.”
“어, 그래. 약속 확인했지?”
“예. 그쪽 종합국 국장님과 면담이 잡혔습니다.”
“고생했다. 필요 서류 다시 한번 검토하고 자리에서 대기해. 나 혼자 갈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대기업 진출을 무조건 막는 미봉책으론 이 사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대기업 진출이 시장 신뢰도를 향상시키고, 나아가 시장 규모도 성장시킬 것이라
믿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폐업하는 업체도 속출하겠지.
하지만 그건 도태되어야 할 업체가 자연히 경쟁에서 밀린 것일 뿐이다.
‘대기업과 경쟁해서 살아남는 업체가 진정한 강소 기업이지.’
그리 생각하며 차에 몸을 실었다.
***
제약 업계 사태가 일단락되었지만 준철은 여유를 만끽할 새가 없었다.
과장으로 진급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팀장 때는 한 사건 끝나면 나름대로 여유 있게 보냈건만, 이제는 각 팀장들이 가져오는 서류를 검토하고 조사 방향까지 지시해 주어야 했다.
준철은 기소, 영장 청구 같은 중대 결정 자료들을 우선 결재해 주었다. 기업들이 불복할 기미가 보이는 사건은 팀장들을 불러 세세하게 지시도 내렸다.
그러던 중 불길한 전화 한 통을 받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국장님이 갑자기 왜 부르시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보통 전달 사항이 있으면 과장 전체를 부르지, 이렇게 따로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리베이트 사건 끝난 지 이틀도 안 됐는데.’
그런 기대를 품으며 국장실 앞에 당도했다.
“국장님, 이 과장입니다.”
-응, 들어 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낯선 사내가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사하지. 이 과장, 이쪽은 중기청 민 과장이야.”
“안녕하세요. 종합국 이준철 과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중기청 상생협력과 민형식 과장입니다.”
불운한 직감이 맞았다.
보통 국장실에서 소개팅이 이뤄지면 꽤 큰 사건이란 뜻인데, 아무래도 큰일이 일어날 모양이었다.
“민 과장, 무슨 말인지는 이제 다 이해했네. 우리 과장한테는 내가 따로 설명하지.”
“감사합니다.”
“근데 우리가 언제까지 끝내야 하나? 실태 조사는 우리도 시간이 꽤 걸려서.”
“저희가 한 달 안으로 가·불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 전까진 어려울까요?”
유 과장은 고개를 돌려 준철을 쓱- 훑었다.
그러더니 다시 말했다.
“뭐 가능할 것 같기도 하네. 이 친구 실력이 워낙 좋아서.”
“아, 네. 감사드립니다.”
“따로 또 할 말이 있나?”
“……저희 결정에 공정위 조사 결과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겁니다. 모쪼록 냉정하고 정확하게 평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민 과장이 나가자 준철의 얼굴이 바로 떨떠름해졌다.
이건 뭐 부연 설명을 듣지 않아도 큰 사건이 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유 국장은 못내 미안한지 슬며시 일어나 커피 스푼을 들었다.
“이 과장, 한성대 병원은 어떻게 됐어?”
“이틀 전에 자백 나왔고, 병원도 과징금에 다 승복했습니다. 지금은 서류 작업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 거참 대단하네. 기업들 승복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야.”
빈말이 아니다. 응급실 파업까지 거론되며 꽤 떠들썩했던 사건을 진압하지 않았나. 젊은 과장이 맡기엔 힘들었을 텐데 대견하게 성공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준철의 귀엔 별로 칭찬이 와닿지 않았다. 대신 어지럽게 널브러진 서류가 눈에 들어 왔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해제 논의 – 중기청]유 국장은 커피를 쓱 내밀더니 말했다.
“이 사건 아나?”
“예. 뉴스에서 들어 보기는 했습니다. 아현자동차가 중고차 시장에 야욕을 드러냈다고…….”
“것 때문에 중기청이 아주 죽을 맛인 모양이야.”
“근데 이거 자율 조정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업계 반발 때문에 아현 쪽에서 접은 걸로 아는데.”
“접기는 무슨. 중기청에 해제 요구 보내면서 선전포고 했다. 신청 안 들어주면 법정 싸움까지 갈 모양이다. 한번 읽어 봐.”
대충 읽어 보니 아현자동차가 왜 저리 강경하게 나오는지 이해가 되었다.
40조면 경기도 아파트 분양 시장 규모 아닌가. 이렇게 비대한 시장을 대기업만 진출 못 하게 막아 놨으니 탈이 안 날 수가 없다.
간단히 서류 검토를 끝냈을 때, 국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어때?”
“중기청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겠네요. 근데 중기적합 업종은 저희 권한이 아니지 않습니까. 도울 일이 없을 텐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예?”
“이 자식들이 가·불 경정할 때 우리 근거 자료를 쓸 건가 봐. 뭐 허위 매물이나 강매, 소비자 분쟁이 다 우리 소관이니.”
유 국장은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
“당연히 정치적 이유 때문에 우리한테 맡기는 거겠지만.”
“정치적 이유요?”
“중기청이 대기업 편들면 뒷말 나오니까 우리한테 슬쩍 결정권을 넘긴 거라고.”
“아…….”
준철은 단번에 그 말을 이해했다.
어떤 부처든 조직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에 문제가 많다는 건 알지만, 중기청 입장에선 선뜻 대기업 편을 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저쪽도 시장의 문제는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걸 몰랐으면 우리한테 이걸 가져왔겠어? 이건 놈들도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지 아는 거야.”
현재 중기청은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해제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업계 반발과 자신들의 위치 때문에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가 업계 실태 전달하면 그쪽에선 기다렸다는 듯 결정 내릴 거다.”
“그럼 저희도 처신 잘해야겠군요.”
“응. 까딱하면 우리 핑계 댈지도 모르지. 뭐 핑계라기보단 이치상 그게 맞는 일이긴 하지만.”
말을 끝낸 국장이 서류를 슬쩍 내밀었다.
“이 과장이 한번 해 볼래?”
유 국장은 준철이 이 사건의 적임자라 판단했다.
솔직히 이건 공정위 본연의 업무라 볼 수 없지 않은가. 다른 과장에게 맡겼다면 책임 회피하자고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준철은 다르다.
뭐 하나 찝찝한 게 있다면 그 끝을 보고 마는 성격. 중소기업의 입장보다는 철저히 시장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해 냉정한 결과를 도출해 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놈은 이 상황을 피하지도 않았다.
유 국장은 씨익 웃더니 덧붙였다.
“좋아. 그럼 다른 국에도 말해 놓을 테니까 필요한 인력 있으면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