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중고차 스캔들 (3)
자리로 돌아온 준철은 비스듬히 턱을 괴었다. 중기청이 가져온 방대한 서류에 한숨부터 나왔다. 뭐 굳이 읽어 볼 필요가 있을까?
아현은 중고차 시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고, 판매 연합은 아현을 경쟁자로 받아 줄 생각이 없다.
사실 업자들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국내 차 시장을 독점한 아현이 중고차 시장을 접수하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
이를 의식한 아현도 자사 중고차만 팔겠다, 고객이 먼저 제의할 때만 팔겠다 등의 여러 제약 조건을 걸었지만 판매 연합을 설득하진 못했다.
그렇게 자율 조정은 다섯 차례나 결렬됐다.
‘반대할 만하지. 그렇게 신뢰도를 쌓고 점점 더 많은 걸 요구할 테니.’
준철도 나름 그들의 고충을 이해해 보려 노력했다.
공정위도 중기청 못지않게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기구 아닌가. 하지만 꾸준히 증가해 온 허위 매물 건수, 강매, 소비자 분쟁 사례 등을 고려하면 차라리 대기업을 두둔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골목 상권 보호냐, 소비자 편익이냐…….’
실태 조사엔 담당자의 사견이 들어가야 했다.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의견보충하면 중기청은 판매 연합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반대로 문제점이 더욱 증가할 전망이라 보고하면 중기청도 이를 근거로 [중기적합업종]을 해제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하자. 어차피 판단은 중기청 몫이니.’
복잡한 생각을 제쳐 두고 전화를 들었다.
“서 팀장, 지금 내 방으로 올라와. 어, 배 팀장이랑 함께.”
쏜살같이 달려온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얼굴이 밝아 보였다.
“한성병원 리베이트는 거의 다 끝났지?”
“넵! 보고서 정리만 하고 있습니다. 이틀 안으로 다 끝날 겁니다.”
“다행이네. 다들 이번 사건 맡느라 고생 많았다. 해서 내가 두 사람한테 좀 특별한 걸 주고 싶은데…….”
두 사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뭐든 말씀하십쇼.”
“중기청에서 협조 공문이 왔어. 지금 아현이 중고차 시장 진출한다고 업계가 뒤숭숭한가 봐.”
“……예?”
“근데 이게 우리 업무랑 많이 겹치네. 중고차 허위 매물, 강매, 소비자 분쟁이 다 우리 쪽으로 신고되는 일이라서.”
두 사람은 넋이 나갔다. 특별하다는 게……. 연차가 아니라 사건이었나?
“실태 조사를 부탁했는데 운 좋게도 내가 따내 왔다.”
“……이게 어째서 운이 좋은 건가요?”
“중기 보호하는 투톱 기구가 공정위, 중기청 아니냐. 거긴 우리 자매처나 다름없어. 인맥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지.”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지만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준철의 배경 설명이 이어지자 두 팀장은 더욱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니까 이거…… 중기청이 민감한 안건 저희한테 떠넘긴 거네요?”
“뭐 그건 부정 못 하지.”
“그럼 그냥 대충 하는 시늉만 하면 안 됩니까? 우리가 시장에 문제 있단 의견 내면 업계 불만이 저희 쪽으로 쏠릴 것 같습니다.”
준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사건만 봐. 우리 쪽 통계 자료만 봐도 허위 매물, 강매 같은 소비자 분쟁이 계속 늘었다.”
“그래도 저희가 대기업 두둔하는 것처럼 보여 찝찝합니다.”
“그거 말고는?”
“……예?”
“그냥 느낌이 찝찝하다 말고 다른 걸리는 점 없어?”
두 사람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현의 중고차 진출을 반대할 명분이 있을까? 머리를 쥐어짰지만 아무런 대답도 찾을 수 없었다.
***
“젠장! 중기청에서 공문이 왔어. 아현자동차가 또다시 중기적합업종 해제를 요구했대.”
“아니, 진짜 이것들이 끝장을 보자는 거야?”
“절대 안 돼! 결사 반대! 아현이 업계 진출하는 순간 다 죽는 거야.”
중고차 판매자 연합 대표 4인방은 분통 터지는 회의를 이어 갔다.
다섯 번이나 협상을 결렬시켰건만, 아현이 또다시 야욕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이건 이들에게 재앙이었다.
제아무리 중고차 시장 1, 2, 3, 4등이라 해도 대기업 앞에선 골목대장일 뿐이다. 아현은 과거 다섯 개가 넘던 국산차 시장을 독무대로 만들었다. 중고차 시장 장악은 그보다 더
빠를 것이다.
“중기청 놈들은 이딴 걸 왜 자꾸 공지하는 거야. 지들 선에서 짤라야지.”
자연히 그 원성은 중기청으로 향했다.
아현과 비교해 경쟁력, 소비자 신뢰도 모두 뒤처지는 이들이다.
딱 하나 믿고 있는 게 [중기적합업종]이란 울타리인데, 그 권한을 가진 이들이 자꾸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직 중기청은 우리 편이지?”
“장담 못 해. 반응이 예전 같지가 않아.”
“뭐?”
“자꾸 국민 여론 핑계 대면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설마, 적합업종해제를 진짜 하겠어? 이건 그놈들한테도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사실 내가 들은 말이 하나 있는데……. 중기청이 이 사건을 공정위에 의뢰했대.”
“뭐, 뭐?”
“실태 조사를 부탁했는데 어쩌면 이 결과를 명분 삼아서 해제를 검토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회의실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정위가 나서면 이들에게 좋은 게 없었다. 인터넷에 허위 매물을 올렸던 건 다반사요. 그렇게 미끼를 물고 찾아온 고객을 가둬 두고 강매도 했다.
더러 어떤 곳은 불법 대출까지 알선해 차를 팔았다.
지난 4차 회의에선 중기청이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귓등으로 듣고 적당히 넘어가려 했는데 그게 마지막 경고였던 모양이다.
“공정위가 실태 조사 하면 뭘 어떻게 하려나…….”
“허위 매물, 강매, 침수차 이력 속이기 뭐 다 끄집어내겠지. 소비자 분쟁은 다 그쪽으로 접수되니.”
“중기청이 이를 명분 삼아 아현 편을 들어줄 가능성이 커.”
업계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공정위가 무서웠다.
아현이 털어서 먼지 나오는 기업이라면, 여긴 눈대중으로 봐도 먼지밖에 없는 기업들이다. 공정위의 실태 조사가 이들을 변호해 줄 리 만무하다.
“그럼 결론은 하나네. 공정위 실태 조사를 막는 거.”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엔젤카 박 사장이 입을 열었다. 4인방 중 가장 매출이 높은 곳으로 현재 판매자 연합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였다.
“실태 조사를 어떻게 막아……? 이건 그냥 객관적 자료인데.”
“수치는 못 바꿔도 담당자 평가는 막을 수 있지. 당장에 문제점은 많지만 업계가 노력하면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 돼.”
“……그걸 공정위가 믿어 줄까?”
“믿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야. 질리도록 하는 게 목표지.”
“뭐?”
“지금까지 중기청에 보냈던 팩스 폭탄, 문자 폭탄. 번호만 바꿔 보자고. 담당자 연락처는 내가 알아 올게.”
“아니, 그러다 역효과 나면?”
“걱정 마. 솔직히 공정위도 이 사건 맡기 싫을 거야. 중기청이 욕먹기 싫어서 지들한테 조사를 의뢰했는데, 이거 하나 눈치 못 챘겠어?”
사장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 그건 그렇지.”
“공무원 다 똑같다. 일 커진다 싶으면 꽁무니 빼기 바빠.”
“하긴 이건 그쪽 소관도 아니니……. 그리고 또 공정위가 대기업 편 들어주는 데는 아니잖아? 오히려 견제하는 기구지.”
결론은 쉽게 모였다.
이건 비리를 덮어 달라거나, 안 되는 걸 되게 해 달란 청탁이 아니다. 남의 밥그릇 싸움에 끼어들지 말아 달라는 그저 작은 부탁일 뿐.
어차피 공정위 소관도 아닌지라 금방 나가떨어질 거란 확신도 들었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나가떨어질 거야.”
***
“과장님, 저 팩스가 하나 왔는데요.”
“팩스? 중기청에서?”
“아니요. 판매자연합이란 곳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근데 내용이 좀…….”
서류를 받아 든 준철은 바로 인상이 굳어졌다.
-중기청과 공정위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거대 기업으로부터 영세 사업자를 보호하는 일이다.
-공정위가 골목 상권 침해에 앞장을 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문의 팩스는 그렇게 세 줄 요약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한마디로 자기들 편들어 달라는 뜻이겠지.
사실 준철에게 항의성 팩스는 다반사로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문은 무척이나 황당했다. 자신들의 편을 들어 줘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떡하죠? 무슨 대기업 청탁 얘기 꺼내고 하는 거 보니 이거 악성 민원까지 넣을 것 같던데.”
“밥그릇 싸움에 크게 휘말렸네.”
준철은 판매자연합보다 중기청이 더 미웠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 같으니 미리 짬을 때린 게 아니겠는가.
“됐어. 이런 공문 한두 번 받아 보나. 우리 일만 하자.”
준철은 그 서류를 가볍게 무시했다.
“서 팀장부터 말해 봐. 업계 실태 어때?”
들어 볼 것도 말 것도 없는 보고였다.
중고차 시장의 허위 매물은 꾸준히 상승했다. 지난해 신고된 허위 매물 건수만 4천 건. 그중 2천여 건이 강매로 이어져 소비자들이 환불을 신청했다. 또 그중에는 중개업자가 불법
대출까지 알선해 금감원 단속에 걸린 사건도 있었다.
“개판이 따로 없네.”
“네. 그런데도 아현자동차한테 시장을 조금도 내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에요.”
“이거 드림팀을 한번 제대로 모아야 할 것 같은데.”
두 팀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젊은 과장 성격이라면 이것도 세 사람이서 진행시켜 버릴 줄 알았다. 다행히 그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었구나.
“TF를 어떻게 꾸며 볼까?”
“일단 허위 매물은 안전정보과에서 잡아야 됩니다. 사실 저희가 참고한 자료 대부분 안전정보과에 신청된 이의 제기였습니다.”
“한 세 팀이면 될까?”
“세 팀이면……. 아주 좋죠. 근데 그쪽에서 차출해 줄까요?”
“그건 걱정 마. 아는 분이 나한테 빚진 게 있거든.”
웹튜브 뒷광고 사태 때 오유미 과장.
그녀는 아직도 안전정보과에서 근무하며 홈쇼핑계 저승사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전공이 허위과장광고 적발이니 조언도 많이 얻을 수 있다.
‘옛정이 있다면 세 팀 정도는 차출해 주겠지?’
그리 생각할 때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예, 이 과장님. 저 중기청 민 과장입니다. 혹시 오늘 판매자연합에서 공문이 간 게 있나요?
“예. 오늘 아침에 한 통 받았습니다. 협박 편지처럼 쓰였던데요.”
-어휴, 기어코 보냈네.
“괜찮습니다. 저희도 이런 일엔 익숙해요. 한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고 판매 연합에서 저희 쪽에 면담을 신청했거든요.
“면담요?”
-예, 업계 입장을 잘 설명하고 싶다고. 근데 공정위도 함께 나와 달라 부탁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협박 공문을 보내고 면담을 신청하다니 이건 또 무슨 전략일까?
“알겠습니다. 그쪽에서 원하면 저희도 참석해야죠. 날짜 잡아 주시면 제가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