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중고차 스캔들 (4)
처음 만난 판매자연합 4인방은 극강의 비주얼을 자랑했다.
근육질 몸매에 팔뚝엔 호랑이, 뱀, 명품 차 같은 문신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보통 공식적인 자리에선 이런 부위를 팔 토시로 가리기 마련이건만, 이들은 도리어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
꼭 자신들이 얼마나 독한 놈들인지 과시하는 것 같았다.
“민 과장님,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질 않아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소기업을 보호해 줘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중기청과
공정거래위원회지요?”
엔젤카 박 사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면박을 주었다.
“그런 두 곳에서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를 묵인하다니. 저희 업계에선 대기업 청탁 소문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 대표님, 심정을 알지만 말씀은 좀 가려 하시죠.”
“그럼 뒷말 안 나오게끔 스탠스 바로 취해 주시든가요. 우리가 지금 뭐 없는 법안 만들어 달랍니까? 중고차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중기적합업종]으로 선정된 사업이었고, 덕분에
여러 소상공인들이 상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거 적합업종 선정 어디서 했어요?”
“…….”
민 과장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네. 중기청 동반성장위원회가 직접 선정한 겁니다. 한국 신차 시장은 아현이 독점했으니, 더 이상 독점하지 말라고. 근데 이제 와 대기업들에게 사업권을 주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
“…….”
“아현이 이 시장에 진출하면 업자들 다 파산할 겁니다. 국내 차 시장도 독점했는데 중고차 독점은 더 빠르겠죠? 대관절 이게 어떻게 동반 성장입니까. 대기업 몰아주기지!”
그의 말이 끝나자 민 과장도 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님, 그때랑 지금은 달라요. 시장 규모만 해도 3배나 성장했습니다. 근데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비해 서비스의 질은 나아졌습니까?”
“아무렴 많이 좋아졌죠! 그때는 조폭 낀 업체랑, 훔친 차 파는 장물아비들이 태반이었는데.”
저 소릴 저렇게 당당하게 하다니…….
“0점 맞다가 50점 맞았다고 시험 잘 본 게 아닙니다. 지난해 공정위에 신고된 강매 건수가 800여 건입니다. 깡패가 진짜 사라졌는지요?”
“뭐, 뭐요?”
“그리고 누차 지적하는 허위 매물 사례. 해마다 증가해 작년엔 4천 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저희가 여러 차례 시정해 달라 부탁했건만, 왜 업계에선 이런 사소한 것도 지켜지지 않는
겁니까?”
민 과장은 생각보다 강단 있는 사내였다.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적할 말을 다 쏟아 냈다.
“그래서 지금 중기청이 스스로 지정한 적합업종을 해제하겠다는 겁니까?”
“저희는 최대한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현이 지금 내밀고 있는 자율 조정에 임하세요.”
“뭐요? 자사 차만 팔겠다는 거? 판매대수를 3만 건으로 제한하겠다는 거?”
“……업계 관계자로서 말씀드리는데 그 정도면 아현도 성의를 보인 겁니다.”
“그거야 어떻게든 물꼬 좀 터 보려고 성의 보인 척한 거지. 막상 이 시장 진출하면 계속해서 요구 조건이 늘 거요. 중기청은 대기업 생리 몰라요?”
그 말만큼은 민 과장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가 잠시 주춤하자 박 사장이 기세를 올렸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참 대한민국은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힘든 나라예요. 지금까지 중고차 시장은 소상공인끼리 잘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잘한 문제야 있었겠죠. 하지만
자정작용으로 충분히 고칠 만합니다.”
“…….”
“그런데 이 상태에서 중기적합업종을 해제한다? 이건 그냥 한국 자동차 시장을 아현 공화국으로 만들겠단 거예요.”
박 사장이 신호를 주자 주변 사장들도 가세했다.
“맞아요. 대기업은 막대한 자본력과 인프라로 이 시장을 단숨에 지배하겠죠. 소비자의 편익이 증가한다? 근데 독과점 시장 만들면 대기업이 언제까지 친절할까요?”
“오히려 더 시장은 퇴보할 겁니다. 이는 기업들의 독과점 폐해를 잘 아는 공정위가 더 잘 알 것으로 압니다.”
준철은 내심 놀랐다.
생각보다 일리 있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룡기업으로 성장한 빅테크들도 처음엔 공짜로 서비스를 풀었지. 그러다 시장을 장악하고 난 다음엔 날강도로 돌변했다.
아현이 막대한 자본력으로 중고차 시장을 점령한 후, 막대한 이익을 취하면? 말마따나 시장은 더 악화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이 너무 커 이 시장을 계속 지켜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준철이 처음으로 입을 떼자 사방에서 눈총이 날아들었다.
“물론 대기업이 나중에 돌변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시장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대기업 진출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고요.”
“어째 공정위는 이미 결론을 내고 조사하는 것 같습니다?”
“공평하게 하세요! 지금 공정위가 대기업 변호인으로 왔습니까?”
“그건 제도적 보완이나 업계 자정작용으로도 충분히 해결 할 수 있어요.”
준철은 주눅 들지 않고 말했다.
“하면 무슨 대책이 있습니까?”
“그건…….”
“제도적 보완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요? 생각해 놓으신 방법이 있다면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시끌벅적 했던 회의실이 일순간 조용해져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폐단은 업계 자정 노력으로 고칠 수 없다. 시장 논리로 접근해야 도태될 업자들이 파산한다. 그렇게 자연스레 물갈이가
되겠지.
“방법이 있습니까?”
한 번 더 몰아붙이자 그들이 떽- 소리를 질렀다.
“이거 완전 편파적인 자리구먼! 공정위 말하는 본새 좀 봐. 이미 대기업 편이잖아.”
“편이 아니라 진짜로 방법을 논의…….”
“그게 지금 말하면 뚝 하니 나와요? 거- 기다려 보면 될 거 아니야.”
황당했지만 이들의 울분을 알았기에 참았다.
“그러니까 뭐 있으십니까?”
“없어요. 됐습니까?”
“…….”
“그리고 업계에 대한 얘기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는 거 아십니까?”
이번엔 민 과장이 물었다.
“과장요?”
“무슨 중고차 시장을 미친놈들 사기꾼 장터로 만들어 놨잖아. 신고된 내역들 대부분 다 허위 내역들이란 말입니다.”
“허위 매물이라니요?”
“이 바닥에 카푸어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처음엔 자기가 혹해서 이 차 소개해 달라 저 차 소개해 달라 하고 변심해서 공정위에 신고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그걸 감안해도 4천 건은 너무 큰데?
그리 반박하고 싶었지만 준철은 참았다.
“허위 매물 같은 경우는 매년 는 게 아니라 줄고 있어요. 그리고 강매? 세상에 여기가 무슨 쌍팔년도예요?”
“맞아! 그건 일부 몰상식한 작자들의 얘기지. 요즘은 그렇게 팔면 입소문 다 나서 손님 떨어져.”
“일부의 실수를 중고차 전체의 문제로 매도하지 말아요!”
준철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미 신고된 내역들이 수두룩하게 있지 않은가. 이건 가감 없이 말했을 뿐이다.
“그게 없다고요? 저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강매는 예사였고 불법 대출까지 알선한 걸로 압니다.”
“그러니까 일부의 얘기를 전체의 얘기로 매도하지 말라고!”
“증거 있어요? 최소한 저희 네 개 업체는 절대로 그런 거 안 합니다.”
웹튜브만 쳐 봐도 중고차 눈탱이 맞았다는 사연이 줄을 잇는데……. 이게 대체 무슨 뻔뻔함일까?
정말로 자신들의 업장에선 철저히 지키는 걸까?
“에이, 얘기 못 하겠네! 이렇게 편파적으로 조사를 하는데 무슨 얘길 하겠어?!”
“중기청은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거요. 아닌 말로 우린 아직도 중기청과 아현자동차의 밀월 관계가 의심스러워!”
그들은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건 협박인 것이다. 대기업의 청탁이 의심되니, 자기들 뜻대로 안 되면 온갖 악성 민원을 넣겠다는……. 사실유무와 관계없이 이건 공무원에게 무척 피곤한 일이다.
“휘유…….”
1시간 남짓한 짧은 회의였지만 민 과장은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렸다.
***
“죄송합니다. 저쪽에서 먼저 면담을 요청해서 좀 건설적인 얘기가 오갈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다들 밥그릇이 달려 있는 문젠데 저런 반응이 당연하죠.”
민 과장은 힘없이 담배를 물었다.
진저리가 났는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나저나 진짜로 중고차 시장이 좀 나아지긴 했나 봐요? 저렇게 증거 가져와 보라 하는 거 보면.”
“나아지긴요. 저 업체들 꾸준히 신고받는 업체들입니다.”
“근데 어떻게 저리 당당할 수…….”
“원래 저쪽 사람들이 그럽니다. 금방 들통날 일도 무조건 아니라 잡아떼고, 일단 목소리부터 높이죠.”
민 과장은 하루 이틀 상대해 본 게 아니기에 저들을 이미 다 꿰고 있었다.
“근데 이 과장님은 저 의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기업의 독과점요?”
“네.”
“일리 있는 말이죠. 대기업들이 시장 진출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전략이니까.”
시장을 독점하고 난 뒤엔 바로 가격을 올린다.
그다음부턴 경쟁자가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이다.
“그렇다고 저 사람들의 논지가 완벽한 건 아니에요. 제 생각인데 중고차 시장에 자정작용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제도를 개선하면 지금 시스템으로도 개선이 될까요?”
“글쎄요. 문제는 중고차 업계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별로 신경 안 쓰는 건데 그게 될까요?”
솔직히 불가능이다.
환불 절차를 빨리해 준다, 양심 판매 하겠다 해서 이게 지켜지겠는가. 무엇보다 자동차는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서 소비자들이 당하기 너무 좋은 구조다.
일반 사람이 주행거리 조작했는지, 침수 차였는지 등을 알긴 힘들지.
결국 차를 사고 난 이후에 이를 파악하고 당국에 신고하는 건데, 이건 근본적 대처라 부르기 어렵다.
“대기업이 진출하면 최소한 그 부분은 해결될 겁니다.”
물론 대기업이라고 늘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사기 강매는 막을 수 있다.
이런 간땡이 큰일을 벌이면 막대한 과징금에 영업 정지까지 때릴 수 있으니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업계 신뢰도에 무척 신경 쓰는 업체들.
브랜드 평판을 깎아 먹으면서까지 이런 일을 행하기 어렵다.
“굉장히 복잡한 사안인 것 같습니다.”
“그러네요.”
민 과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수조사는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TF를 짜야 할 것 같습니다. 허위 매물, 불법 대출 알선 등 여러 가지 혐의가 많으니.”
“인력이 많이 필요할 텐데, 정말 한 달 안으로 될까요?”
“해 봐야죠. 근데 저 사람들이 허위 매물 올리고, 강매했단 증거 나오면 사태가 쉽게 끝날 거 같긴 한데.”
민 과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과연 쉽게 잡힐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