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운수 좋은 날 (2)
한산 중고차 시장.
이곳은 용산의 전자 상거래 같은 상업 지구로, 업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공개 장터다. 사실 애덤 스미스의 이론대로라면 경쟁자가 많아질수록 상품의 질은 올라가고 가격은 내려가는 게
정상이건만, 여긴 국부론이 통하지 않는 시장이었다.
업자들이 상품 경쟁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시세 담합을 하기 위해 형성한 단지였으니.
과거 용산도 비슷한 방식으로 컴퓨터를 팔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 소비자가 늘며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한산 중고차 시장은 되레 인터넷 덕분에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허위 매물에 낚인 고객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800만 원짜리 밴츠에 낚인 호구 2호도 이런 부류 중 하나였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무사고, 풀 옵션 밴츠를 800에 내놓겠나? 김 차장은 이런 부류들 등쳐 먹을 땐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요행을 바라고 온 놈이니 마음껏 벗겨 먹어도 된다.
“고객님, 혹시 다른 중고차 업체에서 알아본 매물 있으십니까?”
“아니요. 여기가 처음입니다.”
“혹시 기존 차는…….”
“이게 첫 차예요.”
“아, 그 직업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공무원이긴 합니다만 차 살 때 그런 정보까지 필요하나요?”
“죄송합니다. 차 사다 보면 대출 끼는 경우가 있어 간단한 신상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쩔쩔매는 척했지만 속에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눈탱이 치기 좋은 관상에 직업까지 확실한 남자. 이런 부류는 캐피털을 영혼까지 끌어올 수도 있다.
“대출은 안 끼고 살 거예요. 매물부터 보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싹퉁 바가지 없는 놈. 나갈 땐 눈물 콧물 싹 다 빼서 보내 주마.
김남춘은 담배 두 대를 피우고 노래방 김 마담과 한참 수다를 떨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고객님, 이거 어쩌죠. 3044호 매물은 방금 출고가 됐다네요.”
“네?”
“사실 이게 워낙 인기 매물이라 저희도 전전긍긍했거든요. 아쉽게도 방금 나갔답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요. 진짜로 방금 나간 거 맞아요?”
샌님처럼 생긴 놈이 의외로 공격적이다.
김남춘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프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희 업계에선 빈번한 일입니다. 아니면 제가 비슷한 매물 좀 보여 드릴까요?”
호구 2호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뭐 그럽시다. 무사고 밴츠가 800에 나왔는데 안 가져가는 게 이상하지.”
“생각 잘하셨습니다. 어렵게 시간 내셨는데 차라도 구경하고 가셔야죠.”
“근데 비슷한 사양이란 차들은 가격대가 얼마 정도예요?”
“일단 차부터 보시죠! 가격은 또 저희가 최대한 맞춰 드릴 수 있으니 편하게 결정하세요.”
***
“우리 고객님은 참 운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5만킬로짜리 울프라겐, 이거 보통 중고 시세가 6천부터 시작이거든요? 지금 딱 5,500에 매물이 나왔네요.”
“얼레리? 이 매물이 왜 아직도 안 빠졌지? 풀 옵션 아울링이 4,100에 나왔습니다. 당일 계약하시면 제가 출고 선물로 100만 원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공무원이시면 외제차 끌기 부담되시죠? 14만 킬로 풀옵 제네스, 지금 딱 3천에 나왔습니다. 고객님께 딱 어울리는 차 같네요.”
김남춘은 솟구치는 짜증을 억눌렀다.
매물을 보여 준 지 벌써 2시간째.
호구 2호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놈이었고, 성질 머리도 있었다. 보여 주는 매물마다 시큰둥하게 반응했으며, 시승을 권유해도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젊은 놈이 또 체력은 좋아서 건물을 수 바퀴나 돌았다.
‘이거 진짜 차 보러 온 놈 맞아?’
왜 차가 아니라 사람을 보러 온 것 같을까.
김남춘은 호구 2호가 자꾸만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흠- 별론데요. 다음 건 없나요.”
“아니, 고객님. 좀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뭐가요?”
“5만 킬로 재네스 2천이면 거접니다, 거저! 이보다 더 좋은 차를 어떻게 보여 드려요?”
김남춘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아까 보여 줬던 건 비싸서 못 사겠다면서요. 그래서 싼 거 보여 드렸잖아요. 이건 또 왜 싫은 겁니까?”
“너무 싸니까 못 사겠어요.”
“네?”
“무사고 재네스가 어떻게 2천밖에 안 합니까? 더 불러도 되는데 너무 싸니까 괜히 더 무섭잖아요.”
김남춘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눈앞에 있는 재네스는 사실 반파된 전력이 있는 차로, 폐차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차였다.
차주가 사고를 내고 보험 처리를 하지 않아 다행히 사고 이력은 남지 않았다. 엔젤카는 그것을 인수했고 주요 부품만 갈아서 겨우 굴러가게끔 만든 것이다.
“이 MBW도 그래요. 최소 4천짜린데 왜 저한테만 3천에 주시는 거예요?”
“그야 고객님께서 생애 첫 차라 하시니…….”
“사고 이력 속이시는 건 아니고요?”
“고객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게 속여지겠어요?”
“왜 못 해요? 요즘 중고차 업자들은 다 사고 차량 따라다닌다던데? 보험 처리 안 시켜서 사고 기록 안 남기고, 그걸 그대로 시장에 되파는 거 아닙니까?”
김남춘은 호구 2호를 한없이 노려봤다.
잘못 봤다. 이놈은 호구인 척했던 빠꾸미다.
“그래서 내가 지금 사고 차량을 무사고로 둔갑시켜서 팔았다? 증거 있어요?”
“그건 없죠. 전 사실 워셔액도 혼자서 못 가는 초짭니다. 흐흐.”
“하아…… 그래서 이거 살 거예요, 안 살 거예요.”
“고민 좀 해 보겠습니다. 근데 난 800만 원짜리 밴츠 보러 왔는데, 왜 다 이런 비싼 차만 보여 줘요. 아까 뭐 비슷한 거 보여 주신다면서요.”
“800만 원짜리……. 하아.”
“네?”
“800만 원짜리 밴츠가 어디 있어, 이 쌍놈 새끼야!”
역시나 사람 본성 나오게 하려면 약 올리는 게 최고다.
“김 실장! 바로 올라 와.”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돌리곤 다시 준철을 노려봤다.
“이 새끼, 너 아까부터 계속 빈정거렸지?”
“뭡니까, 지금 고객한테 욕한 거예요?”
“그래 했다, 이 새끼야.”
김남춘은 준철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헐레벌떡 뛰어 온 실장들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정말 주먹으로 맞았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철은 피식 웃었다.
“그러게 왜 허위 매물로 사람을 낚아요. 800만 원짜리 밴츠는 애초에 없었죠?”
“그래, 없었다! 허위 매물로 너 같은 놈들 유인해서 차 팔아먹었다. 어쩔래?”
“그렇게 해서 얼마나 팔아먹었습니까?”
“왜? 네가 근무하는 동사무소로 잡아가려고?”
준철은 안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더듬었다. 녹음기는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중고차고 나발이고 너 같은 놈한텐 차 안 팔아. 김 실장, 저 새끼 당장 끌어 내.”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가서 얘기합시다.”
그때 준철이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객한테 그래서야 쓰나. 아까 보여 준 그 마지막 차, 계약합시다.”
“……뭐?”
“차장님이 오늘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는데, 그냥 돌아가는 건 도리가 아니죠.”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차 계약하자고요.”
준철은 자리에 앉아 계약서를 작성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실장들 모두 어리둥절하게 있었다.
“이 차 안 파실 거예요?”
“……당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제가 원래 성격이 좀 까다로워서 재고 따졌어요. 그래도 오늘 좋은 마음으로 왔는데, 계약 좀 합시다.”
“진짜……야?”
준철은 옆에 있는 계약서 한 부를 더 꺼냈다.
“두 대 계약합시다. 마지막 거랑, 그 전 거. 가격은 아까 부르신 거 그대로 받아요.”
한 대 팔기도 어려운데 두 대나? 그것도 돈 한 푼 깎지 않고?
잠시 이성을 잃었던 김남춘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제기랄 실수했다. 그냥 성질은 지랄 맞지만 돈은 많은 까다로운 고객 중 하나였는데.
“지, 진짭니까?”
“내 면허증은 여기 있으니까 나머진 알아서 작성해 주세요.”
“아, 예.”
“미안합니다, 차장님. 이렇게 험한 꼴 보기 싫었는데.”
“아, 아닙니다. 저야말로 미련했죠. 우리 오해 풀고 계약 합시다.”
“네, 네.”
아무렴 차를 두 대씩이나 계약해 줬는데. 이 정도면 부모님의 원수도 용서할 수 있다.
김남춘은 부리나케 서류 작업을 완성했다.
“사장님, 그럼 선수금은 어떻게 할까요?”
“제가 지금 수중에 딱 돈이 천만 원 정도 있거든요. 근데 제가 주담대를 많이 받아서 아마 1금융권은 더 이상 대출이 안 나올 거예요. 한 4천 비는데 뭐 방법 없습니까?”
김남춘은 입이 귀에 걸렸다.
“왜 없겠어요. 저희랑 거래하는 캐피털 업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캐피털 업체 이름이 뭐예요?”
“사실 정식 등록 업체는 아닌데 이율은 그냥 2, 3금융권과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 12%?”
준철이 인상을 찌푸리자 급히 덧붙였다.
“근데 또 사장님께서 워낙 직장이 확실하시니 제가 잘 말씀드려 10%대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흠…… 이거 진짜 캐피털 맞죠? 불법 대부 업체 아니죠?”
“아무렴요. 그건 진짜 저 믿으셔도 됩니다.”
“좋습니다. 그럼 한 4천만 땡겨 주세요.”
속에선 기함이 나왔다.
기준 금리 3%시대에 10%짜리 대출이라니. 심지어 지급처가 2금융권도 아니고 저축은행도 아니고 대기업 캐피털도 아니다. 캐피털이라고 간판만 내건 불법 대부 업체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사장님, 그럼 선수금 1천에 대출이 4,400이니까 월부금은…….”
“잠깐만요. 왜 대출이 4,400입니까? 전 4,000 받기로 했는데.”
“아, 이건 수수료예요.”
“수수료?”
“제가 소개해 드려서 고객님께서 대출 승인 났잖아요. 그럼 원래 수수료를 내는 겁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대출 알선 대가로 차장님한테 400만 원의 수수료가 들어간다는 거예요?”
“네.”
그는 당당했다. 불법 대출 알선이 얼마나 큰 형량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준철은 더 이상 실랑이 하지 않고 서류를 작성했다.
“네. 그럼 끝났습니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김 실장, 얼른 차 가져와.”
예전에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아나운서가 갑자기 이제부터 이 차는 제 겁니다. 라고 했던 장면. 중고차 시장이 그러했다. 계약서가 끝나니 바로 인수다.
“차량 두 대 계약하셨는데, 한 대는 저희가 모셔다 드릴까요?”
“아니요. 지인이 오기로 했습니다.”
그리 말하며 준철이 핸드폰을 들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자 갑자기 잠복해 있던 형사들과 공무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 당신들 뭐야?”
당황하기도 잠시.
준철이 김남춘 앞에 공무원증을 꺼내 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어, 어디요?”
“서 팀장, 배 팀장. 지금부터 이 차 우리 거다. 기술팀한테 넘겨서 결함 조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