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운수 좋은 날 (3)
엔젤카 박 사장은 사무실에 있는 집기들을 모두 집어 던졌다.
“다시 말해 봐. 뭐?”
“죄, 죄송합니다. 공정위가 고객으로 위장해 저희 차와 계약을…….”
뒷말은 다시 들을 필요도 없다.
호구 새끼를 낚았다 생각한 영업차장이 바가지를 잔뜩 씌워 중고차를 소개했고, 허위 매물 사실도 인정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늘 든든하게 고객을 협박해 주던 ‘실장’들의 존재도
들켰으니, 강매 정황은 빼도 박도 못한다.
“사장님 문제가 한 가지 또 있습니다. 저희가 소정의 수수료를 받고 캐피탈 업체를 소개해 주는 것도 걸려서…….”
“에둘러 말하지 마. 불법 대출 알선도 걸렸다는 거야?”
“예. 담당자가 자기 이름으로 직접 대출 계약을 했더군요. 이건 바로 법정 증거 자료로 쓰일 겁니다.”
허위 매물, 강매, 불법 대출 알선……. 중고차 시장의 대표적 불법 행위다.
허위 매물에 낚인 고객에게 비싼 차를 보여 주고, 돈이 없으면 대출을 알선하는 것이 판매 매뉴얼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공정위에게 이 모든 과정을 들켰으니 영업정지는 물론 업주 형사처벌도 내려질 것이다.
“이 멍청한 새끼들!”
하지만 박 사장은 겨우 그런 사소한 것들에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내가 당분간 조심하랬지! 지금 중기적합업종 심사 중인데 겨우 여기서 꼬투리를 잡혀?”
허위 매물, 강매야 적발됐을 때 잠깐 조심하다 원상복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중기적합업종이 해제되면? 아현자동차를 시장에 들이게 되며, 이로 입게 될 피해는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공무원들의 적발보다,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저희도 몰랐습니다. 담당자가 고객으로 위장해 저희 업체를 칠 줄 알았겠습니까.”
박 사장도 그 말 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어떤 미친 공무원이 고객으로 위장할 줄 알았겠나.
그간 공정위의 실태 조사는 적당히 허위 매물을 지적하거나, 강매 사례를 환불해 주는 등 요식 행위로 그쳐 왔다. 이렇게 작정하고 증거 자료를 수집해 가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됐다. 이젠 수습하자.”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돌렸다.
“이거 판매한 놈이 누구야.”
“한산지점 김남춘 차장입니다.”
“김남춘이? 그 작년까지 판매왕 달았던 놈?”
“예.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인사 기록 바꿔서 판매왕 타이틀 회수 해. 그리고 징계 기록 몇 개 꾸며 놔.”
“……예?”
박 사장은 알아듣지 못하는 직원 때문에 짜증이 솟구쳤다.
“회사의 잘못이 아니라 개인의 잘못이라고 둘러대야 할 거 아니야! 이대로 다 죽을 거야?”
“아, 아닙니다.”
“만약 공정위가 해명 요구하면, 원래부터 문제 많은 딜러였다고 둘러대. 지금부터 우린 이놈과 철저히 거리 둔다.”
빤하지만 늘 먹히는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그간 중고차 시장은 허위 매물, 강매 등의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소수의 업체들 얘기라 핑계 대며 빠져나갔다. 이는 이번에도 유효할 것이다.
“박 사장, 이게 무슨 일이야!”
“공정위가 증거 잡아갔다는 게 사실이야?”
복잡한 얘기가 정리되어 갈 때. 판매자연합 나머지 대표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보니 이미 사정은 전해 들은 모양이다.
박 사장은 임원들을 해산시키며 소파에 앉았다.
“뭐 이렇게 허겁지겁 왔어. 별것도 아닌 일인데.”
“별것도 아니긴! 공정위가 고객으로 위장해서 엔젤카 쳤다며.”
“허위 매물, 강매 정황 다 잡혔다는 게 사실이야?”
지금은 중기청과 판매자연합의 일촉즉발 상황.
이번 사건이 중기적합업종 해제란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마. 다 대책을 마련해 놨으니.”
“대책?”
“판매한 딜러 징계 기록 꾸며서 개인의 일탈로 정리할 거야.”
“그게 말이 돼? 그 친구 작년에 판매왕까지 달성한 놈 아니야. 수법이 다 들통났는데 이게 그냥 넘어가지겠어?”
“중기적합업종 해제되면 어떡할 거야!”
다른 대표들이 추궁하듯 나오자 박 사장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어째 얘기가 좀 이상하게 들리네? 이게 다 내 책임이라는 거야?”
“지금 같이 예민한 상황에 이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그래서 자네들 지금 억울해?”
“……뭐?”
“막말로 자기 업장에서 허위 매물, 강매 안 해 본 놈 있으면 나와 봐.”
“…….”
“그냥 우리가 늘 하던 대로 했고, 재수 없게 업계 1등인 우리가 걸려든 거야. 자네들이 뭐가 억울해?”
사실 이 자리에서 진짜 억울한 사람은 없다. 걸린 놈과 안 걸린 놈만 있을 뿐이지.
타 업체들 또한 똑같이 영업했고, 그 결과로 업계 2, 3, 4등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다들 진정 좀 하자고. 박 사장, 홍 사장이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야. 자기가 우리보다 영민한 구석이 있으니 무슨 대책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해 본 말이라고.”
“…….”
“자네들도 그만해. 솔직히 이건 어느 업체든지 꼼짝없이 당했을 거야.”
다행히 이 사장의 중재 덕분에 파행은 막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공정위가 고객으로 위장까지 했을 정도면 칼을 많이 갈았나 봐. 진짜 끝장을 볼 모양이라고.”
“미안하게 됐다. 괜히 우리 엔젤카 때문에.”
“지나간 일은 별수 없고. 뭐……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 보자.”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대책이 나올 수 없는 문제다.
홍 사장은 패색이 짙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돌이킬 수 없어……. 사업 시행 3년 뒤, 자사 차만 판매, 판매 대수 3만 대 제한. 그냥 여기서 타협 보자.”
“뭐? 아현자동차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자고?”
“별수 없잖아. 더 버티다간 우리 이미지만 더 나빠질 거라고.”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었지만 박 사장은 코웃음만 쳤다.
“홍 사장은 언제부터 그렇게 이미지를 신경 썼대.”
“현 상황에서 이게 최선이잖아. 앞으로 대기업과 경쟁해야 할 텐데 우리도 이젠 이미지 관리해야지.”
“지금 와 이미지 관리하면 고객들이 퍽이나 예뻐해 주겠네.”
“왜 자꾸 빈정거리는…….”
“허튼소리 말고 내 말 똑바로 들어. 송충이가 뽕잎을 먹어야지 무슨 고기를 처먹어. 어차피 더 나빠질 이미지도 없다. 이제 와 관리해 봤자 소용도 없는 짓이라고.”
박 사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현자동차를 시장에 들이는 거? 이건 이 자체로 게임 끝이야. 우리가 뭔 수로 대기업하고 경쟁해서 이겨 먹어.”
“……그래서 사업 제한을 걸자는 거 아니야.”
“그 제한이 언제까지 갈 거 같아? 대기업은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는 놈들이야. 시장 반응 괜찮다 싶으면 판매 대수 제한 풀고, 자사 차 판매 제한도 풀겠지. 이건 시간문제야.”
다들 그 말엔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만약 하더라도 제한 조건은 우리가 걸어야지.”
“그럼……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사업 시행 5년 뒤, 당연히 자사 차만 판매, 근데 연식 5년 이상 된 매물만, 그리고 판매 대수는 2만 건으로 제한. 이 정도 조건이면 응하지.”
다들 사색이 됐다.
연식 5년 이상 된 차만, 그것도 1년에 2만 대밖에 못 팔게 하는 건 사실상 진출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것도 사업 시행을 5년 뒤로 미루자니.
“이건 말이 안 돼. 아현차가 바보도 아니고 이걸 들어주겠어?”
“맞아. 아현은커녕 중기청도 동의 못 할 조건이라고.”
다들 난색을 표했지만 박 사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중기청은 중고차 시장 누가 갈라 먹든 애초에 관심 없어. 가장 바라고 있는 건 이 사태의 원만한 해결이지.”
“……뭐?”
“우리가 이 정도 양보하면 아현도 거부 못 해. 아예 결렬되는 것보단 나을 테니.”
“그럼……. 아현이 우리 중재안에 동의할 거란 말이야?”
“당연하지. 그놈들은 중기청 눈치를 많이 보는 놈들이야. 우리가 더 박한 조건을 걸어도 일단 응할 수밖에 없어.”
박 사장은 지금 그 누구보다 중기청의 눈치를 보고 있을 아현의 약점을 공략할 계획이었다.
“듣고 보니 나쁘진 않네. 제한을 걸 거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아현의 요구 조건은 어차피 커질 텐데, 초장에 이렇게 기를 죽여 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리 있다 생각했던지 이내 모두 동의했다.
“다들 동의하면 내가 중기청에 자율 조정 신청할게. 그게 마지막 자율 조정이 될 거야.”
박 사장은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아현의 중고차 진출이라는 대세를 피할 순 없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선방한 조건이다.
***
“과장님, 기술팀에서 차량 분석 자료 넘어왔습니다.”
“벌써? 다섯 대나 될 텐데.”
“사실상 껍데기만 새 차량이라 결함이 금방 파악됐다고 합니다.”
“좋아. 그럼 바로 회의하자.”
서 팀장의 보고에 준철이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기술팀에 의뢰한 결함 조사가 벌써 정리된 것이다. 그래도 다섯 대인데 이렇게 빨리 파악된 걸 보면 진짜로 차량 내부 문제가 엄청났나 보다.
회의실에 도착하니 한 과장이 파견 보내 준 최 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준철은 그에게 다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최 팀장님, 저 대신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냥 중고차 업체 가서 차 세 대 계약하고 온 게 전분데.”
차량을 두 대만 계약했다는 건 판매자연합의 오판이었다.
준철은 최 팀장에게 따로 지시해 차량 세 대를 더 계약했다. 엔젤카 차량이 아닌 2, 3, 4위 업체들 차량으로.
“말씀하신 대로 가장 싼 차량 세 대로 구입했습니다.”
“강매 분위기는 없었나요?”
“뭐 그런 분위기는 없었는데 차량 결함에 대해 물어보니, 무조건 무사고 차량이라고 둘러대더군요.”
최 팀장이 구입한 차량은 모두 알아주는 외제차로 연식도 2년이 넘지 않은 신형 모델들이었다.
하나같이 풀옵션에 사고 이력이 깨끗한 차들. 그 흔한 범퍼 깨짐이나 기스 자국도 없었으며, 코팅은 또 얼마나 훌륭했는지 방금 출고된 차량이라 해도 믿길 정도였다.
“대체 이런 차가 어떻게 천만 원밖에 안 하는지, 참. 만약 진짜로 무결함 차량이면 이 세 대 모두 제가 인수해 버릴까 합니다.”
“하하.”
“과장님도 한 대 인수하세요. 시중 시세로는 최소 3-4천짜리들입니다.”
“되팔아도 2-3천이 남는군요. 이거 구미가 확 당기네요?”
“네. 고생 많이 했는데, 성과금 챙기셔야죠.”
수다를 떠는 사이 기술팀 사람들이 회의실로 등장하며 곧 회의가 시작되었다.
발표를 맡은 팀장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힘주어 말했다.
“발표하기에 앞서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차량 다섯 대 중 두 대에서 전손 이력이 확인됐고, 한 대는 침수 차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