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마지막 중재 (2)
소비자분쟁원 기술팀 김무석 과장은 그날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자동차 결함 조사? 다섯 대나?”
이런 무지막지한 요구가 있기 전까진.
“네. 지금 종합국에서 중고차 시장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하는데, 다섯 대를 직접 구입한 모양입니다.”
“종합국이면 그 사고뭉치 과장 말인가.”
“네. 이준철 과장이 의뢰했습니다.”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종합국에서 유례없는 특활비를 요청했다는 소식은 이미 공정위에 파다하게 퍼진 터였다.
적당히 한두 대 구입하겠거니 했는데, 무려 다섯 대였을 줄이야!
“소문대로 진짜 일을 만들어서 하는 타입이네.”
“누가 아니랍니까. 이거 어차피 중기청에서 의뢰한 일인데 적당히 하는 시늉이나 하지.”
“그래서 뭘 조사해 달라는 거야?”
“차량의 종합적인 문제 파악을 요청했습니다.”
“토탈 정비? 이거 다 뜯어보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한 달 안으로 부탁한다는데…….”
어이가 없었다. 자동차가 무슨 리어카인 줄 아나.
현대 문명의 집약체인 자동차는 핵심 부품만 30종이 넘는다.
만약 신차 결함이면 그냥 문제 되는 부품을 모조리 다 보고 해도 되지만, 이건 중고차 결함 아닌가. 문제 된 부품이 마모에 의한 것인지, 속여 판 것인지 파악하려면 반년도 부족하다
할 수 있었다.
“다섯 대 결함 조사를 어떻게 한 달 안으로 끝내? 못해도 세 달이다. 재촉하지 말라 그래.”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지시였지만, 이는 일주일 만에 반전되었다.
“……과장님, 이거 중고차가 아니라 거의 리어카 수준인데요.”
“뭐?”
“차 껍데기만 벗겨 보니 그냥 결함투성이였습니다.”
종합국이 의뢰한 차량들은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무사고를 자랑했던 차에선 모터가 찌그러진 흔적이 발견 됐고, 루미놀 테스트를 거치니 운전석에선 소량의 혈흔이 검출되었다.
“이건 명백한 사고 이력입니다. 아마 차주가 보험 처리 안 시키고 바로 중고차로 인계한 것 같습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사후 처리 또한 엉망이었다는 것.
사고 과정에서 손상된 브레이크가 결함 상태 그대로였고, 주유관에선 소량의 누유까지 검출되었다.
“그리고 3번 차량은 침수 이력을 속인 것 같습니다. 모터 쪽에서 물 자국이 발견됐고, 중심부에 흙모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고객이 이 차를 진짜 인수했더라면 어땠을까?
잔고장에 시달리다 부품 교체했으면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자칫하면 도로 위에서 매드맥스가 펼쳐질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신 나간 놈들이……. 진짜 이딴 걸 팔았어?”
“네. 그야말로 굴러만 갈 수 있는 차였습니다. 껍데기만 새 걸로 바꿨어요.”
“이 정도 결함이면 환불이 아니라 고객한테 소송도 당했을 겁니다.”
중고차 업계의 악명은 익히 들었다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결함 조사는 더 진행할 것도 말 것도 없었다. 중고차 업계의 명백한 고객 기만이었다.
김무석 과장이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한 팀장이 조심히 덧붙였다.
“그리고 과장님, 이건 본 사건과 관련은 없는데 차량 조사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거든요.”
“뭐?”
“이 자료를 한번 봐 주세요.”
서류를 집은 과장은 화등잔만 하게 눈이 커졌다.
“이건 중고차 결함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네.”
“예. 어쩌면 이번 사건보다 더 커질 수 있는데…….”
김무석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눈앞에 있는 과제부터 해치우자. 지금 우리 이거까지 감당 못 해.”
“아, 예.”
“김 팀장, 차량 결함 보고서에 그냥 다 기입해. 침수 차 이력, 사고 이력 전부 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한테 신고된 중고차 분쟁 사례 전부 추산해 봐. 종합국에 있는 사실 그대로 보고해 주자.”
***
준철은 기술팀에서 받은 소견을 있는 그대로 발표했다.
차가 전손된 이력, 침수 차 이력들이 구체적인 사진까지 첨부되어 발표, 아니 폭로되고 있었다.
“저희 기술팀 소견으로 중고차가 아니라 거의 리어카였다고 합니다.”
발표는 그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판매자연합 모두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크게 당황한 건 동반위원회 간사들이었다.
중립을 표방한다만 사실은 중기 쪽 편을 더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이들 아닌가. 방금 판매자연합이 제시한 말도 안 되는 조건도 어지간해선 들어줄 참이었다.
하지만 준철의 폭로 앞에 그럴 마음이 싹 가시고 말았다.
이게 만약 큰 사고로 이어졌다면 중기를 두둔하던 그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이건 억지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판매자연합이 들고일어났다.
“공정위는 왜 자꾸 편파적인 거요?”
“편파요?”
“소수의 양심 없는 업자들 문제를 가지고 왜 중고차 시장 전체를 매도하느냔 말입니다!
“우린 저 발표 인정할 수 없어요!”
준철은 피식 웃었다. 그러곤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자료를 내밀었다.
“이게 해당 차량 계약서들입니다. 한번 읽어 보시겠어요?”
판매자연합은 아연실색했다.
문제 차량이 바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업체들 네 곳에서 구입한 차량들이었다.
“아, 아니, 사 간 건 두 대였는데…….”
“저희 팀 다른 조사관이 세 대를 더 구매했습니다. 결과는 이렇고요.”
민 과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 과장님, 이 차량 결함이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기술팀 소견으론 음주 운전 차량이나 다를 바 없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법적 처벌은요?”
“사실 이 정도면 형사처벌감이죠. 저희 공정위가 각 업장에게 업무 정지 아니, 업장 폐쇄를 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돕니다.”
허위 매물, 강매, 차량 이력 속이기. 이건 판매가 아니라 사기다.
“사실 저희가 업장 폐쇄 명령을 안 내려도 될 겁니다. 이 사실이 그대로 보도를 타면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질 겁니다.”
위원장은 고개를 돌렸다.
“판매자 연합, 여기에 대해서 할 말 있습니까?”
늘 당당하던 이들이 처음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공정위 말대로 이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 자발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날 거다. 아현차의 시장 진출을 반기는 여론만 더 커지겠지.
“시장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거라 했죠.”
“…….”
“정말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습니까?”
“…….”
여전히 묵묵부답.
위원장은 한동안 이들을 바라보더니 반대편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현차 측.”
“예!”
“중고차 진출 요건이 뭐라고요?”
“이전과 같습니다. 3년 뒤 사업 시행, 자사 차만 판매, 그리고 판매대수 3만 건으로 제한입니다.”
위원장은 다시 고개를 돌려 물었다.
“판매자연합에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아현 측 요구에 응할 용의가 있습니까?”
***
[속보 – 아현차 중고차 시장 진출] [양측 마지막 중재에서 대타협]회의 결과는 주가 공시에서 곧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중기청은 혹시 모를 반발에 대비해 ‘중기적합업종 해제’를 공식 발표하진 않았지만, 아현차를 시장에 들이며 사실상 적합업종 해제를 시사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대타협’으로 끝났다. 공정위도 이 과정에서 있었던 뒷얘기를 삼가며 타협안에 박수를 보내 주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대타협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아현차였다.
아현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었단 평가와 함께 주가가 단숨에 상한가로 직행했다.
-가즈아! 50조짜리 중고차 시장!
⌞국민차 아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주주일동 ^ㅡㅡ^
-홍상기 부회장이 드디어 한 건 했다.
⌞그간 아버지 그늘에 감춰져 기도 못 폈는데.
⌞ㅇㅇ 리더십 제대로 증명함. 솔직히 중기청이 어지간해선 절대 적합업종 해제 안 하는데, 뚝심으로 밀어붙인 거.
⌞맞아~ 다섯 번이나 결렬된 거 뚝심 없었으면 나가리였제~
⌞솔직히 홍상기가 잘한 거냐? ㅋ 중고차 업계가 그만큼 썩어서 중기청이 소비자 반발 의식한 거지.
⌞그거나 저거나.
대기업이라면 학을 떼던 네티즌들이 모처럼 한마음이 됐다.
-그럼 이제 중고차 믿고 살 수 있겠지?
아현차 정도면 고객 뒤통수 못 칠 거 아니야.
⌞그건 아직 두고 봐야 함;; 타협안이 자사 차만 파는 조건이고 그것도 연 판매대수 3만 건임. 사업 시행도 3년 뒤랬나.
⌞그거야 시장 반응 괜찮으면 계속 늘려가겠지~ 솔직히 10년만 있으면 아현이 시장 평정한다.
-여러분 아현차 주식은 오늘이 가장 싼 겁니다.
50조 시장 장악하면 그땐 돈 주고도 못 사요.
⌞미친놈 주식을 왜 돈 주고도 못 사냐ㅋㅋ
⌞눈치 챙겨. 오늘은 뻘소리 해도 되는 날이야.
***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과장님.”
다시 만난 민 과장은 한시름 돌린 듯 얼굴이 밝았다.
“이거 괜히 저희가 늦어서 피해 보진 않을지 걱정했습니다.”
“늦기는요. 필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와 주셨는데.”
“근데 민 과장님은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입지가 난감하실 텐데.”
공정위는 본연의 역할이 소비자 편익이니, 이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민 과장은 중기청인 만큼 입지가 난감할 텐데.
“뭐 여러 곳에서 눈치 따갑게 받지만 어쩌겠어요. 이게 옳은 일인데. 조직 논리를 벗어나긴 했지만 네티즌들 반응을 보니 오히려 자부심이 드네요.”
준철은 존경심이 들었다.
이런 공무원 정말 몇 안 되는데.
“뭐 앞으로 조심할 건 해야죠. 아현이 시장 독점하고 나면 돌변할 수도 있다는 주장엔 동의합니다. 저희는 이 부분을 감시하려고요.”
그는 준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공정위도 많이 도와주세요.”
“……예, 뭐.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제가 오늘 정리해야 될 일이 많네요. 이 과장님, 나중에 제가 근사한 곳에서 술 한잔 사겠습니다.”
“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그를 떠나보낸 뒤.
준철은 인터넷 뉴스를 살폈다.
-아현차가 한국 중고차 시장을 살린다!
찬사 일색인 댓글들에 한숨이 나왔다.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사실 오늘은 준철에게 웃을 수 없는 날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김무석 과장에게서 메시지가 한 통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