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아현차 스캔들
[홍상기 부회장의 집념, 10년의 폐단을 끊다] [5전6기. 홍 부회장이 적극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주가가 연일 고공행진하며 아현차에선 즐거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언론은 현 사태를 소비자의 승리라 평가하며 중고차 시장 신뢰도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거기엔 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도 있었으니.
“이건 우리 아현차의 승리야. 웃기는군. 골목 상권 박살 낼 거라고 떠들어 댈 땐 언제고.”
바로 이 사태의 총책임자인 홍상기 부회장이었다.
“언론사야 늘 이기는 놈 편이죠.”
“축하드립니다, 부회장님. 아직 진출도 안 했는데 벌써 주가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건 집념 하나로 여기까지 끌고 온 부회장님 공입니다.”
임원들이 용비어천가를 부르자 부회장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사실 그는 현 상황에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고령의 아버지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은퇴한 지 5년. 후계구도를 이어 받은 그는 오랫동안 성장 동력을 고민하고 있었다.
중저가 이미지를 탈피하려 프리미엄 세단을 따로 독립시켰고, 이것이 호평을 얻으며 최근엔 독3사와 자주 비교되곤 했다.
그 결과 아현차는 경이적인 국내 점유율을 달성했지만, 인구 5천만의 내수 벽은 너무 큰 것이었다.
-생산 단가를 내리자니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고……. 기술력을 더 높이자니 갈 길이 구만 리……. 새로운 시장……. 새로운 시장이 필요해.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중고차 시장이었다.
사실 그는 중고차 시장의 실태를 파악하곤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업자들 태반이 다 고객들 등쳐 먹는 데 혈안이지 않나.
깃발만 꽂으면 곧 시장을 평정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에 대한 가장 큰 걸림돌을 치웠다.
이제 3년만 있으면 아현차도 간판을 달고 정식 영업할 수 있다. 시장 독점은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너무들 자축하지 마. 지금 이 조건이 완승은 아니야.”
홍상기는 냉정한 얼굴이었다.
“우리 시장 진출은 3년 뒤지?”
“예. 그렇습니다.”
“그것도 자사차 판매만 가능한 거고, 연 판매대수는 3만 건?”
“네. 하지만 소비자 신뢰가 커지면 이 조건은 계속해서 상향시킬 수 있습니다. 최장 10년 안에는 완전 자율 영업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국내 독점 기업이 된 아현차다.
중고차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시장독점은 시간문제다.
“꼭 이 상무 말대로 됐으면 좋겠군. 그럼 내가 우리 퇴직한 임원들한테 중고차 시장 전부 맡겨 버릴 텐데.”
“죽을 때까지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 하하.”
오고 가는 덕담에 홍상기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복잡한 얘긴 나중으로 미뤄도 늦지 않다. 오늘 하루는 마음껏 자축해도 되는 날이다.
“부회장님…… 근데 아직 속단하긴 이릅니다.”
하지만 이때 한 사내가 산통을 깼다.
“비록 새 시장을 개척했다고는 하나 본질적으로 저희의 기술력이 향상된 건 아니니…….”
“왜? X9에 또 문제가 생겼나?”
“예. 출시된 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결함 보고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급발진 사례까지 보고되어 고객들이 대책위를 꾸렸다고 합니다.”
그 말에 임원들 모두 얼굴이 어두워졌다.
X9은 6개월 전 출시된 아현차의 야심작이었다.
사실 야심작이라기엔 부끄러운 감이 있다. 소형 SUV시장이 급부상하자 기존 대형 SUV 모델을 크기만 줄여 2년 만에 출시해 버렸으니.
기능과 편의는 대형 모델에 맞춰 설계되어 있는데 이걸 크기만 줄였으니 부작용이 심했다.
출시 일주일 만에 용접 불량, 에어백 불량, 안전벨트 미작동 같은 사례가 접수되었고 최근엔 급발진 같은 중대 결함까지 보고되었다.
“박 전무, 그 얘길 꼭 오늘 같은 날 해야 돼?”
“신차 출시할 때 결함 보고는 늘 있는 일이잖아.”
“부족한 점은 잘 새겨듣고 내년에 업그레이드 출시하란 말이야.”
임원들은 박 전무를 타박했다.
오늘같이 좋은 날 왜 꼭 산통을 깨는 건지.
“우리가 가진 광역 서비스 센터는 뒀다 어디 써먹어? 사소한 오작동은 그냥 서비스 센터 이용하라 그래.”
부회장도 불편한 기색으로 박 전무를 쏘아봤다.
하지만 박 전무는 고집을 죽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끝날 만한 사안이 아닙니다. 당장 출고 중단을 검토해 봐야 합니다.”
“뭐야?”
“급발진까지 보고될 정도면 차량 결함이 심각한 상태라는 겁니다. 아직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진짜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출고 중단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그러면 기존 고객들의 환불 요청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여기서 나오는 손해는 어떻게 감당하게.”
“……문제점을 인식하고 계속 출고하는 건 더 큰 문제입니다. 만약 당국이 리콜 명령이라도 내리면 더 큰 손해가 발생할 겁니다.”
“그만-”
회의가 더 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회사를 생각하는 박 전무의 충정은 이해해. 말마따라 리콜 명령은 더 큰 손해가 될 테니까.”
“…….”
“근데 박 전무, 당국의 리콜 명령은 쉽게 떨어지는 결정이 아니야. 자네는 X9이 정말로 그 정도 결함 덩어리라고 봐?”
박 전무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신차 결함 문제는 아현차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고질적 문제였다. 이에 국토부가 몇 번 리콜 권유를 한 사례는 있지만 명령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자네가 생각해도 리콜 명령은 너무 갔지?”
“……예.”
“다른 임원들 말대로 출고 중단은 피해가 너무 커. 잘 타고 다니는 고객들의 불안감까지 키울 수 있다고.”
“…….”
“그래도 박 전무 말은 내 새겨듣지. 당분간 결함 보고 있으면 모두 무상으로 수리해 줘.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야.”
부회장은 고개를 돌렸다.
“다른 임원들도 모두 기분 풀지. 오늘같이 좋은 날 꼭 인상 쓸 필요 있나.”
“죄송합니다.”
“오늘은 마음껏 자축하자고. 이 얘긴 나중에 정기 회의 때 다시 하도록 하자.”
그 말에 다른 임원들은 엉거주춤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박 전무는 가식적인 미소도 띄울 수 없었다. 기술책임자이자인 그는 누구보다 현실의 심각함을 알고 있었다.
이는 한 시가 급한 일이라는 걸.
***
첩보전을 방불케 한 사건이 끝났지만 준철은 여유를 만끽할 세 없었다.
소비자분쟁원으로 향한 준철은 바로 김무석 과장을 만났다. 불안하게스리 그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사건은 잘 마무리하셨나요?”
“네. 덕분에요. 중기청에서 적합업종 해제했습니다. 3년 후부터 아현이 정식 시장 진출할 것 같네요.”
“에휴……. 그놈들 시장 진출시킨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김무석 과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상황이 매우 심각한 모양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근데 많이 심각한가요?”
“네. 먼저 이 자료를 봐주십쇼.”
그가 건넨 보고서엔 한 차량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지난번에 이 과장님께서 차량 다섯 대의 결함 조사를 요청하셨잖아요. 중고차.”
“네.”
“그중 한 대가 최근 아현에서 출시한 이 X9이란 모델이었습니다.”
준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건 결함 차 아니지 않았나요?”
“네. 결함 차는 아니었죠. 더 정확히 말해 사고 이력은 없는 차였죠.”
“하면…….”
“출고 때부터 하자가 있었던 그냥 불량 차였습니다.”
정밀 검사를 맡은 기술팀은 경악했다. 사고 이력이 없는 차량에서 사고 차 이상의 하자가 발견된 것이다.
용접 불량부터 시작해서, 안전벨트, 에어백까지 없는 결함이 없었다.
“솔직히 안전성 면에 있어선 사고 차량이 더 튼튼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사진을 보여 줬다.
“이 사진이 X9 고압연료펌프입니다. 근데 내구성이 얼마나 엉망인지 연료가 누유된 흔적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동차 시동이 갑자기 꺼져 버리죠. 고속도로였다면 최소 사망 사고로 이어졌을 겁니다.”
듣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이 전자제어 유압 장치 보이세요?”
“네.”
그가 준비한 다음 사진은 한눈에 봐도 낡아 보이는 부품이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부품이 마모돼 합선 위험이 있습니다. 이 부품이 합선되면 차량이 순식간에 타 버립니다. 근데 이게 무슨 전기차라서 쓰이는 장치가 아니라 차량 반도체 쓰는 차량엔
다 있는 장치거든요.”
“그럼 X9뿐 아니라…….”
“아현차 다른 기종에도 같은 결함이 있을 가능성 크겠죠.”
준철은 미간을 짚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이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가.
중고차 논란에선 본의 아니게 아현차 입장을 편들었다만, 지금은 그런 자신이 다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근데 이게 한 차량에서 다 발견될 수 있는 결함인가요.”
“솔직히 저희도 놀랐습니다. 해서 저희가 분쟁 민원을 살펴봤는데요.”
그는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웬 서류 산더미를 가져왔다.
“그간 저희 소비자분쟁원에 보고된 결함 사례가 많더군요.”
“이게 다 X9 결함 자료인가요?”
“그렇습니다.”
X9은 이미 문제가 많은 차량으로 소비자분쟁원에 자주 접수된 차였다.
접수 사례를 살피던 준철은 더욱 기가 찼다.
“X9은 출시된 지 6개월밖에 안 지났네요?”
“네. 근데 벌써부터 이 정도 하자가 접수된 겁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이게 원래 아현차 영업 방식입니다. 자동차 업계의 쪽대본이랄까……. 일단 출시부터 하고 고객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매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문제점을 고쳐 갑니다.”
하지만 이건 경우를 넘어섰다. 웬 놈의 차가 이런 하자투성이란 말인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지금 민간에선 X9 피해자 모임까지 결성됐다고 합니다.”
“…….”
“그쪽에선 지금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난리예요. 그도 그럴 게 최근엔 급발진 사례까지 보고됐더군요.”
차량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급발진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안다.
아니, 급발진을 제외한 다른 문제도 엄청나게 치명적인 문제들이다.
“사실 안전벨트나 에어백 결함은 아현의 고질적 문제라 저희도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는 편인데 이건 그 수준을 넘어 섰습니다.”
준철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이거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