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아현차 스캔들 (2)
주가가 연일 신고가를 갱신하며 아현차 안팎에서 즐거운 비명이 쏟아졌지만, 이 결과에 웃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여간 공무원 놈들은 뿌리부터 썩었어!”
X9의 차주, 소비자대책위원회는 치솟는 주가가 야속하기만 했다. 불량 차나 찍어 대는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슨 시장 구원자가 되지 않았나.
사실 이들은 아현차보다 공정위에 더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국에 X9 불량 민원을 제기한 게 벌써 500건. 출고된 지 겨우 6개월밖에 안 지났음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신고 건수다.
피해 사례가 많은 만큼 공정위가 조속히 해결해 주리라 기대했건만 웬걸.
소비자의 원성은 철저히 무시하던 놈들이, 중고차 시장에선 아현차 두둔하기 바쁘다.
“이건 분명 공정위가 뒷돈 받고 아현차 진출 허락한 거야!”
“왜 아니겠어. 뭐 소비자의 편익? 그런 놈들이 아현차 불량 신고를 이렇게 묵살해도 돼?”
“소비자분쟁원이 아니라 대기업 앞잡이들이라고!”
사실 X9은 출시 전부터 기대보단 우려를 더 많이 받고 판매된 차다.
세단 중심인 아현차가 과연 소형 SUV를 생산할 수 있을까? 기존 대형 모델에서 체급만 낮춰 출시하진 않을까.
X9은 시장의 이러한 우려를 정확히 반영하며 잦은 시동 꺼짐과 엔진 과부하로 보답했다. 최근엔 급발진까지 보고되며 차주들의 불안감에 부채질했다.
더욱 미치겠는 건 모두 원인 미상의 결함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무척 절망적인 일이었다.
미국의 경우 불량 지적이 나오면, 결함이 없다는 것을 기업이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하지만 한국은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다.
원인 미상의 결함은 곧 무죄나 다름없었고, 아현차는 소대위의 요구를 더욱 철저히 무시했다.
한술 더 떠 유언비어 유포자들에게 엄정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 발표했다.
“이제 다 게임 끝난 거 아니요.”
그런 마당에 공정위가 아현차를 두둔하는 일까지 펼쳐졌으니 치가 떨리도록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급발진 사례까지 보고됐는데 뉴스에 기사 한 줄 안 나가잖아? 온통 다 중고차 얘기뿐이야!”
“됐어. 난 그냥 X9 중고로 내놓을렵니다. 경험상 이런 문제는 사람 하나 죽을 때까지 아무도 안 나선다고.”
다들 분통을 터트릴 때, 소대위 김성원 대표가 말했다.
“흥분들 가라앉힙시다. 엄밀히 말해 중고차 사건과 이 사건은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관계는 없지만 공정위의 인식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노골적으로 대기업 편 들어주잖아요.”
확실하다. 소비자의 편익은 개뿔 공정위는 무조건 아현차 편이다.
“솔직히 우리가 뭐 다른 노력을 안 해 봤어요? 유명한 웹튜버 섭외해서 불량 문제 터트리고, 서명 운동까지 했는데 꿈쩍도 안 하잖아.”
“난 공정위가 저 따위로 나오는 거 보고 전의 잃었습니다. 이거 더 해 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요.”
“박 씨 아저씨 말이 딱 맞아. 이건 사람 하나 죽을 때까지 안 바뀐다니까.”
김성원은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러니까 더 포기하면 안 되죠. 그 사람 하나 죽는 게 우리 가족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 우리가 차 한 대 쉽게 바꿀 만큼 여유로운 사람들입니까.”
다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가 한두 푼 하는 물건인가. 집 다음으로 비싼 것이 차다. 이들 모두 가성비 때문에 아현차를 선택하는 전형적인 소시민들이었다.
김성원 대표가 힘주어 말하자 사람들도 차츰 흥분을 가라앉혔다.
“솔직히 난 대표님 말이 맞다고 봐요……. 차 한 대 다시 뽑으려면 취득세가 얼만데.”
“환불은 물론이거니와 그 취득세도 다시 받아 내야 돼요. 이건 구매가 아니라 사기를 당한 건데.”
“그렇다고 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김성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계속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워 봅시다. 우리 그 때 본사 앞에서 시위하기로 한 거 스케줄대로 진행합시다.”
“대표님, 근데 지금 한창 아현차 축제 분위기 아닙니까. 사람들 인식이 너무 좋아서 자칫하면 우리가 진상으로 몰릴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편이 더 나아요. 언론들 주목받고 있을 때 터트리는 게 파급력이 더 크죠.”
“근데 아현차가 유언비어 유포자들에게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잖아요. 이거 괜히 송사 시달리다 우리만 피 보는 건 아닌지…….”
김성원은 불안해하는 회원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바꿔야 될 게 바로 그 아현차의 억지입니다. 뚜렷한 불량을 유언비어라 매도하는 그 뻔뻔함.”
“…….”
“싸움은 불가피합니다. 이건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대응해야 해요.”
김성원은 부탁하듯 말했다.
“다들 바쁘신 줄 알지만 꼭 시간 내서 시위에 참가해 주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 사망 사고가 우리 가족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신사동 아현자동차 사옥.
연일 신고가를 갱신하며 고조되었던 아현차 분위기가 오늘은 조금 심상치 않았다. 차량 80여 대가 본사 앞을 점거하며 아침부터 요란한 시위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원인 미상의 결함은 면죄부가 아니다!
-X9의 결함 없음은 아현차가 직접 입증하라!
-출고 중단! 도로엔 흉기차가 달린다!
시위대의 구호는 아현차의 성공 신화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딱 좋았다.
“뭐야, 아현차 문제 있었어?”
“아, 저거 X9. 출고 때부터 문제 많았던 그 차 같은데.”
“세상에나 저거 급발진 영상 아니야? 문제가 좀 많나 본데.”
김성원 대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메가폰을 잡았다.
X9의 문제점을 구구절절 호소하며 대책을 요구했다.
“저것들 또 시작했구먼.”
아현차 김상명 사장은 꼭대기 층에서 이 광경을 마뜩치 않게 봤다. 옆자리엔 X9의 문제점을 처음 제기했던 박 전무가 함께하고 있었다.
“천박한 놈들. 남의 집 잔칫상을 엎는 것도 모자라 똥물까지 뿌리고 있네. 기자들 모였으니 아주 이때다 싶은가봐?”
“…….”
“박 전무, 저것들 계속 둬야겠어?”
해산시키라는 말이다. 하지만 박 전무는 고개를 저었다.
“강제로 해산시킨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사장님. 부회장님 한 번만 다시 설득해 주실 수 없습니까. 일단 생산 중지하고 우리 공정 과정을 다시 한번 검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부회장님 말씀을 거역하자는 거야?”
“그게 회사를 위한 길입니다.”
“회사를 위한 길은 저 바퀴벌레 같은 놈들 입 다물게 만드는 거야!”
김 사장은 화가 끝까지 났다.
박 전무는 아현차의 유일한 이공계 출신 임원으로 정말이지 융통성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놈이다.
회의에서 그 망신을 당했으면 적당히 알아들어야지!
“입 다물게 할 수 없을 만큼 불량 신고가 많습니다.”
“그럼 내년에 업그레이드 출시해. 박 전무가 다시 공정과정 점검하면 될 거 아니야.”
“…….”
“그렇다고 우리가 뭐 싹 입을 닫재? 부회장님 지시대로 무상 수리해 줘. 거기까지가 딱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선이야.”
박 전무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쪽 사람들 만나서 설득해 보겠습니다.”
“아니, 자넨 나서지 마.”
“……예?”
“본새 보아하니 자네한텐 맡겨선 안 될 것 같아. 아주 저쪽에 붙어먹어 가지고 우리 내부 결함을 줄줄이 실토할 것 같은데.”
모욕적인 말이었다. 박 전무가 비록 회사에 쓴소리를 하고 있다고는 하나 누구보다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내부 고발자 취급이나 하다니!
“사장님, 제가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 아니면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이 일은 내가 맡는다.”
“하지만…….”
“박 전무, 내 앞에서 변명할 시간 있으면 지금 당장 생산 공장으로 가. 자네 말대로 문제 있으면 지금이라도 공정 되돌아봐야 할 거 아니야?”
“…….”
“뒷일은 내가 할 테니까 썩 내 눈앞에서 사라져.”
박 전무는 한마디도 못 하고 그렇게 쫓겨났다.
혼자 남게 된 김 사장은 인터폰을 들었다.
“어, 난데. 저기 대표가 누구라고? 어, 그래 그놈. 일단 그쪽 대표자들 추려서 내 방으로 올라오라 그래.”
김 사장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실 면담이 목적이 아니라, 면담하는 시간 동안 시위를 못 하게 하는 게 진목적이다.
막상 만나도 별로 할 얘기가 없다. 당분간 집중된 언론의 관심만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팽개칠 생각이었다.
***
김 사장의 집무실엔 소대위 사람들이 모였다.
김 사장은 환한 얼굴로 이들을 맞이했지만 차가운 반응만 돌아왔다.
“흥, 아현도 카메라가 무섭긴 한가 봅니다. 지금까지 들은 체 만 체 하더니 이렇게 귀한 시간도 내 주시고.”
“오해 풉시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중고차 진출과 관련해 신경 쓸 게 많았어요.”
“네. 구경 한번 잘했습니다. 아주 공정위를 아현차 끄나풀로 만드셨더군요.”
“끄나풀이 아니라 공정위가 소비자의 편익을 생각하고 내린 용단이었죠.”
소대위 사람들은 부아가 치밀었다.
감히 저놈 입에서 소비자 편익 같은 단어가 거론되다니.
“그래요? 우리가 아는 공정위는 소비자 편익 따윈 개나 줘 버린 놈들인데.”
“여러분들도 이젠 현실을 직시하세요. 그런 공정위가 여러분들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얘기란 뜻이겠습니까.”
“뭐, 뭐라고!”
분위기가 또다시 파행 조짐을 보이자 김성원이 입을 열었다.
“다들 그만- 김 사장님. 얘기 길어져 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테니 본론만 얘기합시다.”
“바라던 바요.”
김성원은 준비한 서류를 들이밀며 말했다.
“이게 지금까지 보고된 아현차의 결함 사례들입니다. 뭐 더 잘 아실 테니 두 번 얘기할 필요 없겠지요. X9의 실패를 인정하고 우리 차주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그 정당한 보상이라는 게 뭡니까.”
“피해 차량의 조건 없는 환불입니다. 사실 여기 있는 차주들 중엔 고속도로에서 시동이 꺼져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현에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면
저희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모두 합의했습니다.”
김 사장은 시큰둥한 얼굴로 김성원을 훑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군요. X9은 저희가 5년 동안 개발에 매진한 차로 이미 안정성이 충분히 검증된 모델입니다. 그런 차를 무턱대고 환불해 달라 하시면 저희가
난감하죠.”
“아니, 지금 이 수많은 결함 사례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물론 생산 과정에서 결함이 나왔을 순 있겠습니다. 저희 노조가 워낙 강성해 저희도 현장의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진 못하죠. 해서 저희가 생각한 대책안이 있는데…….”
소대위 사람들은 울분을 참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뻣뻣한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현차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대책’이다.
“결함 차량을 저희 서비스센터에서 무상으로 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대는 더 큰 분노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