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아현차 스캔들 (3)
“무슨 수리? 무상 수리?”
소대위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김 사장의 당당한 얼굴을 보니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는 모양이다.
“예. 저희가 가진 광역 서비스 센터에서 문제 된 부분을 모두 무상으로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제안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김 사장의 당당함이었다.
환불은 당연한 얘기요, 취등록세까지 배상하겠다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겨우 무상 수리?
“폐차시켜도 시원찮을 차를 겨우 무상 수리로 끝내겠다고?”
“수리는 본체가 멀쩡할 때나 쓰는 단어지! 굴러가는 것도 기적인 차에 무슨 무상 수리야!”
차분함을 유지했던 김성원도 이 무지막지한 제안엔 목소리가 커졌다.
“이보세요, 김 사장님. 지금 이 제안이 가당키나 한 겁니까.”
“역시나 차가 목적이 아니군.”
“뭐요?”
“보상금이 목적인가? X9의 사소한 결함을 트집을 잡아 우리 아현차에 막대한 배상을 받아 낼 요량 아니요.”
적반하장도 모자라 이젠 자해공갈단 취급. 이건 더 들어 볼 필요도 없다.
“기대한 내가 등신이지!”
“갑시다! 이것들 괜히 카메라 많이 모여 있으니까 잠시 모면하려고 우리 부른 거야.”
소대위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김성원은 이들을 말렸다.
지금 자리를 벗어나서 좋을 게 없다. 아현차는 분명 이걸 가지고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했다 변명할 놈들이다. 나중에 당국이 중재할 때 어떻게 변명할지 계산해 두었을 것이다.
“김 사장님……. 네. 그럴 수 있습니다. 자동차 고객 중에는 블랙 컨슈머도 많다고 들었어요. 아현차 입장에선 저희가 의심스러울 수도 있죠.”
김성원은 침착하게 말했다.
“근데 신차 고객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안고 구매하는지는 알 겁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검증되지도 않은 차를 대기표 받고 기다릴 만큼 아현차에 충성적인 고객이었습니다.”
“그러니 무상 수리를 해 주겠다는 겁니다.”
“무상 수리는 원론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바로 안전입니다. 차의 결함이 발견된 이상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제시해 달란 말이에요.”
“그게 대체 뭔데요?”
“차량 환불요.”
김 사장은 비웃음을 흘렸다.
“김 대표님은 자꾸 이해심 많은 척하시면서 과한 억지를 부리십니다? 출시 6개월 만에 차량 환불이라. 우리 아현더러 죽으라는 얘기 아닙니까?”
“지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마당에 기업 적자가 대숩니까?”
“저희에겐 대숩니다.”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업에겐 역시나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가.
“오해하실까 말씀드리는데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계속 최악의 상황만 가정하고, 그에 준하는 보상을 저희에게 요구하고 있어요. 무상 수리로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문제점을 자꾸…….”
“됐고. 아현차 입장은 잘 이해했습니다. 입 아프게 더 이야기할 필요 없겠군. 만약 우리 요구 조건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우린 당국에 리콜 요청까지 할 겁니다.”
“자동차 리콜을 그렇게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만.”
“안 되면 될 때까지 하죠. 우린 계속 국토부와 공정위에 민원 넣을 거고 반드시! X9 전체 리콜 명령 떨어지게 만들 겁니다.”
김 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억지를 부리셔도 저흰 이 이상의 보상을 드릴 수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법정에서 봅시다. 다들 가자고.”
혼자 남게 된 김 사장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당국이 이걸 과연 리콜할까?
어림없는 소리다. 행정 당국은 기껏해야 중재나 권유로 끝낼 것이다.
“답답한 놈들. 우리가 리콜 요청 한두 번 들어 보는 줄 아나. 쯧쯧.”
오늘은 결렬되었지만 곧 저들은 승복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
***
김무석 과장과의 면담 이후 준철은 고민에 빠졌다.
아니 작은 자책에 빠져 있었다.
‘아현차 이것들…….’
물론 중고차 논란에서 아현의 손을 들어 준 건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 적어도 아현차가 사고 이력을 속일 놈들은 아니니. 기업 자체가 정직해서라기보단 잃을 게 많은 놈들이라 그런
짓을 못한다.
하지만 신차 시장에서 아현은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X9은 출시 6개월 만에 500건 가까이 결함이 보고 된 문제투성이였고, 아현은 해당 논란에 이를 악물며 무대응하고 있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중고차 업자들이나 대기업이나 결국 기업은 기업인 모양.
생각을 정리한 준철은 바로 소비자 분쟁원 김무석 과장을 찾았다. 김 과장은 작은 회의실로 준철을 안내하더니 조심히 물었다.
“결정내리셨습니까?”
“그 전에 먼저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요.”
“뭐든 말씀하세요.”
“리콜에도 단계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작은 단계가 무상 수리나 보증 기한 연장 같은 보상 대책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이 문제가 이 선에서 정리될 수
있나요?”
김무석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헤드라이트나 열선시트 불량 같은 편의 기능에 문제 생겼을 때 얘기고요. 지금처럼 시동 꺼짐, 누유 같은 안전과 직결된 문제엔 무상 수리로 땜빵 못 합니다.”
“그럼 혹시 그 문제 된 부품만 수리를 해 주는 건요?”
“뭐 현실적으로 타협안이 그렇게 나올 수는 있겠죠. 그게 아현차가 지금까지 내놨던 보상 방식이기도 했고. 하지만.”
김무석 과장이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건 원론적인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저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X9은 기존 대형 모델을 체급만 낮춰 소형SUV로 바꾼 모델이에요.”
“설계 단계부터 엉성했다는 건가요?”
“네. 그게 아니라면 출시 6개월 만에 500건의 결함 신고가 나올 수 없습니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김 과장이 머뭇거리자 준철이 대신 대답했다.
“전량 회수군요.”
“그렇습니다.”
전량 회수, 즉 환불. 리콜 명령 중 가장 강력한 단계의 시정 조치다.
X9은 아현차가 야심작이라 광고했기에 벌써 1만 대가 넘게 팔렸으며, 차량 대기가 1년이나 밀려 있었다.
이미 팔린 차 1만 대에 잠재 판매량 약 2만 대.
만약 전량 회수 리콜이 결정되면 약 3만 대의 손해를 입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만큼 아현차도 사활을 걸고 덤벼들겠지.
“반발이 만만치 않겠군요.”
“네. 행정소송까지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것도 승소를 장담할 순 없고요.”
사실 더 큰 문제는 이 행정소송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다. 법대로 가면 아현차가 문제없는 차란 걸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 측에서 문제 있는 차량이란 걸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게 어디 쉬운가?
자동차 같은 첨단 기술 산업은 제아무리 공공기관이라 할지라도 입증이 어렵다.
모든 증거를 다 갖추고 싸워도 이길까 말까 한 것이 행정소송인데, 가만히만 있어도 이기는 대기업 소송전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럼 별수 없겠네요. 자동차안전연구원에 주행 테스트를 의뢰하는 수밖에.”
“……예? 거기까지 끌어들이자고요?”
“비전문가인 저희는 말싸움 말곤 할 게 없어요. 문제 있는 차량이면 거기서 발견되겠죠.”
한국교통공단의 자동차안전연구원.
자동차 업계의 국과수 같은 곳으로 가장 공신력이 높은, 아니 국내 유일무이의 자동차 전문 집단이다.
이곳은 자동차 업계에서 저승사자로 통했다.
안전 테스트 미달된 차량엔 판매 정지 같은 강력한 제재도 내릴 수 있는 곳이니. 하지만 이곳에도 허점은 존재했다.
“이 과장님…… 꼭 거기가 나선다고 일이 다 해결되진 않습니다. 아닌 말로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차량들? 다 까다로운 검증 과정 거치고 출시돼요. X9도 이미 한자원에서 주행
테스트 통과됐으니 출시까지 된 겁니다.”
“네.”
“그런데도 왜 자동차 결함 분쟁이 끊이질 않겠습니까?”
“불량 차량은 소수고, 그 마저도 기업들이 제조 과정에서의 결함이라고 하니까요?”
“네. 솔직히 샘플이 부족하면 한자원 주행 테스트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없는 차량이란 것만 입증하는 셈이죠.”
상식적으로 정상 차는 불량 차량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해마다 자동차 리콜 논란이 끊이질 않는 건, 이 주행 테스트 자체가 완벽하지 않다는 방증인 셈이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그럼 아예 샘플을 다 문제 차량으로 의뢰하면 되잖아요.”
“문제 차량이라 함은…….”
“소비자분쟁원에 신고된 결함 차량들요. 그것만 모아서 한자원에 주행 테스트 의뢰하고 결함 밝혀내죠.”
어차피 한두 대 불량 밝혀낸다 해도 기업들은 제조 과정의 문제였다 둘러댈 게 뻔하다.
이걸 사전 차단하려면 문제 된 차량들만 모아서 의뢰하고 불량 패턴을 발견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안 하면 아현은 그냥 문제점들 좀 보완해서 내년에 업그레이드 출시하는 선에서 그칠 겁니다.”
“…….”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수 없어요.”
김무석 과장도 이 말에는 동의했다. 적당히 끝내면 매년 차량 업그레이드를 하며 주먹구구식 땜빵 차가 양산될 것이다. 물론 차량 중 일부는 매년 업그레이드 출시되며 좋은 차로
성장하는 차도 있지만, 지금은 소비자들의 권익이 중요해진 시대다.
만약 그 과정에서 인명 피해라도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다.
“물론 저도 처음부터 한자원 찾아갈 생각 없습니다. 되도록 아현차가 자발적 리콜을 하게끔 설득해야죠.”
“플랜 B란 말씀이시군요. 근데 진짜로…… 그 사람들을 진짜 만나 보시려고요?”
“네. 그 소비자대책위원회라는 곳이랬나요?”
김 과장은 살짝 난색을 표했다.
“이 과장님, 다른 건 다 좋은데 그 사람 만나는 건 좀 신중히 생각해 보세요.”
“왜요?”
“사실 우리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아니, 감정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곳이죠.”
“설마 아현의 중고차 진출 때문에요?”
김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가지고 무슨 공정위가 아현이랑 붙어먹었네 마네……. 국민신문고에 악성 투서까지 날리고 있답니다.”
“뭐 그럼 이번 기회에 오해 좀 풀죠.”
“……참 넉살도 좋으십니다. 자기들 편 안 들어줬다고 악성 민원 날리는데 괘씸하지도 않으세요?”
준철은 씩 웃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죠. 우리가 소비자 편익 앞세워서 중고차 시장 진출 도왔는데, 정작 진짜 소비자들의 원성은 무시하고 있었으니.”
이해한다.
자신들의 민원은 묵살하고 대기업 도와주는 모양새였으니 얼마나 미웠겠는가.
“그리고 전 누구랑 붙어먹었네 소린 하도 들어 봐서 이젠 다 면역됐습니다.”
“진짜 참……. 넉살 좋으시네.”
“괜찮으시면 김 과장님께서 자리 좀 주선해 주세요. 사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조건이 뭔지, 아현과 합의할 수 있는 접점이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김무석 과장은 이미 질린 표정이었다.
젊은 과장은 넉살뿐 아니라 배포도 좋은 놈이다. 자신은 엄두도 나질 않는 사람들인데.